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우리는 마치 죽음이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인간의 생명이 과연 죽음과 동시에 끝나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불멸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위는 이성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무의미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는가, 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만약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속의 무엇이 불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 속에 멸하는 것과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 멸하는 것보다 멸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그것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스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만일 이 세상에서의 온갖 고통이 선을 낳지 않는다면, 세상은 두려움 그 자체일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사악한
며칠 전 내 아이가 엄마는 장애인들의 출근길 기습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질문에 짜증 섞인 느낌이었다. 그 순간, 파노라마처럼 함께 했던 장애 친구들의 비통한 일상이 떠올랐다. 청년 시절 장애인 야학에서 활동한 덕분에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존재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달걀처럼 뼈가 쉽게 부서져 평생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는 친구, 매일 도뇨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줘야 하는 친구, 스스로 몸을 뒤집을 수 없어 욕창을 걱정하는 친구, 외출을 할 때면 계단과 10cm 턱을 넘지 못해 단박에 갈 곳을 돌고 돌아서 가야하는 친구, 겨울 거리에서 두 시간 이상 추위에 떨며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려야 했던 친구 등 중증장애인이 내 친구들이었다. 세상에 있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중증장애인의 곁을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당연한 일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타게 해달라며 휠체어로 거리를 점거하거나, 쇠사슬을 묶어 전철을 멈춰 세우는 장면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시위에는 생존의 문제와 함께 “인간의 존엄”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에서 장애인
죽음과 고통이라는 악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가 자기 육신만을 위한 동물적 존재로 떨어졌을 때이다. 이 경우 죽음과 고통은 허깨비처럼 사방에서 그를 에워싸 그를 사람의 길, 곧 사랑이라는 신의 법칙을 실천하도록 내어 몰아간다. 신의 법칙에 따라 사람에게는 죽음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 희열, 애착의 대상, 생생한 감정, 기억력, 일에 대한 능력,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저버리고, 태양마저 차갑게 식어 인생이 그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돌처럼 차갑게 살아갈 것인가? 대답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신의 의지에 합류시키는 일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편안함을 느낀다면 무엇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랴! 너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모습의 너이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신의 몫이다. 만약 신의 사랑이라는 것이 없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만유의 법칙뿐이라 해도, 역시 인간으로서의 의무야 말로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아미엘) 우리는 신의 법칙을 예부터 있어 온 여러 종교의 가르침에서 배
“토론하면 싸움밖에 안 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경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지지율 높은 대선 후보가 ‘토론해 봤자’ 하는 태도를 보이니 당연히 논란이 일었다. 윤 후보가 토론을 안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게 됐지만 토론해 봤자 이득 있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는 단면을 드러내 흘려 넘길 수는 없었다. 토론은 정치 및 선거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뉴스는 선거 정보에 언론의 선택과 배제가 관여한다. TV토론은 언론의 간섭을 최소화한다. 정치 정보를 언론이 틀짓기 하려 든다고 우려하는 대중에게 TV토론은 정치인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유권자가 알아야 할 정책 또는 이슈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후보자의 외모나 말투와 같은 이미지만 두드러지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마치 하나의 정치 쇼처럼 비춘다는 지적이다. 정치 이슈 실종과 이미지 천착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하다. 이번엔 TV토론이 후보자 얘기를 더 길게, 깊게 들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TV토론은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후보마다 시간 탓하며 얼버무리거나 상대 후보 반론을 가로막는다. 사회자가 주의를 줘도 후보자가
20대 대선 캠페인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후보자 등록이 끝났고 2월 15일부터 여야 후보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투표일까지 20일 정도 남았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담과 토론이 진행되겠지만 후보자와 운동원들은 더 적극적으로 전국 각지를 누비며 유권자를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하게 될 것이다. 직접선거운동이 확대된다고 해도 대다수 유권자는 신문과 방송, 포털사이트를 통해 대선 관련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제주언론학회는 ‘제20대 대선보도 점검’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현재 선거보도의 핵심문제로 ‘장사 잘되는 질 낮은 여론조사 보도’가 기자의 취재 보도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 ‘미래권력’인 후보자에게만 집중하고 시민은 무시한다는 점, 기자들이 보도자료나 취재원에 대한 ‘검증 없이 단순하게 전달’만 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2022대선미디어감시연대(민주언론시민연합)의 대선보도 조사결과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민언연에서는 이번 대선 100일 전부터 60일 전 사이에 나온 모든 신문과 방송의 여론조사 보도를 분석했다. 40일간 나온 여론조사 보도는 모두 347건(신문 218건, 방
