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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나는 그동안 누구의 인생과 함께 살았다는 건가요

128. 한 남자- 이시카와 케이

 

일본에서 가장 잘 우는 여배우는 안도 사쿠라이다. 그녀는 감정만 살짝 잡아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영화 ‘한 남자’에서도 첫 장면부터 안도 사쿠라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영화 ‘한 남자’는 그렇게 시작한다.

 

일본의 미야자키(큐슈 내의 지역으로 일본 본토인 혼슈에서 꽤 떨어진 곳이다. 오키나와 다음으로 일본 최남단 지역으로 꼽힌다)에서 세이 분도(誠文堂) 문구점이라는 조그만 가게를 하며 살아가는 타케모토 리에(안도 사쿠라)는 비가 오는 날 가게에서 눈물을 흘리며 홀로 울고 있다가 한 남자 손님을 맞는다.

 

나중에 타니구치 다이스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 남자(쿠보다 미사타카)는 훗날 리에의 일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된다.

 

 

리에는 유토란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유토 밑으로 료란 이름의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나 2살 때 뇌종양으로 죽었다. 둘째가 죽는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는 죽은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다. 그래서 종종 혼자 운다.

 

슬픔에 젖어 사는 리에의 빈 공간을 약간은 과거가 수상해 보이는 남자 다이스케가 스며 들어온다. 그는 주변 벌목 회사에 일하는 노동자이다. 벌목꾼이다. 리에는 다이스케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먼저 키스한다.

 

그녀는, 여자의 놀라운 직감으로, 남자가 자신처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간파한다. 리에는 다이스케를 안는다. 둘에겐 곧 하나라는 귀여운 딸아이가 생긴다. 다이스케는 의붓아들 유토에게도 지극정성이다. 그렇게 둘은 3년 4개월 동안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문제는 다이스케가 작업을 하다가 사고사를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상냥하고 사랑스러웠던 남편이 죽고 나자, 남편이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에 있다. 남편은 타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었다. 다이스케는 딴 남자이다. 그는 미야자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군마 현(일본의 수도권 지역이다. 도쿄 위에 있다)의 아키호 온천家에서 살았다는, 사라진 둘째 아들이다.

 

리에가 오손도손 살았던 다이스케는 전혀 다른 얼굴의 남자다. 이건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리에에겐 다이스케의 생명보험 문제도 있다. 이카호 온천의 유산 문제도 있다. 리에는 남편 다이스케, 아니 이제는 누군지 모르는 남자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녀는 첫 남편과의 이혼 때 자신을 도와줬던 인권 변호사 키도 아키라(츠마부키 사토시)를 찾는다. 아키라 변호사는 다이스케란 남자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엄청난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 엄청난 비밀이 대단한 음모나 공포, 미스터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삶의 진실에 가깝게 된다. 아키라 변호사는 다이스케를 찾아가면서 엉뚱하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아키라는 다이스케처럼 자신조차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이니치(在日. 일본 내 한국인 혹은 그 자손들을 가리키는 말로 대체로 귀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이다. 그의 장인은 그에게 종종 얘기한다. “자네는 다른 자이니치와 달라. 이 나라는 돈을 잘못 쓰는 게 문제야. 생활 보장 제도가 뭐냔 말이야?!” 늘 그런 식이다.

 

아키라는 그런 차별 아닌 차별에 묵묵부답 살아왔다. 일본 사회 곳곳에서도 혐오 시위가 한창이다. 그는 변호사로 일본 사회 한 켠에 편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왠지 아내조차 그런 그를 완전하게 신뢰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는 그에게 미야자키로의 출장이 진짜 일 때문이었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의부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남편의 여자관계를 의심하는 건지 아니면 민족성을 의심하는 건지 살짝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에게 줄곧 우월감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이니치는 결국 어쩔 수 없어,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야’, 하는 뒤틀린 심사 같은 것이다.

 

 

영화 ‘한 남자’는 중첩의 드라마이다. 영화는 곳곳에서 인물을 겹치게 하고 그 내면을 교차시키며 결국 의미를 포개어 나간다. 영화는 한 남자를 찾는 데서 시작해 일본 사회 차별 문제의 대표격인 자이니치 이슈로 나아간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는 일본인들도 스스로들이 현재 혼미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일본인 모두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은 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다 큰 주제로 밀고 나간다.

 

영화는 작은 우주에서 큰 우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될 때 이야기의 긴장감이 높아진다. 잘 짜인 이야기로 느껴진다. 작은 강물이 큰 바다를 만드는 법이다. 이 영화도 한 남자가 아니라 모든 남자=사람의 이야기로 흘러가며 결국 일본인 전체에 대한 얘기로 퍼져 나간다. 그 스토리의 점층(漸層)화, 세공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오프닝 장면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금지된 재현’을 쓰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영화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간다.

 

인간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가 없다. 거울 속에 비친 나(한 남자)의 뒷모습은 나의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일 투성이이며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간파할 수 없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진실은 그 일부일 뿐이다.

 

인간의 사회적 삶이란 그래서 늘 절대적이지 못하다. 상대적이다. 너는 너를 아는가. 나는 나를 아는가. 영화 속 착한 시골 여자 리에는 도시의 자이니치 출신 인권 변호사 아키라에게 묻는다. 저는 그동안 누구의 인생과 함께 살았다는 건가요.

 

아키라는 정보를 취득할 요량으로 오사카 감방에서 형을 살고 있는 호적 교환 브로커 오미우라 노리오(에모토 아키라)를 만나서도 비슷한 얘기를 듣는다. 오미우라 노리오는 변호사 키도 아키라를 유리 차단벽 너머로 두고 이렇게 이죽거린다.

 

 

그는 첫눈에 아키라가 자이니치임을 알아본다. 아키라는 귀화했다고 말한다. “흥! 자이니치답지 않은 자이니치군. 그건 당신이 바로 자이니치라는 얘기요.” 너는 너 자신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인 셈이다.

 

아키라가 이 범죄자 노인을 만나러 가는 감방의 복도는 긴 터널처럼 되어 있다. 아키라는 처음에 그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두 번 째 만남에서는 그 터널을 안에서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극장을 통해 영화가 주는 진실의 안으로 들어가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진실을 깨닫고 극장 밖으로 나온다. 일종의 금기의 재현이다. 르네 마그리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남자,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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