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수원시립 아이파크미술관에서 재단법인 고은재단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가 열렸다. 한국 문화예술계로서는 마땅히 축하를 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최일남 작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김언호 한길사 대표 등 문화·출판·학계의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모였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가 축하일색만은 아니었다. 막상 수원지역 문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고은재단 설립위원회가 초대를 안 한 건지 지역문인들이 참석을 거부한 것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아무튼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지역문인단체인 수원문인협회는 이보다 이틀 전 긴급이사회를 열고 고은문학관 건립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근 추세가 개인문학관이 아닌 지역문학관인 점, 수원에 문학관이 설립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수원 출신이 아닌 고은 시인의 이름으로 문학관을 건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반대성명과 현수막 설치에도 나설 계획이란다. 고은 문학관은 기업 후원금을 비롯, 개인 후원금, 찬조금, 기부금 등 민간재원을 거둬 건축한다는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예산문제에
2015년 11월8일 개최된 오사카 이쿠노 코리아타운 축제(生野コリアタウンまつり) 2015. 지난해의 감동을 확인하기 위해 ‘코리아타운과 한류’(학부), ‘에스닉연구’(대학원) 수강학생들과 함께 다시 오사카를 찾았다. 1년을 기다린 ‘동네’ 축제인 만큼 지역의 일본인과 국적을 초월한 한민족(한국에서 온 사람들 포함)이 한나절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쿠노 코리아타운은 소수자인 이주민(한인)과 다수자인 현지인(일본인)이 함께 마을(지역)만들기에 성공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자신들의 오랜 삶터(상점가)가 대형마트의 등장 등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지역의 한국인과 일본인 상인들이 ‘합력(合力)’하여 과거 ‘조선시장’의 전통을 살려 오사카의 새 명소인 ‘코리아타운’으로 특화 발전시킨 것이다. 이미 세계는 초국적 다문화 시대이다. 세계의 여러 코리아타운을 방문한 바 있는데, 오사카 코리아타운은 세계 속의 작은 한국, 코리아타운이 지향해야 할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오사카에서도 한·일간의 정치적 어려움이…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느라 바쁘다. 태양은 갈수록 짧아지고 거리의 나무는 옷을 다 벗고 빈 가지만 남긴 채 여름내 끌어올렸던 수액을 뿌리로 당기는지 가지들이 느슨하다. 사람들은 서둘러 겨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비온 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음이 부쩍 바빠졌다. 거리에 나서면 골목이나 식당가에 김장을 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노랗게 속이 찬 배추를 갈라 소금을 뿌려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모습이 정겹다. 김장은 겨울 식량의 반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 어릴 때 김장은 마을의 큰 행사이기도 했다. 한 집이 김장을 시작하면 릴레이식으로 김장을 했다. 배추를 절였던 소금물을 받아가 다시 배추를 절이고 또 다음 사람이 김장을 시작하는 방법으로 마을 아낙네들이 김장 품앗이를 했고 김장을 거들고 오는 날에 어머니 손에 김치가 들려 있곤 했다. 우리 집 김장은 엄청났다. 식구도 많았지만 김치 양도 많았다. 항아리며 다라이 그것도 모자라 소죽솥까지 배추를 절일만한 그릇엔 배추가 담겨졌고 어머니는 밤잠을 설치며 절여지는 배추를 뒤적이며 배추가 골고루 절여지도록 도왔다. 집안에 수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다라이에 김치를 이고 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가는 행렬이 장관이었다. 동네…
“청년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 세 마디가 있다.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청년에게 고한 말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이른바 ‘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 프리터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초기에는 구속된 직장생활을 거부하고 정규직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한 젊은이들을 지칭했는데 요즘에는 경기 불황으로 인한 고용 불안이 심화되면서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청년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서도 프리터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 한다. 그나마 프리터족은 니트족에 비해선 좀 나은 편이다.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f Trainig)은 아예 일도 않고 공부나 자기계발을 하지도 않으며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로 1990년대 경제 불황에 빠졌던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 대기업 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이러한 니트족 청년이 전체인구의 1.7%인 86만명에 이른다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시인 조지훈은 술을 무척 즐겼다. 그의 이름 앞엔 항상 주성(酒聖)이란 별호가 붙어 다닐 정도였다. 또 낙주가(樂酒家)답게 술꾼의 급을 18단계로 분류한 뒤 주석을 달기도 했다. 잘 먹지 않으면 9급 부주(不酒), 마시는 것을 겁내면 8급 외주(畏酒), 마시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면 7급 민주(憫酒), 혼자 숨어서 마시면 6급 은주(隱酒), 잇속 있을 때만 한 잔 사면 5급 상주(商酒), 여자 때문에 마시면 4급 색주(色酒), 잠을 청하려 마시면 3급 수주(睡酒)라 했다. 또 술의 참맛을 알기 시작하면 1단 애주(愛酒) 혹은 주도(酒徒), 술의 참맛에 반하면 2단 기주(嗜酒) 또는 주객(酒客), 알고 즐기며 마시면 3단 탐주(耽酒) 혹은 주호(酒豪), 술에 미치면 4단 폭주(暴酒) 혹은 주광(酒狂), 그리고 주도 삼매경에 빠지면 5단 장주(長酒) 혹은 주선(酒仙), 좋은 술을 아껴 혼자 음미하면 6단 석주(惜酒) 혹은 주현(酒賢), 술과 함께 유유자적하면 7단 낙주(樂酒) 또는 주성(酒聖), 술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마실 수 없어 남이 마시는 것을 관조만 하면 8단 관주(觀酒) 혹은 주종(酒宗), 술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면 9단 폐주(廢酒) 혹은 주신(
