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의 조건이 지금보다 더 나빴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 깊은 지하 갱도에서 말 등에나 씌우는 마구(馬具)를 둘러메고 팔 다리로 기어서 탄차를 질질 끄는 그 지독한 노동에 시달렸던 노부인들이 아직도 몇 사람 살아 있다.” 조지 오웰이 1937년 출간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은 영국 북부 탄광지역 위건의 빈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사한 르포 문학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그녀들은 임신 중일 때도 이 일을 계속하곤 했다. 요즈음에도 만약 임신한 여성들이 탄차를 끌어야만 석탄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석탄 없이 지내기보다 차라리 임신부들이 탄차를 끌게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럴까? “우리 모두가 비교적 고상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목구멍에는 석탄 먼지가 가득하고 눈까지 시커멓게 된 채 강철같은 팔과 배의 근육으로 삽질을 해대면서 지하에서 악착스럽게 일하는 이 가련한 사람들 덕택이다.” 그러면 그 ‘가련한 사람들’은 왜 이리 일해야 하는가? 그 까매진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찌 하랴. 조지 오웰은 수입이 끊기는 공포를 이렇게 단적으로 짚는다. “가장 훌
우리의 삶이 정신적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불멸을 믿게 된다. 우리의 본성이 동물과 같은 성질에서 멀어짐에 따라 불멸에 대한 의심은 점점 사라져간다. (마르티노)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내세를 믿는 근거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존재와 나의 불멸이 의심할 나위 없는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만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불멸한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곧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내 본성과 굳게 맺어져 있음을 뜻한다. (칸트)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 알고 있는 것의 전부는, 내가 아직 본 일이 없는 것, 모르는 것을 믿으라고 나에게 가르친다. (에머슨)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입장은, 학자가 자신의 학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방에 들어간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는 그 얘기의 시작을 듣지 못했고 또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나간다. 그는 무엇인가 듣기는 듣지만 들은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신에 관련한 말은 우리가 공부를 시작한 것보다 몇십 세기 전에 시작이 되
왜 그럴듯한 남성조차 여성존중에 실패하는가?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은 당대표가 자신을 성추행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국민들에게 발표한 글에서 위와 같이 물었다. 사실 나도 계속 그것이 오래동안 궁금했다. 왜 그럴듯한 그들이 여성을 존중함에 실패하는가? 선한 가치의 추구, 인간 진보에 대한 희망과 그것에 대한 실천을 표방하는 이들이 왜 바로 옆의 여성을 존중하는데 성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그것을 물을수도 없었고 행여 아주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물어도 대답은 석연치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니가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많도 많이 들었다. 그러던차에 나의 오랜 내적물음을 표면화시킨 장의원의 글들은 나만 아팠던 것이 아니구나 나만 궁금했던 것이 아니구나 위로가 되었다. 문제제기를 하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희망을 보았다.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명하던 한 여성의원은 한 한의사모임에 참여해서 그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나에게 건배를 청하며 자신이 여성주의를 내세우며 핍박을 받은 역사를 알려 주었다.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과거에 어떤 시선을 받았는지 알기에 그녀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었다. 그 말들 이
1. 기적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패배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다. 부산 시장선거의 경우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졌다.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의 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대 패배인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바 MB의 정통 후계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반대정당에 몰표를 던졌다. 탐욕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언론과 검찰이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시각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청와대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 실망하고 분노한 철저한 응징 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거부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게다. 지난 지선, 대선, 총선과 비교해서 가장 극적인 민심이반이 일어난 곳이 2, 30대 청년 계층이다. 특히 20대 남성 유권자의 경우 70퍼센트 이상이 국민의힘 후보에 표를 던진 걸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 모든 지역구 단위에서 처참한 패배는 청년층의 이 같은 투표 결과로 봐야 한다. 2. 선거 전 여론조사를 통
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리가 되면서 나는 철도기관사가 되었다. 처음 기관차를 타던 90년대 지방의 철길 건널목에는 차단기도 없는 곳이 많았다. 반면에 어떤 건널목은 차단기에 건널목 안내원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널목에는 대부분 기관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건널목’, ‘박영*건널목’ 식으로.. 알고…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자 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 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약력 ▶청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현대문학](1964)으로 등단. ▶시집 [떠돌이 별] [사랑굿] 1·2·3 [멀고 먼 길] 외 6권. ▶수필집 [하얀물감] [그대 하늘에 달로 뜨리라]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공초문학상 수상.
