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스산한 날은 옥상에 올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지붕을 본다. 밟으면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을 비닐이며 천막으로 깁고 폐타이어 또는 벽돌로 눌러놓았다. 연통을 빠져나온 연기가 기차의 먼 기적 받아먹고 흩어지는 역 근처의 여인숙 골목이다. 이곳은 난방을 연탄으로 주로 한다. 가장 저렴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이 연탄이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은 지붕 위 굴뚝으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연기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혼자 웃음을 짓는다. 지금은 대부분 도시가스며 등유 등으로 난방을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연탄을 많이 사용했다. 큰 아이 다섯 살 무렵이다. 새 운동화를 처음 빨아서 연탄아궁이 옆에 말리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벌겋게 불이 붙은 연탄 위에 운동화를 올려놔서 운동화가 바짝 오그라들면서 불이 붙고 있었다. 얼른 운동화를 끄집어내고 왜 그랬느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운동화를 신고 싶어서 빨리 말리려고 불 위에 얹어 놓았다고 했다. 벼르고 별러서 산 캐릭터 운동화였다, 사오자마자 신고 놀다가 논에 얼음이 깨지면서 젖어 빨아 널었는데 하루도 못 신고 이 모양이 되었으니 나도 화가 났지만 아이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운동화
요즘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규 일자리 증가를 연령별로 보면, 30대 이상에 비해 29세 이하의 청년층 일자리가 가장 증가폭이 작다. 청년들이 원하는 안정적이고 괜찮은 대기업·공무원 일자리 등은 별로 늘어나지 않고, 임시직이나 일용직처럼 불안한 일자리만 많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은 괜찮은 직원이 부족하다고 불평이지만, 대졸 청년들은 중소기업을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청년층의 일자리 미스매치가 여전한 것이다. 청년들이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고, 벤처기업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전하다 실패하면 소위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물론 본인과 친인척들 역시 연대보증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된다. 그러니, 그렇게 부담과 위험이 큰 창업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이스라엘이나 미국처럼 실패가 자산으로 인식되고, 한번 실패했으니 성공 확률이 높아졌다고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나? 미국의 래리 킹은 1957년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해 53년…
20년 전 1월22일, 국회와 한신대에서는 각기 다른 삶을 산 두 명의 중학교 동창생 영결식이 있었다. 한 사람은 사회장으로, 또 한 사람은 겨레장으로. 그리고 국립묘지와 마석 모란공원에 각각 안장됐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문익환 목사다. 사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 양지와 음지를 대변한다고도 한다. 또 각자가 활동했던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커 두 쪽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인물들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은 간도 용정의 광명중학교 동창생이다. 하지만 졸업 후 그들의 인생 여정은 매우 달랐다. 정 전 의장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우리 국군의 창군을 주도했다. 이후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군복을 벗은 후에도 외무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때문에 호사가들은 “대통령만 빼고는 모든 자리를 거쳤다”며 그를 관운이 좋은 양지 속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반면 문 목사는 졸업 후 평양고보와 광명고보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학도병 징집에 반발해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 뒤 목회자
말문이 막힌다. 1억400만건에 이르는 개인들의 금융신상정보가 몽땅 털렸다. KB국민, 농협, 롯데카드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 고객정보가 다 노출됐다.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 실태를 뛰어넘어 이건 국가적 재앙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은행에서 저축은행·대부업체에 이르는 금융권은 물론 통신사와 신용카드사, 심지어는 국가 전체까지 뚫리지 않은 영역이 없다 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온갖 신상정보를 전부 노출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카드사 홈페이지를 열어 신상정보 노출여부를 확인한 고객들은 소름이 끼쳤다. 고객개인정보 유출내역에는 성명, 주민번호, 휴대폰번호, 자택전화번호, 직장전화번호, 이메일, 자택주소, 직장주소, 직장정보, 카드번호, 유효기간, 카드정보, 결제정보, 신용한도에 연소득까지 무려 15건의 정보가 새나갔다고 밝히고 있다. 안내문에는 다시 한번 유출사고에 깊이 사죄한다며 ‘유출정보는 검찰이 회수했다. 추가적인 유출이나 유통의 우려는 없다’고 단정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또 노력하겠다는 말뿐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올해부터 시행된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건축법’ 등에 적합하지 않게 건축된 주거용 건축물에 대해 서민의 주거안정 및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승인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시적으로 부여하고자 하는 특별조치법이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건축법령에 적합하지 않게 건축되거나 대수선된 주거용 건축물을 양성화하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지난 17일부터 2015년 1월16일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 특별조치법의 대상은 지난 2012년 12월31일 이전에 사실상 준공된 건축물로 연면적 100분의 50 이상이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건축물로 건축허가(신고)를 받지 않거나, 허가(신고) 이후에 위법 시공 등으로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한 건축물이다. 세부 대상으로는 ▲세대당 전용면적 85㎡(약 25평) 이하 다세대주택 ▲연면적 165㎡(약 50평) 이하 단독주택 ▲연면적 330㎡(약 100평) 이하 다가구주택이 해당되며, 주택 상층에 옥탑방을 설치, 1층 필로티 부분을 증축하는 사례, 대수선을 통한 가구수 증가, 높이 제한으로 인한 건축물 후퇴부문
