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소크라테스이다. 2500년 뒤의 사람들은 친숙하게 테스 형이라고도 부르기도 할 것이다. 오늘 나는 아테네 법정이 내린 독배형을 받으러 간다. 죄명은 아테네가 성립해 놓은 신(神)을 믿지 않고, 젊은 청년들을 유혹해 타락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눈물로 탈출을 권했지만 나는 기꺼이 독배를 들기로 했다. 내가 독배를 들고자 한 이유는 결코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 한다는 천박한 주장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무지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경고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함이다. 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참여해 아테네를 지키는 데 나름의 일조를 한 건강한 아테네 시민이었다. 군인을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 수호한 고향 아테네에 돌아왔건만 놀랍게도 아테네는 너무도 변화되어 있었다. 참 진리와 지혜(episteme)를 나누는 전당인 공공장소는 모두 저마다의 속견인 독사(doxa)만을 소리높여 주장하는 무지한 시민들과 그들의 뒤에서 교묘한 논리로 포장한 허위의식을 마치 진리인 양 떠버리는 소피스트들의 궤변만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테네가 자랑하던 진정한 진리를 탐구하기를 즐기던 현명한 군중(賢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남 함양의 산골에 작은 텃밭을 마련하고 매 주말이면 흙과 씨름한지도 1년이 지났다. 농사라곤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어중개비가 산촌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기실 부실한 노후준비 탓이 컸다. ‘도시빈민은 있어도 농촌빈민은 없다’는 역설은 제쳐두고라도 퇴직 후 도시생활은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골짜기를 선택한 것도 그나마 땅값이 헐했기 때문이다. 농막 하나 겨우 지어놓고 농사 흉내만 내던 지난 1년, ‘개도 텃세한다’며 걱정하던 원주민들의 텃세는 웬걸 이장님과 동네 분들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안달인지라 박복한 내게 웬 홍복인가 싶었다. 어쭙잖게 친환경으로 텃밭농사 지어볼 거라 낑낑대다 심는 작물마다 벌레밥을 만들어 보는 동네사람들마다 혀를 차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밑천으로 동네 어르신들에게 덜 부끄러운 밭을 만들어 볼 거라 이른 봄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퇴비랑 석회고토를 뿌리고 밭을 갈며 나름 바빴다. 그런데 맙소사! 겨울부터 눈이 뜸하더니 봄이 되자 비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동네 어르신마다 살면서 이런 지독한 봄 가뭄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다. 하늘을 이기는…
지금도 안방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미드(미국에서 제작된 TV 연속 드라마) 중에는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병원에서 의사들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내용이 꽤 있다. 그런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우리라면 너무도 간단한 부탁이나 청탁에 접한 의사가 의사의 기본 윤리를 언급하면서 면허 취소를 걱정하는 장면이다. 개인 권리를 존중하지만,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공적 역할이나 책임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과 전신마취제 등을 섞어 불법 투여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고, 더욱이 그 시신을 유기한 의사에게 취소된 면허를 되찾아 준 최근 판결이 논란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비록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줘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의료법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인용했다.사람을 죽인 해당 범죄로 인해 의사가 받았던 형량은 고작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300만원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면허 담당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그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는데, 판사가 면허를 되살려준 것이다. 의사가 받은 형량의 경중을 넘어, 우리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패한 더불어민주당이 혁신 비대위를 가동한다. 구심력을 잃은 민주당이 계파간 갈등을 뚫고 쇄신을 향한 궤도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야당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엄중한 잣대의 기대와 바람으로 새집권층을 바라보고 있다. 더욱 겸손하게 실력을 입증해야 할 이유들이 여권에 많이 있다. 첫째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야당의 견제론 대신 여권의 국정안정론을 선택했다. 초박빙이었지만 5년의 대임이 맡겨진 이상 ‘잘해달라’는 격려성 지지다. 중앙에 이어 압도적인 지방권력 교체까지, 거대야당에 맞설 수 있는 환경을 여당에 안겼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언제든지 국정운영이 기대에 못미친다면 회초리가 여권을 향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둘째 지방선거 투표율은 이같은 강력한 함의를 담고 있다. 투표율이 50.9%로 역대 8번의 지방선거 가운데 두 번째로 낮고 4년전인 2018년 7회 지방선거보다 무려 9.3%포인트나 내려갔다. 이재명 안철수 의원 등 대선주자들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전면으로 나섰지만 투표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특히 세대별 투표율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지상파 3사(KBS·MBC·
