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원화성 사방(四方)에는 각루가 있지만, 다산의 기본설계(성설)에도 없었고 1차 공사가 끝난 1795년 초 혜경궁 환갑을 치르던 때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을묘년 수원 행차 시기 중 훈련을 위해 만든 주간 성조도(城操圖, 훈련도)와 야간 훈련을 위한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操圖)에서도 각루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에는 동북각루는 보이지만, 각루나 방화수류정이라는 용어 대신 용두정(龍頭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각루는 위계가 높은 곳에 세워져 절대 권력자의 힘을 상징했다. 중국 황성에는 각루가 존재하나 한양도성에는 없고 경복궁 등 일부 궁궐에만 있어 함부로 설치하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각루는 지형적으로 각(角)이 있는 궁궐이나 성곽 울타리에만 설치되는 것으로, 수원화성과 같은 원형의 성곽은 각이 없으므로 각루 설치의 의미가 없다. 수원화성에 각루를 설치하는 것은 위계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불합리한 것인데 굳이 만든 것은 정조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수원화성은 1789년 읍치를 옮길 때부터 고려된 것은 아니었다. 3년이 지난 1792년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화성행궁에서 치르고자 축성을 계획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한 만큼 정조는 치밀한 장기적 계획을…
테세우스는 아테네 최고의 영웅이다. 그는 전장에서 아테네의 청년들을 구출하여 돌아온다. 그 때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기념으로 전시하였는데, 세월이 흘러서 이 배가 부식되기 시작하자 널빤지는 하나씩 하나씩 교체됐다. 그렇게 널빤지가 교체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는가? 일부 교체된 정도라면 테세우스 배와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배의 모든 부속을 다 교체하게 되었다면, 이때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른 것과 다르게 그것을 그것답게 하는 것을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절대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이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한 번 해 보자. 홉스가 테세우스 배의 목재를 교체할 때 헌 널빤지를 빠짐없이 다 모아서 다시 조립하여 배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완성 조립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홉스의 배인가?같은 의미로 원래의 테세우스의 배는 새로 다 교체되었기에 이 배는 새 테세우스 배 즉 전혀 다른 배라고 할 수 있는가? 정작 이 배는 원래의 테세우스의 배로서의 존재를 유지
“오 슬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대행 태상께서 돌아가신 원인을 아는가 모르는가.… 윤덕영·한상학 두 적신으로 하여금 두 시녀에게 아침 식혜에 독약을 넣어….” 1919년 1월 손병희 선생 이름으로 발표된 ‘고(告)국민대회’ 포고문이다. 모두 616자로 된 이 포고문은 “1)파리 강화 회의에 일제가 마련한 ‘한국민족은 일본의 어진 통치에 순종해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각계각층의 대표자 명의로 된 조작증명서 서명에 고종이 크게 진노했고, 2)일제는 친일파인 윤덕영·한상학을 사주하여 독살을 꾀해, 3)고종의 식사를 받드는 두 명의 궁녀를 매수하여 야참 식혜에 독약을 넣어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포고문은 독이 든 식혜를 마신 고종 황제의 용태도 구체적으로 기록햇다. “이를 드신 황제께서는 옥체가 물과 같이 허물어지시고 뇌가 파열되시며 아홉 구멍에서 피가 솟아흐르며 즉시 붕어하셨도다. 이 심통을 어찌 말로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일본인 혹은 친일파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거기에 고종의 국장(國葬)은 조선총독부가 임시로 설치한 장의괘(葬儀掛)가 주도하면서 3년여에 걸쳐 장중하게 진행되는 조선왕실의 국장에 비해 축소되고 변형됐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남편은 사실 낚시에 관심이 없는 남자다. 그런 남자가 낚시 도구를 사왔다. “이게 뭐야?” “친구들이 낚시터에 가자니까 나도 한 벌 사왔어.” “당신 그 솜씨로 물고기를 낚아?” “왜 이래. 왕년에 저수지에서 한 가닥 하던 솜씨야.” “허이고야.” 나는 남편을 비웃었다. 새벽이 되자 남편이 웬일로 부스럭 거리며 일찍 일어난다. “어디 가려고?” 나는 잠결에 물었다. “친구들이 차타고 기다려. 나 낚시 다녀올게.” 난 남편의 낚시엔 관심이 없었다. 종일 뒈지게 일만 했다. 집에 오니 그때까지 남편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밤 11시나 됐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쳐다보자 그는 큼직한 물고기 한 마리를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 봐. 내가 낚은 메기야. 팔뚝만 허지?” “그러네. 어디 봐요.” 나는 남편의 손에서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정말 팔뚝만 했다. “이걸 어떻게 잡았어.” “어허, 내 솜씨가 보통 아니라니까,…
‘보다’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사물과 눈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주요 조건은 사물과 눈 사이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즉, 손바닥과 눈 사이에 거리가 없을 때는 손바닥 자체를 볼 수 없기에 ‘눈을 가리다’ 또는 ‘보지 않는 행위’로 정의된다.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기능에다 보는 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는 방식과 유형들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본다는 것’은 외부세계로 향하는 의식적 행위를 일컫는다. 사람의 눈은 밖을 향해 열려있으므로 나보다는 남들을 더 잘 살필 수 있고,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부세계를 지향하게 됨은 당연하다. 반면에 육체적인 시각기능과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내면을 관찰할 때에도 ‘보다’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외계의 어떤 목표물에 주의를 집중하여 볼 때를 ‘주시(注視)하다’라고 한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을 밝게 비추어 의식의 흐름과 작위(作爲)하는 스스로의 행위에 집착됨 없이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를 ‘관조(觀照)’라 한다. 이는 불교수행법인 지관(止觀)과…