올해 정치일정의 백미는 6·4지방선거이다. 지금 모든 정당은 지방선거 준비에 당력을 모으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당공천이 배제된 교육감선거도 동시에 치르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대규모로 치러지는 최초의 선거이다. 아직까지 지방선거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고 정치권과 정치지망생들만 바쁘지만 이번 선거는 한국정치의 지형과 미래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정치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국민들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6·4지방선거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지방권력의 향배가 결정되고, 이는 정국운영에서의 주도권이나 정당의 사기에 큰 영향을 준다. 지난 1년간 정치권은 민생문제보다는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 수사와 국정원 개혁 문제를 둘러싼 충돌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고,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지방선거에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번 지방선거는 이전까지 거대 보수정당에 대항하는 중도보수적 야당과 진보정당 간의 연합에 의한 선거구도 대신에 각 정당이 정체성을 유지한 채 각개약진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도로만 보면 보수여당으로서는…
남자가 앉아서 소변을 보던 시대나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겨울철 영하 50℃까지 내려가는 몽골을 비롯 이란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남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봤다. 우리나라도 함경남도 함흥의 일부 서당 학동들 사이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을 점잖은 행동으로 여기는 풍습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남자들은 서서 소변을 보아야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자존심’으로 여겨지면서 당연시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공동화장실을 쓰는 가정에서는 남녀 간 갈등의 골이 매우 깊어져 있다. 튀는 오줌방울로 인한 건강 위협과 악취,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마찰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변기 밖으로 튀는 미세한 오줌방울만 하더라도 1회 소변을 눌 때마다 2천300방울(2006년 일본 생활용품업체 실험결과)이나 되고, 이런 오줌방울은 바닥은 물론 수건과 칫솔 등을 오염시키고 고약한 냄새까지 동반해서 그렇다. 이렇듯 ‘서서쏴’의 폐해가 많다는 것이 알려지자 세계 각국이 이른바 남자들의 ‘앉아쏴’를 유도하는 시책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스웨덴 쇤데르만
최근 전북 고창의 오리 농가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이에 당국이 살처분과 함께 시급히 강도 높은 방역조치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농장에서 AI 잠복기인 21일 이내에 전국 4개 도 24개 농가에 오리 병아리 17만3천 마리를 분양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병아리 운반차량이 분양 후 충북 진천의 도계장을 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농식품부는 도계장을 우선 폐쇄조치하고, 출입차량을 추적 조사해 AI 확산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지만 AI의 전국 확산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AI는 닭·오리·철새 등 여러 종류의 조류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폐사율 등 바이러스의 병원성 정도에 따라 고병원성(HPAI)과 저병원성(LPAI)으로 구분된다. 이번에 발생한 AI는 고병원성인 H5N1형으로 전염성과 폐사율이 높아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닭·칠면조·오리·철새 등 여러 종류의 조류에 감염되며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다. 주로 철새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체나, 발생국의 오염된 냉동 닭고기나 오리고기, 생계란 등을 통해서도 전파된다. 조류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도 위협해…
대포차가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경기지방경찰청과 관련 업계에 의하면 각종 범죄수단에 이용될 소지가 높은 대포차가 중고자동차 매매 사이트를 통해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는 고가의 수입차 3천여대를 비롯해 현대(7천500대), 기아(2천700대). 르노삼성(1천800) 등 1만대가 넘는 다양한 차량이 사진과 함께 판매자 연락처 등을 게재하면서 시중 중고차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차량이 불법명의자동차인 대포차로, 전문적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경찰과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대포차를 유통하거나 운행한 사람의 경우 관련법상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속칭 대포차는 자동차 소유자와 실제 운행자가 다른 ‘유령 차량’으로 불린다. 때문에 교통사고 및 절도 등 다양한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는데다 사고발생 시 가해자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대포차는 보험료는 물론 세금도 내지 않고 음성적으로 거래됨으로써 범법자들이 주로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A중고차 사이트에…
동그란 흰색 테두리 안에 노란 물방울이 떨어진 듯, 마치 계란 프라이(fried egg)처럼 생긴 꽃이 있다. 개망초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의 씨앗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 한국에 파병된 미군의 주머니와 배낭에 묻어 들어왔다. 포성이 멈추고 지상의 모든 생물들이 평화롭게 지낼 즈음, 땅을 헤집고 슬그머니 고개를 든 풀이 있었다. 이 풀은 번식력이 너무 좋아 순식간에 논과 밭을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게 만들곤 했다. 당시 헐벗은 국민들은 흰 꽃의 낭만을 즐기기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울 한 톨의 알곡이 더 소중했다. 농부들은 논밭을 점령해 버린 잡초를 제거하고 또 제거해도 끝이 보이지 않자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번 농사는 개 망조(亡兆)가 들겠구만”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망할 징조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개’자를 붙였는데 그때부터 이 흰 꽃은 개망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먹고살만한 시대가 되었다. 전후 잡초로만 인식되던 풀이 이제 웰빙(well-being)식품으로 가치가 높아졌다. 어린 순은 망초나물로 우리의 식욕을 돋우는가 하면 들녘에 활짝 핀 꽃은 연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