회색 도시를 알록달록 수놓았던 단풍이 어느새 지고 있다. 나무는 이제 마지막 잎새마저 훌훌 떨군 채 앙상한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봄 ‘꽃놀이’와 달리 가을 ‘단풍놀이’는 잔인하게 느껴진다. ‘놀이’보다는 ‘애도’가 어울릴 것 같다.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의 <애도>(류시화 옮김)라는 시다. 죽음이라는 현상 혹은 사건에 대해 이토록 정곡을 찌르는 시적 표현도 드물겠다. 살아 있을 때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평가가 갈리더니만 죽으니까 한결같이 ‘좋은 사..
연평도 포격도발이 일어난 지 10년째가 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14:34분. 북한군이 연평도로 170여발의 포탄을 퍼부어 수많은 가옥이 잿더미로 변하고 해병 2명이 전사, 16명 부상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하였다. 피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온 국민이 잊고 살았던 전쟁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은 한반도가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이며 북한의 무력 도발로 무고한 희생자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피부로 느낀 것이다. 정전협정이후 잊고 살았던 전쟁 공포가 남긴 상처이다. 연평도 해병대 장병들은 적들의 포탄을 뚫고 14:47에 대응 사격을 실시하여 북한 무도의 해안포 진지와 개머리 방사포 진지 부근에 탄착군이 형성되었고 북한군에게도 많은 피해를 준 것으로 분석되었다. 미국의 대북 군사전문가 조지프 버뮤데즈씨는 “공격..
문재인 대통령이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다층적인 정상외교에 나서고 있다. 행사에서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최종 협정문 서명식을 통해 아세안 10개국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 지대가 출범한 것은 중대한 변화다. 하지만 RCEP를 중국의 주도권 확대로 보는 시각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철저한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미국 바이든 정부가 회복시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가하는 RCEP는 참가국의 무역 규모, 인구, GDP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0%에 달하는 최대 규모의 FTA다. 세계 각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무역협정이 그렇듯이 각 부문에서 경제영토를 넓힐 계기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무역의존도가 60%를 넘기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에서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경제블록 가입은 일단 좋은 기회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RCEP 출범으로 인해 핵심 품목뿐 아니라 섬유·기계부품 등 중소기업 품목과 의료위생용품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망 품목의 수출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원산지 기준이 통일돼 역내 여러 국가를 거쳐 만들어진 상품까지 특혜 관세를 적용받게 되는 것도 중대한 변화다. 게임·영화 등 시장도 추가로 열리면서 성장잠재력이 큰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이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없는 메가 FTA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느낄 만큼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중국이 RCEP을 주도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우리 정부로서는 당장 CPTTP 가입 여부가 고민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도해 만든 TPP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하면서 일본 등 나머지 11개국은 CPTPP로 이름을 바꿔 2018년 공식 서명했다. 우리는 그때 가입기회를 놓쳤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RCEP이 중국이 주도하는 협상이었던 것처럼 오해하는 시각이 있다”며 중국 주도의 협상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는 “협상 타결까지 주도한 것은 아세안이고, 8년간 의장국을 인도네시아가 맡았다”며 “중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RCEP에 참여한 15개국 중 하나”라고 애써 부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국이 CPTPP 등에 재가입하고, 우리에게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며 “정부도 예전부터 (가입을) 검토해온 만큼 국익을 생각해 최종 입장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CPTPP 가입을 추진할 경우, 중국의 반발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 정부의 가입을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고도의 실용적 외교력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다. 국제관계에서 ‘힘의 논리’라는 거친 파도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빼어난 슬기가 필요하다. 힘없는 나라가 어느 한 편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외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얽히는 것이야말로 무조건 피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바야흐로 우리는 위태로운 고도 균형외교의 시소 한가운데로 몰리고 있다.
죽어야 피는 꽃이 있다. 수직으로 아찔한 벼랑 끝에 처절하게 부서지는 꽃이 있다. 부서지고 죽어야 피는 그 꽃은 일터에 핀다. 밤낮으로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굴착기에 무너진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질 때, 십층 높이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딜 때, 피처럼 붉은 땀이 죽음꽃으로 피어난다. 추락하는 꽃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스스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밝힌 이들이 있다. 틱꽝득과 전태일이 그렇다. 베트남 승려 틱꽝득은 1963년 소신(燒身)하였고,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1970년 분신(焚身)했다. 승려 틱꽝득의 죽음은 부패한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 정권을 몰락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발화점이 되었다. 그것이 역사에 기록된 두 사람의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
방송작가란 직업을 택한 것은 ‘수 틀릴 때 확 때려치울 수 있고 돈 떨어지면 바로 일자리를 얻는데 용이해서’ 였다. 물론 인정받는 위치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일테고. 일을 쉬면 바로 저가 비행기표 검색에 들어갔다. 단 사흘이라도 가족, 직장의 일원이 아닌 자연인으로 떠돌다 돌아오면 터질 듯 에너지가 충전되었다.그 힘으로 글쟁이의 지옥을 견디었다. 그런데 코로나. 앞이 안 보이는, 사방이 벽인 작금의 세상, 행사도 만남도 취소, 취소, 취소다. 집구석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안다. 응급치료법은 햇빛과 산책. 혼자 나와 갈 데가 특별히 있을까. 대부분 좀 걷다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문제는 나의 까탈스러움이다. 음악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 젊은층을 타깃으로 트는 대중가요, 팝송같은 유행..
