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극장가는 영화 '노량'으로 뜨겁다. 임진왜란을 종결하면서 적탄에 쓰러지는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을 본다. 7년 전쟁의 피해는 참혹하다.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북남관계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 더 이상 한국을 '대화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 종전 ‘우리민족 제일주의’는 ‘우리국가 제일주의’로 대체하고,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하겠다"고 하였다.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그동안 우리의 대북기조는 ‘하나의 민족’ 위에 세워져 왔다. 한민족공동체, 분단체제, 통일은 대박이라는 것이 모두 그러하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에서도 남북한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남한 사회에서도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자는 소리가 고개를 든다.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199
북한산 등산길에서 자주 보던 소나무가 있었어요. 바위들 틈에서 자란 그 나무는 수령은 꽤 된 듯 여겨졌지만 척박한 환경 탓인지 키가 2미터도 채 못 되었지요. 어느 해인가 그 소나무를 무심히 살피다가 아래쪽에 달린 엄청나게 많은 솔방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전과도 달랐고, 근처 다른 소나무하고도 전혀 달랐거든요. 나무의 영양 상태가 꽤 나쁜 편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지인의 농장에서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고추밭을 돌아보다가 지인이 말했어요. “이 고추들 좀 봐. 내가 요즘 바빠서 물 주기를 소홀했더니 아래쪽으로 수두룩하게 고추를 달았어. 하찮은 생물도 종족 보존의 본능은 강한가 봐. 척박해지니까 새끼들을 이렇게 많이 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떨어지면서 세계적 관심거리가 됐죠.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의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놓고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어요. 이대로라면 ‘지방소멸’은 불 보듯 뻔하고, ‘국가소멸’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지구촌의 인구는 매초 4.3명이 출생하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는, 즉 의회 권력을 장악해야 행정 권력도 장악할 수 있는 내각제는 권력의 융합이 특징이다. 반면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각각 독립한 대통령제에서 권력은 분산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다소 변형되어 입법부 구성원, 즉 국회의원이 내각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권력이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두 권력을 칭해 이원적 정통성이라 한다. 정당성을 부여받은 두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하는 경우(여소야대) 국정의 운영이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반면 두 권력이 같은 정당에 속한다면(여대야소) 견제의 기능이 약화되어 행정부의 독주가 우려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국정이 마비되거나 행정부 독재로 나아가는 최악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통령과 의회 모두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현명한 장치가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거부권은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의회가 입법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면 대통령은 해당 법률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거부권은 아니다. 의회가 거부권의 행사로 재의…
정치학을 강의하는 선생으로 2023년 가장 기쁜 소식은 영화 ‘서울의 봄’의 성공이다. 수업에서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것보다 한 편의 영화 효과가 엄청났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학생들도 열광하고 질문이 쏟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서울의 봄과 비슷한 일이 남미의 칠레에서도 발생했다. 1970년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선택함으로 세계 최초의 혁명이 아닌 선거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아옌데는 만성적인 칠레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주력 산업인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했고 부자들의 토지 소유를 규제했다. 공공재산 확보, 남녀동일임금제, 전국민 기초생활임금제, 어린이 무상급식 등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 나가자 미국과 다국적 기업은 방치하지 않았다.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구리를 세계시장에 대량 방출함으로써 국제 구리가격을 폭락시켰고 노조에 잠입한 프락치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했다. 특히 안데스산맥을 끼고 있어서 철도보다 트럭 운송이 주류였던 칠레에서 트럭기사노조의 파업은 치명타였다. 드디어 1973년 박정희를 존경했던 참모총장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로 대통령 궁을 공격했다. 경호원들에게 아옌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떠나라
막내딸이 바삐 출근길 차에 오를 때 나는 말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딸에게 새 아침 희망적이고 활기찬 언어적 에너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서재로 돌아와 벽면 해돋이 사진을 본다. 2000년 새 아침은 지리산에서 맞이했다. 아침이라서 새로운 영혼으로 천 년의 새 아침 빛을 가슴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아침 기도를 하고 촬영하기 좋은 산봉우리 바위 곁에서 니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서서 해 뜨는 순간을 기다렸다. 운해 속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카메라 앵글 속으로 찰칵찰칵! 끌어들였다. 셔터 동작소리가 아침 산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 아래 검은 부분은 산이요. 중심과 위로는 붉은빛이다. 산 능선의 중간 조금 낮은 중심에는 계란 노른자 빛 태양이 똥그랗게 떠 있다. 해는 멀리서 길을 내고 온 듯 연한 빛이 강물의 곡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챙겨보고 새로운 구실과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 맑아 눈부신 세상에 서 있으면 내 가슴도 맑아져 하얘지는 것 같았다. 