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어르신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윗세대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올해 초, 몇 분의 농업분야 은퇴 교수님들과 해외원조 사업에 동참하여 파키스탄에서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하루는 일행 중 몇 분이 먼저 귀국하게 되어 귀국 전날 한 사람씩 얘기나 노래를 하며 환송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저녁을 잊지 못하는데, 그 중 연세가 가장 많으셨던 어느 교수님 때문이다. 그 분은 칠순 후반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하셨고, 사람의 중심에서 나오는 건강하고 올곧은 힘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귀국 전날인 그 날도 현지인의 농업기술 교육에 쓸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온종일 마무리 하고, 검게 탄 농부의 모습으로 저녁 식사에 나타나셨다. 그 분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우리에게 어떤 문건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1919년에 작성된 기미독립선언서의 복사본이었다. 그 분은 독립선언서 전문을 외워보겠다고 하시곤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암송하기 시작하였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과연 그 분
한전이 경기 동부권인 여주 이천 양평 광주 가운데 한 곳에 신경기변전소와 송전탑 170여기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시화시켰다. 신울진원자력발전소의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려면 2019년 말까지 765KV급 신경기변전소와 송전선로 128㎞ 및 송전탑 170여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 5월에서야 이 같은 계획을 공개하고, 이들 지역 관계자로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한다. 해당 지자체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어 더 이상 진척되지는 않고 있으나, 한전은 신경기변전소와 송전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로는 일단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을 최대한 설득할 예정이라지만, 밀양처럼 불상사가 이어지는 건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다. 한전은 여주 이천 양평 광주 가운데 한 지역을 골라 변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전의 주장은 형식면에서부터 결함이 드러난다. 왜 이들 4지역으로만 입지를 제한하는가? 송전거리 등을 따져 그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여주 남단과 광주 북단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왜 꼭 이 가운데 한 곳이어야만 하는가? 경기 동부권 주민들이 이중삼중의 규제에 묶여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왜
오늘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새삼스럽게 독립투사와 후손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수원에 거주하는 임병무씨와 과천에 사는 조길성씨의 이야기다. 시인이기도 한 이들의 삶은 빈한하기 이를 데 없다. 임병무씨의 할아버지 임면수 선생은 1919년 설립돼 폐교될 때까지 2천100여명의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만주 신흥무관학교 6대 교장을 지낸 분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청산리 대첩에 참전했으며 친일 주구배(走拘輩) 주살 등 독립투쟁 전선 각 분야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그 이전엔 국가 독립 일꾼 양성을 위해 수원삼일학교를 개교, 초대 교장이 됐으며 밭을 갈며 배우자는 ‘경학사’를 만들기도 했다. 조길성씨의 할아버지 조태환 선생은 1920년대 만주 일대에서 오동진 장군과 더불어 독립군을 이끌었다. 조씨의 외조부 고 이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뒤에서 독립운동을 돕고, 당시 독립운동 소식지였던 ‘대동공보’와 ‘해주신문’ 등을 발간했다. 임씨와 조씨의 할아버지는 모두 국가 유공자로 등록됐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들은 집안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할아버지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과 전 재산을 바친 탓(!)에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 임씨는 평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첫사랑은 있다. 필자도 사십 년이 지난 일을 문득문득 기억하게 된다. 필자의 고향 해남의 바닷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만수가 차면 바닷물이 필자의 집 마당을 채웠고, 벗어놓은 신발들이 바다로 떠내려가곤 했다. 문저리와 낙지를 잡은 작은 목선은 마당 앞까지 들어와 만수까지는 바다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마당을 지켰다. 그을린 소금과 염분들이 떠나지 않았던 고향집, 목포에서 유학 생활을 한 필자는 주일만 되면 한 시간 반가량 목선 백마호 혹은 조양호를 타고 목포 앞바다를 건너 상공리 부두에 내려 다시 40분간 황톳길을 달려 산이면 덕호리에 하차했다. 늦은 밤, 산비탈을 몇 개 지나 이름 모를 묘지 앞을 불빛 하나만 바라보고 희미한 위로를 받으며 걷다 보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첫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 그때가 첫사랑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은 성년이 되어도 기억에 떠나지 않은 추억을 감지하고 나서야 그랬다. 동네어귀를 지나 친구네 집 앞을 서성이다 아침까지 기다린 적도 있고, 밤새워 모랫길 언덕배기에 바람을 등지고 서 있던 적도 있었고, 용남샘과 그루터기 나무도 첫사랑의 공간이었다. 추석과
음식물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된 지 반년이 경과했다. 올해 말까지는 음식물쓰레기 종량제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는 비상이 걸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에 사용하는 방식은 RFID 방식과 납부칩스티커제, 전용봉투제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있다. 안양시는 전용봉투제를 채택하여 오는 9월1일부터 공동주택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음폐수를 그동안 해양에 투기하여 왔으나 2013년 음폐수의 해양투기 전면금지와 함께 정부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그동안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에 상관없이 공동주택 가구당 월 900원씩 일률적으로 부과하던 시스템에서 가구별 음식쓰레기봉투를 자체 구입하여 그 안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 기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일률적 부과방식 이전에도 잠시 시행했던 일이어서 그리 큰 혼란은 예견되지 않고 있으나 사전 주민홍보와 교육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지자체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방식이 달라 새로 전입해 오는 세대나 다문화 가정 등 우리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서는 종량제 실시에 다소간 어려움이 있
