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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아버지의 해방 일지, 그 사회적 의미

 

정지아의『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고 나면 싱겁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자 몸부림 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감마저 인다. 실패한 인생의 그저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소설인 까닭이다. 소설은 문제적 인간의 패배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는 그 패배에서 교훈을 얻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좋은 세상을 꿈꾸며 빨치산이 되어 현실에 역류하다 오랜 수감 생활을 한다. 하지만 동지였던 장기수들과 달리 아버지는 자수를 했기에 일정 형기를 마치고 고향인 구례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여느 농부들처럼 농사에 매진한다. 유물론자로서 관념적으로는 투철하지만 일상은 그렇지 않다. 집안일이나 농사일이나 서투르기 그지없다. 노동 중심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로서 낙제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들과 선술집에 출입하며 주모의 엉덩이를 만지기까지 한다. 성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에 저항은커녕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빨치산에게 일상은 이처럼 뛰어넘기 힘든 벽이다. 하지만 그에게 일상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인간 관계망이다. 농사일 하다 동네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즉각 현장으로 달려간다. 척추 협착증이 있는 빨치산 출신의 아내 지청구에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혁명을 했느냐고 큰소리치며 교통사고 민원을 처리해 준다. 환자에게는 감옥에서의 인맥을 활용해서 의사를 소개시켜 주고, 무직인 청년에게는 직장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돈을 써가며 동네 사람들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지만 단 한 푼의 사례를 받은 적이 없다. 막걸리 한 통 사들고 오는 사람이 없어도 매번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며 껄껄 웃고 만다. 이런 성정은 여고생과 스스럼없이 친구로 지내게 한 요인이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 때문에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그에게 "네 어머니 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이긴 위대한 나라이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빨치산 아버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어울린다. 주변에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돕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위로해주고 응원한다. 혁명 영웅이 아니라 따스한 한 이웃일 뿐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를 바 없다. 목수로 살았던 그의 절규는 마치 빨치산 아버지의 절규로 들린다. "난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이웃이 어려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왔습니다....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작가인 정지아 씨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쏟아져 나온 빨치산 문학과는 감성과 메시지가 전혀 다르다. 지난 시절에는 빨치산의 존재와 이데올로기를 알리는데 치중했다면 이 소설은 일상 속에서 구체적 삶을 산 빨치산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렸다. 개성이 있는, 친절한 이웃,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모습. 이 모습이 우리 시대의 감성이자 철학이며 동시에 사회적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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