내가 외운 최초의 한시(漢詩)는 '대장부가'(大丈夫歌)다. 복학하여 '맹자 원전강독'을 들었는데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중국에는 수교 초부터 드나들었다. 현지 파트너들과 만찬을 할 때면 매번 통역사인 친구가 여급에게 백지와 펜을 부탁한다. 취기가 오른 나는 과장된 폼을 잡고 이 위대한 시를 내려 쓰곤 했다. 그러면 모두 놀란다. 한번은 그 덕분에 큰 계약을 쉽게 한 적도 있다. 중국측 대표가 맹씨였다. 그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非常棒(비상봉)!'은 그의 칭찬. '엄청난 인물'이란다. 大丈夫歌(대장부가) 대장부의 노래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거하되 천하에서 가장 넓게 자리 잡으라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서되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자세를 취하라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행하되 천하에서 가장 거침 없이 나아가라 得志 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不得之(부득지) 獨行其道(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닦아라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부귀는 그를 삿되게 하지 못한다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빈천도 그를 시시하게 만들지 못한다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위력 권세도 그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그
죄를 짓지 않고서는 노동의 의무를 피할 수 없다. 즉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에 아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빵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지조를 잃을 바에는 굶어 죽는 것이 낫다. (소로) 황금의 띠를 두르고 남의 종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빵을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 낫고, 자기가 노예라는 표시로 가슴 위에 두 손을 포개고 있기보다는 그 손으로 석회나 진흙을 이기는 것이 나으며, 노예처럼 허리를 굽실거리기보다는 한 조각의 빵으로 만족하는 것이 낫다. (사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할 바에는, 새끼줄을 들고 숲으로 땔나무를 하러 가서, 그 땔나무 한 단을 팔아먹을 것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낫다. 먹을 것을 구걸해서 얻지 못할 때는 부끄럽고 화가 날 것이고, 또 얻으면 얻는 대로 더욱 나쁘다. 왜냐하면 준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마호메트) 땅을 갈지 않는 자에게 땅이 말했다. “너는 그 오른손과 왼손을 사용하여 나를 갈지 않는 벌로서, 영원히 뭇 거지들과 함께 남의 집 문전에 서서, 영원히 부자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얻어먹게 될 것이다. (조로아스터) 땀 흘려 일하는 생활이 게으른 생활보다 고귀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스스
걸어야 할 운명의 길 같이 아침에도 산길을 걸었다. 갑자기 칸트의 산책에 따른 생각이 떠올랐다. 칸트는 일어나서 홍차 두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산책길에 나섰다고 한다. 동네 사람은 산책길의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그만큼 그는 정확히 그 길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달력의 여백에 그날 산책길에서 전날과 달라진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적어두었다. 칸트는 아침밥은 간단하지만, 저녁밥은 자신이 직접 요리하여 네댓 시간 동안이나 즐겼다. 그의 요리는 그 시절 그 시기에 가장 알맞은 음식을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불어날수록 세월의 유속은 불자동차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봄에 새순의 차를 달여 마시면 마음 가벼워지고 두 겨드랑이 밑에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한 해가 지나가고 내일모레면 차나무 밭에서 풋것의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신춘문예 시상식을 간략하게 마친 다음 날이었다. J 신문 논설위원과 문화부 기자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어느 음식점 2층 독방에서 만났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업무적으로 만나 수고한 관계지만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 만났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심설당) 도입부에 나오는 이 문장은 아름다워서 책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하지만 이를 역사적 실존의 문제가 아닌 인문적 상상력의 문제로 보면 쉽게 와 닿는다. 별빛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이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가 있었다. 몇 년 전 작고한 전 한양대 리영희 교수는 그런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책과 칼럼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 빽빽하게 차 있는 사실 관계, 명확한 인과 관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메시지. 판금도서였던 그의 명저『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는 군사정권을 폐부에서 균열내기에 충분했다. 거짓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해 당시 한국 사회가 우상을 걷어내고 이성을 회복하는데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즈음 기성 언론이 간판급 지식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