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떠도는 풍문 중에 ‘신도시 학교는 구도심 학교보다 학교 폭력 위원회가 훨씬 자주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한곳에 살아서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있거나 아이들끼리 친분이 있는 경우라면 학교폭력 위원회까지 가지 않고 해결될 사안인데, 신도시에서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부모도 아이도 낯선 상태라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신도시 학교와 구도심 학교의 학폭위 개최 건수를 통계로 확인하지 못해서 단순한 풍문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교사들이 체감하는 횟수는 확실히 신도시 쪽이 많은 듯하다. 교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신도시에서 학폭 담당 업무를 몇 년 동안 연달아서 맡으면 과로사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새로운 곳에 와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낯설고 예민한 게 사실이라면 학교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생기게 학교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따로 모임을 하는 게 저학년까지는 쉬운 일이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학부모들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점점 더 사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게 드문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 사이에 연결점
회의(Meeting)·포상관광(Incentives)·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폭넓게 정의한 전시·박람회와 산업을 마이스(MICE)산업이라고 한다. 대규모 회의나 전시회 등을 아우르는 마이스 산업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사·개최지·숙박업체·음식점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매우 크다. 한국관광공사는 참가자들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이 일반 관광객의 3.1배나 되며 체류기간도 1.4배라고 한다. 일자리 창출과 도시브랜드 향상에도 크게 기여한다. 세계 각국에서 ‘황금알을 낳는 산업’ ‘굴뚝 없는 산업’이라며 마이스산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경기도는 마이스산업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는 데다 국제공항, 국제항구가 지척에 있어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자연·문화에 더해 안보라는 특화 관광자원이 있다. 갖출 것을 다 갖춘 지역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지난해 12월엔 마이스 산업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기도 마이스산업 중장기 육성 종합계획(2022~2026)’을 수립하기도 했
- 임오군란(壬午軍亂)과 사대주의(事大主義) - “민(閔)중전(中殿)을 잡아내라!” 왕이나 민비는 폭동 군중들이 그렇게도 벼락같이 창덕궁으로 들이닥치리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수문장이나 무예별감은 폭동군중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모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 박춘명의 소설 『임오군란』의 한 장면이다. 김주영의 『객주』는 군란의 시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식량을 급료로 받아든 군병들은 경악했다. - 이 곡식 자루를 한번 들여다보게. 곡식 자루에서 뜬내는 안 나고 갯내와 먼짓내 뿐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끼니가 되겠는가? - 정부재정은 민씨 일파의 손에 있었고 세도가(勢道家) 민겸호는 이에 대한 전권을 발동하고 있었다. 쌀로 세금을 내는 미납(米納)제도이기에 군병들의 급료도 쌀로 내주게 되어 있었는데 정부재정 부족을 이유로 급료 지불은 무려 10개월이나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는 솟구치는 군병들의 불만을 누를 수 없어 내어준 배급쌀은 대부분 폐미(廢米)에 다를 바 없었고 모래도 섞여 양과 무게를 속인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들 군병의 분노는 어찌 되었겠는가? 안국동의 민겸호 집이 이들에게 습격
성장과 부를 추구하며 빠르게 달려가던 세상은 육체적, 정신적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웰빙(well-being)’을 일으켰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치유와 회복을 추구하는 ‘힐링(healing)’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칠랙스(chillax)의 시대다. ‘쉬다, 놀다’를 의미하는 ‘chill’과 휴식을 의미하는 ‘relax’가 합쳐져 생겨난 속어 ‘chillax’는 ‘느긋하게 쉬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다. ‘chill’의 본래 뜻은 ‘무언가를 얼지 않을 정도로만 차갑게 한다’지만, 영어적 표현인 ‘cool’과 비슷하게 쓰인다. 즉, 시원하고 차분(cool)한 태도는 한층 나아가 삶이 과열되지 않도록 차갑게 식혀주는(chill) 삶에 대한 태도로 진화됐다. 실제로 칠랙스는 ‘긴장 풀다’를 의미하는 ‘chill out’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삶에 대한 태도는 조화에서 치유로, 치유에서 식힘(가라앉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긴장되고 과열될 것 같은 삶은 어떻게 식히고, 풀어줘야 할까? 웰빙, 힐링에 비해 칠랙스에는 주체성이 더 짙다. 앞의 두 개념이 명상, 요가, 산책 등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이완을 꾀한다면…
