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의 대물림이라는 비극적인 태아 산재 보상에 대한 시행령 개정안이 2022년 10월 17일 드디어 입법예고 되었다. 더불어 2017년 직업성 암의 추정의 원칙 도입 이슈 등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 있어서 산업재해 적용의 확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터의 위험으로부터 손상된 자녀의 건강도 산재보호 받는다 2023년 1월부터 뱃속의 태아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임산부 근로자의 업무 환경 탓에 선천적으로 건강 손상을 입고 태어난 자녀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에는 태아의 건강이 업무상 재해로 인해 손상받더라도 근로자 당사자가 아닌 태아는 청구권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산재법상 보험급여 청구자는 수급자와 동일해야 하는데, 근로자 뱃속의 태아는 근로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기는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시작되었다. 제주의료원 임부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다. 이후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하였고, 역학조사 결과 의약품 등 화학물질 노출, 환자 폭언·성희롱으로 인한 스트레스, 인력 부족·교대근무로 인한 육체적 부담 등이 임부 간호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일그러진 생각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에 따른 인재인데도 젊은이들이 놀러가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의무인 안전은 오간데 없다. 사회 일각에서 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축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한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를 의미 없는 유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은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축제라기보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인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일주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달성한 것은 그 정점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 자발적 축제문화가 강릉 단오제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끊긴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와 박정희 군사정권 등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축제를 미신으로 프레임 씌웠다. 90년 대 이후 축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지자체 주최의 지역 축제나 상업적 축제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20세기를 빛낸 찬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울림이 있는 색상과 심플한 형태로 자기만의 화법을 개척했다. “예술가는 본능과 직감에 의해 이끌려야 한다”는 명제로 예술을 새롭게 창조한 마티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북부 카토 캄브레시스의 외할아버지 댁이었다. 하지만 유년기를 보낸 건 외가에서 15킬로 떨어진 보엥 앙 베르망드아의 부모님 집이었다. 부친은 곡물과 그림을 파는 가게를 했고 모친은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가 자란 곳은 베틀을 짜는 직물염색공업이 발달했다. 마티스의 색감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마티스는 청년기까지 전혀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법률보조인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화구상자를 주었다. 이는 정녕 신의 한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마티스는 인생의 재미를 느꼈다. 결국 직장을 접고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학창시절 마티스는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채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리의 생명의식과 신의 관계는 우리의 감성과 세계 또는 사물과의 관계와 같다. 감성이 없으면 우리는 세계와 사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생명의 의식이 없으면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신을 섬기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무를 실천하고 이성이 주는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자유의사를 가지면서도 역시 정의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신이다. 대체로 우리의 마음이 신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인식을 이성에 전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어려운 일이다. 또 과연 이성은 마음 없이 저 혼자 신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왜냐하면 마음이 신을 인식해야 이성이 그것을 탐구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리히텐베르크) 신의 이념은 확실히 위대하지만, 그것은 결국 무한하게 정화되고 무한하게 높여진 우리의 정신적 자질의 이념이다. 신성 이념의 기초는 우리의 내부에 있다. (채닝) 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더 좋은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엔젤리스 실리시어스)
파란 하늘이다. 물걸레로 닦아낸 칠판 같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아서,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지 못한다. 슬쩍 한 칸 내려서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해 걸어가지 못한다. 파란 하늘이라서. 다 벗겨지고 속살만 남은 가을날이라서. 없어서. 보이지 않아서. 나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명랑한 하루 앞에 그림자로 선다. 처남이 죽었다.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 처남의 죽음이 합쳐진다. 화장터 소각로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주검이 눕는다. 주검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은 자들이 운다. 울음의 사연은 소각로마다 다르지만, 울음이 향하는 방향은 시뻘건 불꽃 너머로 같다. 아무리 울어도 불꽃 너머는 꿈쩍없다. 할아버지가 운다. 처남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이다. ‘인수’일까 ‘연수’일까.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할아버지의 슬픔이 버스를 삼킨다. 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 늙은 아비의 울음 앞에 모두가 침묵한다. 눈시울을 훔치는 승객도 몇 있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의 동행이다. 죽음 다음은 늘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남은 자들은 묻고 덮고 잊는 일을 견디며 산다. 살아내는 일처럼 오랜 견딤이 또 어디 있을까. 망각이란 것
