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기 시 전액 환급’을 내세운 상조 결합상품의 절반 이상이 재무구조가 부실한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년층을 노린 전자기기 결합 마케팅이 성행하면서, 과거 중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던 상조 서비스 피해가 20~30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23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상조 결합상품 관련 소비자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소비자원에 접수된 상조 결합상품 관련 피해구제 신청 162건 가운데, 연령대가 확인된 159건 중 20대가 37.1%, 30대가 23.9%에 달했다. 전체의 60% 이상이 청년층인 셈이다.
과거 50대 이상이 주고객이었던 상조 서비스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최근 상조 상품에 고가 전자기기를 얹어 판매하는 ‘결합상품’이 등장하면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과장 광고 및 불완전판매 피해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실제 결합상품 품목이 확인된 142건 중 노트북(31.0%)이 가장 많았고,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등의 소형 전자기기 비중도 컸다. 상조 계약과 함께 노트북을 제공하면서 “만기 시 납입금 전액 환급”을 강조했지만, 이 약속을 믿기에는 업체의 재무구조가 지나치게 불안정하다는 것이 소비자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만기 환급형 상품을 판매한 상조업체 중 65.2%는 자본잠식 상태로 파악됐다. 계약 당시엔 전액 환급을 약속하지만, 업체가 폐업하거나 부도가 날 경우 이를 지킬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 대부분이 상조 서비스와 전자기기 구매가 별개의 계약이라는 점조차 알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원이 결합상품 경험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 중 결합상품 설명을 들은 440명 가운데 90%가 “상조 서비스와 결합상품 계약이 별도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50.5%는 “상조 서비스와 결합상품이 하나의 계약”이라고 인식했고, 39.5%는 “상조 가입 혜택으로 받는 사은품”으로 착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조와 전자기기 계약이 별개라고 정확히 이해한 소비자는 10%에 불과했다.
이 같은 인식 부족은 실제 피해로도 이어졌다. 응답자의 18.8%는 결합상품 관련 피해를 경험했으며, 가장 흔한 사례는 “전자기기를 개봉했다는 이유로 상조 계약의 청약 철회를 거부당한 경우”(54.3%)였다.
소비자원은 “상조 상품과 결합된 전자기기 구매 계약은 별도의 매매 계약으로, 상조업체가 아닌 제3의 판매자에게 대금이 지급되는 구조”라며 “소비자가 납입한 금액 대부분이 상조가 아닌 전자기기 구매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계약 초기 납입금 중 상조 서비스에 해당하는 비율이 ‘5% 미만’이라는 응답이 48.2%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선불식 할부거래에서 사업자가 총 납입금을 초과하는 환급금 지급 약정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조사 대상 결합상품의 96.3%는 여전히 만기 전액 환급을 약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과도한 환급 약정 자제 ▲계약서상 상조·결합상품 조건 명확화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한 교육 강화 등을 사업자에 권고할 계획이다. 아울러 소비자에게는 계약 전 상품 구조와 업체의 재무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 후에도 주기적으로 업체 상황을 점검할 것을 당부했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