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느새 만추에 접어들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 야트막한 흙돌담을 걷는다. 그리고 흙돌담 너머 저만치 장독대가 보인다. 나란히 줄 세워 앉혀 놓은 항아리마다 시간이 익어간다. 뜨락에 항아리가 놓인 것을 보면 왜 그런지 마음이 고향 집에 있는 듯하다. 어릴 적에 보았던 어머니의 장독대는 뒤란에 있었다. 큰 배불뚝이 소금 항아리에서부터 조그맣고 예쁜 항아리까지 반질반질했다, 얼마나 닦고 관리를 잘했으면 그토록 윤기가 났는지 항상 정갈한 장독대였다. 가을에 콩을 수확해 타작을 하고, 가마솥에 콩이 뭉근하게 익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익은 콩을 꺼내 큰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들고 집안에서 냄새나게 띄워 겨울을 보냈다. 음력 정월이면 장을 담그고 갈무리하여 숙성하면 깊고 맛있는 간장과 된장이 되었다. 고추장은 해마다 담그는데 김장 다 해놓고 가을 끝에 했다. 나는 어떻게 살다 보니 한 집에서만 26년을 살았다. 그저 교통 좋고 호수와 공원이 있고, 광교산 등산하기가 좋았다. 파장 시장(작년부터 북수원 시장으로 명칭 바뀜)도 가깝고 대형 마트, 병원, 학교 등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처음에는 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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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골목상권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최근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골목상권이 점점더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달부터 시장상권영향분석시스템을 운영하고 도지사 공약사항인 ‘지역 상권 활성화’를 본격 추진할 예정이라니 기대 또한 크다. 사실 대기업의 상권 잠식이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골목을 무대로 소상공업을 통해 먹고살던 서민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구멍가게는 모두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음식점들도 이제는 프랜차이즈 깃발을 걸지 않을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대형 상권은 물론 골목상권까지 공룡 대기업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떡볶이, 순대를 파는 프랜차이즈 형태까지 생겨나 동네 점포들을 위협하고 있고, 김밥집이나 라면집도 단독 점포 운영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수년 안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모든 점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정부가 그 동안 골목상권 수호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중단할 수는 없다. 서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골목상권…
약 2개월 전 휴가를 나온 병사 윤창호 씨가 부산 해운대 한 건널목 인도에 서 있다가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에 치어 의식불명이 됐다 그리고 9일 끝내 사망했다. 고인이 명복을 빌며 유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원칙을 지키는 법조인’이 꿈이었다는 그는 제대를 불과 4개월 남겨 놓은 채 ‘원칙을 지키지 않은 음주운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그의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처벌 강화 청원을 올렸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청원인은 “제 친구들은 만취해 운전대를 잡은 인간 하나 때문에 한 명은 죽음의 문 앞에, 한 명은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며 “하체가 으스러진 고통 속에서도 현역 군인 윤 씨의 친구 C는 친구가 피범벅이 돼 간질 환자처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기어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해자 측과 동승자 모두 아직까지 사과조차 하러 오지 않고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은 상태”라고 분개했다. 이 청원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청원이 시작된 10월2일부터 마감된 11월1
“관점을 바꾸고, 틀을 깨고 나와서 틀 밖에서 바라보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부분에 관심 가져야 한다.” ‘관점 디자이너’로 알려진 박용후 씨의 외침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번역 오류부터 살펴보자. 인문학은 영어로 휴머니티스(Humanities)다. ‘후마니타스’라는 경희대학교의 인문학 양성과정이 있는데, 휴머니티스는 인간적인 특성의 이상을 실천하려는 실천적 교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은 인간적인 특성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배경이 되는 기술 관련 연구가 바탕에 깔려있다. 서강대의 아트&테크놀로지 학과나 전국의 과기대와 대전에 있는 CT센터에 더 가깝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로 번역되는데, ‘인간적 자유를 향한 진보적인 삶의 예술’로 해석 가능하다. 줄여서 자유로움의 기술이다. 이는 기계를 생명체로 보는 애니미즘적인 철학을 가졌던 인공지능의 아버지 ‘마빈 민스…
4차 산업혁명이 화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의 약진으로 우리 생활은 풍요롭게 변한다는 전망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이에 따라 수십 년 내 현재 직업이 과반수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맞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계도 세계적인 추세인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계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담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교육 강화가 그것이다. 교육은 현재보다 미래 세대 학생들이 변화된 세상과 삶의 방식에 대비한 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미래 시대에 맞는 다양한 역량 등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학교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학습 개념과 지도 원리, 수업 방법과 평가 방식 등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 등은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역량 교육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이찬승의 지적대로 ‘지식과 역량을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에만 머물고 이의
