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번호로 불립니다.교도소에 수감된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싱어게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 의도는 이렇습니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 쉽게 말하자면, 무명 가수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경연 프로그램입니다. 시청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는데, 코로나 여파로 새로운 시즌이 최근에야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싱어게인 4’입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을 알리려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시즌에 출연한 이름 모를 가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니까요. 그녀의 이름은 ‘18호’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은 이름 대신 각자에게 주어진 번호로 불립니다. 우스갯소리로라도 오징어게임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징어게임에 참여한 사람처럼 게임에 졌다고 해서 목숨을 잃는 건 아니니까요. 다음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출연자는 번호에 가려졌던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프로그램을 하차하면 그만입니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 출연한 18호 가수는 1라운드를 통과했습니다. 모든 심사위원이 ‘AGAIN’ 버튼을 눌렀으니 근사한 출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연 프로
어느날 종아리의 통증으로 내원한 94세인 할아버님을 처음뵙고는 몹시 놀랐다. 왜냐하면 얼굴, 표정과 신체의 활력이 70살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활기찬 표정으로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치료를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치료를 하며 정말 궁금해져 물었다 “정말 20년은 젊어보이세요, 어르신.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 것 같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비결이라면 타고났겠지요. 하지만 난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것 오래 담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풀고. 남에게 베풀려고 해요”라고 말하였다. 그러고는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셨다. 93세에 무릎이 아파서 내원하신 할머님도 인상적이었다. 화사한 인상의 고운피부. 체육교사로 교직생활을 하여 운동을 좋아하였다는 그녀는 즐겁게 교직생활을 마쳤다. 그녀는 소화기가 약했기에 항상 음식을 한식위주로 소식하였다. 어렸을 때 병약해서 침도 자주맞고 약도 자주먹었는데 평생 경옥고를 먹으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꾸준히 먹는다는 말을 하였다. 경옥고는 소화흡수가 잘되는 성장, 갱년기 장애, 병후회복 등에 적용하는 고약형태의 한약이다. 할머님은 치료를 마칠 즈음 뜨개질로 직접 덧버선을 만들어주시기까지 하였다. 이런 분들을 뵐…
지난 3월 정부는 글로벌 최우수 인재 유치를 통한 첨단 산업 지원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탑티어(Top-Tier) 비자, 청년드림 비자 등을 통해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본격화하겠다는 것, 광역비자, 비자·체류정책 제안제 등을 통해 지역과 산업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겠다는 것, 이민자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반영하여 사회통합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겠다는 것, 국민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및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 전반에서 인재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각국의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청년 인력이 감소하고 있고, AI·로봇·자동차 등 첨단 산업의 발전 속도를 기존 교육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해당 분야의 인재 배출 속도가 늦어지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들은 자국 내 인재 양성과 더불어 해외 우수 인재 유치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숙련 인력을 대상으로 한 점수제 출입국 제도를 도입하고, 2022년부터 세계 명문대학 졸업자를 위한 고급 인재 비자를 시행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우수한 인재이자 리더에게 주어지는
극장가에 돌연변이 흥행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건 그다지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흥행 돌풍을 연달아 일으키고 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귀멸)은 그렇다고 치자, 분위기이다. 그건 그래도 서사(스토리)라는 것이 있고 등장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비교적 뚜렷하며 캐릭터 간의 관계가 그나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귀멸’은 10월 23일 현재 600만 명 안팎의 관객을 모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문제는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며,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저패니메이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라 명명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하고 작품의 분위기나 정서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르다가 아니라 무엇인지 개념화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하 체인소 맨)이란 애니가 있다.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주인공 머리에서 전기톱이 튀어나온다는 건데, 그래서 주인공이 ‘체인소 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판타지에 국내 젊은 관객들이 현재 230만 명이나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대체 무슨 트렌드인가.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공기가 달라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열면 남은 여름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바람 끝에 서늘함이 묻어난다. 거리의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출근길엔 연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쉬는 중이다. 연휴가 끝난 뒤 찾아오는 묘한 공허감, 그리고 다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 잠시 멈추어 쉬었을 뿐인데, 세상은 나만 빼고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쉬는 일조차 조급하게 했나 보다. 푹 쉬었으니 이제는 다시 달려야 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쉰다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일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숨 고르기 아닐까. 돌이켜보면, ‘쉼’이라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쉬는 시간에도 다음 일을 준비하던 습관이 몸에 밴 채로 어른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계획이 없으면 조급해졌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삶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바쁘게 달리던 말도 잠시 쉬어야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럴…
