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이다.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고,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처형된 후 서인으로 강등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의 유배와 사형을 집행하러 온 금부도사 왕방연은 청령포를 마주 보는 강 언덕에서 비통한 자신의 심경을 읊었다. 1453년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 인, 김종서 등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제거당하였고 1455년 단종을 보필하는 중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한명회, 권람 등의 강요에 의하여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나이 어린 상왕이 된 것이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 후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寧越)에 유배된 것이다. 중학생 때 박왕희 역사 선생님은 “성박이하유유”로 기억하라 했다. 단종은 세종 23년 1441년에 출생하여 바로 원손에 봉하였고 1448년 세손,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세자
본보 8월 4일자 17면 '미투 피해자 공격, 몰지각한 2차 가해 엄벌 필요' 제하의 사설에서 ‘TBS에서 아나운서로 활동 중인 프리랜서 박지희 씨’를 ‘프리랜서 방송인 박지희 씨’로 바로잡습니다.
피드백과 피드포워드는 무엇이 다를까? 또 언제 주고받아야 할까? 오늘은 피드백과 피드포워드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피드백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 공군이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술용어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적군의 위치에 폭탄을 투하하려면 파일럿에게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주어야 하는데 이 때 서로 주고받으면서 경로를 조정하는 단어가 바로 피드백이다. 조직에서도 업무나 프로젝트가 끝나면 성과 평가를 하고, 앞으로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여 더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피드백이야기’의 저자 리처드 윌리암스(Richard Williams)는 “모든 인간관계는 피드백으로 완성되고, 피드백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과 인생을 창출하는 에너지를 만든다”고 했다. 또한 피드백을 지지적, 교정적, 학대적, 무의미한 피드백으로 구분하였다. 두말할 필요 없이 지지적, 교정적 피드백은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격려하여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학대적, 무의미한 피드백은 오히려 상처와 절망을 주어 형식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피드백의 기술’에서는 좋
친구를 만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이 많았다. 본래 말이란 하다 보면 자꾸 말이 말을 끌고 나온다. 말의 생리가 본래 그러하다. 그 친구도 나도 지나간 얘기와 현재의 처지를 너무 많이 주고받았다. 좁은 커피숍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말을 할 때는 몰랐지만 그녀도 나도 자신을 치켜세우는데 정신이 나가 있었다. 허풍도 있었고 과장도 있었다. 그런데 왠지 씁쓸하다. 돌아가는 그 친구의 가슴이 어떠할까? 나의 위선을 덮어줄까? 나도 그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옛말에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고 했다. 그 위에 말은 한 번 내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문득 우화 하나가 떠오른다. 한 무리의 개구리들이 숲속으로 소풍을 나왔다. 즐겁게 숲속을 뛰놀다가 그 중 개구리 두 마리가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 이를 본 개구리들이 그 깊은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웅덩이에 빠진 두 마리 개구리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죽었어. 이젠 못 올라와. 그 안에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두 마리 개구리는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죽을힘을 다해 웅덩이 속을 뛰어올랐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여전히 외쳤다. “못 올라와. 너희들은 죽
공무원 6급 때 처음으로 명함이 나왔다. 1991년 인재개발원 6급 교관요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강사섭외나 외부인사를 접견할때 자신을 소개하고 연락처를 드려야 하므로 이 부서의 오랜 전통이라며 명함 3갑을 새겨준 것이다. 이후 명함을 만들때에는 부서 발령일을 명함 제작일로 새겨넣었다. 최근에 꺼내보니 당시의 지역번호 0331이 나오고 삐삐번호가 있다. 그리고 삐삐라는 것이 신기한 물건이었다. 전화를 걸고 삐삐가 울리면 연락받을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면 상대편 기기에 이 번호가 뜨는 것이다. 그럼 나에게 긴급히 연락을 하라는 메시지로 알고 인근의 공중전화에서 통화했다. 양방향은 아니지만 급할때 요긴하게 쓰이던 통신 수단이었다. 그시절 ‘삐삐 받고 전화하였는데 통화중’이라는 조크가 생겨났다. 전화를 걸라하고 다른이와 통화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삐삐는 3년정도 번성하다 사라지고 시티폰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 전화기도 일방향이다. 회사동료나 가족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기만 하는 일종의 족쇄라 비난했다. 삐삐보다 훨씬 발전한 시스템이었지만 PCS가 나오면서 이 또한 세 돌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011, 019, 017, 018 등 번호가 나오고 어느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전체회의에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업무보고차 출석한 이정옥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이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 관련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는지를 묻는 질의에 세 차례나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우물쭈물했다. ‘여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대표적인 부처 장관의 본분을 망각한 듯한 태도는 국민 눈에 결코 곱게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여가위 전체회의에서 김미애 통합당 의원은 이 장관을 향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 장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고, 피해자 관점에서…”라고 말끝을 흐리자, 김 의원은 “성범죄가 맞느냐 아니냐. 그에 대한 견해가 없느냐”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나 이 장관은 같은 답변을 했다. 김 의원이 “오거돈 전 시장은 본인이 (성추행 사실을) 밝혔다”고 상기하며 “그런데도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다시 묻자, 이 장관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죄명을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세 번째로 언급을 피하는 방식의 답변을 고수했다. 이에 김 의원은 “
