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사회학자 ‘기 소르망’은 “문화 없인 훌륭한 국가도 발전도 불가하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문화가 국가 경제에 기여 하는 효과가 지대하다는 뜻이다. 국가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이제는 대량생산을 통한 무역의 경쟁이 아니라 영화인, 가수, 작가 미술가들과 같은 예술창작가들이며 이들은 그 어떤 국가의 지도자보다 훌륭하게 한 국가의 대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2004년부터 ‘겨울연가’로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는 물론 심지어 대형서점에 한류스타 코너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로 상상 이상의 열풍을 가져 왔다. 지금 동남아를 비롯한 유럽, 미주 등에 있어서 한류 문화 콘텐츠 산업의 수출은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문화 콘텐츠의 경영 과목 수업을 하면서 중국 7명, 우즈베키스탄 1명 등 8명 유학생에게 설문지를 받아본 결과 거의 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만큼 한류의 국가 이미지는 실로 지대함을 피부로 느꼈다. 콘텐츠 기획서 발표를 통해 본 그들의 한류 문화 콘텐츠에 대한 교양과 지식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두 손을 가슴 쪽에 맞대며 하는 ‘나마스테’(‘안녕’이란 뜻의 힌디어)는 인도식 인사법이다. 그런가하면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은 두손을 공손히 모으는 와이(Wai·합장)가 보편화 되어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선 포옹과 볼 키스가 인사의 기본이다. 특이 인사법도 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코를 서로 비벼대는가 하면 에스키모족은 반갑다는 뜻으로 서로 뺨을 친다. 티베트인은 귀를 잡아당기고 혓바닥을 내민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전통과 풍속이 다르듯 각 나라의 인사예법도 이처럼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예부터 절과 고개를 숙이는 인사가 보편화 되어있다. 하지만 세계 공통적인 인사법은 뭐니 뭐니 해도 ‘악수’ 아니가 싶다. 나라와 문화를 초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인사법이기 때문이다. 악수는 고대 로마에서 부터 전해진 오래된 인사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사례를 들어 중세이후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편화된 인사법이지만 악수는 때론 남자끼리 결의를 다지는 데도 쓰인다. 존중의 의미와 성공의 기원, 격려, 축하, 위로 등등 힘주어서 나누는 악수 속에 담겨진 의미와 뜻 또한 무궁무진하다. 어느 땐 백…
볕 좋은 창가에 앉아 밖을 본다. 노랗게 망울을 터트린 산수유와 매화사이를 노랑나비가 날고 제철을 용케도 아는 파리도 유리문에 붙어 껄떡대고 있다. 분명 봄은 왔는데 현실은 춥기만 하다. 이맘때면 놀이터엔 아이들 재잘거림이 끊이질 않았고 산책 나온 발길들로 분주했는데 가끔 지나치는 행인 말고는 한적하기만 하다. 황사와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이지만 주말 나들이는커녕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다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운동을 하고 누구도 믿지 못해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 옆에 사람이 가까이 서는 것이 두렵고 음식점에서도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게 되고 가급적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움직이거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한다. 이렇게 사람을 접하는 일이 두려우니 생계에 관련된 꼭 필요한 소비 말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람 하나 들지 않는 매장을 종일 지키고, 허탕치고 돌아오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면 다시 매장으로 향하며 개점휴업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꽃을 봐도 반갑지 않고 나비를 봐도 예쁘지가 않다. 봄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1일 코로나19 사태를 ‘감염병 세계적 유행(팬데믹)’으로 선언했는데,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이는 WHO가 1948년에 설립되었기 때문일 뿐, 역사상 수많은 감염병 유행이 있었다. 많이 알려진 것은 페스트인데, 기원전 2800년경부터 유행했다는 연구도 있다. 유럽에서는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에 2천만 명이 희생되었고, 창궐과 잠복이 반복되었다. 13세기 유럽은 1억2천300만 명이었는데 14세기에는 6천500만 명만 살아남았다. 원인과 치료법을 몰라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유대인 동네에는 비교적 덜 발생하자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퍼뜨렸다는 소문이 퍼졌고, 유대인 혐오와 학살로 이어졌다. 유대인이 공포와 분노를 배출할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 이면에는 상술이 뛰어난 유대인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질투가 존재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결의식에 따라 목욕을 자주하고, 전염병이 걸리면 무조건 격리시키고, 환자들이 쓰던 물건들을 태워버렸던 것이다. 20세기에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세계지배를 위해 음모를 꾸민다면서 서유럽 금권정치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음모론은 기독교인
결국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얼마전까지, 오판(誤判)이길 바랐지만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세계가 패닉에 빠졌다. 경제적 충격은 더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팬데믹은 중세 유럽 인구 1/3의 생명을 앗아간 흑사병이다. 20세기에는 1918년 스페인독감(사망자 약 2천만~5천만 명 추정), 1957년 아시아독감(사망자 약 100만 명 추정), 1968년 홍콩독감(사망자 약 80만 명 추정)이 해당됐다. 그후 세계보건기구는 2009년 6월 신종플루로 불린 인플루엔자 A(h4N1)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바 있다 전염병 경보는 감염 범위에 따라 나뉜다. 1단계는 동물에 한정된 전염, 2단계는 동물 간 전염을 넘어 소수의 사람에게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증가된 상태를 말한다. 4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히 퍼져 세계적 유행병 발생할 초기 상태, 5단계는 전염이 널리 퍼져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6단계 판데믹이란 5단계를 넘어 다른 대륙의 국가에까지 추가 전염이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가장 주의가 필요한 때 인 것이다. 바이러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감염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심리 상담까지 찾는 이들이 많다. 