몇 년 전 중국거지 구걸통의 QR코드가 해외토픽으로 화제된 적 있었다. 중국 SNS인 위챗의 결제서비스다. 중국의 핀테크는 미국을 넘어 세계 1위다. 신용카드도 잘 사용하지 않던 중국의 디지털화는 엄청난 변혁 속에 핀테크의 시대로 성큼 들어섰다. 국가자본주의라 정부가 그냥 밀어붙이면 된다. 아날로그에서 1차 디지털을 거치지 않고 고도 디지털사회로 급이행된 유일한 국가다. 일본은 스스로 잃어버린 30년이라 한탄한다. 1988년 세게 100대 기업에 일본기업이 52개, 톱10 중 8개였다. 미국기업은 IBM과 액슨모빌이 끼어있을 뿐이었다. 2021년 세계 100대 기업에는 소니, 도요타, 소프트뱅크만이 들어있다. 소니도 삼성전자에는 한참 못 미친다. 8, 90년대 일본은 소비자편의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감각적 디자인으로 세계산업을 선도하며 일본신드롬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감성제조산업의 극치였다. 그 대단한 소니가 삼성전자에 밀린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사회와 산업의 패러다임을 놓친 것이다. 삼성의 주력제품은 가전이 아니라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더 필요한 소재이고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필수불가결한 디
김정은 정권은 요란한 미사일 발사로 임인년 벽두를 장식하고 있다. 1월 중에만 다섯 번에 걸쳐 각종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그중 두 차례가 극초음속 미사일이고 한 차례가 ’북한판 토마호크‘로 불리는 중거리 순항미사일이었다. 한반도를 우크라이나, 이란, 대만해협과 더불어 세계의 4대 화약고로 부상시키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합참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애써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 고도화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머지않아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미사일 방어망이 무력화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이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와 국제사회는 지난 30 년간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했고, 마침내 2017 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오늘날 북핵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에 굴복하여 비핵화 협상장에 걸어 들어오기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너무 엄중하고 급박하다. 북한의 핵역량 증가는 대남 군사적 위협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향후 비핵화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에서 핵무기…
전쟁이 낳는 모든 나쁜 관념, 즉 국가간의 증오, 무공(武功)에 대한 동경, 승리 또는 복수에 대한 갈망 등은, 국민의 양심을 짓밟아 인간 상호의 선의를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비열하고 무분별한 이기심으로 바꾸고, 자유에 대한 사랑을 허물어뜨리며, 단순히 남의 목을 베려고 하는 야만적인 욕망에서, 또는 남이 내 목을 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발아래 스스로 몸을 던진다. 전쟁에 의해 부추겨진 나쁜 관념은 사람들의 종교적 감정을 완전히 왜곡시켜, 교회 지도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살인과 약탈을 위한 무기를 축복하고, 대지가 피투성이 시체로 뒤덮여 죄 없는 백성들의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찰 때, 평화의 하느님을 향해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모순을 낳는다. (헨리 조지) 어린이들은 처음 만날 때, 기쁨에 찬 얼굴로 서로 웃으며 호의를 보인다. 대부분의 어른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러나 한 국가의 일원이 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웃 민족을 증오하며, 그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려고 마음먹게 된다. 사람들 속에 이와 같은 증오심을 조장하여 그러한 잔학 행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죄가 어찌 무겁지 않을 것인가! “서로 대립하도록 쪼개서 통치하라”(
‘어질면서(仁) 무(武)하지 않으면 어짊을 이룰 수 없다.’('춘추좌전' 선공편). 무가 어짊 실현의 필요조건임을 말한다. 무는 戈(과: 창으로 무력을 뜻함)와 止(지: 전쟁을 막아 평화를 지키는 힘)로 이뤄진 합성한자이다. 권력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용기 있는 자에 주어져야 한다는 경구이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를 보면서 일갈한다. “물에 빠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미친 개다.” 사람들을 물어뜯다가 참다못한 사람들의 몽둥이에 쫓겨 물에 빠진 개를 구해선 안된다. 측은지심으로 차마 내치지 못한다면 미친 개는 다시 사람들을 물어뜯게 될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세력은 단호히 때려잡아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루쉰은 “페어플레이 좋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지켜야 하는 절대선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시민의 용기는 로마를 악에서 구했다. 쿠데타로 원로원 공화파를 속여 황제에 즉위하려는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 의해 살해된다. 브루투스는 그를 죽인 뒤 “폭군은 죽었다”고 시민들에게 외쳤다. 브루투스는 사실 카이사르 정부(情婦)의 아들로 카이사르의 최측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받을 때 국가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
TV토론을 보고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바꾸는 유권자가 있을까? 거의 없다. 5% 내외다. 지난 3일, 20대 대선 후보 1차 TV토론이 끝난 후 조사를 봐도 그렇다. 중앙일보가 엠브레인 리퍼블릭에 의뢰해 7일 보도한 결과는 ‘TV토론을 보고 바꿀 생각이 있다’는 응답자는 7.3%다. 행동으로 옮길 유권자는 이보다 더 낮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보도한 내용도 비슷하다. 1차 토론을 보고 지지후보를 바꾼 사람은 6.3%였다. 11일(금) 기자협회 초청 토론회까지 두 차례 토론이 끝났다. 앞으로 후보가 싫어도 나서야하는 법정토론회 세 차례가 더 있다. 후보간 합의로 더 할 수 있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토론에 따른 이해득실이 있어 합의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두 번의 TV토론을 거치면서 든 생각은 ‘국민 모두가 대선 해설위원’이다. 철벽 논리로 무장돼 있다. 군필 남자들의 군대 무용담 같다. 첫 TV토론은 시청률이 39%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가 출마했던 1997년 15대 대선토론 시청률 55.7% 이후 최고 기록이다. 종편,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시청률은 놀랍다. 요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