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일하는 틈틈이 창밖 풍경을 살핀다. 아침나절은 별로 보이지 않던 움직임이 오후가 되면서 눈에 띈다. 손에 조그만 카네이션 바구니나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들 밝은 얼굴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일 년에 하루뿐인 날을 그냥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늦게 퇴근해서 너무 힘들 것 같으면 다음에 오라고 하셨다고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늦기도 하고 다음날이 친구 결혼식이라 힘들겠다고 하는데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취업하고 처음 맞는 어버이날인데 친구 결혼식에는 가면서 엄마는 뒷전이라는 생각에 꼭 버림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중간에서 생각 없는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도 서운하고 무심한 남편도 일을 하면서 마주치기도 싫었다. 어느새 이팝꽃이 탐스럽게 피고 나뭇잎이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너울을 쓰기 시작한다. 이웃한 종묘상 앞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밭에 심을 온갖 모종들이 잠시 햇빛 아래 앉아 있으면 금방 팔려나간다. 농사일에 서툰 사람들은 한참을 둘러보며 구경을 하고 모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인구 100명 중 6명이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중독자로 추정, 전체 국민 4명 중 1명은 전 생애에 걸쳐 한 번 이상의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의 문제 경험. 이러한 실태는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행복한 삶, 건강한 사회를 위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래 범정부 차원의 최초의 정신건강정책 발표이다. 너무나 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국가 정책을 기대해 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치료를 기피하여 방치하거나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서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정신건강문제 발생시 약 15%만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며, 증상이 나타나고 최초 치료가 이루어지기 까지 1.16년(84주)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신건강 종합대책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였다. 동네의 일반 의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우울이나 불안 등의 정신과적 문제를 스크리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군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지혜열(知彗熱)’이라는 게 있다. 젖먹이 유아들의 몸에서 성장과 면역계를 자극하기 위해 스스로 내는 생리적 발열을 말한다. 주로 돌 이전에 자주 발생 하는데 어디가 딱히 아프지도 않은데 갑자기 열이 나 엄마들이 놀라기도 한다. 아이의 깜냥에 버거울 만한 지혜를 얻게 될 때 발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듯 어린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부쩍 크거나 다소 벅찬 걸 익힐 때 갑자기 아프거나 열이 오르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이른바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한바탕 앓고 나면 몰라보게 달라지지만 앓는 동안엔 힘들고 괴롭다. 아이에서 청소년이 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는 위로의 말도있지만 고통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 과정을 넘기나 싶으면 인생 항로는 성년으로 이어진다. 우리 선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잘 넘기라는 의미로 특별한 날을 정해 성년식을 치러줬다. 그리고 성인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각인 시켰다. 따라서 관례를 혼례나 장례 제례 못지않게 중시했고 성대하고 엄숙하게 치렀다. 성년으로여긴 나이는, 남자의 경우 ‘비로소 관을 쓴다’는 약관(弱冠) 20세였으며 여자는 ‘꽃다운 나이’라는 뜻의
꽃산 찾아가는 길 /김용택 오늘도 나는 당신 속에 저뭅니다. 당신을 찾아 나선 이 화창한 긴긴 봄날 긴긴 해 다 질 때까지 당신을 찾아가는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물 막히면 물 건너고 산 막히면 산 넘듯, 당신 늘 꽃 펴 있다는 그리움 하나로 이겨갑니다. 가다가 가다가 해 저물면 산 하나 되어 산속에 깃들었다가 해 떠오면 힘내어 갑니다. 당신 만나 환히 꽃 필 저기 저 남산은 꽃 없는 쓸쓸한 산 아니라 해맑은 해 어디나 돋는 나라, 눈 주면 늘 거기 꽃 피는 당신 찾아 오늘도 지친 이 몸 당신 찾아가다가 저녁연기 오르는 마을 저문 산 속에 산 되어 깃듭니다.- 김용택시집 ‘꽃산 가는 길’ / 창작과 비평 저도 당신 속에 저뭅니다. 저문다는 거, 그립다는 거, 쓸쓸하다는 거, 우리 모두의 그림자입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러나 꽃은 핍니다. 반드시 피어납니다.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헛된 약속을, 그래도 더욱 믿습니다. 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건만 겨울이 혹독할수록 더욱. /조길성 시인
내 게으름을 틈 타 풀이 무성하다. 며칠 여행하고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가 한참 만에 밭에 나갔더니 풀들의 천국이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땅콩이며 옥수수는 뒷전이고 유채꽃이며 명아주 등 덩치 큰 풀들 틈에서 막 발아를 시작한 풀들로 흙이 보이지 않는다. 밭에 들어서긴 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닐을 깔고 파종을 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도 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잡초를 제거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쪼그려 앉아 풀을 뽑기 시작했다. 적당한 봄비에 풀 밑도 만만찮다. 달팽이며 지렁이 등 벌레들 천국이다. 지렁이가 많은 것은 흙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는 하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힘도 들고 적당히 꽤가 날쯤 호미자루가 빠졌다. 다시 끼우고 돌로 몇 번 두드려 박았지만 한 번 빠진 자루는 오래가지 않고 자꾸 빠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헛간에는 자루 빠진 낫과 호미가 서까래에 걸려 있곤 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아버지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 자루를 만들었다. 군불을 때고 남은 불에 호미자루를 달궜다. 숨베가 벌겋게 이글거리면 손질한 나무에 끼우고 망치로 박고 철사로 단단히 조였다. 그 연장은 날이 닳아 무뎌지도록 사용해
