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한 문학평론가가 '흥부전'에 대한 놀랄 만한 해석을 내어놓는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와 ‘흥부’에 관한 해석을 새롭게 내놓는다. 한 마디로, 나쁜 놈 놀부에게도 본받을 점이 있고, 착한 흥부라고 해도 배워서는 안 될 나쁜 점이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해 나는 시골 출신의 순진한 대학 2학년 학생이었는데, 이 새로운 해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의 인식 체계 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창의적 해석에 대해 나의 지적 너그러움은 참으로 인색했다. 내가 받은 학교 교육을 생각하면 나의 인색함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 새로운 해석은 당시 30대 초반의 문학평론가 이어령이 들고나온 것이었는데,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놀부의 악덕과 흥부의 선량함을 대비시켜 이른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적 주제를 강조하는 기존의 전통적 해석에 발칙할 정도로 대드는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55년이 지난 오늘에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해석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하던 해석이었다. 이 해석은 당연히 ‘창의적 해석’의 끝판쯤 되는 듯했다. 이때의 ‘놀부 해석’이 있음으로써, 놀부를 근대 자본주의적 현실을 인식한 인물로 보고,
국정을 인공지능이 운영하면 어떨까. 고백하건대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일을 이렇게 처리할 거라면 차라리 인공지능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규정만 따르면 될 문제를 혈연, 지연, 학연 등 인연과 사정을 따져야 하니, 이쯤 되면 ‘사람이 일’인가 싶다. 교통사고 보험금 지급 담당자라고 상상해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공지능은 이런 업무쯤이야 수 초 내에 뚝딱 처리할 거다. 인공지능이 규정에 따라 지급되어야 할 보험금을 ‘알아서 잘’ 결정한다. 블랙박스 영상만 업로드하면 계산은 뚝딱이다. 인간 담당자는 민원인에게 ‘딱 센스있게’ 말한다. “아, 인공지능 저 녀석이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고 하네요. 시스템이 이래요. 저라고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고객은 돈 한 푼 못 받고 풀이 죽어서 돌아가는 거다. 상상으로는 통쾌해도 현실에서는 비극일 것인데, 고객에게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의 기능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은 사회의 요구에 반응할 윤리적, 법적 책임 또한 가진다. 사람들의 선호는 상충되거나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래서 조직은 상시적인 학습과 조정에 자원을 할애한다.…
얼마 전에 목격한 일이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차례차례 앞문으로 승차했는데 한 사람이 뒷문으로 올라탔다. 얌체 같은 행동이었지만 뒷문으로 탔던 경험이 다들 있어서인지 아니면 두세 정류장만 가면 지하철로 환승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 젊은 버스 기사가 “뒷문으로 타지 마세요!”라며 한마디를 했다. 매우 짧고 굵은 지적이었다. 내가 듣기에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못 들은 척하거나 “죄송합니다!”라고 대응할 텐데 이 승객의 반응은 다소 논쟁적이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민망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버스 안을 헤치고 운전자석으로 가더니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 다른 지역 버스는 별말 없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볼멘소리를 들은 기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뒷문으로 타면 위험합니다. 안전 때문입니다.” 이 말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앞문 승차, 뒷문 하차”라는 기사의 안전 수칙 준수와 “앞문으로 하차할 때도 있고, 뒷문으로 승차할 수도 있지”라는 승객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계속 맞선다면 출근길 분위기는 이상해졌을 테고, 두 사람…
동물행동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의 식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짝짓기나 가족의 형태를 예측한다. 인간은 채식성이었던 유인원 선조로부터 갈라져서 진화된 후, 수백만 년을 지내오는 동안 점차 육식과 채식을 함께 먹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치아와 손톱은 여전히 유인원과 같은 모양이어서 호랑이처럼 날카롭지 않다. 인간이 사냥에 뛰어난 것은 이와 손톱이 아니라 커다란 뇌 덕분이었다. 신체 구조는 사냥하기에 불리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도구를 사용하고 협동 작업을 통해서 성공적인 수렵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식물의 뿌리나 과실을 채집하는 데도 도구를 사용하였고, 이를 위해서도 역시 커다란 뇌가 필요했다. 이처럼 식량을 구할 때도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두뇌를 훨씬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침팬지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량을 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먹으며, 새끼 침팬지에게 그 방법을 가르친다. 침팬지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이 익혀야 하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침팬지보다 훨씬 많다. 그 결과, 부모의 책임은 매우 무거워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모친은 물론이고 부친의 보살핌도 중요하게 되었다. 오랑우탄의 수컷은…
극우화, 난민 유입,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유럽연합 의회는 2024년 세계 최초의 포괄적 인공지능 규제법인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을 가결해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건강 논란에 시달리는 노구의 바이든 대통령조차 2023년 ‘AI 행정명령’을 발령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이용과 발전을 위한 정책과 원칙의 기초를 놓았다. 우리나라 제22대 국회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는 총 6개의 AI 기본법안들이 계류 상태에 있다. 안철수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정점식 의원 등 108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민형배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기술 기본법안’, 권칠승 의원 등 15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개발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그것이다. 현재 발의된 인공지능 법안들의 내용이 타당하다거나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뭐라도 좋으니 일단 기본법은 통과되어 있어야 고쳐나갈 수라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여야가 인공지능 법 정책을 두고 지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탈주해 서울 한 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한 지강헌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쳤다. 