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외로움에 떨어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지워지지도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한두 번 치르고 나면 하교를 하거나 밖에서 돌아오면 으레 소리치는 말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부르는 ‘엄마’라는 단어다. 하지만 곧 대답이 없으면 ‘콩당’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톤을 높여 다시 한번 부른다. 그러나 대답은 없고 집안에 자신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면 기운이 쏙 빠지며 풀이 확 죽는다. ‘어디 가셨나? 금방오시겠지’. 위안을 삼고 기다리지만 이내 초조함은 서러움으로, 서러움은 미움과 눈물로 바뀌고 사방이 컴컴해질 무렵, 뒤늦게 돌아온 엄마를 보는 순간 울음이 ‘빵’ 터진다. 외로움은 이처럼 여린 마음이라고 해서 비껴가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무섭게 엄습하기도 한다. 성장을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너, 나 사정은 틀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우리 곁을 파고든다. 경우에 따라 짧고 가벼울 수도 있고 공연이 끝난 다음 무대 뒤의 공허함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때는 바야흐로 1936년 8월9일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든 12만여명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해 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누가 첫 번째 주자로 스타디움에 들어올 것인가’였다. 그 가운데 히틀러도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아리아인이 결승점에 처음으로 나타나 그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스포츠에 정치를 접목시킨 발칙한 상상력이었다. 그래야 나치의 정당성이 생기므로. 동서를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나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인어공주의 그것처럼 물거품이 된다.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아리아인도,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인도 아닌 식민지 조선의 손기정(孫基禎) 선수였다. 당시 장내 아나운서는 손 선수가 일본 출신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에 따르면 당시 그는 이렇게 멘트했다. “(당시) 조선의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조선인(der Koreaner)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박근혜정부의 지역발전정책이 본격 가동할 태세다. 지난해 12월26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이 1월 7일부터 시행되기에 그러하다. 개정안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지역발전정책인 ‘5+2 광역경제권’은 폐지됐다. 대신 새로운 지역발전정책으로 ‘지역행복생활권’(이하 지역생활권)이 추진된다. 기존의 광역경제권 중심사업이 시·도의 관심저조, 권역 내 나눠 먹기식 사업추진 등 문제점이 노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래의 정책이 중복과잉 투자 해소에 기여했다지만 전국 227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 23%는 응급의료기관 하나 없는 등 기초생활권 도시들의 격차도 여전하다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이에 지역생활권은 ‘이웃 시·군 간 연대를 통해 생활 인프라, 일자리 및 교육·문화·체육·복지서비스를 불편 없이 누릴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서, 2∼4개 정도의 시군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역대정부와 차별화하려는 현 정부의 지역발전정책은 과연 무엇이며 성공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지역사회 내 토론이…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강좌 내용이 우리나라에 책으로 소개되자 인문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TV 강좌인 EBS ‘하버드 특강-정의’는 자정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 정의에 목말라 있고,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국가 간 교육정의지수를 산출하여 비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정의 수준은 교육의 기회, 교육의 과정, 교육의 결과를 종합해서 OECD 34개국 중 23위로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정의지수는 한 국가가 어느 정도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배분하고 학습자의 성장을 도우며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수로, 마이클 샌델 교수가 행복을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를 정의라고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인재육성을 위해서는 교육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첫째, 교육정의는 교육기회의 균등 배분이며, 행복의 극대화이다. 교육기회의 불평등에서 생
올해는 6·4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산간벽지의 군수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방정부의 일꾼들을 뽑게 된다. 저마다 당선의 꿈에 부풀어 있을 정치인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 총리를 23년 동안 역임한 정치인이다. 이 얘기를 꺼내면 누구나 아프리카의 어느 독재자 얘기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가 잘 갖춰져 있으며, 정치는 투명하고 민주주의가 잘 발달해 있는 스웨덴의 얘기다. 타게 엘란데르(Tage Erlander)는 194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었고 1969년 총리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무려 23년간 스웨덴의 총리로 재임했다. 민주국가에서 23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집권당이 되고 총리를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가능했다. 엘란데르는 사민당 소속으로 11번의 선거에서 11번 승리함으로써 23년 동안 총리의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엘란데르 총리가 23년간 총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
