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씨는 30대 후반의 결혼 1년차 주부로 1년 전부터 발생한 공황장애로 3달째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많이 안정되고 자신감도 생겨 동해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밀린 차안에서 약간 긴장은 되었으나, 예전 같은 발작증세 없이 무사히 휴가지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손발이 뻣뻣해지면서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금방이라도 119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다, 치료 중에 훈련 받았던 명상법을 얼떨결에 시도하였다. 남편도 다급하게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숨차고 곧 어떻게 될 것 같은 기분은 없어졌다. 그 후 J씨는 다 나은 것으로 알았던 공황발작을 다시 경험하고 나니, 깊은 절망감에 빠져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하나? 다시 원점이구나. 안 낫는 병인가?’ 하면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너무 힘들어 울고 또 울고 하다 보니 다시 발작 직전까지 가고 손발이 떨리고 경련이 일어나 진정이 안되었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휴가를 마치고, 집에서 무기력하게 며칠을 지내다 다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J씨와 같이 어느 한순간 예기치 않게 갑자기
엊그제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신문사에 근무하니 잘 알 것 같아 당부한다는 말과 함께 대학수시모집에 지원할 ‘자기소개서’ 작성에 대해 자문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고교3학년인 입시생은 자신의 조카이며 부모 형편이 어려워 개인교습 받기는 힘들고, 어렵게 작성한 자기소개서가 제대로 됐는지도 모르겠고..해서 부탁하게 됐으니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설명도 했다. 속으로 난감했다. 요즘 대학들이 입학성적도 중요시 여기지만 인성과 비전, 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도 비중있게 반영 시킨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이같은 측정의 기초자료가 되는 자기소개서에 대해선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처럼의 당부니 어쩌겠나 싶어 얼결에 ‘글세 잘모르는데...“하며 일단 자기소개서를 보자고 했다. 곧이어 이메일로 받은 소개서를 검토하고 여기저기 아는 선생들을 총동원, 자문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글의 구성과 문장의 표현등등에 대해 어렵사리 자문을 해주었다. 비교적 잘 작성한 원본 덕분에 일부만 충고를 해준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 ‘우리딸 입시때도 내가 이랬나’하는 생각을 했다. 글 쓰는게 직업이면서도 이번 일에
즉 어떤 일의 근본을 고치지 않고 사람만 바꾸어 그대로 시킴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寒山詩에 나오는 말로 오늘에 널리 쓰이고 있다. 썩은 내부를 제대로 도려내지 않은 결과를 보면 모든 면에서 부패라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미봉책으로 슬그머니 닫아 두거나 사람이 바뀐다는 명목 하에 나몰라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사실 날이 갈수록 생각지도 못하는 사건과 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우리보다 100배나 넓은 중국 같은 데서 홍수가 나고 집이 무너지는 나름대로의 사건들은 익숙하다. 헌데 중국보다 작은 이 나라는 왜 이리 불안한가.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위치에서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나를 돌아볼 것이고, 태만하고 안주하지 않았나를 이번 기회에 다시금 반성해볼 일이 아닌가 한다. 만대 그 이상을 살아가야할 우리나라이기에 더더욱 불안한 생각 밖에는 없다. 고전에 외모를 수식한 말은 아름다우나 실속이 없고 지성으로 하는 말은 아름답지 않으나 실속이 있다. 곧 苦言은 약이 되고 甘言은 독이 된다는 말을 새겨 內外가 여일하게 하라 했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간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동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평화와 화해 그리고 사랑과 배려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축복의 날로 승화됐다. 광화문에 운집한 수십만의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종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그를 환영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설레임과 흥분이 교차했다. 이념 논쟁과 정치적 이해에 따른 갈등을 넘어서 이 기간 동안에는 잠시나마 훈훈한 정이 흘러 넘치기도 했다. 교황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평화와 사랑 이외에도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은 잔잔하고도 가슴뭉클한 감동을 선사했고, 음성 꽃동네에서 장애우들과 함께한 자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보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환경미화원, 장애인 등을 초청해 위로해준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또다른 감동을 보여주었다. 이는 갈등과 대립이 심화된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치유에 나서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이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출발
지난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으로 출마했던 정몽준 후보의 발목을 잡은 건 상대편이 아니라 집안의 아들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미개한 국민’ 운운한 아들의 철없는 실언에 정 후보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으나 국민들은 분노를 거둬들이지 않았고 서울 시장 자리는 다시 야당에게로 돌아갔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은 엄연히 다른 인격체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생각까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유교에 영향 받은 한국 사회는 부모와 자식을 한 덩어리로 묶는다. 부모의 생각이 곧 자식의 생각이고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이라 여긴다. 가정교육이 잘못됐기에 자식 역시 잘못됐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아들 때문에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린 데 이어 경기도청에서 긴급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열어 머리를 숙였다. 남 지사의 아들 남 상병은 현재 중부전선 6사단에서 군복무 중인데 동료 후임병을 구타하고 성추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해당 사단 헌병대는 지난 4월 초부터 이달 초까지 맡은 일과 훈련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같은 부대소속 후임병들을 턱과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전투화를
