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 백악관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트럼프 2기 정부의 4년 단위 대외전략을 규정한 최고 문서로서, 그에 따라 국방전략(NDS)과 합참 군사전략(NMS) 등 각급 기획문서와 연례 국방예산 등 보고서가 작성된다. 이번 NSS는 2022년 발표된 바이든 정부나 2017년의 트럼프 1기 정부 보고서에 비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가 극도로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NSS에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원칙으로 국가이익, 힘을 통한 평화, 불간섭주의, 세력균형 등을 열거하고 있고, 대규모 이민의 종식, 자국의 핵심권리 보호, 방위비 분담 및 전환, 경제안보 등을 우선적 과업으로 제시한다. 지역별 전략으로는 중남미 국가에 대해 19세기 먼로독트린의 ‘트럼프 추론’(Trump Corollary)이라면서 국경안보 차원에서 강압 외교를 정당화하고, 유럽에 대해서는 역내 및 대러시아 관계 안정화, 방위책임 제고, 시장 개방 등을 통한 위상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 종래의 NSS가 중국의 경제·군사적 위협과 그에 대한 강력 대응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 대중국 전략은 조금 모호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와 재균형(rebalan
지난 12월 9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는 가평군에서 ‘육아·돌봄 자립마을’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 중 하나는 '맘카페를 통해 살펴 본 육아·돌봄의 어려움들'이었고, 발제문에는 1주일간 맘카페의 회원들에게서 받은 가평군에서의 육아의 어려움들이 담겨 있었다. 발제를 한 채선미 대표(가평토종씨드림)는 제기된 내용들을 행정 서비스 부족, 시설 부족, 불공정의 세 범주로 나눠 분류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내용이 어린이를 위한 시설의 부족이었다. 산부인과, 소아과, 소아치과 병(의)원 시설이 없다는 점을 비롯해 인근 화천과 포천에는 있는 지자체 직영 온종일 초등학생 사교육 대체 교육·보육 시설이 필요함을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과 체육공원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없고, 있어도 가평읍에 집중되는 불균등한 행정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발제자는 자신의 딸을 유·초·중·고 가평군에서 기른 사람으로서 자신이 아이를 기르면서 느꼈던 어려움들, 제기했던 문제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인 사실에 크게 개탄하며 이로 인한 가평군 유소년 인구의 감소를 데이터로 제시했다. 2020년 10월 기준 0세~4세의 인구와 5년 뒤인 2025년 10
이십여년 전 필자가 철도노조에서 전임자로 일할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거대한 중량물이 고속으로 내달리는 철도현장은 한 해에 20~30명의 순직자가 발생하던 살벌한 현장이었다. 철도노조 산업안전국장을 역임한 2002년 석달 남짓 동안 나는 순직조합원 장례식에 8번이나 찾아가야 했다. 처절했다. 선로를 보수하던 조합원이 열차에 치이고, 열차를 떼고 붙이던 조합원은 끼이고,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철도노조를 100년만에 민주노조로 바꾸고 의욕에 넘쳐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가만 있었을리 없다. 서울역사를 검은 천으로 뒤덮고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했다. 그때 철도노조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가 현재 고용노동부를 맡고 있는 김영훈장관이다. 우리는 절절한 심정으로 순직사고에 매달렸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만치 김영훈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산업재해 현장을 찾으며 산재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박수를 보낸다. 그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만큼은 뚜렷이 감소시켰다는 족적을 남기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갖은 대책을 수립하고 감독을 강화하는데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는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얼마전 청도역 인근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중령계급이었다. 비교적 낮은 계급이었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나치 수뇌부를 재판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실무 책임자였기에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점령한 지역마다 수거(?)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유럽 전역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수용소로 이송되어 차례대로 가스실에 들어가 학살되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적합한 수용소로 그들을 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작성해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전후 당연히 체포되었어야 할 그는 사라져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15년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끈질김으로 무장한 이스라엘판 국정원이 모사드에 걸려 1960년 체포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전범 재판에 넘겨졌다. 마침 히틀러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연구 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에서 법정 취재기를 청탁받고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아이히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렌트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왔다. 농업 혁명은 사냥꾼을 농부로, 산업 혁명은 장인을 공장 노동자로 변화시켰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는 우리를 또 다른 전환점으로 데려다놓고 있다.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서부터 복잡한 인지와 판단 영역까지 AI가 담당하게 되면서, 우리는 ‘노동’ 그 자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시간과 노력, 생산량으로 노동을 측정했지만,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의 가치는 더 이상 단순히 ‘일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사회적 의미는 무엇에 기여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전통적 노동 개념은 ‘몇 시간 일했는가’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라는 기준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러한 기준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반복적 업무와 계산적 판단은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그 위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따라서 기여 중심의 패러다임은 노동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시간 단위 임금에서 성과와 영향력 중심의 보상으로, 단순 기술 숙련에서 창의성과 공감 능력, 복합적 문제 해결 역량으로, 업무량에서…