“이 땅에 저널리즘은 있는가?”는 지난 6월 4일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 ’굿바이전‘작가 일동이 내 성명서의 제목이다. 이 성명이 나오기 전날인 6월 3일 한국기자협회는 “서울민예총...언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활동을 위축시키는 전시회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낸 바 있다. 기자협회 ‘협박 성명서’ 덕분에 서울민예총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광주시의 메이홀에서 ‘굿바이 시즌2 전(展)-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 ‘조선일보 두루마리 휴지’의 오종선 작가, 박근혜-최순실을 풍자한 ‘더러운 잠’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구영 작가 등 만화, 회화, 캐리커처, 일러스트 분야의 작가 18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성명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위 문재인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붉은색으로 덧칠해 적폐세력으로 묘사하고 소속사와 실명을 거론하여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 둘째, 전시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편협한 이념과 사상이 개입되어 그들과 다른 생각의 존재를 비하하고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최근 두각을 나타내던 테라·루나의 가격 폭락으로 인하여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테라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스테이블 코인으로서 탈중앙화에 대한 매니아들의 맹목적 신뢰와 가격상승 편향의 알고리즘 구축으로 짧은 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테라 신화 몰락의 요인은 알고리즘 자체의 결함이다. 테라의 알고리즘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을 상정하였기에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가격안정 시스템은 적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본 것이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화폐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거나 이를 경시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유통되는 법정화폐는 수십만 년 인류 진화의 DNA가 내재화된 정치·경제·사회적 산물이다. 암호화폐는 정치로부터 독립한 탈중앙화의 실현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는 별개로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테라는 화폐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테라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 상거래 생태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테라·루나의 가격상승을 통한 생태계 성장 전략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네트워크 내 신뢰관계가 취약한 상태에서 포스
진정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밖에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의 현상을 바꿀 수 있을 뿐, 결코 생명 자체를 멸망시킬 수는 없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음이 있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죽으면서 자기가 멸망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영원히 존재를 유지한다. (노자) 나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의 전승과 교육의 영향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 나는 평생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깊이, 우리의 삶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 왔다. 나는 그것을 인류의 역사와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탐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도달했다. 즉,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생명은 원래 영원한 것이어야 하며, 늘 그 자리에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법칙이라는 것, 내 안의 모든 능력과 모든 사상, 모든 요구는 실천을 통해 살려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는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넘어서는 높은 사상과 동경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동경은 우리의 감성을 통해 그 출처를 확인할 수…
'노랑예수'.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이다. 퐁타벤(Pont-Aven) 트레말로 성당의 나무 예수상을 보고 그렸다. 2년에 걸쳐 완성된 '노랑예수'. 19세기 프랑스 북부에서 펼쳐진 예수의 수난과 그 곁을 지키며 기도하는 브르타뉴 여인들의 모습이다. 예수의 강한 윤곽선과 평면적 구성, 여인들의 독특한 음영. 인상파와 결별한 새로운 풍이다. 노랑, 주황, 녹색의 가을 팔레트는 예수의 형상을 압도하는 노랑의 메아리로 울림이 크다.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퐁타벤. 볼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밀감익기에 좋은 온화한 햇빛, 저렴한 생계비, 풍부한 현지소재. 가난한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이유다. 고갱이 퐁타벤을 처음 방문한 건 1886년. 그 후 다시 찾아와 4년간 머물렀다. 야생의 마을이자 원시적인 곳. 고갱은 이런 퐁타벤을 무척 좋아했다. “화강암 위를 걷는 내 장화 소리를 들을 때, 난 그림에서 찾고자하는 은은하지만 강력하고 불투명한 소리를 듣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만의 스타일을 찾아 세계를 헤매던 고갱. 퐁타벤에서 급기야 그 꿈을 이룬다. 갑갑한 도회지생활을 벗어던지고 순수성과 고결성을 찾아 이곳에 왔다. 신선한 공기, 이국적 방언, 전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