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재미있게 본 기억의 연장선상에서 ‘수리남’도 다 봤어요. 가만히 놔두면 다음 편으로 넘어가게 돼 있는 시스템 덕분에 전편을 다 보는 일은 어렵지 않더군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이비 목사로 위장한 마약왕 전요환 역 황정민의 소름 돋는 악역 연기였지요. 악독한 마약상과 목사라는 이중인격적 연기를 어쩌면 그렇게 실감 나게 소화하는지, 역시 황정민이구나 하는 생각을 사뭇 했네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마적 마약상 전요환이 눈가림 사목 활동을 하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모습은 참으로 천연덕스러웠어요. 문득 떠오르는 것은 사탄이 목사의 영혼에 빙의(憑依)되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감동적 자애 사상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소명을 맡은 성직자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사탄이 몸을 빌려 장난치기에 딱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우리는 사탄에 빙의된 타락한 성직자들을 정말로 보고야 말았지요. 김규돈 대한성공회 신부가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글과 함께 전 국민이 함께 추락을 기원하자고 상상을 초월하는 선동을 했지요.…
첫눈(小雪)은 청첩장이에요. 겨울이 보내온 언약이기도 하고요. 가을빛에 시든 것들의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겠다는 다짐이라고나 할까요. 언약이든 다짐이든 속내를 들춰 보면 거절할 수 없음을 알게 되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러한데 계절과 계절이 주고받은 약속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간다고 해서 붙들 수 있는 가을이 어디 있으며, 온다고 해서 등 돌릴 수 있는 겨울이 어디 있겠어요. 사람에게도 세상에게도 시절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있어요. 이를테면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도 그런 셈이지요. 지어낸 이야기의 그 소설(小說)이 아니니까 흘려듣진 마세요. 좋든 싫든 첫눈은 오고야 마는 거니까요. 첫눈(小雪)은 밤 여덟 시에요. 하루가 스물네 시간이라면, 밤 여덟 시는 스무 번째 시간에 속해요. 무슨 소리냐고요? 일 년을 스물여섯 개의 절기로 나누었을 때, 스무 번째 절기가 소설(小雪)이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나요? 그리 보면 밤과 겨울은 닮았어요. 어둡고 춥고 쓸쓸해요. 날짜로 환산해 보니까 11월 22일이더군요. 절기상 소설(小雪)에 해당하는 날짜 말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지나온 11월 22일을 돌이켜 보면 유독 찬바람이…
2005년 8월,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사전을 한 권 구입했다. 롱맨 사전(Longman Dictionary). 다음 날 평양에 가서 만날 북한의 보장성원 K 선생에게 선물할 물건이었다. 석 달 전 5월에 북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아들이 평양의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던 일이 생각나 그의 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순안공항 입국 검색대를 빠져나오자 K 선생을 비롯한 북한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기다리고 있던 차에 일행과 함께 올랐다. K 선생이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드님 대학 잘 다녀요?”나의 물음에,“아, 예, 잘 다닙네다.” 얼굴을 활짝 펴며 대답한다. 자식 자랑은 남북이 따로 없는가 보다. 지난번 만났을 때 서로 질세라 열심히 자식 자랑을 늘어놓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 애한테 입학 기념으로 줄 선물을 하나 준비했지요.” 영영사전이고 아주 역사가 깊은 유명한 사전이라고, 내가 그 사전 덕분에 미국 유학할 기회를 얻었다고 설명을 하니, K 선생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음 날, 사업 현장을 방문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K 선생이 기사에게 뭐라 귀엣말을 하고는 내 곁에 다가앉았다. “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언론사 자체부터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화석 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때 기후위기가 거짓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기후위기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거나 답이 없는 문제라고 외면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토론회가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학술대회에서 열렸다. 기상 전문 기자는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자연재해를 우선으로 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것에 비해 기후변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편집국 분위기를 당장 바꾸기가 쉽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생 에너지 연구자는 대중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는 주요 경로가 언론인데, 언론은 기후위기를 많이 다루지 않는 데다 제대로 다루고 있지도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 있고, 해법을 위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미 누구 편을 들어 입장을 정해두고 보도해서 논의조차 어렵게 만든다고…
이성이 대답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것은 오직 믿음밖에 없다.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되었든, 예수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얘기되는 것과 정반대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만일 그가 그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에 대해 얘기되는 것과 일치시켰다면, 즉 단순한 피와 살의 가르침과 일치시킨다면, 그는 그저 한 가난한 유대인에 지나지 않게 되고, 세계는 종교적인 삶을 고수한 가장 값진 보물을, 유일하고 보편적이고 진정한 종교에 대한 복음을 잃었을 것이다. (파커) 죽음, 침묵, 지옥 그것은 불멸과 행복과 완성을 원하는 존재에게 얼마나 무서운 비밀인가? 내일 아니 몇 시간 뒤라도 내가 숨을 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영원한 수수께끼가 언제나 우리의 눈앞에 엄연한 모습으로 가로막고 서 있다. 마치 사방이 비밀로 싸인 어둠처럼. 신앙만이 이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유일한 별빛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세계가 선으로 태어났고, 의무의 의식이 우리를 기만하지만 않는다면…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52~1617). 의령 출신. 