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3개월에 접어들었다. 참혹한 전쟁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경학 쟁투는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다. 유럽은 신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개통을 유보하는 외에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를 스위프트 국제금융결제시스템에서 축출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석유·가스 거래 대금 결제 방식을 루블화로 제한함으로써 루블화의 가치를 방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유가 상승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셰일 석유·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에너지 공급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산 석유·가스를 싼 가격에 수입하는 이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인..
빛의 벙커에서는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림이 벽과 바닥을 넘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까지 물들이기 때문이다. 온 공간을 채운 예술 속에선 사람도 예술이 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한 곳은 제주였다. 넓은 공간과 장기간의 전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늘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적합했다. 한국 안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찾아갈 만한 실내관광지를 원했고, 독특하고 신선한 체험을 바랐으..
그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여서 헷갈린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행태는 이와 딴판이기 때문이다. 그 부정합은 국무위원 지명에서부터 드러났다. 한동훈 법무장관 지명이 대표적이다. 한 지명자는 2년전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작가 고발을 사주한 혐의를 받아 채널A 기자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 채널A의 자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두 사람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강요미수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현직 대검 감찰부장은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정치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선 대검의 감찰 행위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폭로했다. 한 지명자는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조차 거부함으로써 법망을 피했다. 한 지명자는 수사절차에 대한 비협조 전력만으로도 법무장관으로 자격 미달이다. 이런 사람을 정의수호와 법치의 수장에 지명한 처사부터 공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 것이다. 딸의 논문 표절과 ‘약탈저널’ 게재에서도 그 가족의 내로남불 행태는 아주 노골적이다. 딸과 아들을 자신이 병원장 등으로 재직 중이던 대학 의과대학에 편법 입학시킨 추한 행태가 드러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도 내로남불 행태에 있어 한 지명자와 막상막하다. 파행 인사의 하일라이트는 한덕수의 총리 지명이다. 한 지명자는, 한국에서 천문학적 금액을 챙기고도 모자라 협상 지연을 트집잡아 우리 정부를 상대로 5조원짜리 추가 배상소송을 제기한 먹튀 자본에 대한 변론에 그치지 않고, 일제 징용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미쓰비시측 이익을 위해 온갖 법 기술을 부렸던 대형 로펌 김앤장에서, 일말의 양심가책도 없이 고액 자문료를 받아챙긴 인물이다. 이 로펌은 가습기살균제를 판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100억대의 기업측 변론비를 피해자들의 피눈물 대신 챙겼다. 공직자 이해충돌의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같다. 총리에서 주미대사로, 무역협회장으로, 그러다가 대형 로펌 고문으로, 돌고돌아 다시 총리로 오겠다? 사익과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닌 그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가?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한, 가장 끔찍한 일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 가담해 면직된 검사 출신 인사를 임명한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임명된 공안검사가 그 근본을 무너뜨려도 공정이고 상식인가? 문제의 검사는 중국 정부의 진짜 출입경기록 공개로 범죄가 들통나면서 국가망신까지 시킨 추문의 장본인이다. 그런 문제 인물에게 새 정부의 공직 기강 바로세우기를 맡기겠다고? 그런 범법자를 측근으로 두려는 윤 대통령의 심사는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앞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 여론 따윈 개의치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윤 대통령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뜻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언어는 생각과 행동의 거울’이라는데(에드워드 사피어) 그는 언어 따로, 행동 따로인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외로 놀러 나가거나 유명 관광지와 축제장을 찾고 있다.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코로나19 확진자는 늘지 않고 있다. 얼마 않 있으면 코로나19가 감기 정도로 취급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놓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언제나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팬데믹을 겪으면서 알게 됐다.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되며 철저하게 대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새 정부에서는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감염병수리과학계산센터’ 설립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방역정책을 펼치기 위한 것이다. 감염병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모델을 연구하면서 코로나19 외에 다른 감염병 유행도 예측할 수 있는 모델도 연구할 방침이라고 알려졌다. 중..
요즘 3대가 같이 식사하는 걸 보기 어렵다. 어버이날 보게 되는 효도 이벤트다. 집에서 TV 볼 때 부모, 자식이 같이 보는 경우도 드물다. 취향이 달라서다. TV공시청은 이제 과거의 유산이다. 모든 미디어는 퍼스널 미디어로 변했다. 농촌공동체에서 산업화 시대, 정보사회로 진행되면서 윗 세대와 아랫 세대가 같이 할 공통분모가 급격히 줄었다. TV도 같이 안 보는데야 뭘. 특히나 급격한 디지털화는 미디어 이용의 세대 간 단절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문화적 교집합이 줄었다. 공유 영역이 적다 보니 이해와 공감의 양도 당연히 줄어든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선생님을 ‘꼰대’라 불렀다. 1960년대부터 사용되던 젊은 사람들 은어로 선생님, 아버지, 늙은이를 속칭하던 말이다. 죽어가던 단어인 꼰대가 최근 갑자기 각광을 받는 단어가 됐다. 구글 검색량이 2015년 이후..
