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아버지는 이 한 단어로 결코 그 고통을 담아낼 수 없겠지만 폭력적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린시절 가족에게 다양하게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방식으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가 무서워 떨고 있는 아이가 생생히 느껴졌다. 엄마와 삼남매 모두 그 폭력을 견디며 살아왔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특히 가장 어렸던 그 아이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무서워 대문소리만 나도 벌벌 떨었다. 그렇게 지속된 긴장과 함께 어린시절부터 심한 아토피와 함께 몸이 약했다. 소화가 안되어 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거리를 가다가 쓰러지기도 했고 대변이 막혀 응급실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한의원에서 마주한 그녀는 잠을 잘 못자는 것은 물론이고 오랜시간 해결되지 않은 증상이 한보따리다.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몸이 약해 포기해야 했던 그녀는 그 과정속에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면서 관련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녀는 “이제 건강해지기만 하면 되는데”라고 말하지만 어린시절의 기억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랜시간 과민해진 몸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조금만 인스턴트. 화학조미료가 든 것을 먹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극
Benefit Corporation! 최근 친구의 권유로 『비즈니스 혁명, 비콥』(크리스토퍼 마퀴스著)을 읽었다. 놀라웠다. 저자는 하버드와 코넬에서 15년 넘게 기업의 사회책임론을 가르치는 교수다. 푹 빠져 읽게 된 사연은 좀 거창하다. 인류사회를 종말론적 염세주의에 빠뜨리고 있는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1:9의 불평등 세상, 신자유주의의 난폭함, 노예시대와 다름없는 저질 고용시장 등 시대적 난제들을 경영목표로 삼아 이를 해결하고 있는 특별한 그룹에 대한 연구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GM IBM 삼성 등 전통적인 기업들은 물론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도 자본가들은 인색한 품삯으로 일을 시키고 그 과실을 독차지한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소수 주주들을 巨富(거부)로 만들어주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다. 씨알들은 그 대가로 간신히 연명하면서 대를 이어 남루와 궁상을 숙명으로 여기는 슬픈 족속이다. 드디어 대안이 출현했다. 비랩(B Lab)이다. 2006년 스탠퍼드대학 출신의 친구들 셋이 뭉쳐서 중환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세상을 구할 거대담론 끝에 비영리단체를 창립한 것이다. 2007년 비콥을 설립하여,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
현대는 그야말로 비판의 시대이다. 그런데 종교와 법률기관은 일반적으로 비판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교는 그 신성함의 힘을 빌리고, 법률기관은 그 외면적인 위대함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와 법률기관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혹을 부채질해 사람들의 참다운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성은 자유롭고 공개적인 판단을 거친 것만 존경하기 때문이다. (칸트) 인생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진실을 더 많이 파악하고 더욱더 그 진실을 좇아서 사는 것이다. 그릇된 종교는 모두 자신의 경전(베다, 성서, 코란, 불경 등) 속에 확실하게 완성된 더할 나위 없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에 따라 사는 방법(신앙, 제물, 기도, 은총 등)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진리를 탐구할 필요도 없고 자기 생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성이 인간의 신화를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성은 진리와 맞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한다. 정치와 종교는 다 인간의 생활을 각각 두 면에서 한데 묶어놓는 묶음이다. 하나는 평면에서 하나는 수직에서, 하나는 땅에서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는 현실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의 새 감독으로 콘테가 부임하고 나서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점일 것이다. 전전 감독이었던 세계적 명장 무리뉴는 선 수비 후 역습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수비수와 스피드 좋은 공격수가 중용되는 구조였다. 모든 선수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어 번번이 지고 말았다. 반면 콘테 축구는 올라운드 플레이기 때문에 포지션에 상관없이 선수 개개인 모두가 중용된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쉽게 지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구성원들의 능동적이고도 창의적인 협력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져온다는 상식이자 진리 아닐까? 역사 속에서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하나만 들어보자.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가 당시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와 맞서 싸워서 대승을 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전제정치체제에서 벗어난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인식해 올라운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는 교훈은 너무 뻔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난 80년대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통찰을 얻었다. 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회 곳곳
코로나 시국 이전에 일본 오사카로 연말 여행을 다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생각도 좀 정리를 할 겸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해결보다는 외면의 의미가 더 가까웠지만, 나이와 함께 늘어가는 어깨의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상황에서, 여행은 꽤 도움이 됐다. 옷가지를 넣은 가벼운 짐과 함께 카메라를 하나 둘러메고 그렇게 간사이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과거 MBC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을 준비하며 알게 된 격기 계통 사람들의 인연으로, 일본에 있는 그쪽 업계의 사람들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일본과 왕래가 괜찮았던 시절에는, 서로 오가며 종종 만남을 가졌다. 이 여행에서도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프로레슬링 경기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경기를 보러 간 것이었다. 오사카 변두리의 폐공장을 극장으로 개조한 작은 경기장에서의 시합이었는데, 늦은 오후에 시작해 크고 작은 시합들로 이어지다가, 12월 31일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 링 위의 선수와 관객들 모두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축하하는 이벤트였
