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낳는 모든 나쁜 관념, 즉 국가간의 증오, 무공(武功)에 대한 동경, 승리 또는 복수에 대한 갈망 등은, 국민의 양심을 짓밟아 인간 상호의 선의를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비열하고 무분별한 이기심으로 바꾸고, 자유에 대한 사랑을 허물어뜨리며, 단순히 남의 목을 베려고 하는 야만적인 욕망에서, 또는 남이 내 목을 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발아래 스스로 몸을 던진다. 전쟁에 의해 부추겨진 나쁜 관념은 사람들의 종교적 감정을 완전히 왜곡시켜, 교회 지도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살인과 약탈을 위한 무기를 축복하고, 대지가 피투성이 시체로 뒤덮여 죄 없는 백성들의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찰 때, 평화의 하느님을 향해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모순을 낳는다. (헨리 조지) 어린이들은 처음 만날 때, 기쁨에 찬 얼굴로 서로 웃으며 호의를 보인다. 대부분의 어른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러나 한 국가의 일원이 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웃 민족을 증오하며, 그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려고 마음먹게 된다. 사람들 속에 이와 같은 증오심을 조장하여 그러한 잔학 행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죄가 어찌 무겁지 않을 것인가! “분할하여 통치하라” 이 말속에 모든
연말연시를 앞두고 곳곳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경기도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일 수원시 도청오거리 교통섬에서 ‘희망 2022 나눔캠페인: 나눔, 모두를 위한 사회백신’ 출범식과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을 열었다. 올해는 수원시를 비롯, 화성·용인·안양·안산·파주·김포 등 도내 7개 시에 설치된다. 경기도의 올해 목표액은 276억 원으로 1일부터 2022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진행된다. 지난해 목표액은 271억 8000만 원이었는데 302억 8100만 원을 모금, 달성률 111.4%를 기록했다. 수원시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전개한 ‘희망 2021 나눔 캠페인’ 목표액이 10억 원이었는데 13억 7000만 원이 모금돼 137% 실적을 기록했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와 경제 불황 속에서도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고유한 인보정신이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사랑의 온도탑은 모금 목표액의 1%마다 온도가 1도씩 상승한다. 목표액이 달성되면 사랑의 행복 온도탑은 100도가 된다. 올해도 사랑의 온도가 100도를 훌쩍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
코로나 시국 이전에 일본 오사카로 연말 여행을 다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생각도 좀 정리를 할 겸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해결보다는 외면의 의미가 더 가까웠지만, 나이와 함께 늘어가는 어깨의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상황에서, 여행은 꽤 도움이 됐다. 옷가지를 넣은 가벼운 짐과 함께 카메라를 하나 둘러메고 그렇게 간사이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과거 MBC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을 준비하며 알게 된 격기 계통 사람들의 인연으로, 일본에 있는 그쪽 업계의 사람들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일본과 왕래가 괜찮았던 시절에는, 서로 오가며 종종 만남을 가졌다. 이 여행에서도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프로레슬링 경기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경기를 보러 간 것이었다. 오사카 변두리의 폐공장을 극장으로 개조한 작은 경기장에서의 시합이었는데, 늦은 오후에 시작해 크고 작은 시합들로 이어지다가, 12월 31일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 링 위의 선수와 관객들 모두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축하하는 이벤트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의 새 감독으로 콘테가 부임하고 나서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점일 것이다. 전전 감독이었던 세계적 명장 무리뉴는 선 수비 후 역습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수비수와 스피드 좋은 공격수가 중용되는 구조였다. 모든 선수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어 번번이 지고 말았다. 반면 콘테 축구는 올라운드 플레이기 때문에 포지션에 상관없이 선수 개개인 모두가 중용된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쉽게 지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구성원들의 능동적이고도 창의적인 협력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져온다는 상식이자 진리 아닐까? 역사 속에서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하나만 들어보자.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가 당시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와 맞서 싸워서 대승을 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전제정치체제에서 벗어난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인식해 올라운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는 교훈은 너무 뻔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난 80년대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통찰을 얻었다. 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회 곳곳
현대는 그야말로 비판의 시대이다. 그런데 종교와 법률기관은 일반적으로 비판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교는 그 신성함의 힘을 빌리고, 법률기관은 그 외면적인 위대함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와 법률기관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혹을 부채질해 사람들의 참다운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성은 자유롭고 공개적인 판단을 거친 것만 존경하기 때문이다. (칸트) 인생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진실을 더 많이 파악하고 더욱더 그 진실을 좇아서 사는 것이다. 그릇된 종교는 모두 자신의 경전(베다, 성서, 코란, 불경 등) 속에 확실하게 완성된 더할 나위 없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에 따라 사는 방법(신앙, 제물, 기도, 은총 등)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진리를 탐구할 필요도 없고 자기 생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성이 인간의 신화를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성은 진리와 맞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한다. 정치와 종교는 다 인간의 생활을 각각 두 면에서 한데 묶어놓는 묶음이다. 하나는 평면에서 하나는 수직에서, 하나는 땅에서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는 현실에서
정부가 최근 특별방역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청소년 코로나19 방역패스(접종완료·음성확인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청소년 접종 속도가 더딘 현실에서 높은 발병률은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정부의 대응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일부 백신 부작용 뉴스에 예민해진 학부모들을 과잉압박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 백신 부작용 걱정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정부가 신뢰할만한 정보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등 우려 해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4주간 10만 명당 코로나19 발생률은 19세 이상이 76명인데 비해 0~18세는 99명으로 청소년 발병률이 높다. 성인은 백신 접종 완료율이 90%를 넘었지만, 청소년은 31.2%에 그친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12~15세 청소년들의 접종률은 13.1%에 불과하다. 교육부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2주간 확진된 소아·청소년 2990명 중 99%인 2986명이 백신 미접종자이거나 접종 미완료자였다. 청소년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방역패스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정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불안이다. 극히 드문 경우이고 인과관계가
온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안타깝게도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네요. 애초부터 비토해온 일부 정치권의 발목잡기를 뚫고 어쨌든 닻을 올린 공수처 아닌가요? 공수처는 일본 정·관계의 정수기 역할을 해온 도쿄지검 특수부 신화를 모델로 삼고 희망을 걸어온 특별한 수사기관이잖아요. 그런데 어렵사리 출범한 공수처가 ‘대통령선거’라는 폭풍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군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공공연하게 ‘공수처 폐지’ 구호가 나도는 선거판의 흐름이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일부에서 “공수처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군요. ‘무능’을 그 이유로 들지만, 그게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요? 하긴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조차도 합법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허술했으니까 그럴 만도 해요. 더욱이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를 상대로 법원에 신청한 영장이 세 번씩이나 기각됐잖아요. 법원에서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를 하는 중에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했다는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는 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뉴스는 여 차장이 “고발 사주는 대장동 넘는 국기문란”이라는 사견을 펴다가 재판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참으로 깨닫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나 극히 어린 시절에 일어나는 그 변화의 시작과 죽음을 동반하는 그 끝은 인간의 관찰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래도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 생명은 끊임없이 그 겉모습을 바꾼다. 사물의 겉모습밖에 보지 않는 무지몽매한 인간만이 일정한 형태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사라지면 생명 자체가 소멸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일정한 형태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애벌레가 사라지고 새롭게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 어린아이가 사라지고 대신 청년이 나타난다. 동물적인 인간이 사라지고 새롭게 정신적인 인간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류시 말로리) 도토리는 가지, 잎, 줄기, 뿌리, 즉 모든 외형, 모든 고유한 형태를 잃었지만, 그 속에 자신이 포기한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간직한 상수리나무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