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문제를 필두로 심각한 경제난이 예고된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민들레’니 ‘수박’이니 하고 한심한 계파 갈등 양상만 노정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더욱이 화물연대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민생이 시나브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 판에 여야가 적극적으로 탈출로를 모색하기는커녕 내부권력 다툼에 혈안이 돼 오히려 국민적 걱정거리로 등장하는 형국이다. ‘정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패거리 다툼을 즉각 중단함으로써 날로 높아지는 ‘정치 불신’을 씻어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구심으로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는 ‘계파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윤 대통령 측근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일한 장제원·이용호·이철규 의원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하려던 당내 모임 ‘민들레’(민심들어볼래) 모임을 둘러싸고 내부논란이 거세다. 권선동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모임 결성 주축인 장제원 의원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이준석 당 대표의 비딱한 언행 등으로 볼 때 아주 소멸한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를 당한 더불어민주당도 쇄신 대책…
태어난 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나 이름을 부여받고 열심히 살다가 늙어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과정을 보면, ‘생명체’와 ‘삶’이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며, 또한 생명체의 삶이란 ‘생로병사’라는 말 안에 모두 담겨있음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은 개체의 소멸이라는 죽음 자체가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인이 겪는 죽음이 생명 현상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면, 유한한 존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은 개인 차원 내지 층위를 달리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록 나라는 개체는 특정일에 태어나 일정 기간 살다가 특정일에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지만, 나를 있게 한 부모로부터의 생명의 힘이 있었듯이, 내 부모 또한 그 부모에 의해 존재할 수 있었다. 거꾸로 개인의 존재를 유지했던 생명의 힘은 당사자는 죽음으로 소멸되어도 자식을 통해 이어져 간다. 여성과 남성이란 성의 분화 형태는 있을지언정, 생명은 개체의 죽음 넘어 또 다른 탄생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후손의 형태로 그 숫자를 늘려가며 다양하게 번창하는 모습이 있다. 아름다운 지구 생태계는 그 결과물이다. 이렇게 죽음과 탄생이
손흥민의 아버지다. 1962년생. 예순한 살. 환갑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는 매우 유능한 축구선수였다. 그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먹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자서전을 찾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을 펼쳤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 문장은 실은 성공한 아들들의 흔한 효도발언을 출판사가 광고카피로 뽑아 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장부터 손웅정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칭 '마발이 3류 축구선수'가 쓴 이 책이 오늘 나처럼 부실한 가장들은 물론 이 해괴망측한 시대를 내리치는 죽비였기 때문이다. 한 마라토너가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츄리 경기에 출전하여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선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케냐의 아벨 무타이 선수. 그런데 그가 종점을 착각하여 멈추려 했다.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아니야는 무타이를 추월하지 않고 손짓으로 결승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1등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묻는 기자에게 아니야가 답했다. "그가 이기고 있었을 뿐이
인간의 감정과 행위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의 사상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사상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자신의 영적 본성과 그 본성의 요구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애의 각 시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수행되는 행위, 즉 결혼, 취직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이를테면 산책할 때, 한밤중에, 식사 중에 떠오르는 사상에 의해 결정되는데, 특히 과거 전체를 통틀어 우리에게 너는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해왔지만 좀 더 다른 행동을 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얘기해 주는 사상에 의해 결정된다. 그 경우 그 뒤의 우리의 모든 행동은 노예처럼 그 사상에 봉사하고 그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소로) 인간이 그 앞에서 발을 멈추는 모든 사상은 그가 그것을 말하든 안 하든 반드시 그의 생활을 해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죄악을 피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죄악의 뿌리는 나쁜 사상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사색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로) 우리는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면 아까워하지만