지난 주말부터 중부지역에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기도가 3일 오후 9시 산사태 취약지역인 용인시, 화성시, 광주시, 이천시, 안성시, 여주시, 시흥시, 양평군, 평택시, 남양주시, 양주시, 포천시, 동두천시, 가평군, 파주시, 연천군 등 16개 시·군에 주민대피 명령을 권고했다. 도에 따르면 도내에는 2천237곳이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는데 앞으로도 300~700㎜의 호우가 예보돼 있어 산사태가 우려된다. 이미 도내 산사태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크다. 3일 오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 펜션을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토사가 덮쳤다. 이 사고로 펜션을 운영하는 65세 여성과 36세 딸, 26개월 된 손자가 숨졌다. 뉴질랜드 국적인 딸은 한국-뉴질랜드의 경제·문화 교류에 앞장섰던 인물로 어머니의 펜션 일도 돕고 아들을 한국에서 키우기 위해 귀국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비슷한 시간 평택시 청북읍의 반도체 장비부품 공장도 뒷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의 공격을 받았다. 건물 뒤편 산에서 쏟아진 토사는 가건물에서 용적작업을 하던 근로자 4명을 덮쳤다. 이들을 구조했지만 3명은 병원에서 숨졌
플라스틱 빨대로 인해 죽은 거북이 사진 한 장이 던진 반향은 컸다. 너도나도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하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텀블러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느새 플라스틱 프리 선언은 가장 힙한 지구적인 유행이 되어 버렸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과연 우리는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할 수 있을까? 이렇게 회의적으로 묻는 까닭은 플라스틱이 만들어진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러닉하게도 현재 거북이를 죽인다는 플라스틱은 코끼리와 거북이를 살리기 위해 발명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8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미국에선 당구가 국민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구에 필수적인 당구공은 전량 상아로 만들어졌다. 당구공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 건반, 체스말 등 상아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거북이 등껍질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아직도 귀갑이라는 이름으로 고급 안경테 등에 사용되고 있으니, 당시엔 두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상아와 거북이 등껍질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사람들은 이 두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를 보다 못한 뉴욕의 당구공 회사가 1863년, 상아 대체물 발명에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 쌤통과 통하는 말로 ‘불행이 불행을 위로한다’는 심리가 담겨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인생 망가진 주인공’의 영화를 골라보는 내 심보를 이해하게 해주는 말이다. 어제 본 미국영화 ‘와일드(Wild/2014년 개봉)’도 그래서 골랐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혼등으로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던 여주인공이 악마의 코스 4285㎞의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를 완주, 다시 살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녀가 힘든 고비마다 흥얼대던 노래가 귀에 남아있다. 팝 명곡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그녀는 그 노래를 탄생 배경을 알고 부른 것이 아닐까. 지옥 같은 삶을 위로받고자 더 극악한 지옥을 살다 간 노래 주인공을 호출한 것 아니었을까. 1533년, 인구 수백만 명이 살던 잉카제국(지금의 남미 페루)은 총부리를 앞세워 쳐들어온 고작 수백 명의 에스파냐인들에 의해 무너지고, 이후 200년간의 폭정에 시달린다. 농민 혁명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e Gabriel Condorcanque)는 침입자가 죽인 황제 투팍아마루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름까지 투팍아마루 2
“싸워도 죽고 싸우지 않아도 죽는다. 차라리 한번 싸워 사생을 결단해야 한다”는 서애 유성룡의 말처럼 지도층은 죽음 앞에서도 품격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왜군의 선단이 나타나자 경상 좌수사 박홍, 우수사 원균은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도망쳤다. 동래부사 송상현 같은 관리가 있어 그나마 적의 진격을 하루라도 늦출 수 있었다. 전국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는 적과 싸우지 않고 도망친 경상감사 김수 처단을 자신의 첫째 임무로 삼았다. “네가 조금이라도 신하된 자로서 의리를 안다면 너의 군관으로 하여금 너의 머리를 베게 하여 천하 후세에 사죄해야 마땅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너의 머리를 베어 신인(神人)의 분노를 씻겠다.” 이 말을 들은 김수가 ‘역적 곽재우’라고 하면서 곽재우가 순수한 충정으로 의병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학봉(鶴峯) 김성일(1538~1593)은 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직접 만나본 조선 고위관료였다. 그는 정사 황윤길과 달리 일본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쟁 준비에 반대했던 커다란 죄를 지었다. 김성일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송암(松庵) 김면(1541~1593)은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