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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공자왈 맹자왈의 세상

 

 

1. 불세출의 평론가 김현 제자 중에 정과리가 있다. 정 교수가 사십 초입일 때, 스승에게 요즘 논어를 읽고 있노라고 말했다. 김현은 그래? 하면서 말꼬리를 올렸는데, 눈치 없는 제자는 이어 말했다.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어요. 내가 이 에피소드를 읽은 건 서른 초반이었다. 논어를 읽으면서 무척 행복하다는 제자의 진술에 스승인 김현이 마뜩잖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공자님 말씀을 읽으면서 세상 행복하다는 말이 기껍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께름한 게 남았다.

 

사십 중반에 들어 스승 밑에서 논어를 읽으면서 비로소 정 교수의 행복을 공감했다. 옳게 된 선생님 지도 아래 읽는 논어 말씀은 그 자체로 천국이었다. 성현의 가르침이란 일점일획도 틀림없어서, 읽는 도중에 자꾸 눈물이 났다. 하근기인 내가 공부자 말씀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태평성대로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논어를 읽고, 대학과 중용도 읽고, 노장에 주역도 얼추 떠들어 보았지만, 성현의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알게 모르게 맑시즘 세례를 받았던 세대로 불의한 군사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을 통한 만민 평등을 부르짖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공자의 말은 옳고 바르므로 세상의 악을 광정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간절한 개인이 모이고 모여서 비로소 거대한 흐름이 되고, 들불이 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치를 깨닫고 나니, 김현이 왜 제자의 독서에 혀끌탕을 쳤는지 알겠다. 제자가 성현의 말씀 대신 한국문학 텍스트를 더 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의 나이 갓 서른에 발표한 ‘민중문학의 의식구조’에서 민중문학의 한계와 방향성을 예리하게 짚어냈던 것처럼, 더 높은 성취를 낼 수 있는 제자가 논어를 읽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때, 스승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물론 그가 행하는 인사와 정책,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멋진 말씀들 덕분이다. 당선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개인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사람 보는 눈도 가관이다. 그러니 그의 치세에서 우리가 어떤 희망을 걸겠는가. 그와 국민의 힘 인사들 입에서 아무리 훌륭한 말씀들이 쏟아진다고 해도, 논어 말씀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할 터다. 그러니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이 글을 쓰는 8월 23일은 처서다. 더위가 그치는 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노염은 한참 동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그러니 처서란 절기로 오늘을 기억하지 말고, 21년 전, 2001년 오늘에 우리가 예정보다 3년 먼저 IMF 차관을 상환한 날로 기억하자. 1945년 8월 15일에 나라를 되찾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광복할 것이 많다. 나라 빚도 갚아야 했고, 자주국방도 되찾아야 하며, 남북통일도 기어이 이뤄야 할 일이다. 통일이 너무 멀다 싶으면, 저 허영청한 대통령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리해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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