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종종 표면적 안정의 뒤편에서 틈이 벌어진다. 18세기 초 절대왕정 체제는 견고해 보였으나, 내부에서는 계몽사상이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19세기 초 빈 체제는 혁명과 전쟁 끝에 복구된 균형을 자랑했지만, 산업혁명과 민족주의의 확산은 왕정복고의 토대를 흔들었다. 20세기 초 베르사유 체제 역시 전후의 평화를 약속했으나, 그 아래서 자라난 경제 불안과 전체주의는 결국 참혹한 대재앙으로 귀결되었다. 공통된 흐름은 분명하다. 질서의 안정처럼 보였던 시기마다, 실은 다음 세기를 규정할 전환의 동력이 이미 누적되고 있었다. 2020년대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은 더 이상 주변적 갈등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한다. 단일 패권의 시대가 저물며 다극화가 본격화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조율할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 내부에서도 불신과 양극화가 깊어져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더 이상 자명한 전제일 수 없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20세기적 감각과 기준에 머무른 채 근대적 질서의 연장선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듯하다. 경제 영역에서도 균열은 체감된다. 글로벌 공급망은 팬데믹을 계기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세계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는 고급스러운 외관을 위해 저층부나 필로티, 주출입구를 화강석이나 대리석 같은 석재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벽석재들은 파손시 추락이나 낙하의 위험이 있어 안전하게 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무에서는 이를 ‘건식 석재’ 공사라고 하며, 과거에는 돌을 붙일 때 시멘트 반죽을 발라 붙였지만(습식), 최근에는 건물 외벽에 앵커와 철재 프레임을 설치하고 거기에 돌을 걸어 고정하는 ‘건식 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거운 돌판이 흔들리거나 빠지지 않도록, 돌의 측면에 구멍을 뚫고 프레임과 돌을 핀(Pin)으로 꿰어 고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꽂임촉’입니다. 쉽게 말해 셔츠의 단추나 가구의 나사못처럼 돌을 꽉 잡아주는 ‘물리적 잠금장치’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석재 마감 뒤편에서 위험한 ‘날림 공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많이 시정되었지만 과거 일부 시공 현장에서는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돌에 구멍을 뚫고 핀을 박는 정석 시공 대신, ‘에폭시(석재용 접착제)’를 사용하여 돌을 프레임에 단순히 붙여버리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이러한 시공방법이 하자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최근 하자 소송에서 쟁점
비상계엄 선포라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아직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인지 여부는 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필자는 이를 친위 쿠데타로 판단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부 강성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논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다음의 비유를 통해 그 무리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주방장은 잘 드는 좋은 식도(食刀)를 원한다. 그좋은 식도를 가져야 회도 잘 뜨고 음식의 데코레이션도 수월해지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주방장이 자신의 식도로 손님을 위협한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가 된다. 즉, 주방용 식도가 자신의 소유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범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지만, 그렇다면 '미수' 범죄는 성립될 수 없게 된다. 다치지 않았으니, 위협 행위가 위법한 행위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계엄의 지속 시간을 들면서, 이렇게 짧은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시간의 장단이 본질을 결정
지난 10월 27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토지공개념제를 도입해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은 이미 제7공화국 헌법개정안에서 토지공개념제를 명시한 바 있으며, 이는 조국 대표가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하려 했던 ‘토지공개념 입법화’ 구상의 연장선에 있다. 여당의 협조 없이는 실제 입법이 쉽지 않겠지만, 토지공개념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여전히 높다. 현행 헌법 제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균형 발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토지공개념의 법적 근거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이다. 토지공개념 도입이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헌법에 마련된 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다. 토지공개념 논의의 현실적 조건을 살피기 위해, 과거 개혁정책이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두 시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1949년 농지개혁을 단행한 이승만정부, 다른 하나는 그후 40년이 경과한 후에 1989년 토지공개념 3법을 통과시킨 노태우정부다. 우선 제1공화국의 농지개혁은 토지개혁의 고전적 모델이다. 정부가 소작농지를 유상으로 강제 매입해 소작농에게 유상으로 분배한
작년 오늘, 나는 뉴스를 통하여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목격하면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초현실적 상황으로 여기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편하게 잠을 잤다. 실은 감기기운도 있었고, 술도 좀 하고 들어온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밤이었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계엄이 해제되어 상황이 끝나 있었다. 그 후 1년 동안, 나도 이웃과 벗들만큼 ‘계엄 트라우마’로 힘들게 지냈다. 다음은 비상계엄이 성공했다고 가정하고, 상상하여 쓴 글이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서 아침을 맞았다. 내가 사는 도시는 계엄군의 무쇠 발자국에 짓눌리고, 나의 일상은 말없이 조여드는 공포 속에서 서서히 숨이 막혀갔다. 침묵과 무표정으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친구가 주변을 살피며 짧게 전하는 귓속말은 모두가 곧바로 주저앉아 통곡해야 할 소식이거나, 분기탱천하여 웃통을 벗고 쫒아가서 응징해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질서 있게 보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절망과 우울의 나라가 신진대사와 다름없는 희로애락의 표현을 막아버렸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약자들이었다. 