끈질기게 웅크린 /한성희 물길 끊겨 뱃가죽 훤히 드러난 동강의 자갈 바닥 씨암탉만 한 돌멩이 하나가 막 산란하고 있다 휘어진 등으로 무수히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내는 반질반질한 등어리, 슬며시 들춰본다 구석으로 몰린 물구덩이에서 파닥거리는 여남은 마리 물고기와 개구리들 단단한 돌멩이 하나가 날개와 지느러미를 접고 뙤약볕 아래서 강을 품고 있다 수천 길 직립의 절벽에서 떨어져 나와 수만 갈래의 물길에 몸 뒤집다가 거친 물살에 몸 낮추고 강바닥이 훤해지기를 기다렸다니 제 체온으로 강의 명줄을 잇고 있다니 마른 강바닥에 끈질기게 웅크린 돌을 함부로 들춰볼 일, 아니다 둥근 등이 단호하게 땡볕을 튕겨내고 있다 - 한성희 시집 ‘푸른숲우체국장’ 침잠의 날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흐르는 물길 끊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곳을 품기 위한 사투다. 그러한 산란은 강바닥에 자리한 돌멩이도 예외일 수 없다. 휘어진 등으로 무수히 내리꽂히는 햇살마저 받아내어 반질반질해진 등어리, 수천 길 직립의 벽에서 떨어져 나와 몸을 뒤집고, 낮추고, 기어이 강바닥이 훤해지기를 기다리며 제 체온으로 강의 명줄을 잇는 끈질김까지, 그리하
우리나라에서 축구열기가 가장 높은 도시를 꼽으라면 아마도 수원시가 아닐까. 수원시에는 프로축구 1부리그인 클래식 수원삼성블루윙즈와 2부리그 챌린지 수원FC, 여자축구리그(WK리그) 수원FMC 등 3개 프로축구팀이 운영되고 있다. 또 12개 초·중·고 팀과 17개나 되는 유소년 클럽을 통해 축구 꿈나무를 키우고 있다. 국제 대회와 국가대표 A매치 경기도 자주열린다. 컨페더레이션스컵(2001년), 한·일 월드컵(2002년), 17세 이하(U-17) 청소년 월드컵(2007년) 등 FIFA 주최 3대 메이저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최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U-20 월드컵은 FIFA가 주관하는 대회 가운데 월드컵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회다. 각 대륙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24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2017년 5월20일부터 6월11일까지 총 22일간 열린다. 이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수원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FIFA 주관 4대 메이저대회를 개최하는 도시가 됐다.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도시다. FIFA가 요구하는 호텔, 병원, 메인 스타디움, 보조경기장(천연구장 4곳) 등 3가지를
날로 각박해져가는 서민들의 경제생활이 걱정이다. 국제적으로도 테러 공포 속에 경제문제가 심각하다. 경제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없는 개인생활과 국제환경 요인에 민감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선두를 달릴 수 있는 신제품개발을 위한 기술개발이 절실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산업이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 같은 기업의 획기적인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 가야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협하는 암적 요인으로 거론되는 가계부채가 올 3분기에도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민들의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24일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 잠정치를 1천166조374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편제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 규모이다. 저금리 시대에 함부로 대출을 확대한 서민들이 경제적 발목을 잡게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인 1천131조5천355억 원과 비교하면 3개월 사이에 무려 3%인 34조5천19억 원이 늘어났다. 서민들의 빛이 엄청나게 늘어난 현실이다. 1년 전인 작년 3분기 말 잔액1천56조4천415억 원과 비교하면 10.4%인 109조5천959억 원이나…
고아(孤兒)가 됐다. 나이가 들었어도 고아는 고아다. 열흘 전인 15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천국으로 가신 지 꼭 1년 6개월만이다. 늘 어머니 곁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상실감에 시달리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손주에게 큰 절을 받으셨다. 내년 2월 공과대학 졸업예정인 조카가 어렵다는 취업의 관문을 뚫고 건설회사에 입사해 UAE 아부다비로 떠나는 날이었다.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는 장면을 나는 사진도 찍었다. 근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떠나보낸 손자를 섭섭해하실 것 같아 밤 늦게까지 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게 마지막이 됐다. 조카는 아직도 할아버지의 소식을 모른다. 터키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있는 나의 아들 부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상심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며칠이 지나 우리 아들은 인터넷에 떠 있는 부음을 보고 알았다며 전화로 울면서 오히려 나를 더 걱정했다. 입관할 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도 울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제 기대고 어리광부릴 아버지 마저 저 세상으로 가시고 고아가 됐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살아 생전 잘 해드리지 못…
마스크(mask)라는 단어는 라틴어 이전의 토속어인 마스카로(maskaro)에서 유래했다. 원시인들이 동물을 사냥할 때 변장용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와선 유행성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착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로 두루 쓰인다. 평화적인 시위에 등장하는 ‘X’자 표시를 한 침묵의 마스크도 그중 하나다. 또 말을 아끼면서 소신을 굽히지 말라는 취지로 마스크를 내세우기도 한다. 1인 시위자가 예외 없이 쓰는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감추는 데 마스크가 ‘단골소재’라면 복면(覆面)은 ‘특수소재’다. 얼굴 전부 또는 일부를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 마스크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도 더 부정적이다. 특정 인물과 사물 등을 상징화해 나타낸 가면과 의미가 크게 달라서다. 특히 ‘복면강도’처럼 대개 범죄를 저지르면서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 혹은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할 때 사용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얼굴을 가리고 신분을 감춘 채 하고픈 일이란 것이 대부분 불법이거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다면 굳이 마스크와 복면의 그늘 뒤에 숨을 이유가 없는데도 이들 두 ‘페이스오프’는 시위현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