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계절별로 옷을 가지고 있다. 드레스룸이 아주 큰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옷들을 매일 사용하는 옷장 속에 모두 걸어놓을 수 없어서 계절에 맞는 옷 이외에는 상자나 드레스룸의 자주 사용하지 않는 구석에 보관한다. 나 또한 그래서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옷장을 열어보면 그 주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옷을 정리해 놓은 스타일이나 옷의 형태, 컬러, 브랜드, 수량 등등 옷장에는 옷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올해는 여름이 너무 일찍 와버려서 겨울과 이른 봄 옷들을 모두 꺼내고 일찍이 여름 옷들을 옷장 메인 옷걸이에 걸었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을 하기 위하여 옷장 문을 열고 무엇을 입을까 고르는 일상적인 행동을 하다가 문득 옷장에 걸린 옷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 동안의 나의 삶을 감싸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든 일상을 함께 한 옷들이 다시 옷걸이에 걸려 등과 배를 맞대고 차분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럽기도 하고 기특하게도 느껴진다. 하루를 열심히 달리고나서 깨끗이 세탁되어 다시 내일을 위해 빈 마음을 다독이는 것만 같다 생각하니 옷 한 벌도 거룩하게 여겨진다. 새 날이 밝으면…
일요일 아침, 사색의 숲 속을 걷고 싶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그 순간 같은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중형자동차 몇 대를 소유하고 개인 사업을 하는 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 아침 3시 30분에 일어나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기사의 집 앞에 자기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 자동차 열쇠와 행선지를 알리고 오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바쁘게 할 일이 있어 ‘당신의 봄은 지금입니다’하고 돌아서 내 길을 걸었다. 보고 싶은 얼굴은 교회에 가서 보고 그리운 얼굴은 자연의 표정 속에서 읽는다.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의 표정을 보면서 어릴 적 농촌의 안방에서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들었을 내 모습을 기억의 저장고에서 발굴해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런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읍내의 백합사진관으로 가서 중학생 교복을 입고 촬영한 사진을 추억 속에서 소환해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 속 시간들과 가정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정리하듯 글을 쓴다.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운명적 스타일은 행보다는 불행을, 웃음보다는 슬픔을, 억지 부려가며 소유하기보다는 물러서서 바라보는 길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좀 더 물러서서
6월이다. 6.25가 발발한 지 74년이 된다. 3년 한국전쟁이 끝날 즈음 태어난 나는 한반도 분단시대를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게 일어났던 때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날이었다. 이제 우리나라 3.8선도 머지않아 무너지지 않겠는가 하고 내심 바랬지만 그것은 남의 나라 잔치로만 끝나고 말았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였건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후 남북의 정상들이 수차 만나서 합의서를 교환하고 진척시켰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아무런 진전이 없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험난하고 남북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꼭 비관만 할 수 없다. 난관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잘 극복해 오지 않았던가! 휴전선은 보통‘38도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경기도 연천이 북한의 개성시보다 더 북쪽이고, 강원도의 화천,철원,김화,양구,임제,양양,고성이 모두 3.8선 이북이다. 그 까닭은 강원도 지역에서 치열한 격전 끝에 군사분계선을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던 1951년 6월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이 체결되기까지 전투는 주로 강원도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지난주에 수원상공회의소 김재옥(金載沃) 회장의 전기 출판기념식이 있었다.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살아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의 전기물이 발간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을 수도 있지만, 내용을 보니 결코 간단치 않은 인물의 기록이었다. 금수저 출신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란 말이 떠오른다. 하인천역 인근에서 강보에 싸인 채 발견된 아기는 이름은 고사하고 생년월일도 알 수 없었고 부두에서 막노동하던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된 뒤라 전쟁고아들이 수없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는 양부의 성을 물려받았고 발견된 날이 그대로 생년월일이 되었다. 양부의 손에 인천 덕적도에서 젖동냥으로 성장한 아이의 어린 시절은 최 극빈의 삶이었다. 밥 굶기가 허다했고, 겨울에 다리 밑에서 자다가 밤새 내린 눈이 양부와 함께 덮고 자던 거적 위에 소복이 쌓인 모습이나, 아이스께기통과 구두통을 매고 인천항 주변을 외치며 다니던 이야기까지 모두 읽는 이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가난이 일상이었던 시절이라도 이렇게까지 빈한할 지경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양부가 강한 놈이 되라고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부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지배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여당의 총재와 대선 후보는 경선 없이 추대되었다. 야당에서는 대선후보 및 당 총재(대표) 경선이 이루어졌다. 오랜 기간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였다. 당대표 경선은 김대중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임(2001) 이후 제도화되었다. 정당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당원의 권리 확대와 공직선거 후보자의 공정한 추천 등이 입법되었다. 정당법에 ‘당원 등에 당직자 선거권 부여’(2000), ‘당 대표자 선출 당원 등 매수행위 금지·처벌’(2002), ‘공직선거후보자 추천 위한 당내 경선 제도화 및 선관위 위탁’, ‘경선(당대표 경선 제외) 관련 선관위에 범죄 조사권 부여’, ‘당내 경선등 위반 범죄 처벌’(2004), 공직선거 후보자 경선은 공직선거법으로. 당대표 경선은 정당법으로 분리(2005), ‘당대표 경선 사무 선관위 위탁’(2008)과, 정치자금에관한법률에 ’당대표경선후보자 후원회‘(2004) 등이 규정되었다. 특수한 권력집단인 정당에서 공직선거 후보자의 추천, 의사 결정,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 대표 등 지도부의 경선이 위법 행위로 여·야 정치인들이 문제가 되었다. 정당의 오랜 폐습의 잔존 상태에서
