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기부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비록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유대인 부모들이 자식에게 어려서부터 가르친다는 자선 기부의 등급은 모두 8단계다. 가장 낮은 단계는 ‘불쌍해서 주는 것’이다. 바로 윗단계는 ‘마지못해 주는 것’이다. 가장 높은 단계는 ‘받는 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기부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 정체를 모르게 하는 것’이다. 익명성을 중시한 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등급에 관계없이 기부는 뇌 전두엽의 도파민 등 신경전달 물질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돈을 받을 때 못지않게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이름을 알리지 않고 남을 도와줄 때 이런 행복감이 더해진다는 심리학자들의 분석도 있다.대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는 ‘선(善)의 탄생’이란 책에서 “돈을 기부하면 자기 자신을 위해 썼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들을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 부른다. ‘남을 도울 때 느끼는 최고조의 기분’을 의미하는 정신의학 용어다. 미국의 내과 의사 앨런 룩스가 3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내가 탄 버스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차 안은 한산하였다. 마침 시골 장터가 서는 날인 모양이다. 오일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 노인들 몇 명이 좌석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내 맞은편 좌석에서 힘들게 기침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눈이 갔다. 여자는 첫눈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은 옷도 초라하였다. 거기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악다물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여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마 위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보다 못해 그 병이 든 여자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디 아프세요?” 나의 물음에 여인은 간신히 손을 내저으며 고맙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려고 했다. “많이 아프면 읍내 병원으로 가세요.” 나의 말에 여인은 띄엄띄엄 자신의 병세를 설명했다. 여인은 폐병말기였다. 시골살림에 제때 제때에 병원 약을 먹지 못했다. 그러자 차차 균들이 내성을 길러갔다. 해가 갈수록 처방약의 단위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병은 낫지 않았다. 여인의 폐병은 그 어떤 약에도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처방할 약이 없다고 의사가 최후선고를 했다는 얘기였다. 여인은 힘들게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겨울이 내려앉았습니다. 이 해도 저물어 갑니다. 그늘진 이웃이 유독 생각나는 손 시린 계절입니다. 이맘때는 모두가 천사가 됩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돕기에 모두 나서기에 그러합니다. 그게 바람직한 일입니다. 바른 삶입니다. 적십자회비 참여는 우리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이 됩니다. 적십자는 생명입니다. 적십자는 같이 있지만 숨겨진 이웃을 찾아 돕습니다. 같은 시간에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눈물을 흘립니다. 도민 모두가 따뜻한 인도주의 손길이 더 멀리 고루 퍼질 수 있게 자발적으로 참여하길 기대합니다. 이웃, 나눔, 감사, 봉사, 희망 등은 되뇌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말들입니다. 그 아름다운 말들이 모이면 세밑에 어려운 이웃들의 언 마음을 녹여줄 것입니다. 성금을 내주는 도민들의 정성된 마음은 어둔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처럼 그렇게 반짝반짝 빛날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해주는 사람들에겐 은은한 향기가 번져 나옵니다. 자신만의 즐거움에 젖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삶과 함께 더불어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14년 전에 고종황제가 “광제박애(廣濟博愛), 즉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대금 /석성일 갈 곳 없는 바람 하나 달빛 밟고 찾아와서 참았던 슬픔 통곡하라고 가슴에 문을 달지 않았구나 한 채 이불도 없고 한 잔 술도 없지만 하룻밤 편히 울어 보라고 가슴을 텅텅 비웠구나 시적 대상에 대하여 화자의 감정이 오롯이 이입되어 있다. “갈 곳 없는 바람 하나”에서 떠도는 나그네의 방황을 연상하게 된다. 대금에 뚫린 구멍을 통해 시인은 “가슴에 문을 달지 않았”다거나 “가슴을 텅텅 비웠”다는 표현을 하고 있고, 밤에 들리는 저음의 대금 소리는 고적한 정취를 자아낸다.화자는 전생에 무슨 업(業)과 슬픈 습(習)이 있는지 “달빛 밟고 찾아”오는 은은한 분위기와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산수운연(山水雲煙)의 여운과 달을 묘사하기 위해 화면을 어슴푸레하게 그리듯이 화자의 마음은 바람소리, 대금소리와 더불어 선염법(渲染法)으로 무상감에 젖어있다. /박수빈 시인…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고용 불안과 자영업자들의 폐업 등 서민들의 삶이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금융 부실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의 자영업자 신용대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 79개 저축은행들의 총여신 연체율은 4.6%였다. 같은 기간 상위 19개 대부업체의 평균 연체율은 10.7%나 됐다. 여기에 더해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은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피해자는 서민과 영세상인이다. 대출이 거절된 절박한 처지의 영세 자영업자나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법 사금융은 한마디로 ‘악마의 유혹’이다. 이들은 연금리 환산 시 터무니없는 이자를 부과하기도 한다. 불법 대부업체는 대부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영업하거나 법정 최고이자율인 25%를 초과해 돈을 빌려 주는 행위를 하는 곳이다. 급전이 필요한 영세자영업자나,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주부, 대학생 등이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불법 사금융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그러나 기부의 손길은 예년만 못하다. 지난달 20일 시작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은 10일 현재 463억원으로, 지난해의 80% 정도에 그쳤다. 