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리 밑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돼버린 장기(將棋)의 유래는 꽤 깊어요. 장기 말 중 상(象) 때문에 나온, 고대 인도의 한 왕비가 전쟁에 빠진 왕을 잡아두려고 고안해낸 놀이라는 재미있는 설이 있지요. 그러나 양편 장군 말의 글씨가 초(楚), 한(漢)인 걸로 보아서는 고대 중국 한나라(BC202~AD220년) 대에서 유래했다는 추정이 합리적일 거예요.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징거 2세가 1973년에 펴낸 ‘제왕적 대통령제(The Imperial Presidency)’는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시끄럽던 닉슨 행정부의 막강한 권력을 묘사한 책이에요. 이 책은 ‘3권분립’의 정신을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는 데 따른 폐해를 꼬집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아마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 가장 많이 쏟아져 나왔을 거예요. 촛..
피시 통신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이텔과 천리안을 필두로 나우누리, 유니텔 같은 업체들이 가담하며 1세대 온라인 문화의 지평을 열었다. 고등학생의 때를 갓 벗어던지고, 서서히 대학이란 곳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무렵, 내게 피시 통신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종 동호회부터 채팅방까지 매일 온라인에 접속하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리고는 이내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각 피시 통신 서비스 안에는 음악 관련 동호회들이 많이 있었다. 록, 재즈, 힙합,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창구였다. 사진 한 장을 공유하려면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와야 했을 정도로 극악의 통신 속도였지만, 신세계를 접하는 데 있어 그런 것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같은 관심사의 사람들이 풀어놓는 이야..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국내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에 오르는 등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불법 유통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씁쓸한 소식이다.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는 국가가 아닌 중국에서 편법·불법을 동원해 공유되면서 중국인들은 공짜로 즐기고 있다는 뉴스다. 묵과해서는 안 된다. 민관이 모두 나서서 중국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생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9회 분량의 드라마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오징어 게임’은 5일 기준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에서..
최근에 아내와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을 재미있게 봤다. 아내가 ‘오징어 게임’ 다음으로 나에게 ‘D.P.’를 추천했다. 그러나 나는 벌컥 화를 냈다. “보기 싫어. 내가 왜?” 아내는 그런 나의 단호함에 당황했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D.P.’는 '탈영병 추적'을 뜻하는 ‘Deserter Pursuit’의 줄임말이다. 그럼 왜 탈영을 하게 되었을까? ‘어, 이건 아닌데? 난 분명히 제대했는데, 왜 또 군대에 가는 거지?’ 비몽사몽 간에 억지로 큰 한숨과 함께 꿈에서 깼다. 다행히 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아, 꿈이구나. 다행이다.’ 매번 이런 꿈을 꾸곤 한다. 휴가 마지막 날 위병소를 통해 부대로 복귀하는 꿈을 꾼다. 차마 돌아가기 싫은 곳. 군대였다. 내가 이런 악몽을 처음으로 꾼 것은 아니었다. 아..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항상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국감 무용론”이다. 이번에도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대장동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임위를 초월하며 대장동 의혹이 핵심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사안들이 묻히고 있다며 다시금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동의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국정감사란 입법부가 행정부를 “정기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여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는, 국정감사와 같은 최소한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도 본인들의 정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런 견제는 필요하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언젠가는 큰 문제가 터져 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정 감사는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찍은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각에서는 “180석을 만들어준 유권자의 뜻“이라며 여당의 독주를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이런 표현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우선, 설사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는 여당을 선택하지 않은 ”소수“의 뜻마저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로 밀어붙이는 것을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가치와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선택한 유권자는 결코 ”소수“로 치부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이 지역구에서 득표한 표의 총합을 비교해보면, 여야 간의 득표 차이는 7%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여당이 겨우 턱걸이해서 승리한 지역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소수의 목소리“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소수라고 할 수 없는 다수를 무시하는 것은 ”반쪽짜리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국정감사를 통해 ”소수 아닌 반대쪽 다수“의 목소리도 크게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또한, 대장동 의혹 역시 국감에서 충분히,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라는 점도, 국감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을 통해, 소수가 거액의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은 당연히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국감 대상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설사 다른 사안들이 묻힌다 하더라도, 국감에서 이 문제를 세밀히 다뤄야만 국민들의 박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국감 무용론을 피력하는 것은 합리적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총리의 일본 내각이 4일 출범했다. 아베-스가 정부로 이어진 최악의 한·일관계가 일본의 리더십 교체를 계기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다. 하지만 뚜껑을 연 새 내각 주요 자리에 극우 인사들이 전진 배치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총리 관저의 서열 2위인 관방장관에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소속인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이 포진되고,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아베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유임됐다. 게다가 수출규제를 담당하는 경제산업상에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이 기용됐다. 그는 전임 스가 내각의 문부과학상으로 ‘종군 위안부’와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삭제·수정하는 교과서 업체를 승인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기시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시원이다. 서양에서는 지혜의 사랑(Philosophy)이었고, 동양에서는 넓게 배우고(博學) 깊이 묻는(審問) 것이었다. 그 대상은 인간과 우주를 포함한 세상만사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철학은 형이상학, 즉 관념론 부분만 남았다. 학자들은 철학의 역사를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의 역사로 정리한다. 물론 과학의 견지에서는 유물론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자연과학의 성과와 발견을 바탕으로 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발전시켰다. 엥겔스는 ‘자연은 변증법의 증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관념론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관념론은 이성의 사유와 통찰과 상상이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 물론 이성적 사유의 결과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상대성이론은 그..
처음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쌍방향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미래 교실에 온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 앉아 있고, 나는 교실에서 모니터를 보는 상황이 어렸을 때 보던 과학 잡지에 나올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변화의 물결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보수적인 공간도 코로나 앞에선 변하지 않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반적인 쌍방향 수업에서 변형된 모습으로는 교실에 교사와 소수의 학생이 있고 다수는 집에서 수업을 듣는 상황이 있다. 긴급돌봄 학생이 생기면 이렇게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학생이 몇 명 교실에 앉아있지만 온라인 수업 중심이라 평소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수업을 설명하고, 발표하며, 조별 활동을 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물리적 공간이 어디인지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최근에 새로운 방식의 수업..
‘몸 상해 일한 대가, 50억!’.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의 이 발언은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일해야 퇴직금을 50억이나 받을 수 있는지, 몸이 얼마나 상해야 50억이라는 위로금을 받는지, 우리는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곽 의원은 문준용 씨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대통령에 대해 저격을 일삼았다. 이제 와서 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결국에 문준용 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검사출신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과 지위를 이용한 곽 의원의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곽 의원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곽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요구하는 무지막지한 자료 요청에..
이즈음 집단지성이란 말을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유행어였는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 사회의 큰 에너지로 작동한 집단지성이 왜 이렇게 쪼그라든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집단지성은 SNS 환경에서 태어났다. 손에 쥔 개별화한 디지털 기기로 세상에 참여해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마셜 매클루언에 따르면 모바일이라는 새 미디어는 개인의 발견이다. 객체가 아닌 주체, 수동이 아닌 능동. 주체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걸러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집단지성은 사회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통해 간선이라는 과두 체제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송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