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는 결과가 비록 실망스럽지만 촛불혁명 과정에서 몇 가지 의미있는 역사적 성과를 남겼다. 촛불혁명 연장선에서 대선을 만났던 필자는 개표 결과를 통해 두 가지의 소중한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첫째는 역사는 결코 직진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우회하다가 역류하고 정체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강을 이루어 바다에 이르는 물과 같은 것이다. 민주개혁세력이 아직은 주류인 구(舊)체제를 뒤엎을 만한 압도적 파워를 갖추진 못했지만, 이번 개표 결과를 보면 앞으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얼마든지 우리 혼자 힘만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강고한 주류에 박빙의 차로 패배했지만 비주류 이재명이 이룩해낸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 정부의 몇가지 치명적 실정에 불리한 선거구도, 언론의 편파보도 총공세, 편향된 검찰 수사 등 겹겹의 벽을 뚫고 대등한 지지표를 얻어낸 것은 값진 성과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김대중-노무현 때와 달리 보수와의 연합을 통한 세 불리기도 전혀 하지 않고 독자 후보로 나서 이런 희망적 결과를 일궈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민주진영의 5년 후 재집권 전망을 분명 밝게 해준다. 둘째, 원래 평화와 민주주의는 그 자
지난해 7월 예비후보 등록 후 8개월 이상 이어졌던 20대 대선 캠페인이 끝났다. 불과 24만여 표(득표율 0.73%)라는 역대 최소 표차로 승패가 갈렸다. 이재명 후보는 유권자 1614만 7738명의 지지를 받아(47.83%)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다 표를 얻었지만 낙선했다. 정권교체론이 먹혔다거나 부동산 민심이 폭발했다. 혹은 욕망이 양심을 이겼다거나 조중동 등 주류미디어와 강남 부동산벨트가 승리했다는 등 어떤 결과론을 들이대도 다 그럴듯해 보인다. ‘깻잎 한 장 차이’의 초박빙 선거였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20대 대선에서는 세대와 성별, 지역과 계층간의 투표성향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영호남의 표심은 논외로 한다고 해도 2030여성과 4050세대는 이후보에게 몰표를 주었고 2030남성과 60대 이상은 윤후보에게 쏠렸다. 주류 미디어들은 20대 대선을 애초부터 ‘비호감 선거’로 규정하고 후보자와 가족의 사생활과 관련한 선정주의적 보도로 일관하며 ‘비호감 원인 제공’에 앞장섰다. 윤후보 진영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문재인정부를 공격하면서 극단적 갈라치기식 언행과 ‘혐오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폐지’ ‘노동조합은 미래 약탈세력’ ‘이주노동자는…
예지의 조건은 도덕적 순결이며 예지의 결과는 정신적 평화이다. 선한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그는 말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내 일이고,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이내 싫증을 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육체적으로 누구보다도 약하다고 느낄 때도,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 (류시 말로리) 뭔가 슬프고 괴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는, 먼저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라. 두 번째는, 전에도 여러 가지 일로 슬퍼하고 괴로워했지만, 지금은 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을 생각하라.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너를 슬프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 일은 하나의 시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련을 발판으로 정신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사람의 정신은 지극히 완전한 상태에 머물 수도 있고, 지극히 타락한 상태에 머물 수도 있다. 좋은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
『희망의 원리』와 미래 『희망의 원리』를 쓴 에른스트 블로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억압(repression)’에 대한 정신분석에는 역사적 이해가 빠져 있는 것도 아울러 짚는다. 융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역사의식의 부재를 비판한다. 물론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작업에 프로이트가 유효하고 시간에 묶이지 않는 영혼의 깊이로 들어가는데에는 융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에른스트 블로흐는 무얼 파고 들었던 걸까? 한마디로 그건 “미래를 향한 의식”이다. 인간은 거기에서 희망의 근거지를 발견하는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우리는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된다”며 “그런데 어린 소년은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상자를 어떻게든 뜯어 열고야 만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가리키는 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 여긴 권리 행사다. 이른바 “아직 오지는 않았으나 의식(Not-Yet-Consciousness)”이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은 뭔가 찾으려 헤매기도 하는 강한 충동을 가진 존재다. 우리의 의식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
