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질환을 치료하다 보니 한의원에서 월경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8년 전이었다. 선배의 한의원으로 문의전화가 왔었는데 부인과질환은 잘 보는 후배가 있다고 하며 나에게 보낸 모양이었다. 환한 인상의 씩씩한 분위기의 40대인 그녀는 모 대학병원에서 자궁에 근종이 3개 있다고 진단받았다. 월경통 외에는 자궁근종으로 인한 불편감이 없어서 통증을 잘 조절하며 폐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될 터였다. 문제는 3개월 전부터 월경통이 무척 심했고 강력한 진통제로도 조절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그 병원에서는 자궁절제술을 권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수술을 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치료법을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였고 한방치료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옆 좌석 안모 집사님이 내 손을 잡더니 말문을 연다. ‘오월은 참 좋습니다. 나뭇잎의 싱싱한 기운도 좋고 짙은 숲의 깊은 느낌- 모두 싱그럽고 시원스러운 빛입니다.’라고. 나는 엉뚱한 그러나 싫지 않은 답변의 인사말을 드렸다. ‘저는 계절의 5월보다 안 집사님의 아들 ’0록‘이의 봉사하는 모습이 더 든든하고 5월의 청년으로서 자랑스럽고 장래가 푸르러 보입니다.라고.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봄이다. 5월의 봄날에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는 노인들도 젊은 모습이다.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필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라고도 했다. 내 어머니 별명이 ‘앵두’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
춘추시대 진나라 중군위의 직에 있던 기해(祁奚)가 나이 70에 이르러 고령을 이유로 왕 도공(悼公)에게 사직을 청했어요. 기해를 붙잡을 수 없음을 안 왕은 적합한 후임자 천거를 부탁했대요. 그러자 기해는 놀랍게도, 원한 관계에 있는 해호(解狐)라는 인물을 추천했대요. 도공이 깜짝 놀라 “어찌 원수지간인 그를 추천하시오?”하고 묻자 기해는 “왕께서는 제게 적임자를 물으셨지, 제 원수가 누구냐고 묻지 않으셨잖습니까?”하고 태연하게 대답하더래요. 20대 대통령선거전 승자인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를 꾸리고 운영하는 중이지요. 초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이 끝나고, 국회가 티격태격 인사청문회를 시작한 걸 보니 정권 교체 시점이 도래했음을 실감하게 되네요. 별로 감동적인 인물을 발굴해내지 못하고도 꿋꿋한 모습인..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만간 종료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당초 러시아의 일방적 우세가 예상되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의지,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적극 지원이 어우러져 푸틴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은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은 미국 등 서방 국가와 러시아간 가치전쟁이자 경제전쟁으로 성격이 확산되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일치감치 러시아 입장에 동조하는 편에 서고 있다. 유엔의 러시아군 철수 결의안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불순한 의도에서 초래된 전쟁이라는 식으로 러시아를 두둔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은 유엔이 국제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이용하여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출범을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아직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계속 키우면 시장 혼란을 더 난해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재정비 문제와 임대차 3법 등을 둘러싼 예민한 이견들이 논란거리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지대한 국민의 관심을 고려해 하루빨리 선명하게 방향을 잡아야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인수위에서 내놓은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발표가 논란의 시작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약 계획대로 새 정부 임기 내에 질서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후보..
음악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신통력이 있다. 헨델과 베토벤의 음악이 그렇고, 이문세와 양희은의 노래도 그렇다. 귀에 익숙한 노래는 전주곡만 들어도 마음이 동한다. 노래는 가사도 중요하다. 가사는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작동시킨다. 가사는 시와 동격이다. 대중음악은 시대정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도 그런 노래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이 노래는 포크 록(fork-rock) 장르에 해당한다. 포크송 가수 밥 딜런(Bob Dylan)과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가 서로의 장르를 융합함으로써 새롭게 잉태된 장르다. 두 장르의 공통점은 반(反)문화로서 기..
남쪽의 오월은 가정의 달로 분주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부모자식간 사랑을 확인하는 달이다. 양로원을 찾아가 꽃을 달아준다거나 봉사활동으로 평시에는 몰랐던 나이 듦을 생각해본다. 스승의 날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도 오월에 있다.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간다. 즐거이 받는 분도 있고 부담스러워하는 스승도 있다. 석가 탄신일에는 아름다운 색상의 풍등이 거리에 가득히 달린다. 오월에는 기념일이 많아 지출해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북쪽에도 어린이날과 유사한 조선소년단 창립일이 있다. 조선소년단은 초등학교 2학년이면 선서를 통해 가입하는 정치조직이다. 어버이날은 없으나 어머니날이 있다. 어머니날이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는 출산을 장려하고 제한하기도 하면서 여성의 사..