순백이 주는 순수한 영혼의 피가 도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새아침 환한 흰 빛으로서의 고요, 맑음, 그 깊이, 무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 성경의 한 구절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이 구절을 떠올리며 2024년을 새롭게 다짐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새해 첫날이 무척 설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찬 새해를 함께 꿈꾸어보자는 요청을 드리고 싶다.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 이는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es César)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들은 이날을 야누스 신에게 바쳤다. 양면의 얼굴을 한 야누스. 하나는 과거, 다른 하나는 미래를 상징했다. 그러나 새해의 첫날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카페왕조 시절에는 부활절이, 샤를마뉴 시절에는 크리스마스가 새해의 첫날이었다. 그러나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가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다시 설정했다. 이는 종교 축제 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새해를 똑 같이 시작하는 건 아니다. 세상은 스물 네 개의 시간대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나라별로 자정 시간이 다르다. 새해 일출을 가장 먼저 보는 곳은 뉴질랜드, 마지막으로 보는 곳은 하와이와 프랑스령 폴리
“드론은 안돼요. 중국 때문에” “아니, 인도 땅 위에 드론을 띄우겠다는데 왜 중국 눈치를 봐야 됩니까?” “우리가 눈치 보는 게 아니라 인도가 눈치 보고 있어서요” 무슨 이야기인가. 내년 여름, 히말라야 사막 퍼포먼스를 앞두고 예술가와 여행사 대표가 주고받은 이야기다. 동양화가, 대북주자, 현대무용가, 피아니스트 등 열 명 가까운 예술가들이 히말라야 여행을 가기로 했다. 2주간의 여행경로 중, 히말라야가 품은 사막이 포함된 것을 알고 예술가들은 흥분했다. 사막을 주제로 즉석 작품을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동양화가가 대북연주에 맞춰 먹 드로잉 쇼를 펼치면 현대무용가가 이를 춤으로 표현한다는 식. 상상만으로 흥이 넘친 대북주자가 공연 장면을 드론으로 촬영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붕 떴던 분위기가 동력 잃은 드론처럼 내려 앉은 것은 그 지점이다. 여행사 대표가 일언지하에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60년 분쟁사를 모르면 이해 못할 상황이었다. 중국과 인도의 싸움은 국경선 때문이다. 국경문제가 왜 생겼는가. 맥마흔 라인 때문이다. 맥마흔이 뭔가? 영국의 외교관 이름이다. 1914년, (인도를 식민지로 갖고 있던)영국과 (중화민국에서 독립상태이던)티베트,…
정확히는 미디어에 바라는게 아니다. 미디어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거다. 돌아보면 ‘23년, 미디어 정책이 없었다. 한거라곤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지상파방송사 사장 경질과 내사람 임용, 그를 위한 KBS수신료 통합징수조치 해제가 다였다. 적어도 미디어 정책이란 면에선 전두환 정부 이래 가장 저급하고 철학적으로 빈곤한게 윤석열 정부다. 같은 보수정부라 해도 박근혜 정부는 소위 미래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IT기술과 미디어, 콘텐츠의 융합을 도모하는 시도를 하였다. 맞는 방향이다. 2024년에는 더도 말고 딱 3가지만 바란다. 첫째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채널(PP)의 심의완화다. 넷플릭스 등 OTT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시청자는 지상파나 TVN이나 넷플릭스나 모두 방송미디어로 인식한다. 콘텐츠를 내보내는 통로로 역할도 같다.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다. 통로에 따라 지상파 방송이라는 이유로 점잖아야하고 이거 안되고 저거 안되는데 넷플릭스는 그냥 모든게 된다. 다같이 기준을 맞춰 완화하자.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시청자도 변하는데 의사결정권자나 시청자단체, 학부모단체의 생각과 눈만 안바뀐다. 스스로 시청자 보호를 위해 큰 역할을 한다고
함흥-흥남은 북한 최대의 보건의료 중심지이다. 함흥에는 고려약학대학과 함흥의학대학, 함흥의학대학병원, 산업의학연구소, 임상의학연구소, 구강병예방원 등 있다. 흥남에는 북한 최대합성의약품 생산기지인 흥남제약공장이 있다. 평양에 이보다 더 많은 의료 시설이 있다. 그럼에도 함흥을 보건의료 중심지라고 하는 것은 최초라는 의미와 최대 규모, 의료기술에 있다. 함흥은 이제마 사상의학이 발원한 전통적 도시이다. 동의학(한의학)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함흥이라는 전통적 도시에 영향을 주었다. 해방 후에도 동의학 의술이 이어져 경락이라는 독특한 의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1968년 최초로 생겨난 함흥약학대학은 1990년 함흥고려약학대학으로 개칭했다. ‘고려’에는 동의학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동서의학을 결합한 약학부분 전문가를 양성한다. 함흥의학대학과 함흥의학대학병원은 1946년 생겨난 북한 최초 보건의료인 양성기지이다. 의학전문학교를 개편하여 생겨난 의학대학과 대학병원은 함흥시 회상구역에 있다. 주·야간을 겸하고, 동의학과 신의학을 공부한다. 대학생 임상실습기지로 함흥의학대학병원이 있다. 말단기관인 진료소를 거쳐 각 시,군에서 치료가 어
대학에서 민법학 강의를 들어 본 분들은 라틴어 법 격언인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인(私人)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민사법의 대원칙인 이 말은 사실 법 이전에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상식이라 생각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 규범을 어김으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실을 우리는 늘 경험한다. 국제사회에서도 국가간 신뢰의 기초도 약속을 지킴에 있고,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 확신한다. 6.25전쟁이후 남북이 피차간 정전협정위반을 했다고 고발하는 수많은 도발사태에 대한 중립국감독위원회에의 결론은 도긴 개긴, 특히 60-70년대 남북간 휴전협정 위반 회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측 잘못이 더 많다고 중감위에서 판정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는 우리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18년 꿈같던 남북간 밀월시대 이후 남북이 서로 약속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의 냉랭하고 불안한 상황을 초래한 몇몇 사례를 평가 반성 성찰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복원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 사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 북의 주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