감귤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8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과 스페인 일본 연구진이 세계 감귤류 60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히말라야 남동쪽인 인도 북동부와 미얀마 북부, 중국 남동부가 원산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후 감귤은 서양으로 건너가 ‘만다린(mandarin)’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학자들은 비슷한 명칭인 탠저린(tangerin)을 포함해 감귤, 오렌지, 자몽 등 즙이 풍부한 과일을 ‘시트러스(citrus)’라고 통칭한다. ‘남쪽의 귤이 북쪽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뜻의 귤화위지(橘化爲枳) 또는 남귤북지(南橘北枳) 등의 고사에서 보듯 감귤은 산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 과일이다. 아열대 기후인 제주에선 조선시대에도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제대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귤은 바나나와 함께 고급과일에 속했다. 80년대 감귤이 계속 증산되고 맛까지 좋아지면서 ‘국민 과일’이 됐다. 비타민C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는 지금의 제주 감귤 품종은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귤’이다. 원산지가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라는 의미다. 맛과 향도 일본으로 역수출 할 정도로 좋아졌다
현대인들은 가정·사회·학교 등 마주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느껴지는 분노감정을 어떻게 배출할 곳도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 쌓여 있다가 행동으로 폭발된다. 최근에는 미국, 일본 등에서 운영한 ‘스트레스 해소 방’이 서울 홍익대 근처에 개장하여 ‘분노의 방’으로 20·30세대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 사회적 요인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현대인들은 분노조절장애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게임 방에서 사소한 시비로 사람을 살해하고, 흉기를 들고 도심 번화가를 활보하면서 손에 든 흉기로 주차된 차량의 타이어를 펑크 내는가 하면, 최근 직원폭행 및 동물학대 등으로 SNS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인들까지 ‘분노’가 난무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사건 중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 범죄나 현실불만 관련으로 저지른 사건이 39.1%로 하루에 1건 꼴로 발생되고 있다는 집계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 분노가 오를 때 나타나는 감정의 사인이 얼굴에서 눈썹과 눈에서 제일 먼저 드러난다. 분노가 오를 때 눈빛
괜찮아, 란 말 /박라연 고요는 습자지처럼 얇아서 입이 없어서 안으로만 지는 쪽으로만 뿌리를 뻗는 걸까요? 안 보일 만큼 넓고 깊은 보폭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비위가 두터워서 입이 많아서 바깥으로만 적이 되면서까지 이기는 쪽으로 뻗었을까요? 그 짧은 생의 목도리로요 고요와 목도리는 괜찮지 못한 만큼 괜찮아,를 되뇌었을까요? 오늘은 물어보고 싶습니다 괜찮지 못한 그 많은 시간들을 어디로 데려다줬는지 문득 시인은 자신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습자지처럼 얇고 입조차 없어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 색과 온도, 무게와 밀도도 가늠할 수 없는, 이 형체-없는 ‘무엇’이 자꾸만 시인의 내면으로 밀려온다.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고, 멈춰 서서 돌아봐도 늪처럼 술렁거린다. 까닭 없는 울음일까, 손에 잡히지 않은 기억의 먼 곳들일까. 내부로부터 시작해, 다시 모든 내부로 회귀하는 그것은, “안 보일 만큼 넓고 깊은 보폭”으로 혈관과 근육, 또한 뼈의 마디와 부드러운 이마를 돌아 몸 전체를 감싸버리고 만다. 급기야 그는 “비위가 두터워서 입이 많아서/ 바깥으로만/ 적이 되면서까지 이기는 쪽으로 뻗었&rdqu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운 단풍잎을 떨구는 나무는 모든 것을 땅으로 돌려주고 앙상한 몰골로 남아 겨울을 준비한다. 식물들이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월동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쌀 한 가마와 연탄 오백 장을 재어 놓으면 든든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전화만 하면 배달해 주는 난방유나 도시가스가 있어 연료 걱정은 별로 안 하고 산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주어진 김장은 김장증후군이라는 말을 낳기도 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 때도 겨울의 문턱이었다. 살얼음 같던 나날이 이어지던 시집살이의 시작이 된 때가 바로 첫눈이 올 무렵이었다. 한 번은 교대역에서 전철을 타야 하는데 역까지 택시를 탔다. 내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신 택시 기사님께서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네온이 빛나는 골목길에 빨간 불빛으로 무슨 장이니 모텔이니 하는 간판으로 가득한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문고리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얼마나 손에 힘을 주었던지 나중에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였다. 결혼을 하면서도 늦은 나이라 집안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이제 급하니까 막차 탔다고 놀리기도 하고 막차를 보내면 택시가 온다는 농담으로 사또를 멋쩍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 후에도 막차는 언제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