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중에 가장 난감할 때가 피해를 본 학생이 있는데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예를 들어 사촌이 외국에서 선물한 특이한 볼펜이 분명히 오전 수업시간에는 필통에 있었는데 점심시간 후에 없어졌다거나, 똑같은 스티커를 교실 안에 여러 명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스티커가 사라졌다거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문제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일단 다른 아이들에게 물건이 저절로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가방이나 책상 서랍, 사물함을 확인해 달라고 말한다. 이때 없어진 물건이 돌아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는 잘 없다. 아이들이 열심히 찾아도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한..
A와 B가 교실에서 무언가 훔친다고 했다. 특수학급 보조교사는 문구용품과 간식이 사라진다며 ‘범인’으로 아이들을 지목했다. 장난과 호기심에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세 번째 도적질이 보고되자 두 녀석을 불렀다. “너희들이 한 짓을 이미 알고 있다. 이실직고하면 부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겠다. 대신 교실에서 가져간 것을 낱낱이 써내라” 녀석들을 협박했다. 가정에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인지 열심히 훔친 내역들을 써내려갔다. 자백을 받아내는데 나름 효과가 있구나 하고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달장애 아이들이라 정직하고 순수했다. “아닌데. 더 있는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뭘 가져가는지 몰래 지켜봤다. 아직도 빠진 게 있으니 빠짐없이 써내라” 했다. 당황한 녀석들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적고 또 적었다. 열심히 작성한 도난품..
참 나쁜 사람들이다. 사회적 약자를 등 처먹는 인간들이다. 불법 다단계업자들은 악한 자들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자영업자들이다. 사적 모임 인원은 4명에서 6명으로 완화됐다고 하지만 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는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가게 세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그저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기만을 바랄 뿐 달리 대책이 없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한탄이 나라에 그득하다. 그런데 이 틈을 노려 파고드는 독충 같은 인간들이 있다. 사기꾼과 높은 이자를 갈취하는 불법 사채꾼, 불법 다단계업자들이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에 따르면 불법 다단계업자들은 노년기 안정적 소득처를 찾..
1. 겨울밤, 인터넷 다운로드로 오래된 영화를 봤다.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년 첫 상영 당시 잘라낸 15분을 추가한 완전판, 이른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다. 알다시피 이 작품은 유명한 경극(京劇) 제목을 영화 이름으로 빌려왔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과 천하쟁패를 겨룬 초패왕(楚覇王) 항우. 그와 일생의 연인 우희(虞姬) 사이의 비극적 사랑과 죽음을 다룬 공연극이다. 이 경극의 정점은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의 탈출을 위해 우희가 칼로 자기 목을 찌르는 장면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항우본기(卷七. 項羽本紀)'에서 쓰러진 우희를 안고 패왕이 부른 애절한 노래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름하여 해하가(垓下歌)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오추마, 烏騅馬)는 가지 않는구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고 우..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문자점(問字占)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왕이 되기 한참 전에 함경도 안변(오늘의 강원도 안변군) 지역에서 앞에 놓인 많은 글자 중 ‘물을 문(問)’ 자를 짚고 점괘를 물으니 점쟁이가 “큰 대문 안에서 커다란 밥상을 받을 것이므로 왕이 될 팔자”라고 말하며 큰절을 올렸대요.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거지가 같은 글자를 짚자 “문(門) 앞에서 입(口)을 딱 벌리고 있으니 천생 거지 팔자”라고 핀잔하더래요. 비슷한 에피소드로 복자점(卜字占) 이야기도 있어요. 암행어사가 ‘점 복(卜)’ 자를 짚으니 “마패를 차고 암행어사가 될 팔자”라고 하던 점쟁이가, 지나가던 거지가 옷까지 바꿔 입고 같은 글자를 짚자 대뜸 “쪽박을 찬 거지 팔자”라고 멸시했다죠. 우리 정치인 중에 점을 치기 위해 철학관이나 무당을 찾는 이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은 다 알..
법원이 서울 지역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이후 백신 접종을 코로나 종식의 분기점으로 삼으려던 정부의 방역대책이 난관에 봉착했다. 전국의 대형마트, 백화점, 보습학원 등의 방역패스 적용을 해제함으로써 당초 17개였던 적용시설은 11개로 축소됐다. 다만 정부는 3월로 예정된 청소년(12~18세) 방역패스 시행은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방역패스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위중증 환자가 500명대로 떨어지고 의료체계가 안정화됐다는 점을 방역패스 적용시설 축소 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살벌한 코로나19 전선이다.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 검출률은 지난주 26.7%로 직전 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한 설 연휴도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전문가..