이건 아니다. 지난 6일의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쏟아진 말들이 그랬다. 이건 아니다. ‘지긋지긋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라니. 누가 그에게 그렇게 왜곡된 연설문을 써서 줬을까. 미완성이긴 해도 한반도 종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다 코로나19의 절대적 위기 속에서도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을 이루어 낸 정부가 무능하다니. 한치의 부정도 없는, 심지어 아티스트인 아들이 공적 지원을 받는 것조차 시비를 받을 정도로 투명한 대통령이 부패하다니. 그것이야 말로 숱한 ‘차떼기 뇌물’의 역사와 국정농단의 과거를 지닌 정당의 후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가 창피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염치라는 인식이 없는 것일까. 그러므로 해서 더더욱 이건 아니다. 여성은 군 복무를 하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하되 자식을 2명 낳은 여자는 예외로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재랍시고 영입하려 했던 당사자들이 ‘스트릿우먼 파이터’를 축하 댄스 무대로 장식한다. 한 마디로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스우파’의 스피릿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공격적일 만큼 당당한 여성상을 시대가 받아들여야 하며 또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막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참으로 깨닫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나 극히 어린 시절에 일어나는 그 변화의 시작과 죽음을 동반하는 그 끝은 인간의 관찰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래도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 생명은 끊임없이 그 겉모습을 바꾼다. 사물의 겉모습밖에 보지 않는 무지몽매한 인간만이 일정한 형태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사라지면 생명 자체가 소멸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일정한 형태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애벌레가 사라지고 새롭게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 어린아이가 사라지고 대신 청년이 나타난다. 동물적인 인간이 사라지고 새롭게 정신적인 인간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류시 말로리) 도토리는 가지, 잎, 줄기, 뿌리, 즉 모든 외형, 모든 고유한 형태를 잃었지만, 그 속에 자신이 포기한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간직한 상수리나무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
온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안타깝게도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네요. 애초부터 비토해온 일부 정치권의 발목잡기를 뚫고 어쨌든 닻을 올린 공수처 아닌가요? 공수처는 일본 정·관계의 정수기 역할을 해온 도쿄지검 특수부 신화를 모델로 삼고 희망을 걸어온 특별한 수사기관이잖아요. 그런데 어렵사리 출범한 공수처가 ‘대통령선거’라는 폭풍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군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공공연하게 ‘공수처 폐지’ 구호가 나도는 선거판의 흐름이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일부에서 “공수처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군요. ‘무능’을 그 이유로 들지만, 그게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요? 하긴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조차도 합법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허술했으니까 그럴 만도 해요. 더욱이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를 상대로 법원에 신청한 영장이 세 번씩이나 기각됐잖아요. 법원에서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를 하는 중에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했다는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는 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뉴스는 여 차장이 “고발 사주는 대장동 넘는 국기문란”이라는 사견을 펴다가 재판
지난밤 빗물에 젖은 낙엽이 사람들 발길에 밟혀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생각 없이 아침 산길에 나섰다 낙엽의 가는 길을 생각하게 된다. 생명의 끝인 허(虛)와 공(空)과 무(無)를 떠올리게 된다. 공부하고 기도한다는 게 결국은 얼마나 부끄러움을 알고 살다 가는가?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헸다. 산길을 돌아 동물원 뒷산 숲 속 휴식공간에 이르렀다. 운동기구와 함께 장의자 세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여기 앉으세요. 스티로폼을 놓아두어 젖지 않고 온기가 남아 있네요.”하고서 의자에 앉아 있던 분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히 갈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은연중 그분 뒷모습에 시선을 주고 한동안 서 있었다. 회색 점퍼에 검은 바지, 반백 머리스타일과 하얀 운동화에서 노인의 온유함이 깊게 느껴졌다. 노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가로 50cm 세로 20여 cm의 직사각형 스티로폼에서는 노신사의 궁둥이 체온이 남아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역사는 자리다툼의 투쟁이 아니었을까. 눈비가 내릴 때는 습기가 없는 자리, 추워지면 태양 볕이 잘 드는 곳.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너럭바위의 중심- 농본 사회의 아랫목 자리에서부터 장군의 자리와 졸병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신의 영혼이 살고 있음을, 너에게 생명을 준 신의 영혼이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영혼이든 신성불가침 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 인간이 죽는 것이나 돈과 집과 재산을 잃는 것은 그리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원래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재산, 즉 인간적인 존엄성을 잃었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함과 분별심을 잃었을 때 비로소 불행해진다. (에픽테토스) 오늘날의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 속의 인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인간의 최고의 특질은 그가 정신적 안정상태에 있을 때 그 의식이 이성의 원천과 교류하여, 무한한 영적 생명과 융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원천에서 직접 영혼의 양식을 길어 올리려 하지 않고, 마치 거지처럼 고인 물 한 국자를 서로 동냥하고 있다. (에머슨) ‘나마스떼!’ 이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문안 인사드린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사는 ‘(밤새) 안녕하십니까?’이다. 이런 일상의 인사가 개인의 품격과 민족사상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