영어를 모르면 한국서 어찌 살까? 국제규격에 알맞은 지식수준을 가졌음을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영어단어가 거리에서도 춤춘다. 영어를 한글로 쓰기도 하고, 영문자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의미 없는 국적불명 말도 와글거린다. 언어의 속뜻을 공부하는 필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오늘의 주제는 ‘거리의 언어학’이다. 얼치기 영어가 거리를 질주하도록 방치되고 있다. 국어 버리고, ‘영어’를 수학과 함께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나라의 영어 실력이 이 정도인가. 자동차 뒷 유리창에 세련된 디자인의 ‘baby in car’(베이비 인 카)라는 커다란 글자 스티커가 붙어있다. 차안에 아기가 있다는 말일까, 뜻만 통하면 된다고? 용(龍)과 드래곤(dragon)을 같은 단어로 아는 사람들의 평면적인 생각이다. 용은 드래곤이 아니다. 한국어로 외국어를 생각한다. 비교언어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영어의 명사(noun)에 ‘a’ 또는 ‘the’ 같은 부정관사(不定冠詞)나 정관사가 꼭 붙는 것을 모든 학습자는 영어 공부 초기에 꼭 배운다. 잊었을까? 없으면 다른 뜻이 될 수도 있다. ‘baby’in(g) car’(베이빙 카)를 말하는 것이냐고 한 외국인이 농담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우크라이나 지정학 리스크 등으로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식량안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국내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109.19(2020년 100)로 1년 전보다 7.6%나 올라 10년 4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같은 여파로 소득 하위 20% 가구의 올 1분기 식비 지출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식비 비중(13.2%)의 3배를 웃돌았다. 유럽의 빵공장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가격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2년 5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 158.3포인트 대비 0.6% 소폭 하락했지만 밀 등 주요 곡물가는 전월보다 2.2% 오름세를 이어갔다. FAO는 2022~23년도 세계 곡물 생산량과 소비량이 전년 동기대비 각각 0.6%, 0.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재고량도 0.4%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인도 등 20여개국이 농식품 수출을 제한하면서 ‘식량보호주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반도체처럼 ‘식량 자국우선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세계화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학교에 떠도는 풍문 중에 ‘신도시 학교는 구도심 학교보다 학교 폭력 위원회가 훨씬 자주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한곳에 살아서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있거나 아이들끼리 친분이 있는 경우라면 학교폭력 위원회까지 가지 않고 해결될 사안인데, 신도시에서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부모도 아이도 낯선 상태라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신도시 학교와 구도심 학교의 학폭위 개최 건수를 통계로 확인하지 못해서 단순한 풍문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교사들이 체감하는 횟수는 확실히 신도시 쪽이 많은 듯하다. 교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신도시에서 학폭 담당 업무를 몇 년 동안 연달아서 맡으면 과로사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새로운 곳에 와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낯설고 예민한 게 사실이라면 학교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생기게 학교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따로 모임을 하는 게 저학년까지는 쉬운 일이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학부모들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점점 더 사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게 드문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 사이에 연결점
‘범죄도시 2’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영화는 엄청나게 재미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단기간에 천만 관객을 모은 것에 대해서도 하등의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극중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아들과 납치된 남편의 여자 역(박지영)에 대해 일체의 말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이상하게 생각한다. 박지영이 참 잘했다.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그런데 포커스는 마동석에게만 맞춰져 있다. 최귀화나 박지환 같은 배우 등등 남자 배우들에게만 맞춰져 있다.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극중 캐릭터나 배우들의 평가에서 불평등한 점이 있다는 얘기이고 다소 쏠림 현상이 보인다는 얘기이다. 뭐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범죄도시 2’의 매력은 양가적(兩價的), 곧 이중의 가치에서 찾아진다. 우파들은, 다소 폭력적이긴 해도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는 데다 후배들이나 자기 경찰서 식구들은 무조건 감싸고 보는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에 매료될 것이다. 남자라면 역시 저렇게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며 침을 흘릴 것이다. 극중 주인공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수사권이 없으니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징징대는 베트남 영사관 직원에게 말한다. “아 그러면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보호해야지 누가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