지강헌은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혐의사실은 상습절도였다. 범죄를 미화하거나 동정할 의도는 없지만 절도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으니 ‘무전유죄’라 억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강헌의 인질극이 벌어진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카카오 의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을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조금은 희석된 것 같다. 하지만 ‘전’이 희석된 자리에 ‘검’이 들어찬 것은 아닌가 싶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확실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가관이다. 댓글 팀 운영이 폭로되더니 급기야 여당 유력 인사가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이 기소된 사건의 공소취소를 청탁하였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이던 시절 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댓글 조작, 일명 드루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들은 울산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청탁했다는 혐의
2024년 현재, 우리는 유튜브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앱으로, 심지어 카카오톡을 제쳤다. 실로 대단하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유튜브가 축복이자 저주로 느껴진다. 축복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방 침대에 편하게 누워 과학, 역사, 문학, 철학 등의 유명 인사의 강의나 인터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학문적, 인문 소양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오락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옛날 드라마, 오래된 예능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신상(?) 영상들까지. 각종 분야와 국경을 뛰어넘은 영상들이 셀 수도 없이 있다. 우리는 유튜브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무엇이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는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콘텐츠를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에도 대단한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실제로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대단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꾸 '나'가 초라해진다. 이런 초라함을
한국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4계절의 뚜렷함에 모두가 부러워하고 있다. 꽃이 만발하는 포근한 봄, 신록이 무성한 여름,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가을, 차가운 눈바람과 함께 맨몸을 드러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우리는 4계절의 운행과 변하지 않는 규칙성을 발견하곤 한다. 게다가 가까이 있는 도시 주변의 산들은 우리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언제나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4계절에 변화에 맞추어 한국인은 계절의 특성에 알맞게 의식주를 계발하며 생활화하여 왔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나무와 흙으로 한옥을 짓고 여름 장마비의 습기를 줄이기 위해 대청과 누마루를 만들었다, 한옥의 시원함은 이러한 장치 이외에도 집 뒤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찬 기운이 마당의 더운 기운과 어울려 대류현상에 그 원인이 있다. 뿐만아니라 음식과 옷에서도 우리들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재질로 한국적인 아름다음을 이루어 내었다. 오늘날 한류문화의 중심에는 한국의 다양한 음식과 독특한 먹거리도 포함된다. 나아가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해서는 따뜻한 온돌방을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생활문화가 4계절의 영향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날이 갈수록 한국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총격을 당했다. 유력 대선 후보이자 전 대통령에게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이 생중계로 방송됐다. 연설을 시작하고 불과 몇 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총성이 울렸고 단상에 몸을 숙인 트럼프 전 대통령 주위로 경호원들이 에워쌌다. 연단 뒤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총성은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청중석에서 부상자가 있는 듯 비명이 들렸다. 잠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오른쪽 귀와 얼굴에 피가 묻은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자가 보이게 얼굴을 들었고 주먹 쥔 오른팔을 더 높게 들어 보였다. 현장 유권자들이 USA를 크게 외치며 환호했다. 11월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두고 벌어진 초유의 암살 시도 사태가 미국 정치 판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커진다. 죽음 앞에서 살아 돌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렬한 인상이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보인다. 한편 이번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
틈날 때마다 가는 시골 텃밭(월말 농장)은 바다가 가까운 계곡 꼭대기에 있다. 처음 그곳은 수십 년 묵밭이어서 가시투성이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잡목 야산이었다. 포클레인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밭 모양을 갖춘 지 몇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어쭙잖다. 맞은편 계곡과 산자락, 바람 따라 춤추는 무성한 나무들을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숲멍을 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몇 해째 다니다 보니 뻐꾸기·산비둘기·딱따구리 소리에 정이 듬뿍 들어버렸다. 텃밭 주변에는 까마귀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녀석들이 그 근처 나무들을 둥지 삼아온 세월이 길었던 듯하다. 저희끼리 어지간히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에 “이놈들이 저희네 집터에 무단히 들어왔다고 집세 내놓으라는가 보네”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언젠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삶은 달걀 두 개를 감쪽같이 훔쳐 간 일 빼놓고는 특별히 해를 입은 일은 없다. 까마귀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납다. 전설 속에서는 불길한 새로 여기는 험악한 속설이 많다. 죽음의 전조, 전쟁의 예언 따위의 누명도 붙어있다. 민화에서는 악마, 마녀, 저주받은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까치는 그 반대다. 오랫동안 익조(益鳥)로 여겨졌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