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나치스의 계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대한 해석론을 배경으로 나온 말이지만, 지난 한 세기 헌법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나 갖다 쓰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이 글도 그런 글 중 하나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주권자가 되고 싶은 주권자 지망생들이나 주권자 호소인들도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태라고, 예외상태에 필요한 예외적인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안’, 일명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5만 원 지원법”은 법률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헌법에 반하는 처분적 법률이고,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처분적 법률이 불가피한 상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이 민생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예외상태’인데
언론 보도의 많은 부분이 현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지만, 근미래를 전망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언론의 근미래 전망은 대부분 현실에 근거하기에 높은 확률로 실현된다. 최근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변화시킬 근미래를 제시하기 바쁘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해 개인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조직 운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산업 구조는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등이 매일 지면과 화면을 덮고 있다. 인공지능 이전에도 유사한 언론 보도 패턴은 늘 존재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얘기한 때가 엊그제다. 그전에는 인터넷, 이보다 전에는 컴퓨터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이들 보도 당시에도 개인 삶, 조직 운영, 산업 구조 변화를 전망했다. 근미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대응을 강조해 온 언론은 자신의 변화와 대응에 뒤처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이러니다. 다가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말해온 언론이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각종 데이터와 전문가 의견을 빌려 제시한 언론이다. 하지만 정작 언론인, 언론사, 언론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화에 둔감했으며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전면적으로 나타나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광복회장인 이종찬회장이 일갈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든 모든 이들은 본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했다. 어떤 국가든 이런 희생의 흔적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다름없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기리고 대한민국의 밑바탕으로 삼고자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폄훼하던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1948년 건국이전에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라는 생각은 곧바로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한 친일세력들에게 면죄부를 발부한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은 자신의 행적을 두고 “우리가 전력을 다해(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게릴라로 싸웠다고 해서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이런 백선엽을 “과도하게 친일로 매도된 측면이 있다”며 감싼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독립기념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2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지 일색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되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도 나름 맛집이 된 이유가 있듯 출판보다 판매가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과 ‘해방’으로 요약시킨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 풍경과 전남 사투리가 어울리는 문체가 좋아서일까. 이 책을 읽고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해방, 죽음은 고통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희망을 쓰고 싶어진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싸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빼앗은 자에 붙어 영달을 꾀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을 선지자, 애국지사라고 한다. 이들에 희생으로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으로 8월 15일을 국가 공휴일인 ‘광복절’로 기념한다. 그러니 8월 15일은 빼앗겼던 시간을 다시 찾은 해방의 날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 형태도 가지지 못한 신생아 국가는 허약했
초고령사회가 임박했다는 통계청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 7월 기준으로 1천만 명(전체 인구 5126만9012명의 19.51%)을 넘어섰고 70세 이상 취업자도 올해 상반기에만 15만 명이나 늘었다는 소식이다. 국민 5명 중 1명(20%)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당초 2025년 상반기보다 앞당겨질 거라 한다. OECD 회원국 중 최악 수준의 노인빈곤율, 올해부터 시작된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의 은퇴로 가속화되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해서 노인 일자리뿐 아니라 의료, 복지 등 노인복지 전반에 대한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노인 일자리로부터 치매, 요양대책 등 노인들의 삶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변혁이 필요하며,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활동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치료·요양, 식사 지원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복지서비스 제공과 함께 실버 바리스타, 스쿨존 안전지킴이, 치매 돌봄매니저 등 자립기반 확충을 위한 양질의 노인 일자리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고령사회를 향한 정책적 변화는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 되는 시급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투표율을 보면, 지난 4일 기준으로 온라인 투표율은 당 대표 선거가 26.47%, 최고위원 선거 투표율은 27.12%였다. 