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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종교(宗敎)의 바탈

 

가장 야만적인 미신의 하나는, 현대의 대다수 학자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인간은 신앙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미신이다.

 

언제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보낸 이가 누구이고, 또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며, 적어도 그것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가지기를 열망해왔다. 그래서 이 같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인을 하나의 기원을 가진 형제로 결합시키고, 그들의 삶에 공통된 궁극의 목적을 천명하기 위해 종교가 등장한 것이다. (주세페 마치니)

 

진정한 종교는, 사람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무한한 삶과의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를 뜻한다. 그 관계가 그의 삶과 이 무한한 삶을 연결하여 그의 행위를 지도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나를 둘러싼 무한한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에 있다. 가장 고차원적인 종교에서 가장 야만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교가 그 밑바탕에, 이러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나’의 관계의 수립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교육장이며 최대의 계몽주의자이지만, 반면에 외면적인 현상과 정체성의 이기적 활동은 인류의 진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종교의 본질인 신성함과 영원함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한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이 채워진다.

 

우리가 탐구의 길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모든 위대한 종교의 근본 원리는 하나라는 것, 천지창조 이후 오늘날까지 연명해 이어져 온 가르침이 그 하나로 관철되어 있음이 밝혀질 것이다. 

모든 신앙의 밑바탕에는 오직 하나의 영원한 진리의 흐름이 있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조로아스터교의 깃발을, 유대교는 유대교의 깃발을, 그리스도교는 십자가를, 이슬람교도는 반월의 깃발을 걸게 하라. 그러나 그들도 모두, 그러한 것은 단순한 외면적인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종교의 본질적 원리는 예수, 바울, 마누, 조로아스터, 부처, 모세, 소크라테스, 실러, 마호메트가 한결같이 설파한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리스 플류겔)

 

특정한 가르침을 신의 계시로 정하는 (그래서 이를 신학이라고 부르지만)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의무를 신의 계율로 정하는 것 속에 모든 종교의 본질이 존재한다. (칸트)

 

민족개조를 하려면 정치와 종교가 합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개조를 하려면 사람과 하느님의 합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족의 씨가 나요, 나의 뿌리가 하늘이다. 그러기 때문에 참 종교는 반드시 민족의 혁신을 가져오고, 참 혁명은 반드시 종교의 혁신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혁명의 명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 하늘 말씀이 곧 숨, 목숨, 생명이다. 말씀을 새롭게 한다 함은 숨을 고쳐 쉼, 새로 마심이다. 혁명이라면 사람 죽이고 불 놓고 정권을 빼앗아 쥐는 것으로만 알지만, 그것은 아주 껍데기 끄트머리만 보는 소리고, 그 참뜻을 말하면 혁명이란 숨을 새로 쉬는 일, 즉 종교적 체험을 다시 하는 일이다. 혁명은 하늘이 명(命)한 것, 곧 성(性), 곧 바탈, 즉 이 변할 수 없는 바탈을 도로 찾는 일이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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