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자 모양이다. 기역 니은 하고 부르는 그 기역(ㄱ) 말이다. 기역자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있는데, 방문 앞으로 길게 누운 마루가 방과 방을 이어주는 길 같다. 방이 아니라 섬이었다면 섬과 섬을 이어주는 물길 같았을까. 그러든 말든 마루는 개의치 않는다. 지붕에 앉힌 기와가 그러하듯 마루 또한 기역자 모양 따라 반듯하다. 도시의 기와집은 어떠할까. 산 아래 터를 잡은 시골집의 하루는 기와 끝에서 떠올랐다가 마루 끝에서 저문다. 처마 밑에서 일어났다가 툇돌 아래 눕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다남쪽의 기와집은, 처마 끄트머리의 기울기만큼 허락하고, 마루 끄트머리의 넓이만큼 보듬는다. 거절하고 밀어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은 툇돌 보다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그늘은 마루보다 낮은 곳을 욕심내지 않는다. 빗방울도 낙엽도 그윽한 달빛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떨어지는 것들은 어김없이 처마와 마루 사이에 몸을 던지며 삶을 마감한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아무리 발돋움을 하고 서도 처마 밑이다. 바닥을 기어도 툇돌 아래 누울 순 없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삶이다. ‘만류의 영장’이라는 계급장은 얼마나 부끄러운가. 밤에 싸인 지구별에서 인간과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많은 난제들이 대기 중이다. 만 5세의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라는 졸속 정책은 여론 수렴 뒤에 취소할 수 있다고 다급히 진화하였지만, 고물가와 무역수지 적자, 재산확산 되는 코로나에 대한 과학반응 타령에 대한 실망, 밀어붙인 경찰국 신설의 여진, 용산 대통령실에 이은 한남동 대통령 공관의 공사 건 등등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발등의 불은 국외에서 더욱 심각하다. 악화하는 미·중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대로 우리의 생존 문제이다. 지난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방문으로 인한 중국의 반발과 이를 적극 옹호하는 미국 간의 갈등은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해 오던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펠로시가 타고 오는 비행기를 격추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하고, 실제로 8월 4일부터 7일까지 대만을 포위한 군사훈련을 전개하기까지 했다. 미국 역시 펠로시 의장을 무장한 관용기로 이동케 했으며 대만 체류시에는 인근에 최신예 항공모함을 3대나 출격시켰다. 미국과 중국 모두 강경 일변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나라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여론에 크게 밀리고 있는 백악관은 중국을 자
2006년 5월, 북한에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협의하는 기독교계 단체와 동행하여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과장님, 불안하지 않아요?” 평양 양각도호텔 2층 식당에서 가진 아침식사시간, 일행 중 한 명인 원로 목사님이 질문을 던졌다. “왜요?” 아마도 북한의 종교정책, 6·25전쟁 때의 경험 등 평생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 온, 여든을 바라보는 노(老) 목사님께선 평양에서의 잠자리가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목사님, 여기 평양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남북간에 상대방 지역을 방문하는 인사들의 신변 안전은 물론 무사 귀환을 보장하는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북한에서 체류하는 것이 불안할 이유가 없지만,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목사님으로서는 몹시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북쪽 사람들이 남쪽에 왔을 때 우리가 그들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 등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 설명하자, 노 목사님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고려호텔 옆에 있는 단고기 식당에서 열린 만찬, 당연히 메뉴는 단고기(보신탕)였다. 남쪽 사람들이 평양을 방문할 때…
코로나 19가 다시 창궐할 기미를 보이지만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 계곡으로 떠나는 여름휴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공항이 붐빈다고는 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방역 절차와 외국에서 감염을 우려해 기피하는 국민들이 더 많다. 하지만 가족끼리 국내 펜션이나 호텔 등 숙박업소를 얻어 떠나는 휴가는 그나마 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붐비는 유명 해수욕장이나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농어촌으로 떠나는 휴가는 더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불법 민박이다.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불법 농어촌민박의 경우 당연히 행정기관의 안전 점검이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이용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용객들은 이곳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잘 모른다. 농어촌민박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예약과정에서 지방정부에 신고를 한 곳인지 반드시 확인하는 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농어촌민박 사업자는 해당지역 시장․군수에게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소화기는 물론, 휴대용 비상조명등, 단독 경보형 감지기 등을 설치해야 한다. 특히 화기 취급처에는 객실마다 일산화탄소 경보기와 자동확산소화기 설치 등 안전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