오래 전 2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도서실서 책에 쪽지를 숨겨 놓고 찾는 술래잡기를 종종 하고 놀았던 모양이다. 도서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실에 있던 나는 알 수 없었고, 사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지도를 부탁하고 나서야 어린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물론 9살이었던 친구들은 도서실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계속 뛰어 놀았다. 결국 뛰어다닌 아이들이 2주 동안 도서실 출입이 금지되면서 책 읽는 공간은 평화를 되찾았다.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내용의 이야기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건 학부모의 반응이었다. 부모로서 아이가 도서실에 출입을 못한다는 사실이 화가 났을 수 있다. 화가 난 학부모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왜 도서실에서 뛰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뭐라고 답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그럼 아이들은 어디에서 뛰어놀아야 하냐고 재차 물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야 한다는 나의 답에 2학년은 왜 애들이 뛸 수 있는 체육이 없냐며 크게 화를 냈다. ‘체육이 교과서가 없긴 없는데요. 실제로 없는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에 나온 <초등학교 1~2학년에 체육 수업 없는 나라는 대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고딕 양식의 경이로운 수도원 몽생미셸! 이곳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19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만 3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4㎢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왜 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든 걸까? 신비롭고 경이로운 몽생미셸의 매력 때문이다. 이곳은 708년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생 미셸 대천사가 오베르(Aubert) 주교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으로 성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자 대천사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빛의 손가락으로 주교의 머리를 만졌고 두개골에는 곧 구멍이 뚫렸다. 주교는 대천사의 존재를 확신하고 건물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 후 966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공사를 60년간 지속했고, 수세기에 걸쳐 이 섬의 화강암 위에 여러 건물을 지었다. 그 결과 몽생미셸은 ‘중세 고딕식 건물의 백과사전’이 됐다. 이곳은 무엇보다 갈리시아로 가는 북유럽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다. 따라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1965년, 한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날 몽생미셸은 전 세계의…
지난해 말 사과 한 개 가격이 1만원이 넘어가면서 국민들을 불안케 했다. 사과 값이 오르면서 배와 귤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올랐다. 원인은 봄철 이상저온과 여름철 가뭄과 폭염, 호우 등 날씨 때문인데, 이로 인해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각종 농작물의 생산량이 급감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기후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플레이션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코코아 공급량의 약 75%를 담당하는 서아프리카에서는 지난해 발생한 엘니뇨로 인한 폭우와 폭염으로 코코아 수확량이 급감했다. 엘리뇨는 설탕과 올리브유, 커피 등의 가격을 올리면서 과자, 치킨, 햄버거, 피자 등의 가격을 상승시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음식들의 가격 줄인상의 근본 원인이 기후플레이션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기후에 대한 대처방안은 일시적인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적인 탄소감축 노력과 함께 우리 스스로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6%인데, 이는 가축이 먹는 사료를 뺀 수치이다. 가축 사료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0%이다. 실질
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와 마주한다. 환자는 하얀 가운처럼 물들지 않은 순결한 마음으로 어떤 누구라도 평등하게 대해주기를 기대한다. 나와 마주한 의사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의사의 말은 한마디도 흘리지 않고 담는다. 작은 희망이라도 건지려고 착한 어린이가 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피터지는 전쟁에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오직 치료에 집중하는 의사, 치료제 개발으로 서슴없이 자신에게 임상실험을 하고 피고름을 입으로 짜낸 의사는 얼마나 멋진가. 멋지기 때문에 의사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선호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나 의사를 믿고 병원으로 가지만 모든 병을 완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사도 사람이기에 모두에게 평등할 수 없고, 그렇게 멋진 의사가 되기에 사회는 그렇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다. 사회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고 국가는 필요한 이미지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나의 아버지는 이기심이 많다. 이기심 많은 사람이 하얀 가운을 입은 것부터 웃긴 일이다. 살기위해 선택
현대엔 신(神)의 뜻보다 인간의 뜻이 우위를 점한다.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힘은 거의 사람의 것이다. 다만 폭염, 태풍,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가뭄, 한파, 지진, 화산활동 등은 예외다. 신의 지위를 넘보는 과학도, 자연의 힘 앞에선 무력하다. 기상청은 올여름 태풍이, 거셀 것을 예고한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광동성, 두바이, 케냐는 물 폭탄 세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름철이 다가왔다. 언론에선 행안부, 농식품부, 소방청 등 중앙정부의 재해 예방 대책 소식을 전한다. 한결같이 예찰(豫察)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와중에 본보(경기신문 5월 19일자)는 경기도 공기업인 GH의 ‘전세임대, 반 지하 거주 가구에 대한 풍수해·지진재해보험 가입 지원’ 소식을 관심 보도했다. GH는 지상 주택으로 이사할 경우엔 이사비용도 최대 40만 원 제공 예정이란다. 참신한 정책이다. 돋보인다. 다른 지자체는 기존의 사후 복구 체제에서 사전 대비 체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경기도는 다른 지자체와 다르게 사후 복구 체제에 구체성을 보강했다. 미국·유럽식 시스템의 일부다. 유럽과 미국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민 개개인이 가입한 재해보험으로 피해를 보상받는다. 이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