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가랜드(맞다. ‘시빌 워 : 분열의 시대’의 그 감독이다)가 쓰고 대니 보일이 만든, 게다가 세계적 스타 킬리언 머피가 영화의 제작비를 댄, 그래서 프로덕션 라인이 거의 드림 팀 수준인 영화 ‘28년 후’는 좀비 영화이다. 아니다. 좀비 영화가 아니다. 그것도 아닌가. 결국 좀비 영화인가. 결론적으로 ‘28년 후’는 좀비가 나오지만 좀비 영화만은 아니다. 아마도 이건 가랜드와 머피, 대니 보일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댄 흔적이 역력한 일종의 인류 멸망보고서이다. 세 사람은, 알려지기로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이 비극과 희망의 트리올로지, 3부작을 기획했으며 마지막 3부에는 킬리언 머피가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28년 후’는 대니 보일의 전작 ‘28일 후’(2003)와 ‘28주 후’(2007)의 완결판이 아니며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이다. 대니 보일의 머릿속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을 것이다. ‘28년 후’의 마지막 시퀀스는 ‘28일 후’라는 중간 제목이 붙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 28년 후는 과거의 28일 후(2003년 작품때처럼)로 갔다가 다시 한번 28주 후로 더 돌아간 후 또다시 지금의 28년 후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타임은 슬립되고 또 슬립된다. 굳이 이성적이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주는 개념을 따지고 매몰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번 영화 ‘28년 후’에도 좀비가 가득 나온다. 그 ‘만행’들은 더욱 끔찍해졌다. 감염자 중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알파’급 무리의 우두머리 삼손(치 루이스 페리)은 2미터가 넘는 거구이자 한마디로 짐승이다. 그는 사람의 머리를 한 번에 잡아당겨 척수를 통째로 뽑아낸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특수 분장, 특수효과 처리의 진수를 보여 주며 일부 관객들에게는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스웨덴 소속 나토군인 에리크(에드번 뤼딩)는 삼손에 의해 머리가 척추째 뽑혀 죽는다. 영화에서 끔찍하게 죽는 인간 중 1인이다.
영화의 주요 공간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해안가에 있는 홀리아일랜드이다. 스코틀랜드는 하이랜드와 로우랜드로 나뉜다. 영화에서는 본토인 잉글랜드를 잇는 로우랜드까지 완전히 차단된 상태로 나온다. 오직 하이랜드만이 살아남았고 그것도 일부의 사람들만이 모여 그곳을 ‘성스러운 섬’이라 이름 짓고 중세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간다. 모든 물자의 공급이 끊긴 상태인 만큼 화살과 창을 만들어 자신들을 지키는 식이다. 종종 이들은 본토와 연결된 제방 둑길을 따라 좀비 떼가 득실거리는 본토로 수렵과 사냥을 나간다. 이를 위해 평소 철저히 훈련을 하고 아이들도 일정 나이가 되면 수업의 실습을 경험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좀비들에게 죽은 사람이 그간 부지기수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12살 꼬마 스파이크(알파 윌리엄스)는 아빠인 제이미(애런 테일러존스)의 손에 이끌려 제방 밖으로 나간다. 이 길은 썰물 때에만 열린다. 밀물이 되면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니 시간을 제때 맞춰야 한다. 스파이크는 활을 잘 쏜다. 아빠에게 그렇게 배웠다. 그는 좀비의 목과 심장을 맞춰줄 안다. 엄마인 아일린(조디 코머)은 왠지 모를 병으로 끙끙 앓는다. 발작이 잦다. 그녀는 죽어가는 중이고 이 설정이 영화의 중반 이후 반을 채운다. 왜냐하면 아빠의 거짓말(제이미는 아들 스파이크가 본토 수렵을 나가 좀비 여럿을 해치웠다는 식의 영웅담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아픈 엄마를 두고 마을의 유부녀 로즈와 섹스를 한다)에 실망한 스파이크가 엄마 아일린을 데리고 제방 둑길을 건너 좀비 소굴인 본토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본토에는 뜻밖에도 인간이 한 명 있는데 군 의무관 출신이라는 이안 켈슨 박사(랄프 파인즈)이다. 어린 스파이크 생각에는 이 의사야말로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앞단과 뒷단이 다르다. 전반부는 좀비 떼로 인한 인류 멸망 직전의 아수라장을 보여 주는 데 주력한다. 달려들고 물어뜯고 인육을 찢어발기며 악다구니로 먹어 치우는 좀비의 모습이 끔찍하다. 이들 존재는 다소 정치적인데, 바이러스의 정체가 바로 분노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원인 모를(아니면 생화학무기연구소에서 누출된) 바이러스로 세상은 붕괴했는데 그게 꼭 지금 전 지구상에 떠도는 극우 파시즘의 광기를 연상케 한다. 