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가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것이 1932년이었다. 9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소설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과연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발표한 것은 1949년이었다. 70년이 더 지났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이 던진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공포와 증오, 잔인성 위에 문명을 세울 수는 없어요. 그런 문명은 유지되지 못해요.’ 이 소설들을 포함한 많은 소설이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사회를 다루었고, 더러 현실이 되었다. 한국의 소설가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최근 발간된 김강의 흥미로운 소설집 《소비노동조합》의 시대적 배경은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지 이미 30년이 지난 2069년이다. 만 18세가 되는 순간부터 누구나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생계비에 해당하는 기본소득을 받는 황금광 시대다. 생존을 위한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문화와 여가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생계비다. 이런 황금광 시대에는 갈등이 종식되고 채무자들도 사라지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채업자다. 그것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다.
어릴 적에는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케이크를 준비해서 파티를 했다. 반 회장을 주축으로 모여서 칠판에 풍선을 붙이고 분필로 편지를 썼다. 선생님에게 진짜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파티를 열어 합법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요즘은 김영란법이 생겨서 이런 식의 파티는 거의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파티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오히려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작년 스승의 날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 일이 없었고 올해엔 학생 몇 명이 꽃과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는 받고 꽃은 사진을 찍고 돌려보내면서 사진으로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학생이 아쉬워했지만 편지만으로 충분하다고 거듭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전체 교사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스승의 날엔 교사들끼리 그간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 힘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스승의 날이라고 별 다를 건 없다.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아이들 하교를 시킨 다음에 업무 처리를 했다. 어제와 똑같이 지나갈 뻔 했는데 오전에 받은 편지를 펼치니 감회가 생겼다. 교실에 앉아 학생들이 주고…
올해는 1991년 5월 투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 역사를 기억하고, 또 그 의미를 올바로 의식하고 있을까? 대체로 4050 세대는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1987년 6월 항쟁과 대비해 성과 없이 패배한 투쟁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도 아픈 기억으로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4050세대는 당시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40대는 대학생이었다. 1991년 4월 26일 시위 현장에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으로 불리던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망한 이후 시민사회는 ‘노태우정권 퇴진과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여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해 투쟁에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쟁취한 직선제 개헌에 따라 출범한 정부를 부정하면서 민주정부 수립을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불과 4년 전에 민주화운동의 결실로서 들어선 정부(정치체제)가 부정되면서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미 6월 항쟁의 성과는 한계가 드러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내지는 ‘개헌과 6공 체제의 청산’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됐던 셈이다. 그러나 5월 투쟁이 성과 없이 끝남으로써 패배감에…
우리의 영혼에는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준다.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혼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무서워하고 싶은 자는 무서워하라. 영혼은 자기 본원의 나라에 살며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다. (에머슨) 신은 모든 사람들 속에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신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고뇌의 원인이 있다. 불이 없으면 등잔을 켤 수 없듯 신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바라문의 가르침)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다. 창조도 파괴도 내 생각에 따라 일어난다. 세상은 다만 껍데기일 뿐이고 그 핵심은 바로 나다. 그런 내가 티끌이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어찌 두려워할 필요가 있으랴. 나는 티끌이 아니다. 그러니 신에게 복종하며 편안하게 이 세상에서 살라. (페르시아 금언) 전체를 건지시려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자기가 영이신 것같이 인간과 만물을 영으로 변화케 하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어느 한 사람을 들어 그 고난의 짐을 지게 하십니다. 사람은 이미 죽음을 이긴 사람이므로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저기 있는 저들은 죽음의 종노릇하는 것들입니
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May Day. 저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기념일은 아닙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지금으로선 당연한 요구를 쟁취하려 했던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하루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내릴 수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양분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도 정치, 사회적 분쟁으로 결말이 난다. 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즉,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할지라도 노동(Labor)은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며 부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중한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들은 노동자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워해야 될 일이며, 이러한 노동자의 노동을 기념하는 날은 노동절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작은 같았다. 다른 나