선(線)은 점(點)이 모여 흘러가는 강이다. 점과 점을 딛고 걸어가는 길이다. 앞선 점의 어깨와 다음 점의 이마를 밟을 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다. 그런 이유로, 흘러가는 것들은 죄다 서럽다. 끌려가는 것들은 고달프고 밀려나는 것들은 안쓰럽다. 도시의 뒷골목은 둥둥 떠내려가는 것들의 비명으로 한낮에도 먹먹하다. 먹먹하든 막막하든 도시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호등에 있는 빨간불이 세상살이에는 없다. 멈추면 죽고 흘러야 산다. 깨지든 말든 멈추지 마라. 침 발라가며 돈을 세는 손가락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전염병이 별을 삼켰다. 입과 코에서 뱉은 작은 점들이 집과 마을과 도시로 흘러들었다. 강처럼 바람처럼 흘러드는 바이러스의 점들 앞에 사람이 쳐놓은 방어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점이 서고 선이 자빠졌다. 총구를 겨누는 군대도 힘으로 무장한 권력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봉쇄와 추적과 격리의 선을 전염병은 놀리듯 넘나들었다. 전염병 앞에서 만물의 영장은 한없이 무력했다. 급히 만들어진 백신과 치료제는 흥정할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돈 많은 나라 국민은 천천히 죽었고 가난한 나라 백성은 빨리 죽었다. 집에서 죽고 길에서 죽고 병원에서 죽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한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 이사국의 압도적 찬성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에 이어 이번 북한의 유엔 결의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제재를 하지 못함에 따라 ‘무용론’과 함께 상임이사국 비토권 거부 등 안보리 의사결정 변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문제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보여준 입장은 북한의 안전 우려에 미국 등 상대국가가 적절한 고려와 상응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북한 도발에 따른 동북아 지역과 세계인들의 불안은 등한시한 체 같은 진영의 북한만 감싸고 도는 ‘편파적 입장’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갈등과 대결에서 평화와 협력, 번영으로 가기위해서 일부에서는 남북한과 미국이 2018년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2018년과 2022년은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 19라는 팬데믹이 있고 2018년의 탐색적 대화가 북한 핵문제 해결과 적대관계라는 근본문제 진전이 없이는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없고 그 여파로
(9월 6일 월요일 늦게 헤이그로부터 미샤 힐레슘과 가족들을 이송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에티에게는 그것이 끔찍하고 갑작스레 일어나 깜짝 놀랐다. 에티는 언제가 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부모와 함께 가지 않고 혼자 가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조피는 에티가 떠나는 날 열차로 걸어가는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기차로 가는 길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명랑하게 웃으면서 친절한 말을 했고, 활기찬 쾌활함이 충만했고, 아마도 슬픈 기미가 있었지만, 우리가 아는 에티는 어느 모로 보나 괜찮았다. ...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1번 화물차에 타는 것이 보였다. 결국 에티는 12번 화물칸에 타게 되었다. ... 그 후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리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1,000명의 ‘이송 대상자들’이 떠났다. 1번 화물칸의 틈새로 언뜻 미사가 힘껏 손을 흔드는 모습이 휙 지나갔고, 12번 화물칸에서 에티가 쾌활하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 그들은 가 버렸다. (열차가 네델란드를 떠나기 전에 에티는 크리스틴 반 누텐에게 보내는 엽서를 써서 열차의 판자벽 틈새를 통해 밖으로 던졌다. 부근의 농부들이 그것을 주워서 주소지로 보냈다. 엽서에는
3·9 대선에 이어 6·1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개 가운데 서울·인천 시장을 포함해 12곳에서 이겼고, 더불어민주당은 막판 대역전에 성공한 경기지사를 비롯한 5곳을 차지했다. 4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14곳을 싹쓸이했던 결과와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났다. 대선 3개월여 만에 실시된 이번 선거는 국정안정론과 견제론이 맞섰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새정부 국정동력’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0.73%의 초접전으로 끝난 지난 대선은 야권 일각을 중심으로 미완의 정권교체라는 시각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계기를 여권은 명실상부한 중앙·지방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방선거가 중앙프레임 성격을 띠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가 퇴색된 점은 아쉽다. 무엇보다 민주당 이재명(인천 계양을)·국민의힘 안철수(성남 분당갑) 대선 주자들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이번 선거가 ‘대선 연장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렇다보니 지역일꾼에 도전한 후보들의 자질이나 도덕성 등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고, 또 정당 중심의 ‘묻지마·줄투표’가 주류
지루하고 답답했던 선거도 끝났다. 현수막 피로감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여름이 오고 가면 가을이다. 모두가 역사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이제 맨 정신으로 스스로를 찾아 나서 자신을 위한 진정한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다. 내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힘으로 학교를 다니기 위하여 집집마다 신문 배달하는 것을 지금의 아르바이트하듯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문 밖에서 던지는 신문이 집 안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싫지 않다. 이어서 일찍 배달된 신문에서 풍기는 활자의 잉크 냄새가 아침 공기와 함께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문과 인연이 깊다. 아니 문학을 하나의 업으로 생각하며 노력하는 길에서 신문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신선한 영양소를 제공했다. 사회적 정보와 함께 어떻게 살며 세상을 읽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주는 산사의 풍경과도 같았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는 다 읽은 신문의 필요한 부분을 오려 ‘스크랩 북’을 만들었다. 문화면과 오피니언에 실린 철학적인 내용들을 잘 오려서 스크랩에 풀로 붙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글 짓고 강의할 때는 물론 축사나 조사를 할 때도 스크랩북에서 그 분위기에 맞는 단어와 문장을 참고하면서 나의 정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