흔히 삼국지라고 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우리 (생활)문화 특히 언어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4자성어라고도 부르는 고사성어의 주요한 요람이다. 演義는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뜻이다. 원나라의 나관중이 역사를 토대로 지었다. 부정적인 영향도 많다. 최근 정치동네 말잔치에 나온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사례 중 하나다. 우선 말뜻부터 풀어보자. 三顧草廬의 顧는 ‘방문하다’의 뜻. 3은 하나 둘 다음, 셋 말고도 ‘많다’는 뜻이니 여러 번 찾아가 뭔가 청한 것이 ‘三顧’다. 草廬는 우리말로 초가집이다. ‘고대광실 기와집’과 대칭되는, 청렴하게 사는 가난한 사람의 집이다. 보도를 토대로 상황을 그려보자. 유비 현덕이 아우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제갈공명의 사립문 앞을 세 차례 찾아와 경세(經世)의 지혜를 청했다. 장제원 비서실장..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지난 3~4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물가‧금리‧환율 3고(高) 속에 적자폭도 3월(1억1500만달러)보다 4월(26억6000만달러)에 더 확대됐다. 2021년 1월4일 1082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엔 1270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대만이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의 개인 GDP는 3만4994달러로 대만(3만6051달러)에 1000달러 이상 뒤진다. 2003년 이후 19년 만의 역전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둔화해 한때 '늙어가는 호랑이'로 불리던 대만이다. 한국은 2019년 2.2%, 2020년 -0.9%, 2021년 4% 성장했다. 이에 비해 대만은 각각 3.1%, 3.4%, 6.3%의 성장률을 보였다. 대만이 이처럼 코로나팬데믹 등 세계경제의 악조건속에서도 주목할만한 상승세를 보인데는 TSMC로 대표되는 첨단 반도체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TSMC는 2019년 11월부터 주가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앞지르기 시작해 최근 두 기업의 시총 차이가 1.5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1차적으로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삼성전자가 1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 분야에서 TSMC가 강세인 비메모리로 이동하는데 있다. 또 대만 내 주요 기업들이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에 이르는 반도체의 모든 공정에서 세계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고, 경쟁력을 갖춘 많은 중소기업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인은 대만이 미‧중 갈등 속에서 최대 수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경제전쟁에 나서면서 한국의 삼성전자 등은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을 추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2017년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이후 심화되고 있는 미‧중전선과 미국의 신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대만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대미 수출 비중이 17.2%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한국(15%)은 큰 변화가 없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은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이런가운데 윤석열 새정부 출범 직후인 오는 21일 서울에서 한미 첫 정상회담이 열린다. 역대 우리 정부중 가장 빠른 시점에 두나라 정상이 만나는 것이다. 소원했던 양국관계를 조속히 복원하려는 양국 정상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어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우선 중요한 것은 신뢰회복을 통한 한미동맹의 정상화다. 그리고 긴장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보다 실효성있는 공동대응 방안을 찾아내고, 이를 선순위 정책으로 추진하는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간 포괄적인 가치동맹 강화다. 한국은 고물가, 제조업 위기와 신성장동력 부재, 그리고 인구절벽까지 경제역동성에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수출의존도가 25%에 이르는 중국경제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안보와 함께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석열 새정부로선 엄중한 시험대다.
1. 1974년 9월, 미국 제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한 달 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개인적 고민이 깊었다는 뜻이리라) 행한 조치였다.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사면을 단행한 포드를 향한 ‘인간적 비난’은 드물었다. 해석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정치적 맹우였던 닉슨에 대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3월 15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을 요청하는 글을 이 칼럼에서 썼다. 법적, 정치적, 국민통합적 관점에 있어 당위성을 곡진히 말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케 하는 일은 있었다. 4월 25일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내놓았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 등에 대해서는 국민 공감대가 판단기준”이며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지만, 결코 대통령의 특권일 수는 없다”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 교수에 대한 사면이 마치 부당한 특권행사일 수 있다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스로 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렇다면 세월호 아이들 250명을 수장시킨 부패시스템의 핵심이던 박근혜에 대한 사면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였다는 말인가? 5월 8일은 부처님 태어나심을 경축하는 사월초파일이다. 관례적으로 이날 정치적 특사가 많이 실행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기 하루 전날이며, 따라서 실질적 사면 실행이 가능한 시점은 이 날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유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조치를 정면으로 요청한다. 2. 제럴드 포드는 닉슨 사면에 대하여 자신의 조치가 “정의의 행동은 아니지만 자비의 조치”라고 밝혔다. 이 결단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던 미국의 국론이 통합과 봉합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도 많다. 그런 거대 담론은 모두 접어두더라도, 나는 포드의 조치가 (스스로 심대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한 인간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믿는다. 세계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미국 정치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꾼 워터게이트 사건과 정경심 교수 사건의 의미를 수평비교할 일은 아니다. 권력 범죄와 그 은폐로 최종 탄핵 직전까지 갔던 닉슨에 대한 사면은, 정 교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무게를 지녔기 때문이다. 포드는 2년 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가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모든 개인적 손실을 무릅쓰고 사면의 길을 선택했다. 형식적 법 논리와 정치적 유 불리를 따진 계산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신과 행로를 같이 했던 동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3.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했을까를 떠올려본다. 휘하와 더구나 그의 가족이 겪는 참담한 고통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짐을 졌을 거라고 생각된다. 김영삼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김대중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노무현이 과연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책무조차 외면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신에 가까운 것이다.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 산출된 달콤한 열매만 향유하고 삼켜야 할 쓴 잔은 피하려 드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생의 신념으로 외치던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신 수행하다가 멸문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가족이다. 정경심 교수는 수감 중 뇌출혈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다. 딸 조민 씨는 부산대와 고려대의 입학취소 처분을 통해 청춘을 다 바쳐 걸어온 인생 전부를 절멸당할 처지에 있다. 참혹한 형극의 길이다. 요즈음 필자의 카카오톡에 문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들이 연속으로 쌓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의 치적을 다룬 것들이다. 3월 22일 “문재인 정부 5년 보고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이란 동영상 3부작이 올라왔다. 4월 25일부터는 손석희 앵커와 나눈 “퇴임 전 마지막 인터뷰”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업적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누군들 자신의 통치를 멋지게 마무리 짓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그래서는 안 된다. 조국 일가족의 비극을 외면한 채, 끝내 그 피 웅덩이를 밟고 이뤄낼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다가 난도질당한 사람의 참극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손에 피는커녕 먼지 하나 안 묻힌 채 혼자만 깨끗하고 고고한 퇴장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 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