여름 휴가로 찾은 강원도 양양의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서핑족들의 성지라는 정도는 알고 갔지만 그들이 문화를 바꿔놓은 줄은 몰랐다. 횟집이 즐비할 거리의 서핑숍과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도 낮설었느데, 밤이 되자 바닷가를 조명과 음악, 춤으로 밝힌 비치클럽 청춘들의 모습은 흡사 외국 휴양지 느낌이다. 웃통 벗은 사내들의 문신, 칵테일 잔 들고 춤추는 비키니 차림 여성들의 분방한 모습이 나의 ‘촌스러운’ 20대 기억을 소환했다. 20세기에 청춘을 보낸 내게 ‘바닷가 청춘’을 상징하는 것은 기타와 모닥불, 새우깡 안주, 그리고 단골 레퍼토리 0순위였던 연가(戀歌).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저 바다 넘어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빛도 아름답지만/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후략)’ 새우깡을 건네며 스치는 손 끝에 가슴 떨려하면서도 쓴 소주에 사랑고백을 삼켰던 것이 내 청춘의 연가였다. 그 노래가 내 나라 노래가 아닌, 뉴질랜드 전통 민요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람은 양양의 밤 문화 이상이었다. 그 노래로 인해 그저 북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복지천국, 낙농업 친환경 국가 정도로 알고 있던 뉴질랜드 역사의 그림자
- 과학의 고독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율적 조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한 ‘가이아’의 개념은 애초에는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여겨졌다. 환경이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이지 생명체가 환경을 바꾸어내기도 한다는 논리는 가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이아’라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주기에 적당하기 조차했다. 사실 이 명칭은 제임스 러브록과 이웃해 살고 있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의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이 지어준 것이었다. 골딩은 훗날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과학과 인문적 사유가 만나 ‘가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난 셈이었다. 제임스 러브록이 80세(2000년)를 막 넘기면서 출간한 자서전 『가이아에게 경의를 (Homage to Gaia)』에는 양자역학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1936년에 했던 말을 인용해놓았다. 자신의 이론이 처음에는 거부되었다가 40년이 지나 책이 나온 당시에는 지구과학의 한 중심이론으로 수용된 것을 기뻐하면서 과학자가 겪어야 하는 고독에 대한 심정을 인용으로 대신 풀어놓은 것이었다. “새로운 과학적 사유는 아무리 조직이 잘 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유행하며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나드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정부가 국민 참여와 협조만 당부할 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건의료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장관마저 공석인 상태다. 정호영, 김승희 두 장관 후보자의 인사 참사로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외면에 가깝다. 코로나19 재유행을 대처할 장수가 없다보니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마저 역대 최저로 떨어진지 오래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치솟는 상황에서 복지 수장을 비워두는 것은 국민들의 불안감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복지 수장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 임명 기준으로 ‘전문성’을 강조하는데 검사 출신이어서 검사 출신 인사는 속전속결로 진행한 반면, 다른 전문성을 가진 각 부처의 인사는 지지부진하다. 급기야 일각에서는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사람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관절염을 퇴행성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기곤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병원을 방문해 보면, 생각지도 못한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절염 모두 관절의 통증을 동반한 염증질환이다 보니, 차이점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원인과 증상도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구분하고, 치료도 달리해야 한다. 이에 류마티스 관절염과 퇴행성 관절염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행성 관절염은 45세 이상에서 잘 나타나는데,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증가하며 골관절염과도 같은 말이다. 퇴행성 관절염은 뼈를 둘러싸고 있는 연골이 닳아 없어지거나 찢어지는 것을 말한다. 반면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체계가 잘못 인식해서 관절을 공격하여 통증과 부종, 기형까지 나타나게 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퇴행성 관절염은 뼈 끝을 감싸고 있는 연골이 닳으면서 통증과 부종이 생기는 질환으로 나이가 들어 주로 생기지만, 비만과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30~40대의 젊은층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체중 부하가 많이 되는 무릎이나 엉덩이, 척추 관절에서 잘 생기고, 과하게 사용한 손가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