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최악의 통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이 겪은 병치레를 근거로 답할 것이다. 나는 통풍(痛風), 산통(産痛), 참척(慘慽)의 고통을 꼽는다. 참척은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는 비극을 말한다. 악상(惡喪)이라고도 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아픈 병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통풍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통풍을 앓고 있거나 심하게 앓았던 사람들은 이 문답을 어리석다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 때 처음 어느 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겪었다. 6.25처럼 그날 잊을 수 없다. 병원에 가서 통풍이라는 관절염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나의 투병사는 과장 없이 핏빛이다. 처절하고 혹독했다. 어린 딸 앞에 두고 울었다. 초반에는 1년에 두세 차례, 나이 들면서는 분기에 한 번, 이후에는 한 달..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지난해와 똑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전 지구적인 환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할 정도로 망가트렸다. 누구나 겪었던 이 불행한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더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은혜와 원한은 사회적 참사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감사함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함께 경험하는 아픔은 서로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과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또 힘들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심리적인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경우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병원을 찾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힘들어..
사전, 지도, 시계, mp3, 카메라, 종이신문, 녹음기, 달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즉답은 어려울거다. 하지만 듣고 나면 다소 허탈해진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라져가는 제품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통하여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것을 별도로 사서 썼다. 인류학자들은 지구상의 인류는(Homo) 대략 25종이 살았다고 말한다. 이중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아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사피엔스란 말처럼 생각하는 기능이 다른 육체적 조건의 우위를 이겨낸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이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류의 삶은 혁신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omist)란 잡지에서는 우리의 삶을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ce)라 지칭하였다. 우리나라에 이 개념을 디지털 사회의..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21 KB 자영업 보고서: 수도권 소상공인의 코로나19 영향 조사’에 의하면 소상공인 상당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계속될 경우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연매출 50억 원 이하 또는 직원 10인 이하 소상공인 700명(서울 460명, 경기 194명, 인천 4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앞으로 3년간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이란 질문에 응답자의 48%가 매출 하락으로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응답자들은 ‘낮은 수익과 큰 손실’(42%)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경기회복이 더딜 것’(30%) ‘경영관리 어려움’(17%) 등을 호소했다. 실제로 소상공인들은 방문손님 감소(40%),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영업제한(32%) 등으로 전체 매출이 2020년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집 근처 편의점 알바를 뛰었다. 늦게 퇴근한 아들이랑 쐬주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급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에이, 아빠.. 편의점에 최저임금 다 주는 자리 없어요”한다. 가슴 한켠이 짠했다. 법적 최저기준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녀석에게 애비는 해줄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월 150만 원이라도 받고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대통령 후보가 떠올랐다. ‘윤석열표 공정’은 집 앞 골목부터 진작에 실현되고 있었다. 그는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들은 부당한 조건에 맞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행사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궁핍할 자유는 필요치 않았다. 이런 아들이 요즘 말로 빡쳤다. 윤석열 후..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교실의 아침은 학부모님들에게 받는 연락으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당일 결석과 관련된 연락이 주를 이루고, 사정이 생겨서 일찍 조퇴시켜달라는 내용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가끔은 아이의 몸이 안 좋지만, 등교시킬 테니 상태가 나빠지면 집으로 보내 달라는 내용도 있다. 며칠 전에는 조금 특별한 연락을 받았다. 우리 반 친구 A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해서 다음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나에게도 이미 결석하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막상 당일이 되자 A가 부모님께 학교에 가서 재미있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등교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접종 후 증상이 걱정되니 잘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함께 왔다. A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어 했던 수업은 햄스터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이었다. 태블릿..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끔찍한 산업재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어렵사리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준비가 제대로 되었다는 증거가 아직 없고, 정부에서도 예측되는 혼란과 모순을 신속히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산업재해 근절이라는 대의를 존중하여 차제에 경영철학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게 맞다. 정부나 정치권 역시 경영계의 합리적인 우려와 보완 요청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사고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이 법은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어머니! 엷은 먹물로 그린 그림처럼 당신이 보입니다. 마지막 먼 산은 이미 지워졌고 붉은 옥사가 연분홍으로 물들어가네요 이대로라면 저는 제 안의 먹방으로 고요히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저의 처음 당신의 품이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깊고 험한 길을 돌아 당신에게 가는 길입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네요 묶인 손을 내밀면 만져질 듯한 데까지 보입니다 보이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자리에 어머니 품에 안기는 아기 저의 모습이 짙어집니다 비로소 이별 없는 깜깜한 밤이 옵니다 눈 감지 않고 이대로 당신의 품에서 아들의 생을 멈추겠습니다 - 1930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아들 이○○ 올림
대선이 71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가족 리스크와 선대위를 둘러싼 내홍으로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성장·복지·일자리 정책 공약 발표를 시작으로 정책 행보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5일 제1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윤 후보는 그동안 현장 방문 등을 통해 단발성의 정책을 제시하긴 했다. 하지만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약의 제시는 사실상 이제 가동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 여당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일찍부터 기본시리즈 공약을 필두로 발빠른 정책 움직임을 보인 것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시간이 짧은 윤 후보가 각종 리스크로 우회하다가 이제라도 후보 자질의 중요한 척도인 공약 제시로 방향을 잡은 것은 다행스럽다. 이를 계기로 여야 정치권은..