한낮에도 그늘지고 비가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반지하 주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권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헌정(憲政)을 유린한 지 정확히 1년이 된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한동안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서 있었지만, 실상은 국가권력 탈취의 충격과 사회 혼란의 와중에 겨우 유지돼 왔었다. 내란 특검은 비상계엄의 우두머리와 중요 임무 종사자들을 추적해왔고, 수사 종료일은 12월 14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국민의 받은 상처와 기대하였던 희망에 비해 사법부 정의의 시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국가 전복 사태의 책임자들은 법리 꼼수로 재판을 지연시키며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 부정하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만이 결심에 이르렀고, 징역 15년 구형이 내려졌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채상병특검은 11월 28일 150일간의 수사를 마치면서 ‘VIP 격노설’ 실체를 확인하고 윤석열 등 총 33명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지만, 수사과정 속 각종 논란과 함께 구명로비 등 해심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가장 뼈아픈 장면은 국가 반란의 범죄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윤석열의 모습이다. 지도자라 자처하던 사람이 정작 법정에서는 도피와 변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그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라는 것. 친구와 속삭이고 다투고 화해하던 자리들이 많은 부분 빛나는 화면 속으로 옮겨 갔다. 말이 오가는 공간은 교실보다 SNS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색을 입는다. 아이들은 이미 또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공간에서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배운 적은 없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조용한 어느 날에도,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도들이 치고 있을지 모른다. 가볍게 던진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허락 없이 공유된 사진 한 장이 아이를 긴 밤의 불안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화면 너머에서 오간 짧은 말들은 지워지는 듯 보이지만, 지워지지 않은 마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현실의 표정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그 무게를 잘 모른다. 디지털 공간의 말과 행동은 현실보다 가벼워 보이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문장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기는지, 그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마음이다. 그래서 지금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얼마 전 일본 남부에서 열린 동아시아포럼에 다녀왔다.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자원봉사포럼’이 인구감소시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본과 중국 시민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고무적인 자리였다. 첫날 오프닝은 미에현 나바리시(三重県名張市)에서 진행됐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안내 책자와 선물상자가 든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앙증맞은 호루라기와 렌턴이 들어 있었다. 무슨 용도로 이런 선물을 준 것인지 무척 의아해 옆자리의 일본인 선생에게 물었다. 그는 “요즘 일본에는 곰의 공격이 잦아 호신용으로 호루라기를 준비한 것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본인이 평소 소지하고 있는 호루라기를 보여줬다. ‘인구가 감소하니 이제 동물과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국인들에게 선물용도를 알려주자 한 여선생은 호신용으로 쓰겠다며 호루라기를 키 링에 매달았다. 귀국 후 뉴스를 보니 일본의 곰 공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올해 초부터 곰에게 공격당해 사망한 사람은 열 명에 달했다. 이는 기존 기록을 넘어섰고 곰과 마주칠 위험은 산간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지역도 포함돼 있었다. 최근에는 곰이 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5년 7월 1일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에 경기북부 지역의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장기임대를 포함한 반환공여지 개발에 대한 대통령 약속의 연장선이다. 2025년 11월 15일 파주에서 열린 “경기북부의 마음을 듣다”라는 주제의 타운홀 미팅에서는 대통령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의 총론적 의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실을 포함한 중앙정부에서는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 차원에서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 공여지 개발은 주도성, 전향성, 지역 중심을 3대 원칙으로 하겠다며, 전국 지자체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매년 300억씩 10년 동안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개발기금 3000억 원을 조성하고, 규제 해소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TF팀”과 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추진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중앙정부
천지는 쉼 없이 움직인다. ‘논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말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에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격동의 2025년도 저물어 간다. 누군가는 황혼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 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 하지만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나이 먹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거울 보고 늙음이 기뻐서(覽鏡喜老)’라는 시에서 그는 “늙지 않았다면 요절했을 것이고/ 요절하지 않았다면 노쇠해 마땅한 법/ 노쇠는 요절보다 나은 것/ 그 이치 의심할 나위 없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근래 크고 작은 송년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묵은해를 정리하는 자리다. 하지만, 사실은 ‘군중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