8월14일은 ‘세계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14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정부에 맞서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제정되었다. 이날 수원지역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수원평화나비’ 창립과 ‘제1회 수원평화제’를 개최했다. 수원시민들은 지난 2014년 3월1일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어 피해를 당한 여성들과 고통을 나누고, 일본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하여 ‘수원평화비(평화의소녀상)’을 건립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출범하여 2달여간 4천20명의 시민들과 133개 단체가 참여해 9천81만5천860원의 성금을 모아 2014년 5월3일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가졌다. ‘수원평화비(평화의소녀상)’ 건립은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어 여러 타시·군에서 건립과정과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벤치마킹이 한
맹자가 말하기를 정치하는 이들은 사람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 즉 안정된 수입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가장 급한 것이 생활안정이다. 恒産(일정한 재산)이 없는데 恒心(언제나 변함없이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이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라 하였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 앞날이 불안한 자에게 바른 마음을 갖고 열심히 일 하라고 하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 결과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 법정에 끌려다니는 모 의원은 자기 보좌관의 급료를 되돌려 받아 챙겼고, 뭉칫돈을 차안에 뒹굴리면서도 얼마나 인색했는지, 마치 부리는 종이 주인을 고발한 큰 사건이 되었다. 재산이 넘쳐나면서도 종들에게 지독하게 인색한 인물들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 망가지고 사라졌다. 공자도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백성들이 굶지 않는 것이라 했듯이 맹자도 그렇게 보았던 것이다. 맹자가 오늘의 우리 청치 모습을 보고 있다면 기가 차지 않아 다시 눈 감고 말 것이다. 옛날 선비들은 맹자의 부동심(不動心)을 좋아했다. 비록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었던 것은 선비만이 할 수 있고 지조있는 자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보면 된다.…
세법이 복잡하고 매년 개정되고 있어 성실히 납세하고자 해도 일반인들이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수하기 쉬운 세금을 정리해 세금을 줄이고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정리해 본다. 첫째, 알면 알수록 유리하다. 부동산을 양도하는 경우에도 언제 양도하는 것이 좋은지, 감면이나 비과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인지, 증빙서류는 어떤 것을 챙겨야 하는지를 사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주택은 보유기간이 2년 이상 돼야 비과세되므로, 기간이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등기접수일등을 조절해 1가구1주택 비과세요건을 맞춰야 하며, 보유세 과세기준일(6월1일) 소유를 피하면 종부세와 재산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이혼위자료로 부동산을 주는 경우에도 등기원인을 ‘재산분할에 의한 소유권 이전’으로 하면 부부 공동재산 중 자기지분을 환원받는 것으로 보아 세금을 안낸다. 또 건물을 상속할 때는 월세보다 전세가 평가액을 낮추기 때문에 유리하다. 피상속인이 큰병에 걸려 장기간 입원한 경우 병원비는 피상속인 사망 후 내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으로 납부하는 것이 좋다. 자녀들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납부한다면 상속재산에서 공제받지 못한다. 둘째,…
1987년 체제는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1987년 체제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게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우리 사회에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경실련이 1988년에 태동됐다는 것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형성은 이 땅에 다시는 권위주의 체제가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정치치제 중,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을 가장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권력구조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효율적일 것 같지만 이것은 독재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독재의 청산은 곧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을 의미하고, 이는 시민사회의 형성을 통해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즉, 급격한 민주화 과정 속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분명 청산했지만, 권위주의와 함께 우리사회에 필
5만원권이 처음 나온 것은 2009년 6월23일이다. 그러니 올해가 발행 5년차다. 첫 해 4억4천만장의 5만원권이 발행됐고 지금까지 약 8억8천953만장(시가총액 44조4767억원)이 시중에 유통중이다. 화폐 최고 액면가를 5배로 늘리기까지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정부는 화폐의 제조·유통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일각에서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탈세를 조장하거나 불법 정치자금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게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발행된 5만원권은 지금 시중 유통화폐 잔액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빠른 속도로 보급이 늘고 있다. 웬만한 경조사비 봉투를 채우는 것 또한 5만원권일 만큼 친숙해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을 다르다. 매년 발행하는 5만원권 상당량이 시중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개인 금고 속으로 들어가 사장되고 있어서다. 올해 1~5월에 발행한 5만원권만 보더라도 불과 28%만 한국은행으로 되돌아왔다.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등 꾸준히 상승해온 5만원권 환수율도 지난해 48.6%로 뚝 떨어졌다. 금융기관이나 개인·기업이 5만원권을 어딘가에 쌓아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