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지난 13일 오전 발생한 ‘이천 부발읍 물류센터 화재’ 사고는 대응 2단계가 발령될 정도로 큰 화재였으나,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비록 100억 원대의 안타까운 물적 피해가 예상되지만, 물류창고 화재로 대형 참사를 여러 차례 겪은 경기도로서는 실로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화재가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된 것은 충분한 안전 교육, 경보장치 정상작동 등이 요인이었다니,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하는 교훈이 만만찮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13일 오전 10시 29분쯤 발생했다. 대응 2단계가 발령됐고 소방헬기까지 투입될 정도로 화재 규모가 컸지만, 현장에 있던 관계자 178명이 모두 신속하게 대피해 인명피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선 현장에서는 소방장비가 정상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대부분 대피가 완료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초 신고자가 주변 인원들의 대피를 적절히 유도한 점도 피해를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발생 시 당황해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물류창고에서는 신속한 대피가 이뤄졌다”며 “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탄 적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롤러코스터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순한 기구인데도 추락하는 느낌이 주는 공포감은 대단했다. 문제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릴 때라 보호자 동반으로만 탑승할 수 있었는데 계속 “한번 더”를 외치는 아이들 때문에 세 번 연속 타고나니 나중에는 현기증과 함께 구토가 올라왔다. 짜릿함을 넘어선 공포감을 내 신체가 격렬히 거부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런 롤러코스터류의 놀이기구를 타지 않는다. 반복되는 공포는 더 이상 내게 놀이가 아니라 고통이었다. 대선레이스로 거리가 시끄럽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붉은 색 옷을 입은 운동원들이 자극적 언어로 상대후보를 비방하고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뱃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어? 왜 이러지?” 나는 몰랐다. 그들의 발언에 내 신체가 나도 모르게 발작하는 줄을.. 가만히 추스르며 깨달았다. 작년 12월3일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다.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군대의 진입, 시민들의 저항과 탄핵정국, 극우세력과 종교집단의 준동, 대통령 구속과 법원난동, 탄핵인용과 윤석열 석방, 그리고 대선과 대법원의 개입, 집권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는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 시절의 주전 포수였다. 그는 18년의 선수 생활을 하면서 팀을 월드시리즈 10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15년을 올스타에 선발되는 등 양키스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선수를 은퇴한 뒤 뉴욕 메츠의 감독시절 선두 팀과 9.5게임의 차이로 뒤져 따라잡기가 불가능해 보일 때 그가 했던 이 말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모두가 포기하고자 하는 순간,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라고 그는 마침내 역전시키어 뉴욕 메츠를 리그 우승에 올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로 이보다 더 강력한 명언은 없을 것이다.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연속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한밤중의 비상계엄이 발동되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내란을 옹호하는 국회의원들과 이를 지지하는 듯한 논조의 언론들과 지지 세력이 등장하고, 사보타지하듯 사사건건이 국정을 핑계로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며 정국을 안개 속으로 몰고 가는 고위 행정관료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구속된 내란 수괴를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21대 대선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제21대 대통령선거 10대 정책공약’ 가운데 1호로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을 내세웠다. AI를 비롯한 신산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K-콘텐츠 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빅5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경기신문 13일자 3면, ‘주요 대권주자 10대 정책공약 3파전 불꽃대결’)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AI 3대 강국으로 도약 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미래 첨단산업 분야는 과거와 달리 엄청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한 국부 펀드 형태의 ‘케이 인비디아 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AI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겠다면서 “정부가 민간 투자 마중물이 되어 AI 관련 예산을 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증액”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민간 투자 등을 통해 100조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고성능 GPU 5만개 이상 확보 및 국가 AI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조성 ▲K-컬쳐 수출 50조원 달성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한 ‘AI 고속도로’ 구축 ▲전 국민이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모두의 AI’
12·3 내란 이후 반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곤두박질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내란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전두환 쿠데타 이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유행했다. 근래의 상황이 전두환 시절을 소환할 정도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계엄선포-국회 대통령 탄핵안 부결(2024.12.7)-탄핵안 가결(2024.12.14)-헌법재판소 대통령 파면(2025.4.4)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탄핵 인용되고 21대 대통령 선거 일정이 확정돼 표류하던 대한민국호는 예측 가능한 항로에 진입하는 듯했다. 그러나 5월 첫날부터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까지 지난 십여 일 동안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진원은 5월 1일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대법원 상고심 선고였다. 대법원은 TV 생중계까지 허용하면서 유죄 취지로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공직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는 일반인과 다르다”고 그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재판과 달리 전원일치가 아니었다. 임명권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울컥하고 꺼낸 글이 시가 되었다. 논문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시(時)라니? 나는 내가 시를 쓰리라 상상을 못 했다. 돈 안되는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딱히 그럴듯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한 건 시를 썼으므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했던 시가 이제는 나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두 권의 시집을 냈고, 문학상도 받았다. 처음 시를 쓸 때 감정을 표현하는데 급했다면 지금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 세상을 보려고 한다. 시와 정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시와 정치는 관계가 있다. 나는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부패하고 멍청한 사람과, 영리하게 이익을 취하면서 나라를 위한다는 정치인을 보았다. 권력이 부패하면 시가 깨끗해진다는 글이 생각난다. 나는 가끔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시적 매력보다 시대에 맞서는 용기가 부러웠다. 그러한 용기가 없기에 나의 시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기에 나의 마음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듯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진실을 찬미하고 거짓을…
양력 5월 3일은 내자가 환갑을 맞는 생일이다. 황금연휴와 겹친 환갑 기념으로 애초 우리는 해외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었고, 그 속도에 맞추어 우리는 계획을 접고, 마음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통영의 절해고도의 외딴섬, 두미도. 누군가의 고향이었고, 나에게는 오래된 그리움의 이름이다. 두미도행 카페리 여객선은 하루 두 번, 단 한 척. 특히 연휴에는 선착장 앞이 마치 드라마 속 장면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새벽 4시, 터미널 문 앞에 선 우리의 그림자. 정원 제한으로 “섬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열리자마자 전력 질주. 내가 달리니 낯선 이들이 덩달아 따라 뛰어오던 그 순간, 어쩌면 우리가 정말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함께 배를 타게 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달렸느냐고 물어보니 내가 달리니 영문도 모르고 같이 막 달렸다고 한다. 섬의 옛 학교, 지금은 연수원으로 변신한 그곳 운동장 한편에 텐트를 폈다. 바다를 향해 피칭한 그 순간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성소 같았다. 하지만 여행이 늘 그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순응을 요구하지 않았다. 돌풍.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