우리나라에서 등록번호 2만 번째 변호사가 나온 것은 2년 전이다. 1906년 등록번호 1번에서 시작해 2006년 1만 번째 변호사가 탄생하기까지 근 100년이 걸렸던 데 비해, 2만 번 변호사가 탄생하기까지는 8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매해 1천500~2천명씩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5~7년 이내에 3만 번째 변호사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3천여 명에서 2020년경 2천430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머잖은 시기에 미국처럼 ‘배고픈 변호사’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새내기 변호사, 로스쿨 변호사의 몸값이 뚝 떨어져 사무실 유지도 어렵다는 아우성이다. 뒤집어 보면 서민·중산층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전문가의 법률조력을 받아볼 만해졌다는 얘기가 되지만 날이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변호사는 아직도 판·검사, 의사 등과 함께 이른바 ‘사’자 돌림으로 상류계층의 존경받는 직업으로 분류된다. 변호사가 이처럼 대접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의 소정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등 엄
제라늄 /박진성 꽃잎에 수천 톤 욕망이 앉아 있다 육중한 신체가 타오르고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 여린 불기둥 아서라, 꽃잎에는 아무것도 없다 쪼그리고 앉아 한 잎 먹으면 피가 잘 돌겠다 가까스로 사랑의 입구에 서 있다 살인적인 태양의 한 가운데서 꽃잎이 몸을 열었다. 수천 톤의 욕망으로 이글거린다. 마주대하는 시인은 그것을 육중한 신체가 타오르는 것이라 했다. 여린 불기둥이라고 생각을 더하다가 돌연 꽃잎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의 욕심을 비우고 처음 마음으로 맑아진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마주 보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며 무안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피가 잘 돌 것만 같은 한 잎, 화자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슬며시 웃는 귀가 붉어진다. 두근거리는 주머니가 열리고 조몰락거리는 손가락에 붉은 물이 든다. 사랑의 첫발을 떼려는 입구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다. /정운희 시인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불량식품의 유통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먹거리는 국민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늦게나마 경기도가 식품범죄 소탕작전에 나섰다. 먹거리 문화정착을 위한 범도민적 참여가 절실한 때다. 도민의 건강은 아량 곳 없이 업자의 이익만 앞세워 부정불량식품을 제조·유통·판매하는 범죄를 근절시켜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 확보만이 도민건강을 지켜갈 수 있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워 부정불량식품을 교묘하게 제조·유통·판매하는 범죄가 근절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경기도에서 부정불량식품이 사라질 수 있도록 다음달 1일부터 식품범죄 소탕작전에 돌입한다. 식품범죄 근절 방안으로 단속방식의 변화, 처벌강화, 입체적 홍보 등 3대 전략을 추진해간다. 우선적으로 단속 인력을 대폭 확대하여 기존 일회성이던 단속방식을 시리즈 시스템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과 식품담당부서 직원, 시·군 식품담당공무원 등 총 490명의 정규단속반을 편성해 다음달 1일부터 대대적인 합동단속에 나선다.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과 모니터링 단체 회원이 불법행위 제보를 받는 민관합동작전도 추진해간다. 단속 대상은 시기와 계절에 따라 많이 소비되거나 단속 사각지대 등을 고려해 선정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구분할 것 없이 선거가 끝나면 논공행상이 벌어진다. 아니라곤 하지말자. 왕정시대로 말하자면 공신록(功臣錄)에 등재된 인사들에 대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12년 12월25일, 이명박 정부 말기에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공공기관에 재취업하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는데 다음 정부나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등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은 그게 맞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현 정부 역시 심한 낙하산 인사를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낙하산 인사와 함께 비난을 받는 것은 공신들을 위한 산하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이 민선 출범 이후 5개에서 19개가 늘어나 현재 24개나 된다. 해당 기관 임?직들은 머리띠를 매면서 존재이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방만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도는 외부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3월28일 24개 기관을 13개로 통폐합하는 내용을 제시했다. 예상대로 반발은 컸다. 해당 공공기관은 물론 업무와 관련 있는 경기도의회…
세월이 흐르수록 그리운 아버지를 부를때면 눈물이 먼저 고인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큰 남동생은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아버지와 닮아 간다. 현재 기무사령부의 전신인 특무대(Counter Intelligence Corps, CIC-1950년대, 군사 기밀을 다루던 육군본부 소속 특무부대의 약칭) 출신인 아버지를 모든 사람들은 어려워 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무거움이 무척 좋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쓰여 있는 아버지 방에서 앞뒷장이 떨어져 나가 제목을 알 수 없는 시집에 있던 시가 너무 좋아 어린시절 아무 뜻없이 외웠던 그 시가, 대학 입학 직전 소련의 혁명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이별의 시” 란 걸 알았을때의 그 지적인 충격, 다락방에 굴러 다니던 일본말로 된 만화책을 열심히 보았는데 그것이 세계명작전집이란 알았을때의 국민학교 시절의 경이로움. 일본어와 중국어, 역사에 능통한 아버지와의 식사 시간이 어느때에는 2시간씩 되었을 때도 어린시절 저려오는 다리를 꼬집으며서 나는 자리를 지켰다. 너무 흥미 진진하고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통해서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아버지처럼 세상하고 대면하기를 익혔다. 아버지가 안 계실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