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 구름조금동두천 14.5℃
  • 맑음강릉 21.9℃
  • 맑음서울 16.3℃
  • 맑음대전 15.1℃
  • 맑음대구 18.5℃
  • 맑음울산 19.2℃
  • 맑음광주 14.8℃
  • 맑음부산 19.5℃
  • 맑음고창 13.0℃
  • 맑음제주 18.4℃
  • 흐림강화 14.4℃
  • 맑음보은 12.4℃
  • 맑음금산 13.0℃
  • 맑음강진군 14.6℃
  • 맑음경주시 18.3℃
  • 맑음거제 17.5℃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대자리에 누워

 

 

일 년 가까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 참고 살라고 하니 참았다. 그게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눈만 뜨면 전파하고 있어 인내하며 기다렸다. 인간이란 생명체로 살아오면서 자연에 대한 죄와 빚이 많아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한편 죄 닦음이라고 생각해두자고 마음 다스렸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렇듯 코로나 19에 발목이 묶여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끼리의 대여섯 명 정도는 만나도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어렵게 다니러 온 아이들을 만났다. 맏손자부터 껴안아 주었다. 밤에는 종남산 아래 산장에서 방역수칙 지켜가며 식사를 했다. 사는 맛이 느껴졌다. 가족 사랑과 함께 사람 사는 게 이 모습이구나 싶었다. 마음 풍요롭고 가슴 밝아졌다.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질 때 생활인의 기쁨이 있다는 상식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자기 삶의 주거 공간으로 돌아갔다. 떠나는 아이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녀석들을 한 해에 한 번 본다면 10년이면 열 번 만난다는 것이구나 싶었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일인용 침대 위로 꽉 찬 대자리가 깔려있지 않은가. 허전해할 내 마음을 예견이나 한 듯 아내는 대자리를 사들여 깔아놓았다. 이제 편히 쉬라는 듯- 이별 뒤에 따르는 연민의 정과 내 자신의 속 뜰을 편안하게 달래라는 것 같았다.

 

내게도 ‘불금’이라고 불타는 금요일이 있었다.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2차는 단골 술집이요 다음으로는 노래방으로 가서 불타는 정열을 발산하던 때가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며 가슴에 쌓인 것들을 거침없이 외부로 발산하고자 했다. 토요일이면 알파인 김정호의 책처럼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산행에 나섰다.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다. 주말여행을 떠나고 해외로 나가고, 각종 스포츠 경기를 구경하며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때도 나는 산으로 기어들어 오르고 땀 흘리며 심폐기능을 힘들게 가동했다. 삶의 선용(善用)이라 생각했다.

 

삶을 뒤돌아보면 배고픈 시절 면한 뒤 달러를 벌어도 보고, 고갈되어 나라가 부도를 맞기도 했다. 부도난 나라를 건지겠다고 결혼반지와 아기 돌 반지를 꺼내서 팔아 모은 돈으로 달러 빚을 갚는 금모으기운동도 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국가적 불행으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러보다 금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 + 폭염 = 방콕 인생’이란 삶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다.

 

아내가 깔아준 대자리에 등을 대니 등과 허리 아래로 물길이 열려 흐르는 듯 시원하다, 선풍기를 약하게 틀고 누워 있자니 대숲이 떠오른다. 여름 장마에 젖은 대나무가 머리를 깊숙이 숙이는 모습은 마치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꼿꼿하게 사는 선비의 모습 같다고 느껴보던 때도 있었다. 고산 윤선도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라고 읊었다. 초목을 의인화하여 높은 인격을 부여하고 사계절 푸른색의 불변과 드높은 절개를 노래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법 공부 많이 해서 걱정되는 분들에게 대나무라도 하나씩 선물로 보내야 할 것인지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