1. 매회 챙겨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위에서 하도 재미있다 해서 가끔 시청했다. 사필귀정, 거악응징 드라마의 쌍두마차 《빈센조》와 《모범택시》 말이다. 전자는 노골적 B급 정서를 지향하는 블랙코미디.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가관이다. 난데없이 (한국 혈통) 이태리 본토 마피아 변호사가 등장한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양쪽에서 줄줄이 사람을 죽여도 수사기관은 하품만 하고 있다. 팩트 체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후자는 요 몇 년 사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사건에서 주로 모티브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모 웹하드 기업 회장의 엽기잔혹 스토리 같은. 상대적으로 좀 더 사실적인 설정인 셈이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인물 설정, 미장센, 대사에서 모두 노이즈가 강하다는 거다. 특히 《모범택시》는 등장인물 모두가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빽빽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다. 늦은 밤에 보고 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다. 잔인한 장면 기준으로는 《빈센조》가 한 수 위다. 특히 최종회에 등장하는 ‘참회의 창’인가 뭔가 하는 살인도구는 (끔찍을 넘어) 참신하다 싶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2. 사회학자 겸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
우리나라에 “처녀귀신” 이야기가 그토록 오래 전해내려온 까닭은 달리 있지 않았다. 고을의 힘센 자들이 사건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 처녀귀신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게 될까? 《춘향전》이렷다. 죽은 다음에 해결하면 뭐하는가? 살아생전에 한이 생길 일을 풀어야 세상이 제 도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장원급제하여 어사로 밀행하고 있던 이몽룡은 거지꼴로 변장하고 관아에 들어선다. 백성들은 가난에 쪄들어 있는데 사또 변학도는 여기 저기 고을 수령들을 불러다가 상다리 부러지게 생일잔치를 벌였겠다. 거지 이몽룡은 밥값으로 시 한 수 읊는다. “금준미주(琴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원님 생일 잔치에 뭔 난데 없는 소리인가? “금 술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수많은 백성들이 흘린 피요, 옥으로 만든 쟁반에 그득 담긴 보기에도 입맛 다시게 하는 안주거리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것 아닌가? 술상 밝힌 촛농 떨어지면 백성들의 피눈물도 떨어지고, 너희들이 신이 나 난리 부르스치는 자리마다 한맺힌 소리 드높은 줄 모르느냐?” 이 모든 사태를…
“방역당국이 감염자 수를 조작하고 있다.” “백신접종 후 수십 명이 사망했다.” “백신이 바닥났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주류 언론까지 나서서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가짜뉴스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 정보”(허위조작정보)를 의미한다. EU에 따르면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고의로 공중을 속이기 위해 제작, 유포된 정보다. 가짜뉴스는 동서고금을 통해 늘 존재했던 신문과 방송의 오보나 편파보도, 유언비어와 달리 출처조작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그 결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행위다. 지난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은 ‘가짜뉴스 경연장’이었다. 브렉시트 당시 널리 유포된 대표적 허위정보는 영국이 매주 3억5000만 파운드를 EU에 분담금으로 지불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분담금은 1억7천500만 파운드였지만 투표일까지 대다수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영국의 언론인 제임스 볼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 직전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상위 20개 가짜뉴스는 SNS 등을 통해 무려 870만회
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삶과 죽음의 의의에 관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영혼은 배우지 않는다. 다만 원래 알고 있던 것을 떠올림 따름이다. (다우드 엘) 현자는 언제나 만물 가운데서 도움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주어진 재능의 본질은 모든 사물 가운데서 선을 이끌어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존 러스킨) 정치적 승리, 수입의 증가, 너희 가운데의 병자의 회복, 멀리 갔던 벗의 귀가 같은 행운은 너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너희에게 드디어 좋은 날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너희 자신 외에 너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머슨) 인생의 사명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바깥 세계에서 찾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너희 자신의 마음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싹의 상태로 있으니, 너희는 선한 생활로 그 해답의 싹을 틔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예지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류시 말로리) 벗을 찾아 헤매는 자는 가련하다. 왜냐하면 참으로 충실한 벗은 자신뿐이며, 밖에서 벗을 찾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참으로 충실한 벗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로) 누가 가르쳐준
1800년 5월 그믐에 정조는 교시를 발표했다. 오회연교(五晦筵敎)였다. 앞으로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하겠다는 정조의 야심에 찬 선언이었다. 재위 26년 만의 결단이었다. 즉위 초 조정은 결코 그에게 호락치 않았다. 권력을 장악한 노론세력은 아버지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정조에 우호적인 남인과 소론은 미약했었다. 그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정조는 스스로 부하를 만들어 써야 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초계문신(抄啟文臣)이었다. 과거 급제한 자들 중 당파색이 옅은 젊은 인재를 선발해 규장각에서 3년 동안 특별교육을 시킨 후 관직에 나가게 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정조는 조선 후기의 찬란한 진경문화시대를 열었다. 중국 일색의 문화를 조선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실생활에 적합한 실용적인 정책들을 개발해 위민정치를 실시하였다. 사병화되고 있던 오군영을 대신한 장용영이라는 조선 최강의 군대를 육성해 자주국방의 초석을 놓았으며, 신해통공을 반포하여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수원 화성을 건립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이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수도 한양을 천도할 구상까지 했었다. 심지어 그는 즉위하자마자 노비추세관을 폐쇄하는 등 장차 노비해방까지도 구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