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 함박눈이 내리기도, 볕이 나기도 하며 여우둔갑을 부린다. 시베리아 찬바람이 거리를 점령하여 모두들 종종 걸음을 걷게 만든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들려오는 뉴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흉흉하기만 하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기역자 허리의 할머니가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싣고 힘겹게 움직이며 좁은 찻길을 방해한다. 폐지 값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런 할머니들이 흔하게 보여 마음이 무겁다. 근래에는 폐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길을 지나며, 매주 한 번뿐인 군청 수거차에 앞서 잡동사니들을 수거해 간다. 수년 전, 중국 북경에서 매장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뜯어낸 폐품들을 사겠다며 리어카를 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숙소인 아파트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당시 생각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도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노년층의, 빈곤과 자살은 우리사회의 심각한 이슈가 된 지 오래다. 노년의 빈곤은 젊었을 때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한 까닭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이 노후까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올해도 타오르는 촛불처럼 마지막 심지를 태우고 있다. 10여년 전 꼭 이맘때 ‘대화’라는 책을 읽었다. 수필가며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과 김재순 샘터사 고문, 법정 스님, 최인호 작가의 대담 내용을 채록한 책인데, 종교, 죽음, 사랑, 가족, 행복 등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품격 있는 대화 내용이 실려 있어 감명을 받았다. 그중엔 ‘가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 내용도 있다. 최인호 작가는 “가정이야말로 신이 주신 축복의 성소(聖所)다. 가정이 바로 교회요 수도원이고 사찰”이라며 “가정은 온갖 상처와 불만을 치유해 주는 곳”이라고 말하자 법정 스님은 이렇게 화답한다. “가족은 자식이건 남편이건 정말 몇 생의 인연으로 금생(今生)에 다시 만난 사이”라고. 대화 내용을 다시 음미하지 않아도 가정은 가족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과 애정을 제공하는 매우 귀중한 삶의 보금자리다. 고달프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며, 심신이 고통스럽고 힘들 때 안식을 주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세상에
옛날 한 젊은이가 있었다. 노모의 생신에 맞춰 돈을 모았다. 닭이라도 한 마리 푹 고아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껴 간신히 생신 전날 닭 한 마리 값을 마련했다. 기쁜 마음으로 마을 푸줏간을 찾았다. 노모를 봉양하느라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했으니 그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드디어 장터에서 사온 닭을 꺼내 놓으며 “어머니 드시기 좋게 잘 썰어주세요”라고 주문한다. 뜨거운 물에 닭을 넣고 털을 뽑은 주인장, 부엌에 가더니 큰 칼을 가져오더란다. 그런데 커도 너무 커서 젊은이가 묻는다. “아니 조그만 닭 한 마리 토막내는데 칼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그러자 그 주인장 자신 있게 말한다. “모름지기 사나이는 닭을 잡든 소를 잡든 큰 칼을 휘둘러야 하는 법이유. 그래야 폼도 나고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하니까.” 젊은이가 말릴 틈도 없이 그 주인장 칼을 휘둘렀겠다. 잠시 후, 노모의 행복한 생신상 위에 올라갈 닭은 푸줏간 도마 위에서 처참하게 으깨졌다. 그와 동시에 젊은이의 효심도 산산조각 났다. 나중에 들려오는 말은 이랬다. 푸줏간 주인장은 얼마 전까지 생선을 잘라팔던 사
평택지방해양항만청이 시민 이용도와 투자 효율성을 외면한 채 친수공간을 조성해 정부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택항만청이 평택항 내 일반인과 관광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접근조차 어려운 곳에 친수공간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현지 주민에 따르면 사전조사 분석 후에 건설계획을 수립하는 게 순리이나 항만청은 이를 무시하고 효용성이 떨어지는 곳에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문제다. 효용성과 이용도가 크게 떨어지는 곳에 친수공간 조성은 예산낭비의 전형이다. 현재 평택항 내 정유사와 석유공사 비축기지 등이 밀집된 물류기지와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곳의 관리부두 인근 노후화된 관리 부두를 친수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으로, 2014년 말까지 53억원을 투자해 친수호안 175m와 친수방파제 59m를 건설한다. 그런데 주민의견을 외면한 채 추진되는 등 사전계획 수립부터 문제가 많았다. 100여m의 관리부두에 전망대와 모래톱을 설치하고 나무와 시멘트 계단을 조성해 바닷물과 접근이 용이하도록 설계돼 있다. 특히 군부대와 석유 비축기지, 화력발전소 등 국가 보안시설이 밀집된 데다 평택시민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곳으로 접근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천 송도와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아마도 자식이나 부모, 남편이나 아내 등 가족을 잃은 슬픔일 것이다. 이에 버금가는 슬픔이 있다면 이미 몸이 늙었는데도 가족의 보살핌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신세일 듯하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데다가 노인성 질환을 비롯한 질병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지독한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을 동반한다. 이 우울증과 신병, 빈곤을 떨쳐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도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고령자 인구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으로 올해 600만명을 돌파했다. 통계청이 지난 9월30일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613만7천702명이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2.2%나 되는 것이다. 고령인구 증가 추세는 1970년 99만명대에서 2008년 500만명을 넘어섰다. 관계기관은 오는 2025년에는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책순위 앞부분에 노인문제를 올려놓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홀로 살면서 질병과 경제적인 곤란, 외로움을 겪고 있는 노인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독거노인 방문건강관리 사업’은 그래서 관심이 간다. 방문건강관리사