표현 /오은 한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젖 먹던 힘을 다해. 해고 있었다. 혜아리고 있었다. 벌써 온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과거를 어루더듬고 있었다. - 오은 ‘유에서 유’ / 문학과 지성 ‘지금’이라는 말은 늘 ‘어제’였다. ‘어제’라는 말은 언제나 ‘내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는 늘 ‘과거’로 남는다는 말이 되겠다. 내일 있(有)어야 할 일이 오늘 ‘있다’(有)라는 말(有)로 남는 끝없는 순환의 고리는 마치 자전거 바퀴가 공회전 하듯 반복된다. ‘젖 먹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만이 있(有)을 뿐이다. ‘해고’가 있기 전에 고용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일로 ‘미래’를 헛바퀴 돌 듯 하더라도, 바퀴를 지탱하며 빛을 내는 바퀴살로 살아내야 할 일이다./권오영 시인…
오늘은 100번째 맞는 3·1절이다. 3·1절 기념해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정부가 주최하는 기념식은 3월 1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이날 정오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다. 경기도내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3·1절 행사를 준비해온 수원시는 ‘기억하는 백 년의 울림! 기약하는 백년의 미래!’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이날 낮 12시부터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제’를 개최한다. 방화수류정과 수원역에서 각각 출발하는 시민참여 만세 행진에 이어 화성행궁에서 주제공연과 100주년 기념식, 전시·체험행사 등이 열린다. 정오에 경기도내에서 가장 먼저 3·1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방화수류정을 시작으로 화성행궁까지 일반시민과 학생들로 구성된 2천300여명의 ‘독립군’들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한다. 오후 1시엔 수원역에서도 1천500여 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수원소년군이 화성행궁 광장으로 만세 행진을 시작한다. 오후 2시에는 화성행궁광장에서 수원지역 독립운동가 9인을 기억하는 주제공연 ‘수원, 그날의 함성’ 공연된다. 화성과 안성 등지에서도 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매년 3·1절과 8·15 광복행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제재 완화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됐다. 이로써 작년초부터 시작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여정이 기로에 섰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오후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채 각각 숙소로 복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가진 회견에서 회담 결렬 이유에 대해 “제재와 관련된 것이었다”며 “제재가 쟁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했다”면서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비핵화를 우리에게 줘야지만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며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영변 핵 시설 외에 추가적으로 큰 핵시설이 있음을 언급하며 “영변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가로 발견한 시설이 우라늄 농축과 같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저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오래된 케케묵은 논제다. 개발 대 보존 또는 활용 대 관리. 문화유산을 둘러싼 가장 흔한 논쟁이다. 근래 들어 문화재청 내 문화재활용국 신설과 신설부서의 추진사업이 빛을 발하면서 보존에 치우쳐 있던 무게 축이 점차 활용이라는 측면으로 그 무게가 늘어가는 형태를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재 활용에 관심을 두고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등재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등재 이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이와 연계한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시민들의 자부심 향상을 위함이다. 이에 반해 관광 자원화는 문화유산의 보편적 가치, 진정성이나 완전성을 훼손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논쟁의 중심은 양자택일의 사회적 갈등 조장이다. 과거 문화유산은 도시의 중심부보다는 주변부에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확장으로 주변부의 중심부화로 문화유산은 시민의 생활권 속으로 포함됐다.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생활권은 개발제한에 따라 재산권 행사의 어려움을 겪고 지역 공동화, 원도심(原都心)으로 변모됐다. 그렇다고 문화유산이 활용되어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브란트총리는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묵념했다. 그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독일의 과거를 사죄하고 역사와 화해하려는 그의 모습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후 독일 정치지도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죄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실’이란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가해자가 성실했다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죄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죄라 하기 어렵다. 이런 진정성의 의미에서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은 사죄에 있어서 만큼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다 독일인들이 100년 이상 된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한 사례도 있다. .1904년 아프리카 나미비아 헤레로·나마 부족은 독일제국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독일인 농장을 습격, 100여명을 살해했다. 이에 독일 군인 1만4천명을 파견했다. 그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벌였다. 저항할 능력도 없는 헤레로·나마 부족을 사막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고, 총을 쏘거나 총검을 휘둘러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