호남의 온라인 투표율을 살펴보면, 전남 지역이 23.17%, 전북은 20.28%, 광주는 25.29%였다. 민주당은, 이런 호남지역 투표율이 지난 2년 전 전당대회 당시보다는 높아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남에서의 권리당원 투표율이 전국 평균을 밑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여론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8일 공개된 전국 지표조사(NBS)(8월 5일부터 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호남지역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7%였다. 일반적으로 특정 정당의 지역 기반이라고 부른다면 60% 이상의 지지율은 나와야 한다. 그런데 호남 지지율이 37%에 머물 뿐 아니라, 호남의 투표율도 저조하니, 민주당은 내심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에게 단순한 지역 기반만을 제공하는 곳은 아니다. 호남은, ‘광주 민주항쟁’이라는
올림픽 보도와 중계는 미디어 비평의 단골 소재다. 올림픽 때마다 비슷한 잘못이 반복하고 있다. 고질이다. 금메달 지상주의, 맹목적 국가주의, 시급한 국내 현안 뒤덮기, 전쟁 용어 남발하기,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 유인하기, 인기 종목 중복 편성 같은 문제가 그것들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고문은 자신의 칼럼에서 지금은 국뽕이 필요할 때라며 우리 선수들 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우리 선수들에 대한 응원을 담은 내용이었지만 ’국뽕‘이란 용어는 부적절했다. 5일 아침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대한민국의 ’금‘고는 총·칼·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사격과 펜싱, 양궁에서 거둬들인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기사였지만, 많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을만 했다. 이 기사의 영향이었는지 SBS도 같은 날 저녁 ’총칼활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 모아보기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우리를 활의 나라라고 하는 데는 수긍이 가지만 총의 나라, 칼의 나라라고 명명한 것은 과했다. 펜싱 종목 메달 순위에서 1위 일본, 2위는 미국, 한국이 3위였다. 사격도 금메달 5개를 딴 중국에 이어 금메달 세 개로 2위였다. 일본과 중국을
2024 파리 올림픽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진일보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올림픽 정신의 근간이다. 그러나 야누스처럼 인류의 또 다른 얼굴인 전쟁의 역사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망하여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거나 친구와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출전하는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올림픽의 정신을 위배하였다는 사유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일부 선수들은 개인 중립 선수로 경쟁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가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안과 관련된 질문에 “우리에게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차갑게 응수하기도 하였다. 경기에서 ‘승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올림픽만 바라보며 오랜 시간 기량을 닦아온 선수들은 흡사 ‘전투사’처럼 결사의 투혼과 집념으로 치열하고 냉혹한 경쟁을 뚫고 승패를 가름 짓는다. 마치 전장(戰場)의 모습과 유사하다. 환호성과 탄식, 우승의 영광을 거머쥐는 선수들과 패배의 쓰라림으로 눈물을 흘리며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이 교차된다. 승부는 미묘한 차이로도 결정되기도 하지만 메달의
국제 스포츠 대회 개최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이는 2024년 파리올림픽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유치 및 개최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올림픽 유치 당시 파리는 경쟁 없이 단독으로 개최권을 획득했는데 로스앤젤레스를 제외한 다른 후보 도시들이 유치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파리와의 협상 끝에 2028년 개최권을 확정 짓게 되었다. 대규모 예산과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부담, 개최 후 경제적 효과에 대한 회의론 등으로 인해 많은 도시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치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긍정적인 효과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개최는 대회 준비를 위한 인프라 구축, 관광객 유입, 스폰서십 및 방송권 수익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총 2억 2천5백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올림픽 역사상 경제적 성공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민간 자본을 적극 유치한 결과였다. 반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1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 대회 후 3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했다. 2014년 인천 아
전라도 보성 벌교에 100미터 남짓 되는 나지막한 산 하나가 있다. 부용산이다. 부용(芙蓉)은 산에서 사는 연꽃이다. 같은 이름의 산이 전국에 열 개나 되는 걸로 보아, 부용은 이름 없는 무명의 씨알들처럼 이 땅에 흔하디 흔한 야생초다. 나는 오는 8월 31일 공장의사 김현주 선생(종합예술단 봄날의 소프라노)의 작은 음악회에 우정출연하여 ‘부용산’을 부른다. 요즈음 지하철에서든 다방에 앉아서든 중얼거린다. 완벽하게 외웠다고 자신할 때,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은 슬픈 서정시다. 눈물겹다. 노래 부르다가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다. 특별한 시 ‘부용산’이 오늘날 묵직한 명곡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 궁금하여 여기저기 드나들며 공부 좀 했다. 시인 박기동은 1917년 여수 출생으로, 열두 살 때 벌교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지역에서 이름있는 한의사였다. 그 덕택으로 열네 살에 일본의 중학교로 유학을 갔으며, 관서대학 영문과를 다녔다. 해방 전에 귀국하여 1944년 벌교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교가도 지었다. 해방 후, 광주로 전근가서 가르치다가 벌교중학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교가를 지었다. 그 후 1947년 순천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