요즘은 ‘덥다 더워’를 입에 달고 산다.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폭염의 기세에 눌려 일상의 계획조차 뒤죽박죽이다. 사람 잡는 폭염이니 한반도가 펄펄 끓는다는 등 더위를 표현하는 문구도 자극적이고 가지각색이다. 절전을 솔선수범 하느라 에어컨을 켜지 않은 사무실은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할 정도다. 밤이면 더하다. 30도 가까운 열대야는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린다. 여기저기 사망소식도 들린다. 뙤약볕 아래서 밭일하다, 비닐하우스 작업하다, 실외 공사장에서 일하다, 등산하다 10명 가까운 생명이 스러졌다. 때문에 농촌에 부모를 둔 자식들은 밖에 나가지 말라는 당부의 전화를, 부모들은 대처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염려의 전화를 주고받는 것이 요즘이다. 날씨가 부모 자식 간 뜸했던 연락마저 자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럴수록 우릴 시원하게 하는 그 무엇이 없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청량제는 어디에도 없다. 살림살이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새 정부 들어서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던 월급쟁이들은 오히려 날씨보다 속이 더 끓는다. 경제도 나쁘고 수입도 늘지 않는다면 지출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내야하는 세금마저 늘어나게
‘독립전쟁론(獨立戰爭論)’이 있다. 때는 1905년과 1907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이어 군대가 해산된다. 종말의 시작이다. 황제는 순종이었지만 권력은 친일매국노의 손에 있었다. 애국지사들은 국내에서 움치고 뛸 수 없는 세월이었다. 하여, 국외로 나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 곳에서 군대를 만들어 결정적인 시기에 국내로 진격해 조국을 되찾자는 ‘론(論)’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 이회영과 이상설이 있었다. 이회영은 1906년 여름 광복운동을 국내에서만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상설·이동녕·유완무·장유순 등과 만주에서 광복운동을 전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 이상설을 선택한다. 물론 이회영의 추천이다. 이상설도 “재주는 없지만 만주에 나아가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청한다. 이상설은 1905년 정2품 의정부 참찬이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머리를 돌에 찧어 자살을 시도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백범 김구는 ‘옷에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채 여러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인력거에 실려 가면서 울부짖었다’고 백범일지에 썼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국외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1906년 4월 웃는…
요즘 ‘설국열차’라는 영화에 생존을 위한 최소 영양공급원으로 프로틴(단백질)블록이 등장하면서 비슷한 모양인 양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양갱을 먹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 프로틴블록에서 미래의 기능성 영양식 ‘라이스블록’을 그려보게 된다. 쌀에는 주요 열량원인 탄수화물과 영양원인 단백질이 주성분으로 들어있으며 무기질, 비타민 등의 많은 영양소도 들어있다. 특히 쌀 단백질은 밀이나 옥수수에 비해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의 함량이 2배나 높은 양질의 단백질이다. 쌀로 지은 밥은 섬유질도 풍부해 장운동을 자극하고 대장 내 소화과정에서 낙산을 만들어 대장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밀과는 달리 소화시간이 길고 인슐린 분비량을 적게 하여 혈당치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한다. 이같이 쌀은 비만과 고혈압 등의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비타민 B, E, 식이섬유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기도 한다. 쌀 속의 섬유질 성분은 우리 몸에 해로운 중금속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을 주식으로 해온 서구에서도 최근 들어 이러한 생리활성을 가진 쌀을 웰빙식품으로 인식하는 사
2014년 이전 예정인 농촌진흥청 자리에 국립농어업박물관이 들어선다니 매우 반갑다. 염태영 수원시장과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엊그제 국립농어업박물관 건립에 상호 협력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다. 농식품부는 이미 지난달에 기획재정부에 수원 건립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몇 가지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젠 첫 삽을 뜨는 일만 남은 셈이다. 2007년 국립농어업박물관 건립 계획이 발표되었을 당시부터 여러 지역이 유치경쟁을 벌였던 점을 상기하면 경기도와 수원시 관계자들의 노고가 컸다. 농진청 자리 활용방안이 확정됨으로써 서수원 발전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된 점도 기쁘다. 서둔동 농진청 자리만큼 국립농어업박물관에 어울리는 자리도 없다. 인근 여기산 일대의 선사시대 농업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정조대왕이 축만제를 축성하고 국영농장 둔전을 설치했던 한국 농업의 메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종 황제는 1884년 이 자리에 농무목축시험장이라는 근대적 모범농장을 짓도록 했다. 미국 보스턴의 왈코트(Walcott) 시범농장을 본뜬 이곳 모범농장은 농촌진흥청의 직접적인 효시다. 1906년엔 이곳이 권업모범장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전국에서…
‘비속어’는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이다. 당연히 비속어를 듣는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잔머리 굴린다’라는 말은 비속어에 속한다. 듣는 대상이 불쾌해 하더라도 이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 “새누리당, 잔머리 굴리지 말라!”고. 왜 이런 과격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새누리당을 비판하는가 하면, 그들이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를 놓고 하는 짓이 쓴 웃음을 짓게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는 여야 막론하고 대선 후보들의 대국민 공약사항이었다. 그런데 대선 후 정치권의 반응은 수상했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불가론이 솔솔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한 내홍은 민주당이 먼저 겪었다. 당 지도부가 정당공천 폐지를 잠정 결정했으나 일부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것이다. 지난 7월8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반대 의견이 거셌다. 반대 의견 중에는 지역 토호가 기초의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엄청난 부패를 야기한다는 주장과 여성공천 의무할당제 위축 등의 논리가 제기됐다. 한 여성의원이 “우리 지역에선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조폭도 출마하겠다고 준비 중”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