1991년말 쯤이었을게다. 나는 대구에서 울산으로 가는 마지막 고속버스 맨 뒤편 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눈을 떴다. 눈앞에 정복경찰 두 명, “신분증 좀 봅시다” 내미는 주민증을 보더니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요?”하고 물었다. 아뿔싸.. 당시 나는 5공화국의 3년차 수배자였다. 주민증은 우리 친형님의 것이었는데 늘 외우던 주민번호가 갑자기 가물가물했다. 자다 깨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했더니 차에서 내리란다. 경찰이 앞장서고 내가 통로를 뒤따라가는데 누가 부른다. “아저씨, 가방요~” 내 발밑에 두었던 가방을 가져가라는 소리다. 아.. 어떻하나.. 고백컨대, 가방에는 족히 수십명은 조직사건으로 엮고도 남을 만치의 비합법 노동운동조직의 문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잡히는건 문제도 아닌.. 가방만은, 가방만은 숨겨야 했다..
사회적경제는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나 재정적 보상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해 통제되지도 않고 자율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며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견을 조율해 간다. 자본보다 사람과 사회적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며 참여와 권한을 강화하여 책임을 중요 원칙으로 삼는다. 또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서로 힘을 합쳐 협력하여 해결해 나간다. 사회적경제의 핵심 주체인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면서 재화 및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소비 등의 영업활동을 하는 사업 조직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그리고 소셜벤처 등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
치명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을 가까스로 넘어서는 듯한 시점에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섭다는 물가인상 폭탄이 터지고 있다. 4월 기준 경기지역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4.8% 오르며 두 달 연속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긴 바이러스 감옥에서 근근이 탈출하나 싶더니 날마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은 비명이 절로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영세민들의 생계가 걱정이다. 갈수록 하루하루 연명이 힘겨워지고 있는 영세민을 보호할 정책 마련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전체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8% 올라 IMF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10월 이후 13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4월 경기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도내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9(2015년=100)로 전달대비 0.7%, 전년동월대비 4.8% 각각 상승했다. 3월 4.2% 상승에서 0.6% 더 치솟은 수치다. 지난달의 경우 물가 상승을 견인한 품목은 휘발유, 경유, 자동차용 LPG, 등유 등 석유류와 같은 공업제품으로 파악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이 맞물리면서 국내 공업제품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라는 게 통계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상승세다. 전체 458개 품목 중 소비자의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 144개를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전달대비 0.7%, 전년동월대비로는 무려 5.6%가 각각 올랐다. 식품은 전달대비 0.5%, 전년동월대비 5.5% 동반상승했고, 식품 이외 품목도 전달대비 0.9%, 전년동월대비 5.7%가 각각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오름세를 둔화시킬 만한 요인은 현재까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지구상에서는 1천5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누적 사망자도 2만3천 명을 훌쩍 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전파속도와 높은 치명률에 속수무책이던 인류사회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난 뒤에야 가까스로 생환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게 현실이다. 더욱이 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전문가적 전망이 적지 않다. 바람이 불든, 눈비가 내리든 맨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생계유지가 여의치 않은 영세민 계층이다. 길고 긴 세월 코로나바이러스 회오리에 속절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한층 더 깊은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원래 글로벌 경제파동이나 전염병 충격이 현실적 타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당한 시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후폭풍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 정부들이 지금 최우선으로 챙겨보아야 할 대상은 헐벗은 계층이다. 물샐 틈 없는 복지정책으로 구호가 필요한 국민을 찾아내어 세심하게 보살피는 게 옳다. 물론 정부에 모든 역할을 미루고 민간 시민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일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상부상조의 미덕을 살려 나가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2013년 1월21일(월).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북 탈출 주민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날도 1면 머리기사로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설과 기획기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 이어 기사화한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22일자 사회면에 공안당국 발표를 인용, 간략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탈북자라고 했다. 두 신문을 빼고는 어떤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간첩 누명을 뒤집어 썼던 유우성씨는 2년 9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때문이었다. 2018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진상위원회 재조사 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국민..
얼굴은 ‘얼의 꼴’이다. 법정 스님이 한 말이다. 얼은 넋이고 꼴은 겉모양이니, 얼굴은 넋의 겉모습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신의 줏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들 한다. 법정 스님의 말대로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넋에 따라 삶의 궤적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이 곧바로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얼굴에는 삶은 없고 정신의 줏대만 있다. 졸업논문과 연봉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은 없고 뼈와 살과 주름만 있다. 뼈와 살과 주름을 따라서, 부딪고 보듬고 벼르는 생각의 흔적만 있다. 얼굴에는 거짓이 없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감춰지지 않는다. 뼈를 깎고 주름을 덮어도 정신의 줏대는 바뀌지 않는다. 얼굴은 저마다 지닌 정신세계의 조감도(鳥瞰圖) 같아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묻어난다. 인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