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습니다. 무얼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텅 비어버린 날 말입니다. 껍데기만 살아 펄럭거리는 하루는 시간을 삼키는 종이인형 같습니다. 인형이 삼켜버리는 시간 때문일까요. 봄이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봄을 맞을 겨를도 없이 겨울을 삽니다. 세상은 ‘확진’과 ‘격리’의 틈에서 몸살을 앓습니다. 약기운인지, 봄기운인지. 거리에는, 계절을 따라 걷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림자로 가득합니다. 애써 길을 걸어도 보이는 건 겨울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아무리 찾아도, 왔다는 봄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시 봄입니다. 움트고 싹트는 것들로 세상은 천지가 젖몸살입니다. 몸살꽃 이파리는 저물고 뜨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돋아납니다. 저무는 것과 뜨는 것들이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서 요란합니다. 삼월의 낮과 밤이 덩달아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하늘과..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 예상되던 신구정권 인수인계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 양상을 연출했다. 오는 5월 10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겨 새 정부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윤석열 차기 대통령 당선인과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현 청와대의 입장이 맞부딪쳤다. 여야 정치권은 정권 인수인계의 불협화음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맞물려 첨예한 정쟁 소재로 써먹으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인수위가 일단 새 정부 출범 이후로 이전 작업 스케줄을 수정한 듯하지만, 사사건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여야가 정권교체기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다.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함몰돼 사명의 본질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층 불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개월째 이어지면서 초토화에 준하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 중단 시기를 놓고 여러 견해가 엇갈리지만, 3월말 경 마무리 국면을 보일 것이라는게 대체적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 자유를 수호하려는 서방측의 단합된 의지에다가 전장인 우크라이나가 3월말경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러시아군의 탱크를 동원한 작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논거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하여 ‘정보’의 역할은 지대했다. 정보의 예측적 기능이 십분 발휘되었고,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정보기관들의 정보능력 또한 막강함을 각인시켰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모두가 온라인으로 전쟁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최초의 TikTok 전쟁이다. 러시아..
대선의 결과로 인한 트라우마가 꽤 오래가고 있다. 의학적 용어인 정신적 외상(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이 선거 후유증으로 전환되어 뉴스도 보기 싫고, 의욕 상실에 식욕부진까지 겹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충격으로 나온 선거 후 스트레스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를 나도 겪는가 보다. 그러나 이젠 일어나야 하는데 벌써 나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들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승리가 확정된 후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은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며 투표 결과는 다 잊었다고 한다. 글쎄? 국민통합을 위해서 투표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라며 백번 환영이지만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이재명 후보보다 더 받은 표는 겨..
2002년 4월 금강산에서 처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1-3차는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으나 북한이 이를 꺼리고 금강산에서 열기를 희망하여 이후 2018년 21차까지 금강산에서 상봉행사가 열리었다. 금강산에서 처음 개최된 4차 행사는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다. 이산가족들의 이동문제도 그렇고 특히 상봉행사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간 합의에 어려움이 많았다. 북측은 통제 가운데의 만남, 만남시간도 가능하면 줄이길 원했고 하룻밤의 동숙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의 선물 수송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 일의 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4차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이번 행사를 평가하며 다음 행사에서는 원활한 입경(入境)수속을 위해 북측 CIQ 직원들과 특별한 만남을 준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9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정부 인수위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인수위가 분과별 활동에 들어갔고 당선인의 의지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결정됐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체제는 윤 당선인의 약속과 신뢰 정치에 대한 기대에 부응했다. 실력주의를 내세운 인수위 구성도 일응 긍정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윤 당선인호는 초기 이륙 단계를 넘어 1차 안착 지점을 앞두고 있다. 인수위는 차기 정부 5년의 행로에 나침반 역할을 한다. 당선인측은 짧지만 대선 승리후 지난 10여일을 차분하게 복기해봐야 한다. 결정 내용이나 방향은 옳았는가, 의사결정에서 소통 문제는 없었는지. 먼저 청와대 이전 문제는 차기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당초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경호 등의 이유로 결과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또 국방부 청사 이전에..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란 주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공공선 내지 공적 가치로서의 공정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 없고, 선진 사회일수록 공정한 사회임은 분명하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의 근거가 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만행이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표창장 하나에도 공정을 외치면서 검찰 난동을 묵인한 상황이 있다. 당시 공정을 외치면서 집회룰 한 이들은 노동 현장에 있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강남에서 학력 세습권에 있던 젊은이들이었다.반면 아빠 찬스로 대리 퇴직금이 50억이 되어도 누구도 공정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표창장 하나로 4년을 복역해도 여전히 당연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50억 퇴직금에 있어서는 조용했다.한편..
북한은 3·9 대통령 선거일 이틀 뒤인 3.11 북한 주민 전체가 보는 노동신문에서 ‘보수 야당인 국민의 힘 후보인 윤석열이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북한은 ‘바이든’이라는 실명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상황과 비교해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정찰 위성 중요시험을 명분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2.27과 3.5 연이어 두 번 발사한 이후 대통령 선거 당일에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해서 다수의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리겠다고 하였다. 당선인 발표일인 3.10에는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찾아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시설을 개보수하라고 지시하였다. 이후 3.16 평양 상공에서의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
요즘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토론이 뜨겁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이슈의 논란에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성차별, 성폭행 등을 이유로 들면서 대안도 없이 폐지하려 한다고 날 선 토론을 했다. 여성으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전자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젠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이 소명을 다했다면 어떤 시대적 소명으로 여성들을 불러낼 것인가. 여성의 사회적 참여문제, 현존한 성폭력, 성추행, 인구절벽 등 여성문제가 정치의 쟁점이 된다. 여성이 무엇이기에 정치적인 논쟁이 되는 가? 인류의 보존에는 여성역할이 크다. 냉동된 정자가 아무리 많아도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는 이 세상에 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신체구조상 강한 남성중심의 가부장..
그동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늘공(늘 공무원)’들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에 대한 불만이 컸다. 어공은 당선자와의 연줄을 기반 삼아 공직에 진출한 이들이다. 이들을 전문성 등을 통해 공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라고 데려왔다. 관료제의 타성에 젖은 공직을 혁신하라고 외부 인사를 기용한 것이다. 이들은 관료 사회의 굳어있는 시스템과 공직자의 복지부동을 해소하고 전문성을 발휘하며 시정(施政)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권력자의 힘을 배경 삼아 갑질을 일삼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물론 모든 어공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직의 물을 흐리는 일부 어공들이다. 전문성과 공직자로서의 자질 등에 대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거과정에서의 공로나 평소의 충성심만을 보고 임용한 경우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들은 국민이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