전국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확진 환자와 자가 격리자 또는 일반인들이 ‘코로나19’와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 및 심리적 문제로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확정 판정을 받지 않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집단 패닉 현상이 일어나 계속 생각하고 상상하면 불안, 공포, 사람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최근 필자가 만난 고객분들은 “집에만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우울하기만 해요.”라고 답답하여 상담을 요청했다. “일상이 다 멈춰버려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공포감이 압도되어 불면증이 심해요”라는 등 힘들다는 하소연을 이야기한다. 최근 방송에서는 온 국민이 이른바 ‘코로나 블루(blue)’를 겪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이 자신도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무기력과 불안, 우울감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소와 복지회관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노숙인과 홀몸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아동 등 사회 취약계층은 어느 때보다 춥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대부분의 무료급식소들이 운영을 중단하는 바람에 따듯한 한 끼를 이곳에서 구했던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이들은 하루 한 끼만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밤과 새벽에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요즘, 결식이 계속된다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다. 이에 몇몇 무료급식시설은 빵이나 떡, 라면, 우유 등을 나눠주고 있지만 모든 노숙인이나 홀몸노인의 건강을 챙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현재 도내 각 시·군은 자원봉사자를 통해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집으로 도시락을 배달해주고 있다.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이어지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수원역 매산지구대 옆 정나눔터에서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게 아침, 저녁으로 무료급식을 해 왔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대신 하루 두 번 노숙인에게 김밥과 도시락 등 대체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칭찬해주고 싶은 곳은 천주교 수원교구 성남 ‘안나
팬데믹 선언 여파로 글로벌 증시가 낙폭을 키우며 휘청이는 등 국내외 금융시장에도 메가톤급 충격을 주고 있다. WHO가 전염병 최고 경보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대유행 이후 11년 만이다. WHO의 이번 결정은 총확진자 수가 110여개국에서 12만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4천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데 따른 것이다. WHO는 이전의 대유행과 달리 이번엔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공식적인 팬데믹 선포로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번 팬데믹 선언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로 74개국에서 확진자 3만명이 나왔을 때 선언한 전례와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결정이다. 많은 전문가가 일찍이 감염 확산세가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WHO는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지난달 28일 글로벌 위험도를 ‘매우 높음’으로 상향 조정했을 뿐 팬데믹 선언은 주저해 미온적인 대처라는 쓴소리를 들은 바 있다. 물론 WHO의 위상이 유발하는 국제적인 파장 효과, 특히 과도한 공포감 조성과 혼란 등을 우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말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최초로 정의한 금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당시 그리스 지역에서 사람들이 도시국가(polis)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로빈슨 크루소와 척 놀랜드 (영화 ‘캐스트어웨이’ 주인공)가 각각 28년과 4년 동안 무인도에서 살 수 있었던 것도 난파된 배와 항공기에 있었던, 사회가 만든 물품과 식료품, 그리고 사회에서 터득한 삶의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멈춰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우선적 생활준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이 말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을 말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장기간 지속하다 보니, 사람들 간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공동체 소멸 위기국면으로 치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등, 생활공간에서 사람 간의 거리가 좁아지면 인사말을 건네는 것은커녕 눈길을 맞추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속도의 충돌>을 언급하고 있다. 기업이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마일로 질주하고 있을 때 시민단체가 90마일로 뒤따르고, 그 뒤를 가족이 60마일, 노동조합이 30마일, 정부 관료조직이 25마일, 학교가 10마일, 정치조직이 3마일로 주행하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다. 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분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속도의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속도의 충돌>이 아니라 <사고의 충돌>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사고의 충돌>이야말로 <속도의 충돌>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로서 우리 사회 전반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념대립을 예 들어보자. 우파로 대별되는 보수주의자 대 좌파로 대별되는 진보주의자 간의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분파와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극심한 대립 속에서 극한으로 치닫는 경우는 흔치않다. 사색당쟁의 뿌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반들이 모이기만 하면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 사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