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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이왕 버린 몸

 

 

1. 2011년 일본 북동해안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일어났고,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밀려왔다. 쓰나미는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현 등을 휩쓸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됐고, 대략 25,000명 넘는 인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고베 대지진 이후로 다시 한번 일본을 덮친 끔찍한 재난이었다. 재해 복구 예산이 무려 250조 원이 넘는다는 엄청난 피해 앞에 일본 전역은 깊은 시름과 비통함에 잠겼다.

 

그런데 쓰나미가 빠져나간 뒤, 리쿠젠타카타 시를 찾은 조사관은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닷가에 심어진 7만여 그루 소나무가 모두 끝장난 상황에서 그야말로 낙락장송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높이도 27.5m에 달하며, 수형도 아주 예쁘고 우뚝한 소나무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나무를 기적의 소나무라 부르며, 어떤 재난에도 굴하지 않는 일본의 대화혼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런 희망과 상징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헛된 꿈이었다. 쓰나미로 몰려온 바닷물이 뿌리를 완전히 침식해서, 소나무는 형체만 남아 있을 뿐, 이미 죽은 고사목이란 판정이 나오고 만 것이다.

 

섬겨야 하는 신(かみ)이 팔백만이나 되는 일본인들은 소나무 한 그루쯤 더 신으로 모신다고 무슨 큰일이랴 싶었나 보다. 이미 죽어버린 소나무 속을 다 파내고 시멘트를 채우고, 방부 처리한 껍질과 줄기 몇 개를 남겨서 거대한 인공 소나무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기적의 소나무란 이름으로 공원을 만들어 탐방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살아남은 듯 보였던 소나무로 위로받고, 희망을 걸어보자는 마음이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 소나무가 종내 회생할 수 없는 고사목이란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15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서 좀비 소나무를 만들고, 그 시멘트 덩어리를 기적의 소나무라 불러도 좋은 것일까?

 

2. 골프란 운동은 그날 굿샷을 몇 번이나 날렸느냐가 아니라, 배드샷을 얼마나 줄였느냐가 스코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앞자리가 6자로 바뀌니 가끔 살아온 나날을 뒤돌아보게 된다. 비교적 큰 풍파 없이 살아왔다 싶기도 하지만, 이런 구비 저런 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바라보면 부럽고 멋져 보이는 친구들은 다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사고를 덜 친 친구들이다. 살면서 사고를 안 칠 수는 없다. 문제는 ‘이왕 버린 몸’이란 생각이다. 이왕 버린 몸이니, 운세가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운세가 나쁠 때 틀린 판단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다. 이왕 버렸으니 폭삭 망해보자는, 실현 가능성이 극히 드문 패에 모두걸기하다 정말 거덜 나는 것. 그리고 불에 다 타버려 폭삭 주저앉은 집구석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건져보겠다고 잿더미를 뒤적이는 행보다. 무얼 택할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만 때려잡으면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분단 조국은 단박에 통일이 되리란 생각이 얼마나 나이브했던가. 그렇다면 윤석열이 대통령 됐다고 세상 다 망한 것처럼 해야 할 일도 손 놓고 있는, 좋게 말하면 직무유기요, 있는 대로 말하면 시대 앞의 저 죄인들을 어찌할꼬. 민주당 이야기다. 분김에 고향말로 적어본다. 시방 뭣들 하는겨. 이왕 버린 몸이라 이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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