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입향조(入鄕祖)는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4년, 1498년)때 박해를 받아 울주로 내려온 뒤로 계속 뿌리를 내리고 500여년을 살아왔다. 그 이후, 지금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항산항심(恒産恒心)’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의 기원은 맹자(孟子)에서 비롯됐다. <맹자)> 양혜왕편(梁惠王篇)에는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無恒産而有恒心者惟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는 말이 나온다. ‘恒産恒心’은 이 구절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다. 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난다’, ‘사흘 굶어서 도둑 안 되는 사람 없다’는 말 처럼 먹을 것이 있어야 윤리도 나오고 도덕도 나온다는 말이다. 일정한 재산이나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다른 생각을 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생활 안정과 영세사업자 및 중소기업 지원, 경기부양책 등 및 전례없는 재
어제부터 경기도·강원도·문화재청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에 대한 관련 학계와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 이번 실태조사는 4·27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이 합의한 DMZ 평화지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울러 지난해 7월 11일 DMZ 관련 경기도-문화재청-강원도 업무협약의 후속조치다. 경기도(경기문화재단, 파주시)·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강원도(강원문화재연구소, 고성군)를 중심으로 문화·자연·세계유산 등 분야별 연구자 55명이 참여, 파주 대성동마을 부터 실태조사에 착수한다. 앞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태봉 철원성,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 등과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 건봉산·향로봉 천연보호구역 등 40여 곳에서 1년간 종합조사가 실시된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생긴 DMZ는 지난 70여 년 동안 분단과 대립, 갈등의 상징이었는데 DMZ 전역에 걸친 문화·자연유산에 대한 종합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드러날지 가슴이 설렌다. 역대 정부의 DMZ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정책도 다양했다. 노태우 정부의 ‘DMZ 내 평화시 건설 구상’을…
코로나발(發) 경제 쇼크에 미·중 갈등이 몰고 올 예측 불가능한 경제 파고가 한걱정이다.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전대미문의 고난이 닥칠 우려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감한 재정 투입”을 다시 강조했다.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염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거국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머지않아 닥쳐올 ‘경제 쇼크’를 제대로 소화해낼 전방위적 방책들을 채비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경제 지표들은 곳곳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24.3% 급감했고 이달도 20일까지 20.3%나 감소했다. 해외의 코로나19 사태 지속으로 수출 감소도 당분간 불가피하다, 무역수지가 99개월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4월 이후 해외에서 코로나가 더욱 창궐하면서 수출이 더 감소한 탓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현 상황을 ‘경제 전시(戰時)’라고 규정한 뒤 “1, 2차 추경(24조5천억 원)을 뛰어넘는 3차 추경안”을 주문했다. 대통령은 “3차 추경까지 한다 해도 우리의 국가채무비율은 110%에 달하는 OECD(경제협력
네 번째로 여행할 서원은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논산·대전 지역은 17, 18세기 정계를 주름잡았던 서인들의 본거지이다. 이이의 제자였던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을 비롯해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도 이 지역 인물이다. 논산에 자리한 돈암서원은 기호지방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다. 돈암서원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위치해 있다. 인조12년(1634)에 창건된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2번의 사액을 받게 되는데 효종10년(1659)에 1번, 그리고 현종1년(1660)에 또 한 번 받게 된다. 원래 돈암서원은 지금의 위치에서 서북쪽방향으로 1.7㎞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자꾸 물이 차서 당시보다 높은 지대인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고종17년(1880)에 이건했으니 이건 후의 역사만 따져도 140여년이 되었으며, 창건시기로 보면 400여년 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돈암서원에는 김장생을 비롯해 그의 아들 김집, 제자였던 우암 송시열, 그리고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었던 송준길 등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돈암서원은 서원의 전면에 강학공간이 후면에 제향공간이 위치한다. 돈암서원은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하마비와 홍살문을…
요즘 인터넷 밈(Internet Meme) 혹은 밈(Meme)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 그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도입한 단어로, 유전자의 영향 없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문화적 특징이나 행동 유형을 뜻한다. 아울러 인터넷 밈은 밈의 하위 개념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무작위적으로 모방, 변형, 복제되는 형태를 말한다. 1일 1깡. 비는 올해 ‘깡’으로 대중들에게 강제 소환 당했다. 양준일을 위시한 속칭 탑골 가요의 음원 역주행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각종 뮤직비디오 패러디가 쏟아지면서, 3년 전 노래 ‘깡’이 순식간에 인터넷 밈으로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다소 과장된 춤과 넘쳐나는 자의식을 표현한 시대착오적 가사에 등을 돌렸던 대중들이었기에, 지금의 이 현상은 더욱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요즘 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전 80년대의 최고의 스타에서 어느 순간 홀연히 모습을 감춘 가수가 생각난다. 바로 릭 애슬리(Rick Astley)이다. 당시 카