교황청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초대형 FTA 흐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 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WTO 각료회의를 놓고, 교황청의 UN 및 제네바주재 국제기구 담당 상주대표인 실바노 토마시 추기경이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황청의 목소리는 얼마 전 공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에서 이미 예감되었던 바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제였던 것처럼, 오늘날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돼”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는 반면,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 인간 자체가 쓰고 버려지는 소비재로 간주되고 있다. 인간이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 문화를 우리가 만들었고,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착취와 억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문제다.” 교황의 통렬한 비판과 분노는 주류경제학설에도 향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학자 혜강(惠岡) 선생이 지은 글 가운데 ‘모든 냄새 가운데 맑은 것이 좋다’는 내용이 있다. 물고기가 맑은 물을 마시며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물을 맑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상류에서 비린내 나는 생고기를 씻으면(自上流洗鮮肉) 하류에서는 비린내 나는 물을 마시면서(則魚飮腥羶之水) 비린내 나는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聞腥羶之臭). 또 상류에서 썩어 흐물흐물한 나물을 씻게 되면(在上流糜 亂蓼葉) 하류의 고기들은 더러운 물을 마시게 되며(則魚飮穢惡之水) 악취를 맡을 수박에 없는 게 물고기의 운명이기도 하다.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사람 중에도 비린내가 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해 코를 막아야 하는 이들이 상류층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 조직은 상하고 비린내 나는 냄새로 가득 차게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썩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물고기와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 지도층이란 이들이 모범을 보이는데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사회의 부패는 급속하게 진행된다. 그러니 우리가 바
그야말로 예산 전쟁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치르는 전쟁이라지만 올해 재정위기라 할 만큼 호된 악몽을 경험한 경기도의 입장에서 내년 예산은 더욱 더 어려워 보인다. 법적, 필수적 경비를 우선 반영하라는 안전행정부의 지침은 눈에도 안 들어온다. 법으로 명시하여 필수적으로 우선 반영해야하는 시·군 재정보전금이나 경기도교육청 법정전출금도 편성과정에서 일부 반영시키지 못했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산하기관에 대한 출연금도 대폭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랐다. 방만한 경영을 하는 산하기관에 대한 예산의 제재는 당연하다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의 자금줄인 경기신용보증재단 출연금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구경조차하기 힘들게 생겼다. 고금리 사금융의 피해로부터 저신용자를 구원해줄 마지막 희망인 햇살론은 경기도가 출연한 만큼 중앙정부도 그에 맞게 매칭을 해주는데, 이 자금마저 경기도는 편성을 주저하고 있다. 어쩌다 경기도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도 집행부를 향해 어려워진 예산 사정에 대해 그 이유를 물어보면 매번 똑같은 답변만 돌아온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부족과 늘어나는 복지비 때문이라고. 그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독일의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9년 -5.1%의 GDP성장을 기록했던 독일경제가 이듬해 5.4%의 성장을 기록했고 2011년에는 3%의 성장을 이루었다. 금년에는 1%대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유로존의 위기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라 할 수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막대한 통일비용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대기업의 해외이전 등으로 한때 13%를 넘는 실업률을 기록한 바 있다. 위기에 처한 독일은 2002년부터 하르츠(Hartz) 개혁을 실시했다. 폭스바겐자동차의 하르츠 회장은 경제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일에 나섰다. 복지혜택을 축소시키는 대신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갔다. 10년간 고통스럽게 보낸 독일은 2010년 100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고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동반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 결과, 특히 16∼24세의 청년실업률 감소가 주목할 만하다. 2008년 7월부터 금년 6월까지 유럽의 청년실업률은 그리스·스페인의 경우 20%에서 5
막걸리에 소주를 조심스레 따르면 위로 맑게 떠오른다. 18세기 선비들은 이를 혼돈주(混沌酒) 혹은 자중홍(自中紅)이라 부르며 즐겼다고 한다. 혼돈주는 당시 대표적인 문인 석치(石癡) 정철조(鄭喆祚·1730~1781)가 소주 한병이 생기면 막걸리를 받아 섞어 마셨다는 기록에서 유래된다. 석치는 청나라에서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대부들이 가졌던 사고의 혼란을 섞은 술에 비유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폭탄주인 셈이다. 폭탄주는 1900년대 초반 미국 부두, 벌목장, 광산의 종사자들이 고된 노역의 고통을 잊으려고 맥주에 독한 양주를 섞어 마신 술 이름이다. 보일러메이커(boiler maker)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마시면 온몸을 취기로 끓게 하는 술’이란 뜻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몬태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도 폭탄주가 나온다. 웬만한 술꾼들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브래드 피트가 형 크레이그 셰퍼를 데리고 마을 술집에 갔다가 실연한 형이 ‘위스키믹스’를 시키자 바텐더가 맥주가 가득한 잔에 위스키 잔을 빠뜨려 건네는 장면에서다. 노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