지난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 신임 차관에 강형석 농업혁신정책실장을 지명했다. 연합뉴스는 ‘농업·농촌 전 분야 정책 경험이 풍부하고 현상 분석과 대책 수립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대부분 언론은 농식품부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농업 현장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속가능한 농산어촌' 구축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의 발표 내용도 빼놓지 않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혁신적인 정책통이라고 치켜세웠다. 반년이 지난 12월 8일. 서울신문은 “관가를 뒤흔드는 ‘투서 포비아’···농림차관 경질 뒷말 무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대통령이 3일 전 강 차관을 전격 면직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시간대별로 추적해 보면, 그 보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한눈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신문은 강 전 차관 면직에 대해 다른 언론보다 다각도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기사는 저널리즘 윈칙을 크게 벗어났다. 무엇보다 기사 내용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관가의 분위기보다는 그가 왜 새 정
여덟 살일까요, 아홉 살일까요. 책가방을 등에 멘 사내아이가 무인카페 안으로 들어옵니다. 잠시 둘러보더니 자판기에 카드를 밀어 넣습니다. 그러곤 버튼을 눌러 메뉴를 선택합니다. 계산을 마친 자판기가 카드를 뱉어냅니다. 뱉어낸 카드를 아이가 갈무리합니다. 아이의 눈길이 다시 자판기로 향합니다. 갸웃거리는 게 무언가 망설이는 눈치입니다. 주춤주춤, 아이의 손끝이 자판기 어디론가 향합니다. 아마도 얼음이 든 음료가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버튼을 누르자 자판기에서 얼음이 쏟아집니다. 먼저 컵을 놓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아이는 몰랐습니다. 손바닥으로 얼음을 받아 보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와르르, 밀려 내려온 얼음 알갱이가 가게 바닥에 나뒹굽니다. 놀란 아이의 표정도 함께 나뒹굽니다. 이런 걸 엎친 데 덮친다고 하는 걸까요. 놀리기라도 하듯, 이번엔 음료수가 얼음 위로 쏟아집니다. 종이컵에 담겨야 할 음료수가 철철 쏟아져 가게 바닥을 흥건히 적십니다. 아이는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갑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아이의 모습은 가게 안 CCTV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떠났다고 떠난 게 아니듯, 보인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대로 움직
겨울밤, 손끝이 시려올 때면 프랑스 사람들은 뱅쇼 한 잔을 찾습니다. 레드 와인에 오렌지와 계피, 정향을 넣어 따끈하게 데워 마시는 겨울의 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김 오르는 컵을 손에 꼭 쥐고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겨울의 낭만입니다. 하지만 낭만이 꼭 유럽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추위뿐 아니라 마음까지 녹여주는 겨울의 ‘위로주(慰勞酒)’가 있으니까요. 바로 전주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온 모주(母酒)입니다. 모주라는 이름은 분명 ‘술’이지만, 실제로는 알코올을 충분히 증발시킨 따뜻한 약차에 가깝습니다. 막걸리에 대추, 생강, 계피, 감초 등 약재를 넣어 오랜 시간 달이면, 도수는 낮아지고 풍미는 더욱 깊어잡나다. 추운 날 한 모금만 마셔도 속이 편안해지고 몸의 긴장이 천천히 풀어지지요. 전주 콩나물국밥집에서 해장술이 아닌 ‘해장 음료’로 모주 한 잔을 내는 풍경이 익숙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주의 유래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술을 지나치게 좋아해 건강이 상했던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막걸리를 오래 끓여 알코올은 줄이고 약재의 효능을 채워 건넸다는
내게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 올라보는 것이다. 케냐와 국경을 접한 아루샤 지역에서 멀지 않은 이 산은 세 개의 주요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고산 트레킹이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인간이 킬리만자로를 처음 등반 한 것은 1889년. 최고봉인 우후루(Uhuru)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 뷰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산기슭에는 적도 열대우림이 울창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아프리카의 지붕으로 불리는 이 산은 수백만 년에 걸쳐 전설과 위대한 탐험가들의 모험, 그리고 놀라운 자연 변화를 목격해 왔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1860년 채택된 스페인어와 영어, 프랑스어 표기로 현지 사람들은 다르게 부른다. 마아(Maa)어로는 ‘올 도이뇨 오이보르(Ol Doinyo Oibor)’, 그 의미는 ‘하얀 산’이다. 스와힐리어로는 ‘킬리 은자로(Kilima Njaro)’ 즉, ‘빛나는 언덕’이란 뜻이다. 요한 루트비히 크라프 같은 19세기 탐험가들에게 이 산은 ‘화려한 산’ 또는 ‘빛나는 산’과 동의어였다. 킬리만자로에는 흑백 콜로부스 원숭이, 코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라고 물었다. 나는 과학자라고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도 과학자, 발명가, 우주비행사, 심지어는 대통령 등등… 선생님은 이번에는 공부 좀 한다는 녀석에게 다가가 “꿈이 뭐냐”라고 물었다. 공부깨나 하는 녀석의 대답이다.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면 선생질이나 해야죠 뭐” 그날 그 녀석은 엉금엉금 기어서 집에 갔다. 시인이네, 책이네, 공부네 하면 별 흥미가 없는 사회 분위기라서 유머라도 한 토막하고 넘어가고자 써본 글발이다. 이희승 씨는 '독서와 인생'이란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일반적으로 책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 때문이랄까, 울며 겨자 먹기로 교과서를 파고들지만, 일단 졸업이란 영예의 관문을 돌파한 다음에는 대개 책과는 인연이 멀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옛말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서 가시가 돋친다. (一日不讀書 口中生刺)!라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은 하루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문제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 경쟁이 극심한 마당에서는 하루만큼 낙오가 되어, 열패자(劣敗者)의 고배(苦杯)와 비운을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