아마도 이 지면을 통해서 한번 얘기한 바 있을 것이다. 일본 석학 다치바나다카시 얘기다. 『그는 도쿄대생은 죽었는가』라는 저서에서 “세상은, 결코 스페셜리스트가 지배하지 않는다, 제너럴리스트가 이끈다”고 했다. 이 말을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끼는 때도 없다.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 씨가 그 점을 상징처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한국사회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기는 중이다. 윤석열 후보와 같은 스페셜리스트는 자신이 필요에 의해 쌓은 지식 공학의 범주에서만 세상을 보고, 또 잣대를 만들어 낸다.(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이다. 사모펀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조국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주입돼 있었다.) 스페셜리스트들은 대개 수직주의자들이다.(주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급과 계층에 대한편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자유를 알지 못한다는 발언.) 반면 제너럴리스트는 광범위한 지식을 구하려 노력한 덕에 그래도 세상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제너럴리스트들은 응당 수평주의자가 되며 세상에서 평등과 함께 분배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대체로 남의 말을 많이 듣거나 그러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지식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비교적 건강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본다. CBS 라디오 大기자 출신으로 현재 YTN의 ‘뉴스가 있는 저녁’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앵커를 맡고 있는 변상욱 씨는 최근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란 에세이를 냈다. 마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념의 균형론을 얘기하는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연상될 만큼 온통 명언과 경구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특히 그는 수십 년 간의 방대한 독서량을 보여 주듯 수많은 작가, 예술가, 학자의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일종의 과학 철학에서부터 에밀리 디킨슨의 시, 피카소의 예술론,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전사 후다 샤으라위, 미국의 진보주의자 하워드 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실패했지만,사회주의 농업경제의 부흥을 꿈꿨던 줄리어스 니에레레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국경은 끝간 데가 없다. 톰 행크스가 제작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 우리 영화 ‘벌새’ 등등 영화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피력한다. 정치적 지도자가 그처럼 광범위한 지식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격 요건을 다소 완화시켜 준다 한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1) 청년기에 인문과학에 대한 접근성이 좋았던 사람이거나 그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던 사람이어야 한다. 2)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틈틈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역사/ 철학/ 사회학/ 문학/ 소설/ 영화/ 연극/ TV 드라마/ 컴퓨터 게임 등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버리지 않고 최소한 그러한 문화예술적 활동을 하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혹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1야당이라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잦은 말실수, 흔히들 얘기하는 망언을 일삼는 것은 위의 1, 2, 3 항목에 다 비껴 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후보는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릇 국가 운영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고도화/ 전문화/ 분업화돼야 함은 물론 무엇보다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야 한다. 후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들 떠들어 대는 이른바, 국격(國格)이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프랑스 현대영화를 대표하는 브루노 뒤몽의 신작 《프랑스》는 유명 여성 앵커 ‘프랑스 드뫼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주인공 이름을 굳이 ‘프랑스’로 했고 그걸 또 제목으로 갖다 썼을까. 브루노 뒤몽 같은 자연주의자들은 알고 보면 면도날 같은, 무엇보다 매우 구체적인 일상의 에피소드를 동원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드러낸다. 이번 작품을 가지고는 한 저널리스트와 그녀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이라는 설정을 통해 지난 20년간의 프랑스 현대사회를 되돌아보려 한 것으로 느껴진다. 프랑스는 20년 동안 니콜라 사르코지(그는 내무장관 시절인 2005년 파리 북부 빈민가 방리유의 소요사태를 폭력적 경찰력으로 진압했고 그것으로 우파의 지지를 받았다.)에서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었다.)까지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유능한 인재로 차기 대통령감이라 여겨졌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IMF 총재 자격으로 뉴욕에 갔다가 호텔 메이드를 겁탈하려다 정치·사회적으로 멸종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젊은 대통령이 마크 롱이었던 바, 그에 대해서도 다소 신통찮아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브뤼노 뒤몽은 영화에서 ‘이제 진보는 없어. 이상 따위도 없어.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라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없어’라고 일갈한다. 그저 현실을 충일하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토론이라고 하는 것이 1회 정도는 이런 인문학적인 수다로 질의응답을 채워 보면 어떨까 싶다. 후보들을 경쟁적으로 앞세워 TV 오락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에서 노래나 춤을 추게 하지 말고. 그 무슨 꼭두각시 모양새인가. 그런 아이디어는 과연 누가 내는 것인가. 좀 세련되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정치가 천민화하는 ‘꼴’을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