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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시급함과 당위론 사이

  • 신율
  • 등록 2020.07.24 06:02:40
  • 16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 행위에 있어서 순서는 특히 중요하다. 지금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코로나19의 극복,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경제 문제, 그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 여당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보다는 다른 이슈를 꺼내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제헌절에 박병석 국회의장은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면서 개헌 문제를 꺼냈다. 또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을 줄이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아울러,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여당의 당권 주자와 대권 주자들은 일제히 “행정수도 완성”을 외치고 있다.

 

물론 국토 균형 발전은 중요하고, 과도하게 밀집된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 분산의 필요성 역시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부동산 문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1987년 체제 역시 이제는 손 볼 부분이 분명히 있어, 개헌 문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권의 이런 주장과 제안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문제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개헌이나 행정수도 관련 사안들은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논해야 순서에 맞는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시점에서 코로나19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제2의 대유행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행정수도나 개헌 이슈를 던진다는 것은, 정부가 현재의 상황을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아니라면 본인들이 던지는 이슈에 따라 국민들이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권력을 가진 측은 제도의 안정과 제도에 대한 신뢰 구축을 최우선 순위의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행정 수도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 2004년 헌법 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이 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이며 “수도 이전은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 행사를 배제한 것”이라고 못 박았는데, 당시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상 불문헌법’에 해당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관습상 불문헌법’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관습’이라는 존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주요 정치인들은 “2004년과 2020년 대한민국은 다르다. 국민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헌재 판결은 시대 변화 따라 재정립될 수 있고, 재정립돼 왔다”며 “과거 합헌도 시대 따라 위헌 판결을 많이 받는다. 관습법을 앞세운 헌재 판결은 2004년에도 논란이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2004년 헌재의 ‘관습상 불문헌법’이라는 결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과연 ‘관습’이라는 단어가 시대에 따라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여당은 ‘16년’ 정도 지나면 ‘관습’도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관습상 불문헌법’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해치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 이렇듯 제도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기 시작하면, 이는 헌법재판소의 신뢰 저하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아주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다.

 

결국 집권 세력이 이런 식의 주장을 하게 되면, 그 후유증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장기적인 과제는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끈 이후에 추진하는 게 순리다. 만일 발등의 불은 놔둔 채 장기적인 과제부터 추진한다면, 시급한 문제 때문에 받는 국민들의 피해만 커지게 될 뿐이다.

 

시급함이 당위성 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함이 아니라 당연함이다. 이 점들을 현재의 권력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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