현풍이 본관이다. 3대가 높은 벼슬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지만, 곽재우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최근 선생을 읽으며 나는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부산항에 쳐들어온 날은 1592년 4월 14일이다. 곽재우가 가족을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고, 선영의 봉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해놓은 다음, 거병한 날은 열흘 뒤인 4월 22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은 곽씨 집안 머슴들 열 명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 안에 2000명의 전투병력으로 증원된다. 천석꾼이었던 곽재우는 우선 곡식창고를 연다. 군량미와 의병 가족들의 쌀독을 채워준 거다. 그리고, 계급차별 없이 가족, 형제, 친구, 사제 사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구국충정의 진정성, 왜장들조차 감탄하면서 두려워하는 천재적 병법, 헌신적 태도 등이 그 놀라운 리더십의 요소들이었다. 부대가 커지고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당연히 군량미의 문제가 1순위 과제다. 식량이 떨어지면 관군이건 의
치즈광인 친구에게 특식을 사겠다고 퐁듀 전문집에 데려갔다. '다소 비싸지만,아주 맛있다 '는 소개를 듣고 찾아갔는데 전언과 달리 다소 맛있는 정도였고 아주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괜히 퐁듀의 기원을 입에 올리며 감정을 푼다. '퐁듀가 사실 옛날 스위스 사람들, 한 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었던 음식인 거 알아? 겨울되면 광 속에 딱딱한 빵, 굳은 치즈만 굴러다녔는데 그걸 먹겠다고 포도주에 치즈 녹이고 빵 찍어 먹은 게 퐁듀의 유래야' 친구는 퐁듀 얘기보다 스위스 사람들의 가난했던 과거사에 관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는 거의 유토피아다. 만년설을 인 알프스와 서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레만호를 가진 자연 청정국, 세계 최고 명품 시계, 초콜릿, 치즈로 유명하지만, 실상 관광업, 금융업, 의약품, 제조업 등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9만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 나라, 영세중립국으로서 500년간 전쟁 없이 무장평화를 유지해온 나라.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스위스도 18세기까지 유럽의 빈국, 약소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험준한 알프스산이 국토의 70%, 호수까지 치면 75%가 농사지을…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유럽-아시아 대륙의 끝에 달린 반도지역이라 예부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외침을 숱하게 받은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문화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위치다. 역사적으로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국가들의 진출 무대이자 각축장이었고 또 두 세력의 완충 역할과 중재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반도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남쪽의 영토를 섬 아닌 섬나라로 만들어 놓아 버렸다. 우리가 중국대륙이나 러시아대륙을 가려면 일본과 똑같이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세가 분단의 결과였다. 남북은 80여 년 가까운 세월을 대립과 반목으로 보내다 보니 때로는 우리가 대륙국가이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쪽의 자원, 인력이 남쪽의 자본, 기술력과 결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우리의 철도가 연결되는 꿈을 꾸고 있다. 이 구상은 당대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희망과 의지 그리고 대륙진출의 열정을 몇 배로 올려줄 것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대륙국가의 꿈이다
선은, 받는 자에게 필요한 정도나 베푸는 자의 희생의 정도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성립되는 신과의 합일의 정도에 의해서만 헤아릴 수 있다. 삶은 반드시 선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좋은 삶만이 선하고 행복하다. (세네카)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선보다 자신이 입을 피해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선은 금방 잊혀지지만, 모욕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세네카) 우리가 대가를 기대하면서 의무를 행할 때, 그것은 선이 아니라 기만에 찬 선의 모형, 선의 유사품이다. (키케로) 비난과 불명예가 거꾸로 너를 덮치지 않도록 남을 비방하지 말라. 악령은 앞에서 덤벼들지만 비방은 언제나 뒤에서 몰래 덮친다. 분노에 몸을 맡기지 말라 분노에 몸을 맡긴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잊고 자신의 선행을 놓치기 마련이다. 근면하고 과묵하며, 자신의 노동으로 살고, 자기가 생산한 것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축하라. 그러한 습관은 네 행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와는 시비를 따지지 말라. 악인한테는 돈을 빌리지 말라. 비방하기 좋아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말라. (동양 금언) 하나의 선행을…
우리 부모님은 툭하면 싸우셨다. 다정한 대화는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끝났다. 시시비비는 폭언이 되고 폭언은 폭력이 되었다. 그 광경을 일상처럼 지켜보던 어린 날들, 너는 내게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였다.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언성이 높아지면 너의 세계로 숨바꼭질하듯 숨곤 했다. 거기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네 뒤에 숨어 현실의 고통을 이리저리 피했다. 수 년 후 부모님은 갈라서기로 했다. 그러자 이제는 누가 아이들을 키울 지로 다투기 시작했다. 양육권을 서로 가지려는 아름다운 싸움 따윈 없었다. 이혼 소송 기간 아빠와 엄마의 고향을 짐짝처럼 오갔다. 도시에서 어촌, 농촌으로 또래들과 친해질 새 없이 전학을 다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버스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가야 하는 단조롭고 지루한 세상을 네게 기대어 버텼다. 장난감도 딱히 없던 시절 나는 사물에 너를 입혀 놀았다. 쓰임새 없는 막대기도 너는 왕자와 공주로 변신시켜 로맨스 가득한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시외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차 창 밖 굽이굽이 끝없는 산들을 너는 거대한 무덤이라 했다. 그러면 정말 거인이 긴 잠에서 벌떡 깨어나 저벅 저벅 걸어오는 것 같아 긴장감에 숨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