요즘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 한 출판사와 음반회사 공동으로 한글날 맞이 ‘시인들이 뽑는 아름다운 우리 노랫말’ 행사를 했다. 가수의 목소리, 아름다운 음률도 덮어버리는 기막힌 노랫말들을 알게 되고 음미했다. 선정 가요 중에 나의 애창곡 ‘김광진의 편지’가 들어 있어 더욱 그 행사에 마음이 갔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선정 가요들을 모아 낭송하고 노래를 들려주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월드 뮤직 정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고 그 ‘세상’에는 당연히 우리 노래도 들어있으니까. 영화 배경음악 중 시 같은 노랫말이 있다. 그럴 때는 정지화면을 누르고 음미한다. 샐리 포터(Sally Potter)가 부른 ‘I Am You’도 그랬다. 그 노래는 음반을 통해 먼저 만났다. ‘영화 속의 월드뮤직’이라는 타이틀로 나온 음반이었고 수록곡들은 모두 아는 음악이었는데 ‘영화 탱고 레슨의 I Am You’는 생경했다. 음악을 틀면 바로 혈관에 독한 기운을 주입하는 탱고리듬이 터진다. 그리고...... 뭐랄까. 초탈한, 인생을 한 바퀴 돌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듯한 목소리로 ‘Where did you come from?’이라고 나지막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한 사건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1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거나 발발하더라도 러시아의 최대 행동반경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SWIFT) 퇴출 등 거론되는 서방의 강력한 경제금융제재가 러시아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월 20일 전후 유럽에서 스위프트 제재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푸틴은 전면적 침공을 단행하였다. 서방은 즉시 강력한 제재를 실행하였으나, 정작 스위프트 제재는 2월 26일에야 결정되었다. 푸틴은 이에 반발하여 자국의 핵 운용 부대에 경계 태세 돌입 명령을 내리는 강수를 두었다. 핵 위협으로 대응할 정도로 강력한 스위프트 제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제자금결제 메시징 서비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스위프트(SWIFT)의 본사는 벨기에에 있다. 스위프트 제재를 결정하는 주체는 EU(벨기에)이다. EU는 ‘공동 외교 안보’에 관한 정책 결정으로 벨기에를 포함한 27개 회원국에 제재 의무를 부과하고, 벨기에는 스위프트에 제재를 이행해야 하는
나는 마을활동가다. 일터가 아닌 삶터에서 마을활동은 감사(感謝)와 인정(人情)의 노동이다. 대도시가 허락하지 않을 듯한 그런 삶을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서울살이 20년, 삶의 가치와 의미를 나는 마을에서 발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아닌 연대와 협동으로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느슨하고 느리고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만나도 그저 멀뚱멀뚱하던 이웃들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공공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발휘되는 집단지성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마을은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 가장 푸르른 날 경력 단절 여성이 되어 출산과 육아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감격이었지만 내 삶은 어디론가 자꾸 흘러서 멀리 가버리는 듯했다. “사회로” 나가려 무던히 애썼으나 한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몸은 가정에 묶였다. 마흔두 살에 셋째를 낳자 내 인생 모든 게 끝난 기분이었다. 사회생활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서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자 ‘낙후된 마을과 떠나는 이웃’이 보였다. 한국사회 변혁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살고 있
불행한 정신적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끝없는 변화 때문에 영원한 소유(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사물(인간)에 대한 우리의 집착 탓이다. 오직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의 마음에 순수한 기쁨을 준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신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신을 본디 사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신을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격체뿐이다. 나는 신이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신을 사랑할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역시 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야 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그러한 사랑은 어떠한 존재도 예외 없이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는 신에 대한 사랑과 사랑의 행복을 잃게 될 것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0.73%라는 헌정사상 최소 격차의 초박빙 선거였다. 승자든 패자든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대선 과정에서 빚어졌던 갈등과 감정의 앙금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닥친 현실과 미래가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의 터널이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제3의 파도가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내 경제를 직격하고 있다. 국내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2014년 9월 이후 약 7년 반 만에 최고치를 보이는 등 연일 치솟고 있다. 10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L당 1900원을 넘어섰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등은 배럴당 130달러선을 위협하고 있다. 통상 국제 원유가가 국내 시장에 반영되는 시간이 2주가량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유가는 앞으로도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환율까지 1년 9개월 만에 1230원선을 오르내리며 유가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물가 상승이 우크라이나 지정학 파동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