북한은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농촌건설을 금년도 역점 추진사업으로 제시하고 지역별 기관별 궐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 농촌 전지역을 북한이 자랑하는 백두산 삼지연지역 수준으로 현대화하고 농촌근로자들의 혁명역량을 강화해서 농업 생산량의 획기적인 증대를 도모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과학 영농과 쌀과 밀 생산 증대로 식문화를 바꾸며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농촌지역으로 배치하고 협동농장의 부채도 탕감해 주는 특혜조치도 실시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 부족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김일성 시대부터 식의주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최소 1일 1만 톤이 필요하며 ‘인민의 소망이 이밥(흰쌀밥)에 고깃국’이라고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도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 고 하면서 농업..
새해를 축하합니다! 만나면 서로가 주고받는 인사이다. 이날에는 궁색한 살림일지라도 새 옷을 사 입고 낡은 옷이라도 아주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는다. 마지막 밤인 31일에는 눈썹이 희어진다고 자정이 되기까지 잠들지 않는다. 그렇게 맞이한 새해 첫날에는 정갈하게 만든 음식으로 조상들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다. 추석처럼 요란하지 않고 간단하게 한다. 가장 좋은 것을 나름의 규정에 맞게 상위에 올려놓고 술잔을 돌리고 다음에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남쪽에서처럼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말하는 풍경은 없다. 그러나 설날 아침은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 색다른 음식을 만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절구에 떡 찧는 소리도 들린다. 떡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에게 들려서 이웃에 보낸다. 그러면 이웃은 그릇에 떡을 담아 보낸다. 이렇게 오고 간 떡..
잠룡(潛龍)들 세상을 노리다. 선거 얘기다. 개천에서 용 났다. 이재명 대통령후보 얘기다. ‘개천용’은 우리와 친근한 이미지다. 중국 황제의 상징 용, 우리나라에선 그 그림 흉내도 못 냈다. 대신 봉황이 임금의 상징이었다. 청와대 문장(紋章)의 봉황은 이 굴레 벗지 못한 결과다. 20세 조지훈의 시 ‘봉황수’(鳳凰愁)는 뒤틀린 역사의 한(恨)을 품었다. 이제 그 한의 대상은 미국과 일본인가. 정신력 허전한 저 나라들의 짜증스런 사슬, 풀어버리자. 저 시의 해석과 해설들, 상당수가 헷갈렸더라. 입시용 상투적 문안의 몰(沒)지성에 섬뜩했다. 용을 서양신화의 드래곤과 혼동한 경우도 잦았다. 어찌 탓하랴, 구미(유럽과 미국)의 지식의 틀로만 가르쳐 왔으니. 요즘 뜬금없이 문해력(文解力)이 유행이다. 이는 여태 한글 못 배운 세대에게 가나다 깨쳐주는 ‘특수교육’이..
한국은행이 지난해부터 5개월여 사이에 기준 금리를 0.5%에서 1.25%로 대폭 올리면서 시장의 충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기준금리가 코로나 직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3%가 넘는 높은 물가와 급증한 가계부채 등 누적된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폭등과 주식 투자 열풍속에 내몰린 ‘영끌‧빚투족’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는 고점을 찍었고,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3.75~5.51% 수준으로 1년 새 1%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전세대출 금리도 5% 수준까지 접근하며 반년 사이 2배 이상 올랐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전세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전세대출 금리가 낮아 세입자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37.2%로 크게 증가했다. 2019년 28.1%, 2020년 31.1%에 이어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6만 8736건)도 201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다다. 월세 비용은 1년 만에 10% 넘게 증가했다. 부동산 증세와 금리 인상 추이를 보면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연초 세계를 강타한 미국의 고강도 긴축 움직임(금리인상+양적 회수 예고)은 자국내 인플레이션과 함께 고용회복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기 상황은 아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체감 경기나 고용 여건은 미국과 비교된다. 그만큼 한은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경제에 엄중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더구나 미국발 양적 긴축은 올해 국내 금융 시장을 더욱 옥죌 가능성이 높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은이 앞으로도 기준금리를 2~3차례 더 올려 연말까지 1.75%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년 7개월 만에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아파트 가격지수가 지난해 11월 하락세로 돌아섰다. 강화된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급매물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부동산 폭등세가 진정‧하락 추세로 돌아선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금리 상승 흐름이 급격한 부동산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특히 금리‧부동산·주식 등 시장의 격변기에는 자산‧임금소득의 약자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가까스로 올라가던 사다리에서 밀어내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Fed)은 통화 정책의 두 축으로 물가와 고용을 주시한다. 고용이 궤도에 오르면 개인들은 물가나 금리 인상에 대처할 최소한의 여력을 갖게 된다. 우리의 전월세 세입자나, 영끌‧빚투족, 자영업자, 서민들은 상당부분 금리 인상에 대처할 축적된 자산이나 소득을 뒷받침할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경제적 약자에게 코로나 양극화에 이은 금융긴축 쇼크가 엄습하고 있다. 금리인상도 미국의 연준처럼 충분한 예고·숙성기간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부와 대선주자들은 지속가능한 일자리로 금융 양극화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