대니 보일은 인간의 이념적 광기가 언젠가 세상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라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나리오를 쓴 알렉스 가랜드는 그런 정치적 서사의 은유에 능한 인물이다. 전반부가 인류 최후의 모습을 극단화해 표현해낸 장면들이라면 후반부는 마치 신인류 생존보고서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엄마의 존재(세상을 잉태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해 준다는 의미로)가 중요하고 그 존재의 철학적 당위를 뒷받침하는 박사가 있다. 켈슨 박사는 어린 스파이크에게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인생철학을 가르친다. 하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이고 또 하나는 메멘토 아모리스(사랑하며 살라)이다. 알렉스 가랜드 & 대니 보일은 지금 세상의 모든 비극은 죽음(의 방식, 그 과정, 그것이 남기는 교훈)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전쟁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반목과 갈등, 테러의 악순환을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사람이 사람을 계급과 자본으로 억누르고 위협하며, 그럼으로써 극우 정치인과 자본가가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앞세워 광기의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식인의 정치사회학’적 사태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좀비의 대장 삼손은 마치 괴물로 변해버린 이 시대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파이크의 엄마 아일린은 좀비가 된 어떤 여인에게서 아이를 받는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감염되지 않았다. 이 설정은 다소 의외일 수도 있으나 이 아이가 성장하는 향후 2, 3부의 에피소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켈슨 박사의 얘기대로 메멘토 아모리스, 곧 서로서로 사랑하게 하는 존재, 인간과 좀비 사이를 잇는 긍정의 돌연변이, 신인류이자 궁극으로는 성스러운 그 무엇의 여인이 될 것이다. 1부의 주인공 아이 스파이크는 이 어린 여자아이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여자아이는 점차 생존자들의 희망, 구원자 같은 존재로 변해 갈 것이다.
대니 보일 스스로 인생 역작으로 만들어 내는 디스토피아 3부작이지만 멕시코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2006)의 일부를 차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27년이 배경인 내용이었고 전 세계가 핵으로 인해 박살 난 상태인 데다 전 세계 여성 모두가 원인 모를(아마도 환경오염 탓으로) 불임을 겪어 18년 동안 신생아가 태어난 적이 없는데, 마침내 18살 흑인 소녀가 런던에서 임신한 상태로 발견된다는 설정이다. 이 소녀를 ‘확보’하려는 정부군과 이를 막으려는 저항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 새로운 인류, 새로운 출산, 새로운 메시아의 출현을 통한 새로운 구원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번 ‘28년 후’는 메시아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좀비와의 싸움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수위를 갖는 영화인 셈이다.

윌 스미스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도 연상케 한다. 이 영화에서 좀비의 대장 격 인물은 자신의 좀비 여인을 구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좀비에게도 사랑의 DNA가 있음을 보여 준다. ‘28년 후’에서 좀비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괴물 좀비인 삼손의 자식인 것 같은 느낌의 밑자락이 느껴진다. 이 관계가 향후의 에피소드를 규정해 갈 것이다. 메멘토 아모리스. 좀비에게도 부성애와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얘기로 이어갈 공산이 크다. 그렇게 인류와 좀비는 공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좀비 엄마에게서 태어난 여자아이 이름은 스파이크 엄마의 이름과 같은 아일린이다. 이 아일린이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다.
영화 ‘28년 후’는 아일린 같은 신인류의 출현을 기원하는 영화이다. 그 기원이 현실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영화의 전반부가 보여 준 것처럼 지금 세상이 극도의 아수라라는 점은 철저하게 동의하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는 주변을 잘 보라고 권하고 있다. 영화 ‘28년 후’는 한편으로는 자본의 좀비, 이념의 좀비, 권력의 좀비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