사람이 얼마나 양심적인지를 측정하는 지수인 ‘도덕지능(MQ:Moral Quotient)’이라는 개념을 맨 처음 사용한 학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신의학 교수인 로버트 콜스였다. 그는 저서 ‘아이들의 도덕지능’에서 MQ가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 더불어 인간의 성장에 또 하나의 중요한 지수라고 밝혔다. 콜스에 따르면 MQ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정보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추가 기자회견을 바라보는 심사가 한없이 착잡하다. 마음고생이 역력히 드러나는 아흔두 살 할머니의 표정에는 짙은 슬픔마저 배어 나왔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형언하기 힘든 학대를 당하면서 시작됐을 한 여성의 참혹한 일생에 어찌하여 또다시 저런 억울한 일이 또 일어날까 싶은 안타까움이 말문을 막는다. 죽을 힘을 다해 거듭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과 언론에 통해서 새롭게 밝혀지는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불의·부도덕·불합리 의혹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공룡처럼 권력화한 시민운동 단체가 그들 존립의 근거인 피해 할머니들에게 인간적 대우마저 하지 않았다는 절규는 참담하기 짝이 없다. 기부금을 거두는 모습을
공직을 마칠 때 그 허전함의 공간이 크고 넓었다. 명예퇴직을 결정한 그날 늦게 귀가하여 서재를 정리하다가 다산 선생님의 목민심서가 수록된 소책자를 발견했다. ‘마음으로 쓰는 목민심서’라는 제목으로 2016년 3월에 실학박물관에서 발행한 자료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님의 소개글로 시작된다. 사무실에서 받은 자료인데 그냥 책장 틈에 넣어두었다가 공무원 퇴직을 앞두고서야 운명적으로 눈길이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에 후반부에서 제12부 해관(解官)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겹쳤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조선시대식 표현이니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공무원은 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것이니 항상 준비를 하여야 하고 공직을 떠나게 되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주변의 동료들이 여러분을 존경할 것이다. 40년 공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긴 세월 근무하다보니 막상 퇴직,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민심서를 다 읽고나니 자신도 역사속의 한사람으로서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일하고 이제 나이가
경기도의 ‘민원서류 줄이기’가 전국 지방정부로 확대, 지난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민원서류 줄이기는 입찰·계약을 할 때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활용해 민원인의 제출서류를 대폭 줄이자는 것이다. 민원인들이 인·허가 등 각종 민원을 신청할 때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민원담당자가 전산망으로 확인해 민원을 처리하는 전자정부서비스다. 다시 설명하자면 관련 서류를 민원인이 직접 제출할 필요 없이 계약담당자가 상대방 사전 동의를 얻어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통해 직접 확인, 입찰·계약 제출서류를 간소화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도는 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입찰참가자격 확인과 관련된 건축사업무신고필증, 폐기물수집운반허가증, 폐기물처리업허가증, 전기공사업등록증, 정보통신공사업등록증, 소방시설업등록증, 사회적기업인증서 등 ‘입찰참가자격 확인관련 8종 정보에 관한 행정정보공동이용 권한을 승인 받았다. 이는 지방정부로서 최초의 일이다. 도의 위민(爲民)행정이 민원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입찰·계약분야 관련 행정정보공동이용 정보의 이용기관을 경기도 뿐 아니라 전국 지자체로 확대해달라고 행정안전부에 건의했다. 행안부도 이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신청한 ‘공개변론재판’을 놓고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2위 반열에 올라 있는 이 지사에 대한 대법원 재판 결과는 초미의 관심사다. 1심과 2심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는 법리 해석의 다양성과 국민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해 ‘공개변론’을 통해서 깊이 있는 심리가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공개변론재판’이란 상고심 재판에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건 관련 전문가 및 참고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사의 법률 대리인인 나승철 변호사는 대법원에 ‘공개변론’을 신청하면서 “(이 사건은)선거운동의 자유, 선거의 공정성, 언론의 자유, 죄형법정주의 원칙, 양심의 자유 등 다양하고 중대한 헌법 및 법률적 쟁점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나 변호사는 이어 “판결 결과에 따라 1천300만 경기도민의 선거를 통한 정치적 결정이 부인될 가능성이 있는 등 매우 중요한 법적,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법정이 ‘공개변론재판’제도를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 대법원이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
장 도미니크 보비. 그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으로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했다. 그러던 그가 1995년 12월 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3주후 그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다.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는 눈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연결시켜 글을 썼다. 때로는 한 문장 쓰는데 꼬박 하룻밤을 새야했다. 그런 식으로 대필자에게 20만번 이상 눈을 깜박여 15개월 만에 쓴 책이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다. 책 출간 8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의 복을 의식하지 못한 채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많은 아침들’을 생각하며 죄스러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는 잠수종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마음은 훨훨 나는 나비를 상상하며 삶을 긍정했다. 비탄과 원망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