시를 공부한다는 여성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카페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어서 그는 수필을 공부하고 싶어 꼭 두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느낌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풋풋한 야성(野性) 같은 감성이었다. 가을이 되면 강의실도 뭔가 달라져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요를 한 곡 불러주기도 하고 악보를 나눠주면서 같이 부르며 가을날의 정서를 강의실에 담아내곤 한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 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 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 소리… ” 나는 이 노래 가사에 마음이 끌려 부르게 되었다. 작사가(김지평)의 마음과 내 마음이 포개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지리산을 의무적인 과업으로 알고 오르내리면서도 통나무집 창가에서 밤을 새우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숨어 우는 목소리 같은 바람소리며 젊은 날의 그녀 얼굴이 주름진 내 가슴에 안기는 듯해서 좋았다. 그러한 가슴과 눈빛으로 갈대의 몸동작을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고 내리면 또 생각나는 일들이 있었다. 마당가에 첫서리가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가 끝났다. 사실 1945년 10월에는 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창립됐고, 김일성은 그 직후 평양 군중대회에서 첫 대중연설을 한 뒤 연말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이듬해 초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북한의 지도자로 커갔다. 조선노동당은 그 뒤 1949년 6월 조선공산당의 후신인 남로당과 합병 창립됐다. 노동당은 북한의 헌법과 당규약을 통해 국가의 모든 활동과 군의 모든 정치군사활동을 영도한다. 잘 알려진 대로 1990년대 경제위기 때 선군정치 체제에서는 군이 앞장서기도 했지만, 2011년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대회 등 당기구가 정상 운영되면서 그 위상이 회복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달 9일 북한의 노동신문·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은 당의 영도를 강조하면서 군이 “무한히 충직한 최정예강군”이 될 것을 요구했다. 이번 당 창건 기념행사에서 내외의 이목을 집중한 것은 역시 10일 심야에 펼쳐진 열병식이었다. 김정은은 행사 축하차 방북한 중국의 리창 총리,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또 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 등과 나란히 섰고, 이는 북한의 요즘 국제 위상과 지향성
내 집 주소의 도로명은 ‘태봉안길’이다. 이때 ‘안길’의 의미를 귀촌인인 나는 잘 몰랐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예전 지게 지고 다니던 좁은 길이 소유자의 동의로 보상 없이 넓어진 길이다.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가지만, 그 비약적 확대는 1970~8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다. 새마을노래 2절 가사에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나오는 이유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함께 농사를 짓던 시대였으니 마치 논물을 같이 쓰듯이 마을 길을 공공사업으로 만들겠다는 공동체와 정부의 요구를 당시 땅 소유주들이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태봉안길’은 ‘태봉마을’의 ‘안길’ 즉 예전 논밭 지겟길이 차나 트랙터가 다니는 길로 바뀐 길이다. 이렇게 사유지가 공공 도로로 사용되는 길이 이른바 ‘마을안길’, ‘비법정도로’, ‘사실상 도로(현황도로)’, ‘미지급용지(미불용지)’ 등으로 불리는 길이고 새마을운동이 휩쓴 전국 농산어촌에 엄청나게 산재해 있다. 그렇게 40~50년 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무료로 내놓은 길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의 집을 짓지도,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숱하게 이 길을 이용하면서도 한번 사용료를 낸 적도 없으니, 길을 다닐 때마다 지금은
“아빠, 전세계에서 전쟁이 터질 것 같애” 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들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20대 후반인 아들이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요즘 온통 전쟁위기란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도 그렇고, 중국이 대만을 곧 침공할 것이라 하고요. 지금 미국 안에서도 난리가 아니잖아요. 북한도 요즘 심상찮데요. 아.. 난 아직 동원예비군인데..” 한참을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급발진하는 청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것이 능사일까? 문제는 더 위험해지는 세계를 공포로만 대하지 않고 원인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할텐데 말이다. 역사적으로 극우파시즘은 공포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쓰러진다. 내가 보기에 정작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쟁을 대하는 반지성주의이다. 트럼프가 방위비를 GDP대비 5%까지 올리라고 압박하면서 K-방산이 호황이란다. 여기에서 돌아보자. 전쟁위기가 커질수록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군수산업이다. 그중에서도 국방예산에 관해선 압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 가장 큰 파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25년 미국의…
최근 연일 뉴스를 도배하는 나라는 단연 캄보디아이다. 대학생 납치와 감금 그리고 고문사라는 끔찍한 뉴스와 영화 범죄도시에 등장하는 내용이 그대로 전개되는 나라란다. 지난주 토요일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한국인 범죄혐의자 64명이 특별기편으로 강제 귀국 되어 경찰에 수감되었다. 대부분 보이스피싱 조직과 마약 네트워크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갑자기 캄보디아가 동남아 조직범죄의 온상이 되었는가. TV의 탐사보도 프로에서는 벌써 몇 차례에 걸쳐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에 연루된 한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방영되었다. 손쉬운 돈벌이 유혹에 넘어간 절박한 청년들이 캄보디아에 입국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범죄조직에 강제되어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조를 바라는 간절한 내용이었다. 방송을 본 대부분의 국민은 앙코르와트의 유적과 가난하지만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캄보디아에서 어쩌다 저런 일이 발생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15세기까지 동남아시아의 패권 국가였던 크메르제국은 태국과 베트남의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하다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지를 겪고 2차 대전 이후 캄보디아로 해방되었다. 1975년에는 악명 높은 폴포트의 크메르루주라는 공산정권이 집권해 유명한 킬링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