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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병들어 서럽지 않게 하리라

 

10월 한 달 동안 여섯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탄생(결혼)보다 죽음이 많으니 인구 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이 곧 탄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다며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딩크(DINK : Double Income No Kid)족들이 부쩍 많아진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질 인구 증가율은 마이너스이다. 노동력은 점점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4차 혁명에 걸맞게 첨단 로봇이 거의 사람 수준으로 개발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데다 한편으론 그 같은 자동화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는 저소득 노동자층의 노동권 박탈을 해소할 방법이나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일종의 21세기 형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벌어질 판이다. 주차장에서 주차 요원으로 일하던 노년층들은 주차 시스템의 자동화로 거의 사라졌다. 카페나 식당의 서빙 노동자들도 로봇의 등장으로 조금씩이긴 해도 교체될 전망이다. 결국은 이런 등등의 고민을 해결할 유일한 방향은 복지의 확대이다. 병원을 가거나 교육을 받는 일, 흔히 얘기하는 웰다잉(Well-dying)에 있어 치매 노인 돌봄 같은 사회적 서비스를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보장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우려가 모이면 출산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비루하고 고단한 인생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기 싫은 법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지난 열흘 간 지병이 재발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병동, 그리고 외래 진료를 돌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의료 환경은,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복지 시스템을 잘 장착시킨 분야라는 점이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이 결실이다. 혼미했던 정신 탓에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MRI만 세 번을 찍었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고 일반 병동에서는 간병 간호인 시스템에 의해 가족면회조차 금지된 상태에서 비교적‘서럽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그 병동 복도에는 서예 작품이 하나 걸려 있다. 이렇게 쓰여 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순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병들어서 가장 서러울 때는 아무도 내 병을 돌보지도 않을뿐더러 관심조차 없을 때이다. 가족이 찾아올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들 것이다. 요즘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가족의 역할을 다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간호 인력을 그만큼 충분히 투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병들어 서러운 것 중에 으뜸은 돈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조차 나갈 때 내야 할 치료비가 걱정이라면 서러움이 북받쳐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 ‘문-케어’는 이런 걱정을 크게 낮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낸 돈은 3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MRI 세 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임을 실감케 한다.

 

항간에서는 이런 문-케어가 축소되거나 없어지기 전에 아픈 것도 빨리 아픈 게 낫다는 말이 돌고 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과잉 진료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보재정 건전화를 추진할 의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의료 민영화를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일이 빈번해지고, 반면 취약 소득계층은 의료 서비스에 있어 점점 더 소외받는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와병을 반복할 때마다 93세 노모의 걱정과 잔소리도 늘어난다. 노모는 카톡으로 건강이 최고다, 일을 줄이고 몸을 돌보라, 적어도 몇 달은 쉬어야 한다는 둥의 얘기를 보내신다. 다 옳은 말이지만 한국 자본주의 환경에서는 아플 권리 역시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을 쉬면 당장 한 달의 생계가 끊기는 상황에서, 기본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가하게 요양을 한다느니, 시골에 내려가서 건강을 회복하며 지낸다느니 하는 얘기는 다 헛소리일 뿐이다.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프리랜서 노동자, 글 노동자들의 원고료는 200자 원고지 1장 당 8천 원에서 만원인데 이 가격은 지난 30년간 단 1원의 변화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원고 프리랜서가 3인 가족을 유지하려면 최소 300매의 원고를 써야 한다. 한 번에 100매씩 세 건의 원고를 쓰는 건 노동강도가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한 번에 10 매씩 30 건의 원고를 쓰는 건 지옥의 노동에 해당한다. 원고료의 현실화는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주무부처에서 주도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는 30년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하고 그 노동 때문에 다시 병이 도지고, 결국 이것 역시 빈곤의 악순환이다. 어디선가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지금의 윤 정부가 그러한 위업을 달성해 낼 수 있을까.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윤 정부 실력으로는 정치의 민주화를 달성하거나 국방의 선진화를 이루어 내지도 못할뿐더러 경제와 민생을 잘 챙기지 못할 것이다. 부자 감세만으로도 그건 이미 판명이 난 일이다. 춘천의 레고 랜드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천억 막으려고 50조 플러스알파의 양적 완화를 시행한 것은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준 것일까. IMF 때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론 스타 사태처럼 해외 헤지펀드의‘먹튀 장난질’이 더 큰 판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상의 시름이 깊어진다. 국민 개개인의 걱정을 사는 국가는 옳게 작동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그렇다. 그것도 집권 단 5개월 만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국가 운영을 한 줌의 특수부 검사로만 해 낼 것인가. 그들의 비뚤어진 소명의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1918년에서 1933년까지 단 15년만 반짝했다. 이후엔 바로 히틀러 시대로 넘어갔다. 이때의 독일 문화의 부흥은 후대의 세계사에 남을 정도다. 지금 K콘텐츠가 세계를 주름잡는다. 반짝하는 모양새일 수 있다. 앞으로의 한국사회가 걱정되는 건 바이마르 시대가 생각나서이다. 당신은 정말 걱정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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