목표액에 도달할 경우 100℃를 가리키는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는 현재 11.3℃에 머물고 있다. 2000년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 이래 100℃에 도달하지 못한 적은 2000년과 2010년 단 두 차례다. 지금 같은 속도면 올해 목표 4천105억원 달성을 장담할 수 없다. 11월 30일 시종식을 가진 구세군 자선냄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손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매년 저소득층 지역에 연탄을 후원해온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지난해 같은 시점과 비교해 후원받은 연탄이 40%가량 적다고 걱정하고 있다. 연탄에 의지해서 추위를 이겨야 하는 빈곤층으로서는 연탄값이 인상된 데다 기부도 확 줄어서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례없이 온정의 손길이 줄어든 것은 우선 경기가 안 좋아서 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이웃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이 어려
24절기중 19번째 절기인 입동이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 시즌이 다가왔다. 겨울이 오면 겨울 등산을 하기 위한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겨울산행은 매우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겨울산행은 눈과 얼음, 추위라는 복병과 많은 위험요소가 있다. 겨울 산에서의 사고 및 조난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다. 2012년 12월 등산객 박 모(43·경남 진주)씨는 설악산에서 조난된 지 5일 만에 구조됐다. 박 씨의 생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박 씨를 구조한 속초소방서 설악 119구조대 김남일(44) 소방장은 “길을 잃은 후 텐트 속 침낭에서 나오지 않아 체온을 유지한 덕분”이라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비상식량과 산행장비를 철저히 준비한 것도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겨울철 등산을 할 때 동상 및 저체온증에 대비하기 위해 장비를 잘 갖추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조난 등 위험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산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 되었을 때 생존을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매우 필수적이다. 보호 장치, 구조장…
내 눈이 흐린 것인지 세상이 흐린 것인지 대기는 재로 가득 찬 듯 뿌옇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우리의 명을 재촉한다는 기사와 미세먼지 재난문자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올 한 해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온 희뿌연 이 불청객은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불평만이 어지러이 난무하고 대책요구만 무성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건 바로 우리의 반성이다. 그저 누군가가 대책을 만들어 하루빨리 뿌연 것을 싹 거두어 가기를 바라기만 한다. 하지만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결의에 찬 진정성 있는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반성이 빠진 대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환경문제가 붉어질 때마다 자신의 책임 있는 역할은 배제한다. 여기에는 이런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편히 살 테니 네가 좀 불편하게 살아주면 좋겠다. 돈이 필요해? 내가 좀 낼게.’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이 꼼수는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하다. 자연을 해친 장본인이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가? 꼼수를 부리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솔직해지자. 우린 자기기만에 빠져있다. 내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월급을 약 1.8% 정도 올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반대 여론이 들끓는다. 이렇게 오르면, 수당과 활동비를 합산해 국회의원의 총 보수는 2019년 1억5천176만원이 된다고 한다. 이는 전년보다 1.2%가량 늘어난 것이라는 것이 국회사무처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얼마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대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받는 세비는 과연 적정 수준인가부터 시작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반드시 자신들의 수당을 올려야 하느냐 하는 부분까지,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지난 2014년 초 국회 사무처가 발표한 자료를 생각해 보자. 이 자료에 의하면, 2013년 기준으로 각종 수당을 합산한 한국 의원의 연간 세비는 1억3796만1920원으로 일본(약 2억3698만원), 미국(약 1억9488만원), 독일(약 1억4754만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영국(1억1619만원)과 프랑스(1억2695만원)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처럼, 단순한 세비만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각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 즉 1인당 GNI와 비교했을 때
빈집 /박봉희 텅 빈 새장 옆 찌그러진 개밥그릇만 남았다 남은 것만 남은 그 마당에 비가 내린다 실직, 가출, 비웃음, 불면이 깨어진 창문에 흘러내린다 남아도는 것들로 꽉 차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고 젖는다 때 묻고 무성한 털 엉겨 붙은 유기견처럼 짖다가 저물다가 젖는다 죄다 떠나가고 저무는 저 물빛 적막 결국 이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 문득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남은 것만 남은 / 그 마당에 비”가 내리고, 비를 타고 “실직, 가출, 비웃음, 불면이 / 깨어진 창문”을 타고 흘러내린다. 언제고 허물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퇴락한 빈집에서 그는 “때 묻고 무성한 털 엉겨 붙은 유기견처럼 / 짖다가 저물다가” 다시 비에 젖는다. 빈집이 바로 ‘나’의 모든 것이다. “죄다 떠나가고 저무는 / 저 물빛 적막” 앞에서 그가 쓸 수 있는 문장은 단 하나다. “결국 이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라는, 뿌리 깊은 절망과 체념의 문장이 그것. ‘빈집’이라는 자기 부정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ls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