체험학습으로 북한산 원효봉 등산을 다녀왔다. 처음 아이들과 북한산에 가는 걸 떠올렸을 때는 1학기 초반이었고 그때는 코로나 때문에 올해도 수학여행을 못 가는 게 거의 기정사실인 상태였다. 수학여행을 못 간다면 6학년 마지막으로 뭔가 기억에 남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야외면서 밀집도를 낮출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친구들과 종종 가는 북한산이 떠올랐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어떤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2박 3일 지리산 등산을 갔다는 것도 등산 체험학습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등산은 몹시 위험한 체험활동 중 하나이다. 절벽 부근에서 낙상하면 크게 다칠 위험이 존재한다. 활동 중에 체력 저하나, 다리 부상으로 인해 낙오되는 학생이 있을 확률도 있다.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계획이 필요했다. 주변에 친한 교사조차 굳이 산에 가야 하냐는 말을 건넬 정도였다. 좋은 의도지만 사고가 나면 그런 의도와 관계없이 모두 교사 책임이 되는데 안 해도 될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었다. 누군들 사고를 예상하고 활동을 계획할까. 최대한 사고를 예방하겠지만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기 마련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북한산에 답사를 다녀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이태원 압사 참변의 애도 기간이 지나자마자 정치권의 죽기살기식 정쟁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네요. 여야 정당이 쏟아내는 악담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정말 이태원에서 횡액을 당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요. 앞서서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어떻게 하면 악재를 극복해 볼까 전전긍긍이고, 야권은 때 만난 듯이 물어뜯는 하이에나 떼와 조금도 다르지 않군요. 일단 드러난 사실만으로 논하더라도, 이태원 비극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진 국가의 계통 부실이 빚어낸 처참한 결과물이에요. 국민 안전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은 어떻게든 민심이 용납할 수준의 책임 판단에 있어야 할 거예요.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대형 참사를 다루는 일도 정상적인 과정으로 흘러가지 않네요. 뭐든 다 끌어다가 음모론 밧줄로 얽어놓고 삿대질부터 해대는군요. 천박한 ‘아무 말 대 잔치’처럼, 온갖 협잡을 다 동원하여 참사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찍어 붙이는 비이성적 선동질에 여념이 없네요. 대형사고 원인을 놓고 현 정권 탓이니, 직전 정권 탓이니 하고 힐난하는 행태는 안타깝게
삶은 꿈이고, 죽음은 깨어남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죽을 때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한번 죽었다가 다시 숨결이 돌아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가사(假死)라고 하는데, 죽었다가 새로운 육체의 기관들을 가지고 다시 깨어나는 것이 태어나는 것이다. (리히텐베르크) 사라지는 생명과 그 뒤에 나타나는 다른 생명은, 단순히 약간의 변용을 통해 존재양식을 바꿨을 뿐 결국 동일한 존재이며, 따라서 개체 자신에게는 잠인 것이 그 개체가 속한 종에 있어서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설사 영혼은 불멸이라고 믿는 내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역시 나는 행복하고 내가 틀린 것에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 이토록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안과, 이토록 충실한 만족감을 주는 그 신념을 나한테서 빼앗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키케로) 죽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물음은 물음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죽음 뒤의 세계를 얘기하는 것은 시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인데, 우리는 죽음과 함께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만성방광염 그리고 질염, 과민성방광으로 내원한 그녀의 이야기이다. “방광염이 생겨서 내과 가서 항생제 복용하고 좀 낫다 싶으면 질염이 발생해서 산부인과 가서 항생제 또 처방받아먹거나 질정제를 넣었고 또 질염이 좀 낫는가 싶으면 또 방광염이 발생해서 항생제 또 먹고 그랬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그래도 잘 낫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다가 왔어요” 한다. 그러던 중 과민성 방광 증상도 더해졌다. 절박뇨. 즉, 소변이 급하게 마려워서 참지 못하고 자주 보게 된다. 때때로 요실금도 있다. 그녀는 10년 전 요실금으로 요실금수술과 질성형술을 받은 것으로도 우울해한다. 갱년기에는 호르몬 변화로 질이 건조해지고 위축되는 증상이 있을 수 있는데 질을 축소하는 수술까지 했으니 더욱 위축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술부위와 주변에 부종과 통증 그리고 과민한 감각, 외음부 주변 피부에 아주 작은 수포 등으로 아프고 불편해 의자에 앉아있기가 어려워했다. 한 산부인과에서 항바이러스제에 이어 항생제 처방을 받았는데 역시 반응이 없자 그녀의 걱정은 커졌다. 요추추간판탈출증으로 인한 요통, 둔근점액낭염 증상인 엉덩이 통증 등등 쏟아지는 증상 보따리를 풀며 그녀는 “좋아질 수 있을까요?” 묻
믿기지 않는 참사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가 일어났다. 핼러윈 축제에 참여하려고 찾은 젊은 청춘들이 어처구니없이 길바닥에서 스러졌다. 사상자들 중에는 외국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은 20대들이다.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밀려드는 곳에서 출동한 소방구조대원들과 시민들이 넘어진 사람들을 들어내고 긴급 CPR을 실시하였으나 희생자는 너무나 컸다. 그런데 이후에 드러나는 경찰과 행정자치부, 용산구청 등 관계 기관의 무대응과 책임자들의 발언과 그 인식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말의 전쟁 언어 전쟁 여권은 이를 두고 사고라 하고, 야권은 참사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사망자라고 하고, 다른 측에서는 희생자라고 한다. 분향소에 조화만 있고 영정과 위패는 없다. 국가애도 기간을 선포했지만 검은 리본 띠에는 ‘근조(謹弔)’가 없다. 커뮤니케이션학은 사람들의 소통 현상을 커뮤니케이션의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말이나 글로써 감정이나 정보, 지식을 소통한다. 화자와 청자는 말로써 서로의 의사를 전하고 수용하고 토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화자와 청자는 전하고 수용하는 양자 간의 ‘의미 공유’가 핵심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