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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전장(戰場)에 핀 꽃, 시집 ‘개선을 지르고’

 

지구상에서 전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고,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지금도 총성과 포연(砲煙)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시대와 국가를 변화시킨 예가 허다하다. 가깝게 우리의 분단과 전쟁만 보더라도, 6·25 사변이 겨레의 삶과 심성에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고 문학사적으로도 예외 없이 걸출한 작품들이 그로부터 나온 것은 열거할 나위도 없이 많다. 전쟁문학의 역사는 유구하고 면면(綿綿)하다.


서구문학의 시원(始原)에 자리한 ‘일리아드’부터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그린 서사시다. 그래서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문학적으로 소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한다. 이제 전쟁 체험 세대가 뒷전으로 물러나고 기억조차 아스라해지면서 어느덧 한국문학에서 전쟁 이야기는 희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문학 외적으로는, 올해로 6·25가 발발한 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현재도 적과 대치 중인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시간의 흐름만큼 전쟁을 겪은 나라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하여 70년 전의 참상은 문학속에서나마 그 실상을 더듬어 볼 정도이다.


“전쟁은 지옥이다. 그렇지만 그 표현만으로는 전쟁을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은 미궁이자 공포이자 모험이자 용기이자 발견이자 신성함이자 연민이자 절망이자 갈망이자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담은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Tim O’Brien)의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 전쟁은 이렇게 설명된다. 전쟁은 지옥이되 지옥 이상이라는 것, 그 안에는 인간 경험과 감정의 거의 모든 측면이 들어 있다는 것이 오브라이언의 생각이다. 전쟁은 곧 삶인 것이다. 브라이언의 설명대로 ‘지옥의 전장’에서 감성의 꽃을 피운 70여년 전의 시집 한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이란 사람의 마음속 어느 귀퉁이에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사람의 생활 속 어느 속에나 있는 것입니다. 창림탄우(槍林彈雨) 속을 헤매고 총포의 방아쇠를 잡아 다려본 영혼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에는 남달리 애절(哀切)하고 심각(深刻)함이 있음을 깊이 믿습니다”라는 김광주(金光洲)의 짧은 서문이 있는 ‘凱旋(개선)을 지르고’는 6·25 전쟁 중에 전장에서 지은 이병선의 시집으로 전쟁이 끝난 1954년 4월에 충남선전사에서 석판본으로 펴냈다. 모두 4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삽화는 이상범 화백이 그렸다.

 

개선(凱旋)을 지르고


저 달이 지면/ 원수를 갚어 달라고 간신히 웨친/ 중대장님 원수가 숨은 동굴/ 저 고지로 돌격할 용사들 눈/ 그 눈은 너무나 뎅글어…// 죽엄의 조상가(弔喪歌)를 브르느냥/ 밤 새는 우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흙 무덤이 몇 개나 더 쌓일것인지도 모르며/ 털보 김상사가/ 아들 낳다는 편지구절까지 읽고/ 내가 죽으면 대신 답서해 달라는 부탁인대// 내 자신의 회답까지/ 서릿발같은 저 쪼각달이 지니고 가나보다// 장마두꺼비인양 엉금엉금/ 적전 30 야-드에 이르러/ 수류탄을 쥐는 눈 감었다 뜨는 눈들이/ 라생구(羅生鬼)처럼 부풀어 오른다// 폭음(爆音) 순발(瞬發) 분화(噴火)/ 드디어 분통은 터저/ 동굴에 뛰어드는 철육(鐵肉)뎅이…// 피의 세례속에/ 미친개떼처럼 물고뎀비는/ 오랑캐…오랑캐들/ 대검에 짤린 피 줄기/ 신음 아우성을/ 염마귀(閻魔鬼)의 난무처럼 짓밟으며/ 검은 그림자들이 개선을 지르고// 밤은 가고 / 피를 태우며 아침 해는 뜨고/ 털보 김상사 부탁쓰는 손등에는/ 어디선가 비새가 운다/ 영혼들이 서러히 듣나보다

 

시집에 있는 첫수 ‘개선(凱旋)을 지르고’의 전문이다. 곁에서 죽어가는 동료와 동료의 부탁으로 편지를 쓰는 인간애, 분노와 평화를 향한 염원….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의 참호 속에서 그 경계마다 꽃을 피운 인간의 감성은 참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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