더닝크루거 효과란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 평가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 또는 인지편향(認知偏向)의 오류로써 자신의 결정에 의해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알아 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류를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 영국에서 아프리카 나이저강(Niger R.)의 수원(水源, source water)을 찾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 레드야드라는 사람을 탐험대장으로 임명했다. 나이저강은 아프리카 대륙 서부를 흐르는 강으로써 기니의 시에라리온 국경에 가까운 기니 지방에서 발원해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크게 굽어 나이지리아로 들어갔다가 기니만으로 흘러나가는 길이 4,180km. 유역면적 189만 600㎢의 큰 강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탐험의 책임자인 레드야드는 쿡 선장 탐험대의 일원으로..
정부가 내놓은 택배기사 과로사방지대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거세다. 문제의 본질인 ‘택배비 인상’ 해법을 회피하고 있어서 ‘격화소양(隔靴搔癢)’이라거나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마저 일고 있다. 즉 택배기사 장시간 근무의 구조적 핵심요인 해소는 어물쩍 뒤로 미뤄둔 대책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다. 소비자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협조할 용의가 있는데, 정부·정치권이 악역(惡役)을 너무 기피하는 게 아니냐는 힐난마저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은 근본 해결책이라기엔 어림없다. 뜨거워진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을 증명하려는 면피 수준이라는 비판이 인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택배 수수료 인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해법을 유보한 채 변죽만..
“경찰이죠? 여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있어요” 경기북부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는 단순 마스크 미착용 관련해서 하루 7건 정도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지난 8월 12일 감염병예방법이 개정되면서 이러한 단순 마스크 미착용자도 1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태료부과는 11월 12일까지 계도기간이라 아직까지 과태료 처분을 받을 일이 없었다. 이러한 마스크 미착용 행정명령 위반행위 관련 문의는 지금까지 정부민원안내 콜센터(110)로 안내하고 상담도 해주고 있다. 그러나 계도기간이 종료된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11월 13일부터는 유흥주점 등 중점관리시설 9종, 일반관리시설 14종 그외 기타시설 및 대중교통 등 대부분 시설은 물론 야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이를 위반하면 이용자는 10만원 이하, 운영자·종사자..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여든여덟 살 때의 일이다. 선생은 이른 아침 <샘터>에서 일하고 있던 정채봉 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 선생, 나 지금 공항에 나왔어요.’ 하더란다. 정채봉 씨가 ‘선생님 어디 가시려고요?’ 하니, 선생은 ‘독일 좀 다녀오려고요’ 하기에 ‘아니 혼자서요?’하고 되물으며 당황해하니까 선생께서는 껄껄껄 웃으며 오늘이 만우절 아닙니까. 하시더란다. 그때서야 정채봉 씨는 만우절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그의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어서 그는 가족끼리라도 장난이라도 치면서 키들키들 웃으며 살자고 했다. 팍팍한 세상 아침 시간 산길을 걷는다. 가을 산의 마지막 이별의 이미지인가. 낙엽이 빗물을 머금고 있다. ‘가을에는 소 발굽에 고인 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하늘이 목마른 가을의 이별 앞에 빗물로 목을 축..
국민의힘이 정의당의 ‘1호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해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 현장에 나간 국민이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비극을 종식하기 위해서 기업주와 경영진이 일정 부분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은 반드시 필요한 사회안전장치다. 이번 기회에 여야 정치권이 합심하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입법을 서둘러 완성해야 할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는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산업재해 방지에 이견이 없다”며 “초당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민사든 형사든 훨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정의당이 내놓은 방향으로 제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도 참석해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정책적으로 공조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정의당이 지난 6월 강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제출한 관련 법안은 ‘정의당 1호 법안’으로 불린다. 이후에 정의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여왔다. 이 법안은 지난 2017년 고 노회찬 의원 등이 제출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역사를 갖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 사망,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 인명피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여야는 곧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임기응변식으로 여론을 무마해 왔다. 물론 이 입법에 대해서 재계에서는 ‘이중 처벌’, ‘과잉 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은 없던 처벌규정을 만드는 데 대한 우려의 성격으로 읽어야 한다. 입법과정에서 합리적인 법안을 창출하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실시해 12일 발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방향 공감도’ 조사에 따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명시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58.2%, ‘처벌 중심의 법안 처리는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27.5%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14.4%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80.6%가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고, 반대는 11.9%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찬성이 35.5%, 반대가 48.6%였다. 무당층에선 찬성 44.8%, 반대 35.4%로 찬성이 높았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재계가 제기하는 제반 문제에 대한 심층검토를 위해 일단 신중모드를 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난해 재해 사고자 수는 9만4천47명에 사망자는 855명이다. 사고자 수는 2018년 9만832명에서 3천 명 이상 늘어난 수치이고, 2019년 재해율도 0.5%로 1년 사이에 0.05% 증가했다. 현재의 시스템만으로는 재해사고의 비극을 줄일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기업경영주와 경영진에게 산업 안전 인식의 대전환을 유도하고, 노동자들에게도 안전사고에 대한 경계심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로 작동하게 해야 할 것이다. 행복한 직장이 행복한 국가사회를 견인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