소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즐기는 술이다. 지난해 출고량은 1억1천370만9천 상자, 병수로는 34억1천127만병(360㎖ 기준). 성인 평균 88.4병의 소주를 마신 셈이니 ‘국민 주(酒)’, ‘서민의 술’로 불릴 만하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를 침략한 몽골에 의해서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소주는 쌀, 보리 등 곡물 발효주를 증류해 만들었다. 공정이 복잡하고 값이 비쌌지만 맛이 좋아 인기가 대단했다. 고려사엔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 김진이 소주를 좋아하여 기생과 부하를 모아 소주도(燒酒徒)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소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한데 그 후 조선 초기에는 왕실이나 사대부 등 주로 지배층이 많이 마셨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국내에 알코올식 기계소주공장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19년 평양이다. 이곳에선 재래식의 누룩을 이용한 소주를 생산했고, 1952년부터는 값싼 당밀을 수입해 만들었다. 당시 소주의 도수는 40도를 넘었다. 진로가 1960년대까지 시중에 팔던 소주도 40도였다. 지금의 희석식…
참 어이가 없다. 대한민국 경찰이 좀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용인에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본보 16일자 23면에 난 기사를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사건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지난 15일 밤 용인 원삼면에서 러시아계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트럭에서 기름을 훔쳤다. 차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동파출소 소속 경찰관의 추적 끝에 실탄까지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략적인 사건 개요지만 좀 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분노가 치민다. 추적 끝에 경찰과 맞닥트린 절도범들은 차에서 내리라는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1명은 차에서 내려 달아났고, 나머지 1명도 차를 몰아 도주했다. 차에서 내려 도망간 범인은 인근 주택가의 막다른 골목에서 추격하던 경찰에 돌을 던지며 반항했고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다. 덤벼드는 범인에게 경찰이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발사했음에도 범인은 또다시 달아났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뒤엉켜 5m 하천 아래로 떨어졌고, 추락과정에서 경찰이 범인에 깔렸다. 이로 인해 허리와 목 부분에 큰 부상을 입게 됐다. 중요한 것은 검거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는 17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내란음모·선동·국보법 위반 혐의를 일부 적용,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음모 사건을 처음 국가정보원에 제보한 이모씨의 법정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RO는 내란 혐의의 주체로 인정되며, 총책은 이 피고인인 사실도 인정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의원이 혁명동지가와 적기가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사실을 들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홍순석·한동근·조양원 피고인 등에 대해서도 국보법 위반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징역 4∼7년, 자격정지 4∼7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의원 등은 지난해 5월 RO 조직원 130여명과 가진 비밀회합에서 통신·유류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 살상 방안을 협의하는 등 내란을 음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일부 피고인은 북한 이념서적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일 결심공판에서 이 의원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 이상호 등 나머지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10∼15년과 자격정지 10년 등을 구형했었
먼발치에서 봄이 까치발을 들고 있다. 태양은 땅 밑을 뒤적여 새순을 꺼내놓기 시작하고 칩거에 들었던 나무는 한 뼘쯤 영역을 넓혔다. 유리문 안 붉은 선인장은 금방이라도 봄을 터트릴 듯 꽃망울을 부풀리는 이월의 중순이다. 새로운 시작은 꽃으로 축복하는지 거리엔 꽃다발을 든 학생들로 왁자하다.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등학교가 졸업식을 하면서 한산하던 동네 꽃집도 활기를 되찾고 꽃 속에 파묻힌 학생들의 표정에도 힘이 넘쳐난다. 하나의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도전하는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물론 출발 선상에 선 이들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도 필요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대견한 것은 나라의 희망이고 기둥이기 때문일 게다. 대학 3학년을 마친 딸아이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를 했다. 꼭 학업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1년을 늦춘다는 것이 마땅찮았다. 딸애는 22년간 고생한 자신에게 휴가를 주면서 취업을 위한 스펙도 쌓고 여행이며 부족한 공부를 준비하는 재충전의 과정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평생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지금이
요즘 국민들은 온통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가 있다. 러시아 쇼트트랙 팀의 선전과 한국팀의 부진이 대비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원래 정치와 거리가 있는 스포츠에서 파벌정치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특정파벌의 특정선수를 대표로 선발하기 위해 규정을 자주 바꾼다던지, 바뀐 규정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선수들로 하여금 경쟁에 임하게 한다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에서 한국팀의 부진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헤게모니 파벌에 의한 제도와 원칙의 무력화와 관련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체육계에 대한 비난이 비등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체육계 부조리와 연관돼 있지 않은가를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육계 일부, 특히 쇼트트랙연맹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과 타성에 젖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체육계의 파벌정치와 무원칙, 그리고 장기적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태도는 여의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한 태도는 여야 간에도 그렇고 야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가 작년 1년 동안 국정을 마비시키고 국민을 분열시켰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수사는 채동욱 검찰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